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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779635 / 260쪽 144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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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인문학자 이광수 교수와 시인 최희철의 인문학 컬래버레이션! “사진, 시처럼 철학처럼 읽다” 사진, 시처럼 철학처럼 읽다! 사진으로 하는 인문학놀이, 사유놀이 현대의 대표적인 대중예술인 사진은 인문학의 향연을 펼치기 좋은 매체다. 사진만큼 시간, 존재, 재현 등에 관한 다양한 시선과 그것을 둘러싼 권력과 맥락을 포함하는 매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의 공저자인 이광수 교수는 전작 《사진 인문학》에서 사진을 인문학의 보고寶庫라 했다. 이광수 교수는 사진으로 인문학적 사색의 향연을 펼칠 뿐 아니라, 그 ‘생각’을 ... 인문학자 이광수 교수와 시인 최희철의 인문학 컬래버레이션! “사진, 시처럼 철학처럼 읽다” 사진, 시처럼 철학처럼 읽다! 사진으로 하는 인문학놀이, 사유놀이 현대의 대표적인 대중예술인 사진은 인문학의 향연을 펼치기 좋은 매체다. 사진만큼 시간, 존재, 재현 등에 관한 다양한 시선과 그것을 둘러싼 권력과 맥락을 포함하는 매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의 공저자인 이광수 교수는 전작 《사진 인문학》에서 사진을 인문학의 보고寶庫라 했다. 이광수 교수는 사진으로 인문학적 사색의 향연을 펼칠 뿐 아니라, 그 ‘생각’을 다른 이와 ‘같이’ 나누어보고자 했다. 누구나 사진을 찍지만, 사진에 대해서 말하는 이는 드물다. 사진에 관해서는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이라 말하면 끝일까? 사진에 담긴 생각을 제대로 말했다고,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광수 교수는 자신이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수년 동안 직접 찍은 사진들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오랜 벗이며 후배인 “철학하는 시인” 최희철과 사유의 길에 나섰다. 이 책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는 사진 찍는 인문학자와 철학하는 시인이 함께한 사유의 놀이, 인문학의 향연이다. 사유의 주고받음을 통해, 멈추어 서지 않은 채 지속하는 것, 즉 삶의 의미를 곱씹고자 했다. 사진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를 추구하는 예술이다. 모사가 아닌 재현의 예술이다. 시간과 우연, 존재와 비존재, 세속과 성스러움에 대해 사유하기 좋은 인문학의 보고인 것이다. 창조적 종합을 향한 사진과 시의 패킹 작용 그리고 인문학적 삶 최희철 시인은 두 저자의 만남을 일종의 패킹 작용이라고 비유하였다. 이광수 교수는 인도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다. 최희철 시인은 배 타는 일(항해사)과 닭치는 일로 생계를 꾸렸던, 철학하는 시인이다. 스스로도 사유의 경계 지음이 없었던 이들인데, 두 저자의 만남은 더더욱 무경계의 사유를 보여준다. 텅 빈 경계가 충만할 수 있는 지점이다. 패킹 작용이란 관管과 관 사이에서 자신도 관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일종의 창조적 종합creative synthesis이라 할 것이다. 모든 게 그렇듯 혼자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은 없다. 가령 탁자 위의 패킹은 ‘패킹 작용’을 하지 않는다. 패킹은 관管과 관 사이에 있을 때, 자신이 조여지며 변형될 때, 말 그대로 ‘packing’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패킹은 ‘애무술愛撫術’과 관련되어 있다. 타자他者를 뜨겁게 달구는 것 말이다. 하지만 애무술엔 ‘정통正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만으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창조적 종합creative synthesis’이어야 한다. (최희철, 나가는 글) 서로 다른 사람이 대상을 바라볼 때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대상에게 부여되는 의미가 그것을 대하는 주체의 인식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진 찍는 기술이 전문가 수준에까지 미치지 못해, 찍는 사진마다 얼추 비슷하게 나타날 수는 있다. 그렇다고 그 대상을 대하는 인식조차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이광수 교수가, “그냥, 편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자. 이 장면을 대할 때, 난 이렇게 보았다, 이 사진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라는 것을 서로 이야기해 보자”고 제안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이광수 교수가 말하는 인문학적 삶이다.
사진가가 본 세상
내가 보는 세계 안에 그가 보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 안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세계가 나온다. 보는 사람이 있으면 보이는 사람이 있고, 찍는 사람이 있으면 찍히는 사람이 있다. 무한히 펼쳐지는 주름막 같다. 한없이 큰 우주도 접으면 한없이 작은 크기로 접힐 수 있고, 그 역도 성립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하다. 결국 크다는 것은 작은 것으로 수렴되고, 큰 우주는 아주 작은 데도 있다. 그 아주 작은 데가 사람이니 결국 사람이 우주인 셈이다. 사진이란 그렇게 작으면서 끝이 없는 무한한 우주를 담을 수는 없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겨자씨만 한 단자를 드러낼 수는 없다. 그것은 사진이란 생명력을 갖지 못한 이미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티끌만 한 카오스 속에서 끝도 없이 변하고 생성하는 그 무한의 코스모스를 드러내기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그것을 잡아 낼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온갖 감각으로 인식하는 것일 뿐이다. 카메라로 담지 못한 것을 보고자 한다. 사진은 다만, 그것을 은유하고 전유할 뿐이다.
시인이 읽은 세상
만약 80세까지 산다고 했을 때 매년 1월 1일에 사진을 한 장 찍는다면 생애에 필요한 사진은 80장이 될 것이다. 한 달에 한 장씩 찍는다면 960장으로 생애를 표현할 수 있다. 이걸 한 달 혹은 하루, 한 시간 이런 식으로 세분해 나가면, 가령 일 초에 한 장씩 찍는다면 2,522,880,000장의 사진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더 세분할 수 있다.
그런데 사진은 어떤 사진이든 그중 한 장, 즉 한 찰나(刹那)이다. 가령 일 초에 한 장씩 찍은 사진이나 일 년에 한 장씩 찍은 사진은 찰나라는 면에서 다를 게 없다. 셔터를 늦추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측정할 수 없는 얇은 절편(切片)으로 찍히는 게 사진 이미지다. 모든 사진은 이렇게 한 찰나의 이미지를 포착한 것이다. 그런데 한 찰나에 포착한 사진도 무한분할 할 수 있다. 그것은 시간적으로만이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가능하다. 가령 모니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한 찰나인데 이 한 찰나는 시간과 공간의 절편들이 연결되어서 만들어진 찰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절편들이 자신을 향해 아니 어떤 중심성도 없이 몰려오거나 몰려다닌다. 그런 절편의 물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찰나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보는 순간 자신은 무엇들에게 오히려 보여지고, 그 관계들 역시 무엇들에게 보여지거나 보게 된다. 하여 자신뿐 아니라 사물도 절편의 물결 속에 출렁거리는 것이다. 가령 딱딱한 고체라고 생각하는 바윗덩어리도 절편의 물결을 한없이 늘여 가면 ‘액체’일 수 있다. 단지 우리의 시간 속에서만 고체인 것이다. 더불어 어떤 액체성의 접점(接點)도 미분하면 고체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나드(Monad)는 동일하거나 딱딱한 것 혹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극미적(極微的) 본질이 아니다. 모나드는 차라리 액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절편의 물결이 모두 녹아 있는 액체, 그걸 굳이 역동적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 다만 그런 절편성의 물결이 온 우주뿐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상적 삶에도 녹아 있다는 것, 하여 부드러운 관절 부위처럼 잘 돌아간다는 것이다.
사진을 볼 때마다 그 절편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사진이나 사진을 보는 존재만의 변화가 아니다. 서로의 귀퉁이가 닳거나 혹은 오히려 닳음이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그게 사진 이미지다. 이때 이미지란 절편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객관적 실체일 것이다. 사실 사진은 그걸 잡아내려는 안간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진조차 이미지라는 걸 알게 될 때 사진 역시 하나의 모나드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게 중첩된 이미지 하여 낡아가는 게 아니라 더욱 생생해지는 이미지 말이다.
그걸 ‘푸른 인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인연들 덕분에 우리는 술을 마시며 정을 나누거나, 시와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하다가 때론 싸우기도 하면서 그렇게 엉켜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인연들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딱딱해지거나 재미가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울증을 앓거나 죽음의 그림자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그 절편의 흐름, 푸른 인연을 그만둘 수 없다. 우리는 무엇 하나라도 그만둘 수 없다. 삶이 끝없이 중첩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부딪히며 바람과 파도를 만드는 것, 그 파도가 우리 삶의 귀퉁이를 적시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사진 속에 함께 서 있는 것처럼 사방에서 몰려온다. 강렬한 색깔로 말이다.
(1장 세계 속의 또 다른 세계, 19~22쪽)
목차
들어가는 말 산다는 것, 본다는 것(이광수)
제1부 모나드, 존재를 묻다
1 세계 속의 또 다른 세계
2 타자는 무한하다
3 나는 누구의 존재를 본 것일까?
4 우연한, 순간?의 모나드
5 텅 빈 경계의 충만
6 존재가 존재하는 방식
7 남성성의 착각
8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9 무상하게 흘러갈 뿐
10 그저 세상살이가 있다
11 서식하며 살아가기
12 타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13 어떻게 본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14 차이일 뿐, 비정상이 아니다
15 차이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생명의 역사다
제2부 시선에 갇힌 것은 무엇인가
1 탈주-기계로서의 사진
2 속도-기계로서의 카메라
3 갇혀 있는 것들에 대한 사유
4 가까이 보면 꽃의 우주
5 일상 속 천상의 소리
6 끝없이 살아 숨 쉬는 사건이 있을 뿐
7 섹스를 욕하면 성스러운가!
8 누가 판단하는가의 문제
9 되기의 존재론
10 꺾기
11 물처럼 감싸 안는 몸
12 시간을 기억하다
13 우리는 모든 걸 기억하는 존재이기에
14 정신이든 몸이든
15 경배, 욕(慾)의 세계
제3부 세속의 성스러움
1 발에서 꽃이 피는 그 욕망을 보라
2 가보지 않은 곳의 불안
3 여성의 죄인가, 남성의 광기인가
4 천국은 얼마일까?
5 찰나에 피는 꽃
6 무엇이 성스러움을 지탱하는가
7 현실 속의 이데아
8 어떻게 현재를 살 것인가
9 고매한 자들의 창녀 짓
10 숭고와 고통의 삶
11 태어남, 죽음이 시작하는 곳
12 기호의 이미지
13 특이성이 모여 우주가 되고
14 고갈되는 세계
15 아버지와 아들
나가는 말 입문적 삶과 패킹 작용(최희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