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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

이광수 저 | 푸른역사 | 201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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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6120858 / 212쪽 / 276g / 152 x 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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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허왕후는 어떤 존재인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인도에서 온 존재로 날조되었는가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허왕후 신화, 왜 그리고 어떻게? 신화의 정치학 흔히 ‘역사는 다시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모든 일이 대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일이 역사로 기술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술되는 역사의 자리에는 기술하는 이의 관심과 가치 판단에 의해 취사선택된 ‘역사’만 들어선다. 역사를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나 인물의 기록’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신화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허왕후는 어떤 존재인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인도에서 온 존재로 날조되었는가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허왕후 신화, 왜 그리고 어떻게? 신화의 정치학 흔히 ‘역사는 다시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모든 일이 대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일이 역사로 기술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술되는 역사의 자리에는 기술하는 이의 관심과 가치 판단에 의해 취사선택된 ‘역사’만 들어선다. 역사를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나 인물의 기록’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신화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의 사건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 중 일부만 선택되어 역사 기록에 담긴다. 특히 한 나라를 건국한 영웅에 대해서는 다양한 신화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화는 신화를 만들어낸 이들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필요로 하는 내용으로 강조된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나 어떤 왕조의 통치권이 비로소 반석 위에 오를 때면 건국 시조의 후손들은 건국의 영웅을 신화로 윤색하여 찬양한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단군왕검 신화를 만들어 내부의 에너지를 모으려 한 것이나 조선 세종 대에 고려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을 일으킨 태조 이성계의 신화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는 이름으로 찬양한 것은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허왕후 신화의 탄생과 확장 허왕후 신화 또한 이 같은 경향이 강하다. 허왕후는 아유타국阿踰?國 출신 공주다. 16세의 나이에 많은 수행원들과 함께 여러 가지 진귀한 물건들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 김수로왕에게 시집을 가 왕비가 되었고, 태자 거등공을 낳았다. 157세까지 살았는데 죽은 후 구지봉龜旨峰 동북 언덕에 장사했다. 여기까지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몇 가지 전설이 붙었다. 허왕후가 심한 풍랑을 만나 더 이상 항해하기 어렵게 되자 아유타국으로 되돌아가 ‘파사석탑’이라는 것을 배에 실었고 그런 후에야 무사히 김해에 도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의 〈금관성 파사석탑〉조에 새로 실린다. 여기에 허왕후가 오빠인 장유화상과 함께 왔는데, 그 장유화상이 불교를 들여왔다는 이야기가 새롭게 추가된다. 또 허왕후가 아들 열 명을 낳았는데 첫째는 수로왕의 뒤를 이어 가야의 왕이 되었고, 둘은 허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나머지 일곱은 산으로 들어가 신선 혹은 붓다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딸도 둘을 낳았는데, 그 두 딸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국을 세웠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진다. 왜 허왕후 신화만 사실로 받아들여지는가 현재 김해시는 허왕후가 인도에서 시집왔다는 신화를 실체화하여 여러 가지 행사를 열면서 시 관광 진흥의 소재로 삼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허왕후의 도래 이야기가 개막식에서 화려한 행사로 올려지기까지 했다. 신화를 문화 행사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상하게도 유독 허왕후 이야기는 실재의 사실로 간주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허왕후 신화를 사실로서의 역사로 간주하는 경향은 가야를 한국 고대국가 가운데 유독 신비한 이미지로 덧칠한다. 왜 그럴까?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슬픈 붓다》,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 등의 저작을 통해 역사의 국가주의화와 사이비 역사학을 비판적으로 고찰해온 저자 이광수(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는 이 책에서 왜 유독 허왕후 신화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는지, 허왕후 신화가 처음 만들어진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증식하고 확장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해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나아가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역사학과 사이비 역사학의 문제, 사이비 역사학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것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문제까지 날카롭게 지적한다. 허왕후 신화, 신화에서 역사로 허왕후 신화는 어떻게 확장되었는가 허왕후 신화는 한날한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처음 뼈대가 만들어졌을 때로부터 새로운 살이 붙은 가장 최근까지의 기간은 1000년이 훨씬 넘는다.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삼백년 전에 날조된 것이고 이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허왕후 신화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의 구조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당대 특정 구성원의 바람과 필요가 추가되어 많은 이야기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확장되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허왕후 신화에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져 그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담은 부분도 있고, 조선시대에 당대의 시대상을 담아 덧붙여진 것도 있으며, 1970년대 이후에 당시의 시대상을 담아 추가된 것도 있다. 허왕후 신화가 확장되는 과정을 보면 항상 특정 집단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체는 때로는 왕족이기도 하고 때로는 가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불교 사찰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이비 역사학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허왕후 신화는 어떻게 확장되어왔는가? 파사석탑과 장유화상, 허왕후 신화의 역사화 《삼국유사》 〈금관성 파사석탑〉조에 의하면 허왕후는 처음 고향을 출발했다가 풍랑을 만나 더 이상 가지 못하자 다시 돌아와 파사석탑을 가지고 탔고 그 덕분에 가락국에 잘 도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없는 100퍼센트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고대 인도에는 탑을 배에 탑재한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인도의 항해술을 고려해볼 때 돌무더기를 가지고 풍랑을 막아내면서 그 먼 인도 아요디야에서 가락국까지 항해해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김해에 있는 현재 허왕후릉이라고 알려져 있는 능 바로 앞에는 파사석탑이 자리해 있다. 원래는 호계사에 있던 것을 고종 때 김해부사 정현석이 이곳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신화가 사실로서의 역사로 변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허왕후 신화는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 중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허왕후가 본격적으로 역사적 실존 인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조선에서 상당히 지체 높은 가문으로 자리 잡은 양천허씨다. 경상도 관찰사였던 허엽(1517~1580)과 또 다른 양천허씨 관찰사인 허적(1610~1680)은 수로왕릉을 크게 보수한다. 허왕후를 전설상의 인물이 아닌 실제 역사적 인물로 보고 수로를 치켜세움으로써 허왕후의 역사성도 부각하려 한 것이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허왕후는 적극적으로 역사화된다. 이러한 양천허씨 문중의 조상 만들기에 사찰도 가세한다. 흥국사로 이름이 바뀐 옛 김해 명월사에서 ‘장유화상長遊和尙’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고 김해의 장유사長遊寺에서 이를 다듬어 장유화상이 허왕후의 오빠 허보옥許寶玉이며 그가 불교를 직접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찰의 연기 설화를 고증하기 위해 중수 과정에서 오래된 기와가 나왔다는 비기秘記 의존 방식을 사용한 창작이다. 이처럼 양천허씨 문중의 조상 현창 사업에 사찰의 연기 설화 창조와 만나면서 허왕후는 점차 실제 역사인물로 발전한다. 학계, 허왕후 신화의 역사화에 일조하다 허왕후 전설은 1970년대 이전에는 아무도 크게 주목하지 않는, 《삼국유사》에 등장한 전설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이종기라는 한 아동문학가가 쓴 탐사문 형식의 소설 《가락국탐사》(1977)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종기는 《가락국탐사》를 통해 허왕후가 실제로 북인도의 아요디야에서 서기 20년경에 출발해 몇 년 후인 기원 초에 태국

저자 소개

부산외국어대 교수. 역사학자(인도사)이자 사진비평가이다.
시민운동가로서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공동의장, ‘만원의 연대’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정의당 등 진보 정당 당원으로 활동해 왔다. 인도 근대사 연구 중 사진도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본격적으로 사진 이론을 공부하여 사진비평의 길로 들어섰다. 저술로는 인도사에 관한 것으로 『슬픈 붓다』,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 등의 지은 책이 있고,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 『성스러운 암소 신화』 등의 옮긴 책이 있다. 사진에 관한 책으로 『사진 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최희철과 공저) 등의 지은 책과 『사진으로 제국 찍기』의 옮긴 책이 있다.

목차

목차
서설
1장_허왕후 설화의 탄생
허왕후 설화, 어떻게 만들어졌나|허왕후 신화의 뼈대|김유신계 가문을 위해 첨가된 허왕후 신화|허왕후의 신행 기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2장_허왕후 설화의 확장
허왕후 설화, 실제 있었던 일인가|왕후사 창건, 역사적 사실인가|불교를 국가가 공인한다는 것|왕후사가 가야시대의 절인가|허왕후 설화, 확장되다
3장_허왕후 설화 해석의 문제점
허왕후에 의한 남방불교 전래설?|고대 인도의 불교사관|스리랑카의 사서 《마하완사》|불교적 역사관은 역사의 신화화다|《삼국유사》, 고대 인도의 역사 인식에 따라 쓰인 사서
4장_‘아유타’를 통해 본 허왕후 설화의 확대재생산
‘아유타’의 정체|힌두 제1의 신화 《라마야나》|《라마야나》 이야기, 중국과 한국에는 언제 어떻게?|‘아유타’의 전래
5장_‘파사석탑’과 허왕후 설화
파사석탑의 실체|허왕후와 파사석탑 이야기,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인도’, 불교의 나라가 되다|바다, 인도와의 접촉 통로
6장_조선시대 ‘허왕후’의 실체화
허왕후 설화, 새로운 전기를 맞다|허왕후의 역사적 실체화|‘보주태후’ 시호, 허왕후의 역사적 실체화 작업의 본격화|허왕후, 능을 통해 족보상의 지위를 확보하다
7장_허왕후릉의 조성과 설화 날조 혹은 창작
허왕후릉이 조성된 이유|허왕후가 열 아들을 낳았다는 모티프의 의미|허씨 성을 하사받은 아들은 둘인가 셋인가|칠선/칠불 신앙과 열 왕자 모티프|명월사의 날조 혹은 창작|장유사와 장유화상|불교 사찰이 주도한 허왕후 전설 확장
8장_무속과의 습합
보리암 설화, 허왕후 설화와 무속신앙의 융합|망산도 전설, 허왕후 설화와 지역 신앙의 결합|해은사 설화, 무속신앙이 허왕후 신화에 포섭되다|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불교, 재가 신자들의 구복과 치병에 힘쓰다|통도사와 영축산|차가 인도에서 전래되었다?
9장_국가주의와의 연계
허왕후 신화, 진호 불교에서 중요한 역할 담당|불교의 진호국가 전통|‘호국’ 의례가 아니라 ‘벽사’ 의례였다|허왕후의 딸이 일본국을 세웠다?|허왕후 딸의 일본국 건국 전설이 확장되다
10장_사이비 역사학과 우파 민족주의
사이비 역사학과 허왕후 신화의 왜곡?확대|쌍어문이 허왕후 신화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코끼리 그림과 활 그림 관련 주장도 비약일 뿐| 수로왕릉 옆 비석의 문양, 무엇을 말해주는가|《가락국탐사》, 허왕후 신화 만들기의 시작|사이비 역사학에 의한 허왕후 신화의 확장화|인도사를 통해 본 허왕후 신화 만들기의 허점|허왕후의 출신지가 중국의 보주?|불교 문헌, 사실 기록보다는 의미 전달 중시|파사석탑에 대한 과학적 검증|한국과 인도의 교류, 허왕후 신화가 확장되다|인도 우파 민족주의 세력의 역사 만들기에 이용당하는 허왕후 신화
11장_민족주의 신화와 국민 콤플렉스 그리고 무책임한 역사학계
허왕후 신화의 변천 과정|허왕후 신화의 확장 과정|사이비 역사학의 폐해|허왕후 신화의 ‘국민 신화’화|언론과 학계, 사이비 역사학의 확장에 일조|설화가 역사적 실체를 갖는 신화가 될 때|고대 사제와 근현대 학자들의 ‘역사 만들기’|사회과학적 역사관 대 문학적 역사관|신화에서 역사 끄집어내기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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