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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 | 곽형덕 역 | 섬앤섬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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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454198 / 268쪽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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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일본 근대문학을 상징하는 작가 아쿠타가와가 기록한 1백 년 전 중국의 생생한 풍경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요절한 천재작가,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 문학상’의 주인공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유일의 해외기행문 [중국기행] 국내 최초 번역 소개 이 책은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눈에 비친 1921년 중국 사회의 단면과 그가 마주친 단편 단편 일상의 세부가, 작가 특유의 빛깔이 입혀진 소설적 필치로 생생하게 기술돼 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시대의 격렬한 변화로 인해 ... 일본 근대문학을 상징하는 작가 아쿠타가와가 기록한 1백 년 전 중국의 생생한 풍경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요절한 천재작가,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 문학상’의 주인공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유일의 해외기행문 [중국기행] 국내 최초 번역 소개 이 책은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눈에 비친 1921년 중국 사회의 단면과 그가 마주친 단편 단편 일상의 세부가, 작가 특유의 빛깔이 입혀진 소설적 필치로 생생하게 기술돼 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시대의 격렬한 변화로 인해 현재의 독자에게는 오히려 낯설어서 신선하게 보일 수 있는 경치가 적지 않다. 그리고 소설가가 아니고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독특한 관찰과, 여행자가 아니라면 관심을 갖지 않을 시정의 풍경 또한 다채롭게 기록돼 있다. 격변하는 역사의 대전환기에 중원 곳곳의 명승지와 거리의 풍광을 포착해 특유의 언어로 펼쳐 놓는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은 잃어버린 이 세계의 옛 풍모와 역사의 변천을 알려주는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스스로 삶을 마감함으로써 당대 세상을 충격에 빠트렸던 작가 아쿠타가와 지금으로부터 꼭 95년 전인 1921년 3월 23일, 꿈에 그리던 중국에 첫 발을 내딛는다. 괴테가 작가로서 새 출발을 다짐하며 늘 동경하던 고전의 고향 로마를 찾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듯 아쿠타가와 역시 어린 시절부터 갈망하던 동양 고전의 무대 중국 여행을 전업작가의 길목에서 마침내 결행한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때 일이다. 이 책은 촉망받는 젊은 작가의 간절한 소망의 결실임과 동시에 꿈꾸던 이상향의 퇴락한 잔영, 밀려드는 새로운 시대의 격랑에 대한 관찰기이자 증언록이며, 이후 변모하는 작품들의 한 근원이기도 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근대 일본인 작가 가운데서도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애독된 작가 중 한명이다. 그것은 그가 아시아에 공통된 전통적인 문화 교양을 지니고 구미歐美 문학과 깊이 있게 접촉함으로써 현대문예의 소양은 물론 세계적인 시야를 확보한 주옥같은 작품을 많이 창작했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등의 문제는 아쿠타가와가 전 생애에 걸쳐 추구하고 전개했던 문학의 주제였으며, 일찌감치 유명 작가가 된 젊은 시절부터 그는 동서의 교양과 지성을 겸비한 문화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고전 한시와 한문소설의 주 무대인 서안, 소주, 항주, 서호, 여산, 장강 등지를 찾아 여행하는 동시에 당대 중국이 처한 현실과 미래를 알기 위해 북경, 상해 등지의 중국의 신구新舊 지식인들과 함께 대담하고 고뇌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야말로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서구 열강의 욕망 앞에 속수무책으로 해체되는 중국의 현실 속에서 같은 동양인으로서 비애와 분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또 다른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중국인들에게 비난과 배척의 대상이 되고 있는, 괴물 ‘모모타로’로 변해가는 일본의 모습 앞에 갈등하기도 한다. “이인걸 씨가 말했다. 지금 중국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공화共和에 있지 않으며 그렇다고 복벽復?에 있지도 않다. 저반의 정치 혁명이 중국 개조에 무력한 것은 과거에 이미 증명됐으며, 현재가 또한 그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들吾人이 노력해야 함은 사회혁명 단 한 길뿐이라는 것. 이것은 문화운동을 선전하는 ‘젊은 중국’ 사상가가 큰 소리로 외치는 주장이다. 이인걸 씨는 또 말했다. 사회혁명을 가져오려면 프로파간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술한다. 또한 각성하는 중국의 사인士人은 새로운 지식에 냉담할 수 없다. 아니, 지식에 굶주려 있다. 그렇지만 이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서적과 잡지가 부족한 것을 어찌하는가. 나는 이 씨에게 단언했다. 지금 시급한 일은 저술에 있다고. 어쩌면 이인걸 씨가 말한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현대 중국에는 민의가 없다. 민의가 없으면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그 성공을 말할 수 있는가. 이인걸 씨가 다시 말한다. 종자種子는 가지고 있으나 만 리가 다만 황무지. 노력하더라도 힘이 모자라는 것을 통탄한다. 우리들의 육체가 그 노력에 견딜지 말지, 근심 없음을 얻지 못하는 이유로다, 하고 말하고 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그러한 이인걸 씨를 동정한다. 이인걸 씨는 또한 말했다. 최근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은행단의 세력이라고. 그 배후 세력을 묻지 않고, 북경정부가 중국은행단에게 좌지우지되고 있는 경향이 있음은 부정하기 힘든 사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의 포화를 집중해야 할 표적을, 그 은행단으로 정하면 된다. 나는 말했다. 나는 중국의 예술에 실망했다. 내 눈에 들어오는 소설, 회화 둘 다 아직 논할 정도가 못 된다. 그렇지만 중국의 현재 상황을 보자니, 이 땅에 예술이 흥륭하는 것을 기약하는 것, 그 기약이 오히려 그릇됨과 같다. 그에게 물었다. 프로파간다 수단 외에 예술을 고려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가 하고. 이인걸 씨가 답했다. 없음에 가깝다. 내 비망록은 여기까지이다. 하지만 이인걸 씨가 말하는 것은 자못 시원시원했다. 함께 간 무라타 군이 “이 사내는 머리가 비상하군.” 하고 감탄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인걸 씨는 유학 중에 내 소설을 한두 작품 읽었다고 한다. 이것도 확실히 이인걸 씨에 대한 호의를 더하게 한 것임에 틀림없다. 나 같은 군자인君子人이라도, 소설가라는 자는 이렇게 허영을 구하는 마음이 크다.” ?본문 중 ‘이인걸’ 편 한편 서호의 풍광, 상해나 북경, 소주, 항주의 음식과 주루의 기생들, 경극 무대의 뒷모습 등 지금은 볼 수 없는 1920년대 중국의 일상의 삶이 작가의 묘사 속에 생생히 살아남으로써 독자들은 시간 여행과 공간 여행을 동시에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대단히 탄복해서 긴 상아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면서도 유심히 이 미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식탁 위에 요리가 하나하나 놓이듯 미인들도 속속 들어왔다. 도저히 애춘에게만 감탄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다음에 들어온 시홍時鴻이라는 기녀를 바라봤다. 시홍은 애춘만큼 미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느낌이 강한, 어딘가 전원의 향기를 띤 개성 있는 얼굴이었다. 머리를 양 갈래로 해서 묶은 끈이 분홍빛이라는 점 말고는 애춘과 다르지 않았다. 옷은 보랏빛 단자緞子에 은과 남을 섞어 짠 오부 정도의 가선이 붙어 있는데, 여순 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 기녀는 강서 출신이어서 옷차림이 특별히 시류를 좇지 않고 고풍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연지나 백분도 맨얼굴이 자랑인 애춘愛春보다 훨씬 농염한 자태를 뽐냈다. 나는 그 손목시계와 다이아몬드가 박힌 왼쪽 가슴의 나비 장신구, 알이 굵은 진주로 된 목걸이, 오른쪽 손에 보석이 박힌 반지 두 개를 보면서 제아무리 날리는 신바시新橋의 게이샤라 할지라도 이 정도로 찬연하게 몸치장을 한 여인은 없을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본문 중 ‘남국의 미인’ 편 “카페 파리지엔에서 나오자 넓은 길에 어느새 사람의 왕래가 거의 끊겼다. 시계를 꺼내 보자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상해 거리는 의외로 일찍 잠이 들었는데, 다만 그 가공할 인력거꾼만은 아직도 몇 명인가 남아 서성대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보면 꼭 무어라 말을 걸어왔다. 나는 낮 동안 무라타 군에게 ?뿌야오不要’라는 중요한 중국어를 배워두었는데 이 ‘뿌야오’는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 뒤로 나는 인력거꾼만 보면 바로 악

저자 소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1892년 3월 1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용띠에 용의 달, 용의 날, 용의 시에 태어났다 하여 ‘龍之介’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생후 7개월경에 생모에게 정신이상이 와서 아기를 기를 수 없게 되자, 그는 외갓집으로 옮겨지고, 생모의 언니, 곧 이모가 맡아 기르게 된다. 웬일인지 늦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오빠 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던 그녀는, 이제야 내 역할이 생겼다는 듯, 과보호라고 할 정도로 아쿠타가와의 양육과 교육에 매달렸다. 이리하여 평생 이모에게 묶여 사는 심약한 천재 작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뛰어나게 머리가 좋았던 그는, 중학(구제 5년 과정) 성적이 워낙 우수하여 일본 제일의 명문인 일고(一高)에 무시험으로 들어갔고, 1913년 도쿄대학 영문과에 진학했는데, 이 학과는 겨우 몇 명밖에 합격자를 내지 못했을 정도의 난관이었다 한다. 대학 재학 중인 1914년에, 일고 때부터의 동기인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동인지 ‘신사조(新思潮)’(제3차)를 창간하여 문학활동을 시작한다. 1915년에는 대표작의 하나인 ‘라쇼몽(羅生門)’을 발표했고, 어떤 급우의 소개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문하로 들어가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그 이듬해에 발표한 ‘코’가 스승인 소세키의 격찬을 받고, 문학에의 결의를 굳힌다. 이해에 대학을 졸업한 아쿠타가와는 해군 기관(機關)학교의 영어 교관으로 있으면서 창작에 정진하여, 그 이듬해에는 이미 제2단편집을 발간하고 있다. 1918년에는 교직을 그만두고 어느 신문사의 객원(客員) 사원이 되어 창작에 전념하게 된다. 그리하여 수많은 화제작을 연이어 내 놓음으로써, 30도 되기 전에 이미 중견 작가로서 인정받게 된다. 1921년에는 신문사의 해외 시찰원으로서 중국을 방문하여 호적(胡適)을 만나 대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행 중에 앓아눕는 등, 이 무렵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여, 신경쇠약, 불면증, 소화불량 등의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양부모와 이모를 둘러싼 가정생활의 갈등도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문단의 평가에 지나치게 예민하여, 누가 악평(惡評)이라도 하면 견딜 수 없어 한다. 그의 동시대의 몇몇 문인들은, 추문을 일으키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품에 대한 악평 따위는 아예 무시해 버리는 배짱으로 장수(長壽)도 하고, 따라서 대가(大家)라는 대접을 받으며 대작(大作)도 남기곤 하는데, 그런 유들유들한 작가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방대한 독서량으로 풍부한 지식과 천부적인 표현력을 가진 그는 끝까지 창작에 몰두하려 하지만, 차츰 육체적, 정신적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인생은 지옥보다 더욱 지옥적이다”란 말을 연신 되뇌더니, 결국 작가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접고 35년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게 된다. 시신이 된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부인이, “여보, 잘 하셨어요. 이제 좀 편안하시지요?” 하고 말했다고 하니, 그들의 악전고투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아쿠타가와의 죽음의 8년 후에, 친구이며 문예춘추사 사주인 기쿠치 칸이 아쿠타가와를 기념하는 신인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다. 아쿠타가와상은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발전하여,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쿠타가와의 유작인 ‘어느 바보의 일생’을 ‘패배의 문학’이라고들 했는데, 그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서, 나쓰메 소세키, 모리 오가이에 이어 역대 3위의 작가로 선정되고 있고, 그의 작품만을 다룬 ‘아쿠타가와 문학사전’이 몇 가지나 나와 있을 정도로, 그의 문학은 현재도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역자 소개

수리산에 에워싸인 군포시 대야미동(뒷뱅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컬럼비아대학대학원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연구과(EALAC)에서 석사 학위를 와세다대학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연구과에서 연구교수로 있다. 재일조선인문학, 오키나와문학, 만주국 시기의 문학 등을 통해 일본문학을 바라보고 그 시대적 함의를 현재적 맥락에서 탐색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메도루마 슌 문학과 미국-미군에 대한 ‘대항폭력’을 중심으로」, 「마타요시 에이키 문학에 나타난 “타자”와의 교섭 과정-“오키나와인 주체의 자세”를 묻다」, 「일제 말 이은직과 김달수의 일본어 창작과 동인지 활동에 관해서」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아쿠타가와의 중국기행󰡕(2016), 󰡔긴네무 집󰡕(마타요시 에이키 저, 2014),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일본 현대문학󰡕(다카하시 토시오 저, 2014), 󰡔장편시집 니이가타󰡕(김시종 저, 2014), 󰡔김사량, 작품과 연구󰡕(총 5권, 2008~2016)가 있다.

목차

목차
추천사 6
자서自序 15
제1부 상해를 거닐며 남기다 上海遊記
해상19 / 첫 번째 일별 上 22/ 첫 번째 일별 中 25 / 첫 번째 일별 下 28 / 병원 31 / 성안 上 34 / 성안 中 37 / 성안 下 40 / 극장의 무대? 上 43 / 극장의 무대 下 46/ 장병린 51 / 서양 54 / 정효서 58/ 죄악 62 / 남국의 미인 上 66/ 남국의 미인 中 69 / 남국의 미인 下 73 / 이인걸 78 / 일본인 81 / 서가회 85/ 마지막 일별 90
제2부 강남을 떠돌며 남기다 江南遊記
머리말 95 / 기차 안 98 / 기차 안 ?앞의 글 이어받음 100/ 항주의 하룻밤 上102 / 항주의 하룻밤 中 106/ 항주의 하룻밤 下110 / 서호 一 113 / 서호 二 118/ 서호 三 122 / 서호 四126 / 서호 五 130 / 서호 六 134/ 영은사 138 / 소주 성안 上 142/ 소주 성안 中 146 / 소주 성안 下150 / 천평과 영암 上 154 / 천평과 영암 中 158/ 천평과 영암 下 162 / 한산사와 호구 166 / 소주의 물 170/ 객잔과 주잔 174 / 대운하 177 / 옛 양주 上 181 / 옛 양주 中 184/ 옛 양주 下 187 / 금산사 191/ 남경 上 195 / 남경 中199 / 남경 下 203
제3부 장강을 거슬러 오르며 남기다 長江遊記
머리말 209 / 무호蕪湖 210 / 소강 214 / 여산 上 218 / 여산 下 222
제4부 북경에서 北京日記抄
옹화궁 227/ 고홍명 선생 230 / 십찰해 233 / 호접몽 236 / 명승 242
제5부 소소한 단상들 雜信一束 247
작품 해설과 옮긴이의 말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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