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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256169 / 382쪽 120 x 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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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유혹하는 한국사 [5]
반디앤루니스 리뷰
가지 않은 길을 가보면, 가야 할 길이 보인다!
‘만약에’로 보는 우리 역사의 34가지 결정적 순간들!
20세기 초 한반도가 분할됐다면?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쏘지 않았다면? 만주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면? 5.16군사쿠데타가 불발되었다면? 전태일이 분신하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납치된 김대중이 암살됐다면?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YS.DJ 후보 단일화가 됐다면? 금강산 관광이 5년 먼저 시작됐다면? 북한이 신의주를 홍콩처럼 개방했다면?
‘만약에’로 뒤집어 본 한국사 깊이 읽기. 이 책은 지난 백 년 동안 한국사의 흐름을 바꾼 순간들에 도발적인 ‘만약에’를 대입한다. 34개의 흥미진진한 가정을 통해 한국사의 결정적인 기로에 섰던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탐험한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갔던 길’의 역사적 의미를 진지하게 되묻는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앞으로 ‘가야 할 길’의 선택을 위한 신선한 교훈들을 던져준다
출판사 리뷰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이 단기적으로는 일진회의 병합청원운동이나 일본 내 병합 분위기를 고조시킨 면은 있다. 이토의 피살 소식이 전해지자 메이지 원훈이 살해됐다며 격분하는 목소리가 일본열도를 뒤덮었다. 복수를 부르짖는가 하면, ‘즉시 병합’을 외치는 과격한 주장이 들끓었다. 그러나 이토 사살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 내 민심은 환희에 달아올랐으며, 그것이 민중에게 독립 의지를 고취한 정도는 일본에서보다 100배 이상 컸다.--- p.31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쏘지 않았다면」중에서
고종이 밖으로 나와 망명정부를 선포했다면 상하이 임시정부는 비교도 안 될 만한 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한제국은 이미 세계 각국의 승인을 얻었고, 그 주권자였던 고종이 한일병합이 무효임을 밝히고 망명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다면 이에 호응하는 국가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힘이 우선인 국제관계에서 당장 광복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이 확실히 일본의 적으로 돌아선 다음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p.40 「고종이 망명정부를 세웠다면」중에서
물론 원자폭탄은 끝내 투하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만약 투하되었다면, 맥아더 신봉자들의 생각처럼 한국전쟁의 조기 승리로 이어졌을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동북아 정세, 전쟁에 대한 중국의 인식,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보면 원자폭탄은 중국의 전쟁 의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마오쩌둥은 미국이 원자폭탄을 사용한다면 수류탄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인도 총리 네루를 만났을 때는 “중국 인구가 얼만데”라며 미국의 원자폭탄을 ‘종이호랑이’에 비유했다.--- p.109 「만주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면」중에서
조봉암은 시대를 앞서 살았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진보당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조봉암을 죽이지 않았다면, 이승만 체제도 그렇게 한 방에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이없는 사법살인으로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적을 제거했다. 광기가 무덤을 팠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화를 불렀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부정선거는 결국 1956년 선거에서 놀란 이승만 체제의 과잉 대응이었다. 그런 점에서 죽은 조봉암이 살아 있는 이승만에게 복수를 했다고 할 수 있다.--- p.147 「조봉암이 사형되지 않았다면」중에서
10·26은 당시 더 큰 파국을 막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10월 26일 울린 총성은 죽음 이전과 이후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극명히 엇갈리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주장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그때 박 전 대통령이 죽었기 때문에 업적이 살아서 지금도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지, 만약 10·26이 나지 않아 부마사태가 서울까지 확산되기라도 했다면 박 전 대통령의 말로도 좋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인기가 지속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p.222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중에서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1997년의 외환위기가 심각했다지만, IMF가 한국 사회에 남긴 깊은 상처를 돌이켜보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IMF의 굴욕적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실제로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 가운데 우리와 다른 길을 선택한 사례가 없지 않았다. --- p.303 「IMF 구제금융 대신 모라토리엄 선언했다면」중에서
머리말 : 역사를 가정하면 오늘 갈 길이 보인다
1903년 9월 러시아, 일본에 한반도 분할안 제안
: 20세기 초 한반도가 분할됐다면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하얼빈 의거
: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쏘지 않았다면
1919년 1월 21일 고종 붕어
: 고종이 망명정부를 세웠다면
1931년 5월 신간회 해산
: '신간회'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1945년 12월 27일『동아일보』1면 신탁통치 보도
: 반탁운동, '동아일보' 오보가 없었다면
1947년 7월 19일 여운형 암살
: 여운형이 미군정의 민정장관이 됐다면
1948년 4월 21일 남북 연석회의
: 김구, 김규식의 남북협상이 성공했다면
1950년 3월 10일 농지개혁법 공표
: 해방 뒤 토지개혁이 실패했다면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 북한군이 사흘간 서울에 머물지 않았다면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 만주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면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했다면
1954년 4월 26일 제네바 회담
: 제네바 회담이 타결됐다면
1954년 11월 27일 사사오입 개헌
: '사사오입 개헌' 실패했다면
1959년 7월 31일 조봉암 사형
: 조봉암이 사형되지 않았다면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
: 5.16 군사쿠데타가 불발되었다면
1964년 9월 11일 베트남 파병
: 베트남에 파병하지 않았다면
1968년 1월 청와대 습격 사건 & 10월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 무장공비 침투 등 북한 도발 없었다면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
: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늦춰졌다면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분신
: 전태일이 분신하지 않았다면
1973년 8월 8일 김대중 납치 사건
: 일본에서 납치된 김대중이 암살됐다면
1977년 7월 23일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제정
: 임시행정수도 계획 실현됐다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테러
: 아웅산 테러가 성공했다면
1984년 3월 2일 대원외고 개교
: 대원외고가 생기지 않았다면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박종철 죽음이 은폐됐다면
1987년 9월 30일 야상 대선 후보 단일화 실패
: YS, DJ 후보 단일화가 됐다면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최
: 서울올림픽이 열리지 않았다면
1989년 3월 25일 문익환 목사 방북
: 문익환 목사가 방북하지 않았다면
1994년 7월 김일성 조문 논쟁
: 김일성 조문 슬기롭게 대처했다면
1994년 12월 1일 평시작전통제권만 환수
: 작전통제권 온전히 환수했다면
1997년 12월 3일 IMF 구제금융 선언
: IMF 구제금융 대신 모라토리엄 선언했다면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 관광선 첫 출항
: 금강산 관광이 5년 먼저 시작됐다면
2000년 6월 대북 쌀 지원 결정
: 대북 쌀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2002년 9월 12일 신의주 특별행정구 건설 계획 발표
: 북한이 신의주를 홍콩처럼 개방했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