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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굿바이

원제 : スローグッドバイ

이시다 이라 저 | 권남희 역 | 예문아카이브 | 201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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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구판 정보

슬로굿바이 이시다이라 저 | 황매북스 | 2007년 09월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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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27414681 / 300쪽 136 x 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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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눈물을 흘리고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있어” 읽고 나면 슬그머니 취기가 오르는 달착지근한 연애 이야기 ‘현재’를 살아가는 남녀의 연애 한 장면을 선명하게 오려낼 수 있다면 좋겠다. 되도록 아무도 쓰지 않은 테마를 아무도 쓰지 않은 방법으로 써 보고 싶다. 어른의 연애소설은 냉혹한 시선으로 관찰한 어두운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 조금 달달하더라도 다 읽고 난 뒤에 편안한 취기를 남길 수 있는 러브 스토리를 쓰고 싶다. ― ‘작가의 말’ 중에서 현대 감각의 묘수, 연애소설의 명수가 그려내는 20대의 사랑 ... “눈물을 흘리고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있어” 읽고 나면 슬그머니 취기가 오르는 달착지근한 연애 이야기 ‘현재’를 살아가는 남녀의 연애 한 장면을 선명하게 오려낼 수 있다면 좋겠다. 되도록 아무도 쓰지 않은 테마를 아무도 쓰지 않은 방법으로 써 보고 싶다. 어른의 연애소설은 냉혹한 시선으로 관찰한 어두운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 조금 달달하더라도 다 읽고 난 뒤에 편안한 취기를 남길 수 있는 러브 스토리를 쓰고 싶다. ― ‘작가의 말’ 중에서 현대 감각의 묘수, 연애소설의 명수가 그려내는 20대의 사랑 나오키상 수상 작가 이시다 이라가 정성껏 써 내려간 첫 연애소설집 이 책은 나오키상 수상 작가 이시다 이라의 첫 연애소설집이다. 잡지 [소설 스바루]에 연재된 작품을 모아서 책으로 펴냈다. 연재를 끝내기까지 몇 개월 동안 정성껏 써 내려간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오디오북이 도입되자마자 녹음 제작되기도 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이전까지 미스터리물만 주로 써오던 작가가 연애소설도 능청스럽게 잘 써낸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으로, 이시다 이라는 이 연작 시리즈를 내면서 ‘연애소설의 명수’라는 별명을 새로 얻었다. 《슬로 굿바이》에 등장하는 연인들은 모두 20대다. 20대답게 화끈한 장면들도 많이 나오지만 끝맺음은 대체로 ‘쿨하다’. 사귈 때는 체취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게 딱 붙어 있었지만 헤어진 지 3주 만에 새 여자 친구를 만나는 가벼운 사이, 이유도 모른 채 이별을 통보받고도 왜냐고 묻지 않는 남자와 한참 후에야 그 이유를 말해주는 옛 여자 친구, 이름을 속여 말하고 닉네임으로만 대화하거나, 랜선 연애 혹은 가짜 연애를 하는 등의 독특한 소재들을 다루면서 다소 헐거운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현대 젊은이들의 삶을 소설에 녹여낸다. 이시다 이라의 작품은 밝고 경쾌한 문장, 강한 흡인력, 빠르고 기분 좋은 전개, 도시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가의 이런 장점은 어찌 보면 서글프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독자들에게 무겁게 전달하지 않고 기어이 달달한 연애소설로 탈바꿈시킨다.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엔가는 있을 법한 독특한 연애담 만남과 헤어짐, 격정과 권태, 연애의 모든 순간이 펼쳐지는 열 가지 이야기 이시다 이라는 이 작품집에 작정하고 독특한 연애담만을 모아 놓았다. 하나같이 어느 익명 게시판에서 조회 수깨나 높았을 것 같은 흥미진진한 연애 이야기들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심각한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여자애에게 매력을 느껴, 그녀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몇 달 간 추녀 성애자로 살면서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하는 남자 이야기 [You look good to me],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며 상대를 무한정으로 소개해 주려는 주변 사람의 성화를 피해서 가짜 연애를 시작한 커플 [연인인 척하기], 콜걸과 2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데이트 거래’를 하는 [진주 컵], 새로 발굴한 작가와 매번 사귀고는 그가 유명세를 얻은 후에는 더 이상 교제하지 않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선이 주는 기쁨] 등 작품 속 주인공들의 연애는 일반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20대의 연애답게 열정적인 구석도 있다. 카페에서 새로 사귀게 된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화끈한 전 여자 친구와의 뜨거웠던 여름날을 회상하는 [십오 분], 사람들 앞에서 ‘우린 석 달이나 섹스를 하지 않았다’고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하트리스] 주인공의 화통한 모습은 놀랍다. “너는 지난 석 달 동안, 나한테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어. 나는 아직 젊은데 석 달이나 섹스하지 않았다고. 올여름은 아주 훌륭하게 처녀였지.” 한 남성이 민망해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눈인사로 가볍게 양해를 구한 뒤, 닫힘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문이 다 닫힐 때까지 엘리베이터 안의 시선은 레이코와 유타에게 쏟아졌다. “그런데 징그럽다니.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걸 입고 왔는데!” - [하트리스] 중에서 때로는 답답하고 불편한 상황들이 전개되기도 한다. [하트리스]에서는 일에 치여 고달픈 나날이 계속되는데다, 각자의 타이밍이 어긋나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시간들이, [슬로 굿바이]에서는 전 여자 친구의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와 어째서 자신과 헤어질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된 주인공이 한참을 혼란해 하다가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기까지의 안타까운 과정이 전개된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이 모든 순간이 연애의 한 단면이자 전부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사귀고 있는 두 사람만의 이야기다. 순간에 집중함으로써 모든 주변의 것들로부터 이 별것 아닌 연애를 의미 있게 만들고 있다. 헐거운 인간관계, 쿨한 이별 …… 점차로 옅어지는 연애의 농도 ‘초식남’을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한 문제적 작품 이시다 이라의 작품은 꾸준히 나오키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작품이 이러한 지지를 얻는 이유는 감각적인 문체를 통해 드러나는 메시지에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자기주장이 없어지고 외로움을 타면서도 인연이 와주기를 기다리고만 있다. 채팅 사이트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사람과의 랜선 연애 같은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만남은 유행하는데 제대로 얼굴을 맞대고 교제하는 연애를 하지 않는다. 이러한 세태 이면에는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인한 청년 실업률의 상승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와 더불어 빠르게 진행되는 젊은이들의 미혼화, 만혼화 현상이 이번 작품집 속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작가는 20대의 연애를 다루면서 점차로 그 농도가 옅어지고 있는 현실에 주목했다. 작가는 이후로도 이러한 현상을 간과하지 않고 꾸준히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는데, 소설 속의 이야기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우리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다. 난 괜찮아, 라고 했다. 하나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역시 착하네. 세이지와는 전혀 달라.” 착한 게 아니었다. 나는 우유부단해서 남의 인생을 옆에서 지켜보는 걸 좋아한다. 누구나가 인생의 주역이 되고 싶어 하지만, 꿈이고 사랑이고 성공이고, 어째서 그렇게 힘든 것에 다들 손을 대고 싶어 하는 건지. 그쪽이 신기했다. - [울지 않는다] 중에서 또한 이시다 이라는 이 소설을 통해 ‘초식계’ 남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울지 않는다]에서는 2년간 사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부여잡느라 아예 마음이 굳어 버린 여자애를 곁에서 다독이며 지켜보는 순정남이 등장한다. 사랑이나 성공 같은 힘든 것에 어째서 굳이 손대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관찰하는 자세로 바라봐 주는 착한 남자다. 소설에서는 이런 성향들이 등장인물들의 고민과 갈등의 요소가 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꿈의 파수꾼]처럼 묵묵히 작가 지망생 여자 친구의 뒷바라지를 감당해 내거나, [낭만 휴일]에서처럼 세상과 단절된 사람에게도 소통의 끈을 제공하는 존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주중에 한 편씩 읽고, 주말엔 ‘씩씩하게’ 데이트를 나가세요” 지금 사랑하고 있다면 어떤 방식이든지 괜찮습니다! 《슬로 굿바이》는 어찌됐든 주인공이 행복한 이야기이자 달달한 연애소설이다. 사랑마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면 곤란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읽고 나면 달착지근한 취기가 오르는 이야기로 열 편을 채웠다. 시종 쓸쓸하고 안타까운 분위기를 풍기는 표제작 [슬로 굿바이]마저도 이별의 이유를 깨닫게 된 후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이별이 주는 나름의 긍정적인 이유를

저자 소개

石田衣良
1960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오사카 세이케이 대학을 졸업한 뒤 카피라이터로 활동했다. 1997년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를 발표해 제36회 올요미모노 추리 신인상을 받았고, 2003년 발표한 《4teen》으로 제129회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TV 드라마로 만들어진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와 《4teen》에 젊은 층이 열광하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차세대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사회의식, 감각적인 문체,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는 눈으로 청춘 소설, 추리 소설 등 갈래를 넘나들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밖에 국내에 소개된 작품으로는 《스무 살을 부탁해》, 《빅 머니》, 《5학년 3반 료타 선생님》 등이 있다. 

역자 소개

일본 문학 팬이라면 믿고 보는 번역가이자 이름 자체가 추천 기능을 하는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스물다섯 살이었던 1990년 대리번역으로 번역을 시작해서 1991년 호시 신이치의 《신들의 장난》을 번역하여 출판사에 소개해, 처음으로 자기 이름의 번역서가 세상에 나왔다. 그 후로는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아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직접 기획하여 번역한 무라카미 류의 소설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 《오디션》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러브레터》가 베스트셀러가 되며 번역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현재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마스다 미리, 오가와 이토, 무레 요코의 소설과 에세이를 비롯해 수많은 일본 현대 작가의 작품을 우리 말로 옮긴 28년 차 번역가. 2014년, 번역 생활 이야기와 번역 팁이 넘쳐나는 《번역에 살고 죽고》를 발표하여 지금까지 번역가 지망생들에게 애독서가 되고 있다. 그밖에 《애도하는 사람》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시드니》 《반딧불이》 《카모메 식당》 《배를 엮다》 《누구》 《츠바키 문구점》 《영원한 외출》 등 삼백 권에 가까운 역서가 있다.

머리말

 

< 저자 이시다 이라 인터뷰 글 외 >

Q : 이시다 씨는 연애 소설의 명수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요즈음의 연애에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 계산적이지 않은 태도가 아닐까요. 자신의 돈과 시간을 교제하는 상대에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민감하지 않은 편이 연애를 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에 얼마나 자신의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그릇을 결정한다는 생각도 하고요. ― 웹진 <카오 재팬> 인터뷰 중에서

일은 굉장히 쉽잖아요.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하면 되고, 익숙해지면 일상적으로 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있고. 하지만 연애는 그렇게는 안 되죠. 사귀어도 상대를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고, 불편하거나 괴로운 일들을 계속 견뎌야 할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연애야말로 사람을 성장하게 해요. ― 2007년 <아사히신문> 인터뷰 중에서

이 책은 제 첫 단편집이고, 첫 연애소설집입니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쓰기 시작해서 몇 개월에 한 편씩 손으로 더듬거려 가며 정성껏 만든 작품입니다. 그때까지는 주로 미스터리만 썼기 때문에 아무도 죽지 않고 범죄도 일어나지 않는 소설을 쓰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남녀의 연애 한 장면을 선명하게 오려낼 수 있다면 좋겠다. 되도록 아무도 쓰지 않은 테마를 아무도 쓰지 않은 방법으로 써 보고 싶다. 어른의 연애소설은 냉혹한 시선으로 관찰한 어두운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 조금 달달하더라도 다 읽고 난 뒤에 편안한 취기를 남길 수 있는 러브 스토리를 쓰고 싶다.
그렇게 써 나가는 동안 발견한 것은 제 작가로서의 적성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의 주인공들은 혹시 작가의 분신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첫 연애소설이었던 만큼, 아마도 본인의 경험을 소재로 많이 쓰지 않았을까. 주인공 남자들의 공통된 성향이 수상하다(웃음).
이시다 이라의 미스터리 소설이나 SF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렇게도 능청맞게 연애소설 전문작가 같은, 나아가 연애 전문가 같은 그에게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책 속에서

“바람은 전부 일곱 번이야. 그렇지만 내가 사귀었던 사람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아냐. 세이지는 스기모토가 모르는 좋은 점도 있었어.”
돌발적인 분노는 겨우 잠잠해지려고 했다. 목소리의 크기를 바꾸지 않고,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알아. 그렇지만 나쁜 건 하나야. 하나가 울지 않으니까 안 되는 거야. 지금도 세이지를 좋아하면서 그걸 인정하지 않잖아. 심하게 상처 받았으면서 그걸 감추려고 해.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시작하지 못하는 게 있는 거야.”
점점이 떠 있는 등뼈의 돌기 옆에 진한 그림자가 두 가닥 생겼다. 하나의 등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 32~33p <울지 않는다>


“난 꽤 즐거운걸. 난 취하면 키스 귀신이 돼 버려. 아까부터 오늘은 누가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냐.”
유미의 눈이 아몬드 모양으로 치켜 올라갔다. 눈동자 역시 구운 아몬드처럼 밝은 갈색. 눈 밑의 볼록한 애교 살이 매서운 인상을 완화해 주었다. 그녀는 나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줄곧 내 눈을 보고 있었다.
“세토, 그거 누군지 알아?”
누구라도 대답을 알 수 있는 수수께끼였다. 나 역시 그렇게까지 둔하지 않다.
“난가.” ― 41p <십오 분>


그 봄날 밤 이후로 나는 미운 오리 새끼와 종종 파라다이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사만 할 때도 있고, 가끔 한 시간 이상 키보드를 두드리며 농담을 하거나 서로 웃기도 하고, 어릴 때 추억을 교환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의 거리를 두는 태도에 변화는 없었다. 일정한 선을 넘어 친밀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스스럼없이 틈을 보이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애인이 있는 친한 동급생이나 직장 동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못생겼으니까” 콤플렉스 탓인가 생각했지만, 나는 신중하게 그 화제를 피했다. 섣불리 언급했다가는 그녀가 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풀숲에 숨은 메뚜기 같았다. 멀리서 마른 가지를 밟는 발소리만 감지해도 폴짝 뛰어서 다른 풀로 숨어 버린다. 못생김에 대한 그녀의 신경은 지나치게 예민했다. ― 72p


“당신은 왜 여자를 사귀지 않아요? 전혀 상관없지만, 혹시 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글쎄요.”
에토 준코는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노출 콘크리트의 까슬까슬한 벽면과 겉으로 나와 있는 시커먼 에어컨 배관이 배경이었다. 촛불이 켜진 레스토랑보다 에토 준코에게 잘 어울렸다.
“마음만 먹으면 여자를 사귀겠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다들 너무 연애 의존증이에요. 언제나 설레고 싶어 하고, 하이에나처럼 쉼 없이 사랑을 찾아다니죠. 텔레비전의 유치한 러브 스토리를 너무 많이 봤어요. 병입니다.”
“흐음.” ― 100~101p <연인인 척하기>

 

・2회전 오케이!!’라고 금색 글씨가 자랑스럽게 박혀 있었다.
가장 최근에 여자와 잔 게 언제였더라. 적어도 1개월 단위로 손가락을 꼽아야 할 옛날이었던 건 확실하다. 히로토는 귀찮은 일이 싫었다. 혼자 사는 히로토에게는 이 세상에 귀찮은 일이 두 가지 있다. 일과 연애. 작은 편집 프로덕션에서는 일을 잘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건 번거로운 것을 싫어해서 착수하기 전에 철저하게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히로토는 일에서는 유효한 이 힘을 여성에게는 사용하지 않았다. 일은 하지 않으면 생활을 해나갈 수 없지만, 연애는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쾌적하게 살 수 있다.
히로토는 좁은 전화 부스에 멈춰 서서 잠시 그 전단을 바라보았다. 손을 뻗어 찢어지지 않도록 뜯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지루해 보이는 표정 그대로, 먼지로 부예진 유리 상자를 나와 시부야 거리로 돌아왔다. ― 120p <진주 컵>


그쪽 세계를 잘 모르는 시로지만, 아주 확률이 낮은 일이란 건 알고 있다. 연속극을 의뢰받아 화면에 이름이 나오는 각본가는 극히 소수의 잘나가는 작가뿐이다.
시로는 요코의 꿈을 응원하고는 있지만, 실현은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 때야말로 자신이 있었다. 시로는 안전망 같은 것이다.
…… 요코는 아이처럼 꿈을 꾸는 사람이니 하늘만 보다가 발밑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꿈이 깨져서 높은 곳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는 요코처럼 꿈을 꿀 힘은 없지만, 그럴 때 그녀를 지탱해 주는 매트리스 정도의 역할이라면 분명 할 수 있다. 마치 지금 밤샘을 한 요코가 쌔근쌔근 자고 있는 부드러운 침대처럼.
시로는 잠든 요코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요코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매트리스 끝에 살며시 누웠다. ― 155p <꿈의 파수꾼>

그날 밤 메일을 보내고, 평소보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어둠 속에서 본 적 없는 유키를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고, 그러면 다음 날이 빨리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즈키는 어느 샌가 새로운 아침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자신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연애를 하는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 그때부터 거의 매일, 밤마다 짧다고는 할 수 없는 메일을 주고받는 것이 미즈키의 일상이 되었다. 유키에게서는 다음 날이면 반드시 답장이 와 있었다. 서로의 핵심은 언급하지 않는 소소한 화제가 많았지만, 그래도 미즈키는 만족했다. 내용보다 미즈키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유키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져서 기뻤다. ― 183p <낭만 휴일>


“그렇게 사치스러운 소리만 하니 일 년 반이나 남자 친구가 안 생기는 거예요.”
너처럼 열두 살 이상 연상인 유부남한테 끌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지만, 사쓰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키네는 일과 관련된 지인 중에 몇 안 되는 사쓰키의 이해자로, 사쓰키네 회사에서 발행하는 홍보지 아트디렉션을 맡고 있는 ‘트랜스 페어런트’라는 디자인 회사 대표였다.
“그렇지만 지난 십이 년 동안 그런 사람이 네 명 있었어.”
“벌써 몇 번째 들었어요. 화가 두 명, 유리공예가와 도예가 한 명이죠. 그런데 기껏 재능을 발견하고 함께 애써 놓고, 어째서 성공하면 헤어져요? 프러포즈도 거절하고.”
그것은 사쓰키도 잘 모른다. 하지만 상대가 명성을 얻는 순간, 왠지 마음이 식어 버린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화가 중 한 명인 나오키는 울면서 헤어지지 말아 달라고 매달렸지만, 상대를 자를 때의 사쓰키는 여느 여자들보다 차가웠다. ― 249p <선(線)이 주는 기쁨>

후미히로의 친구 사이에서는 여자 친구와 능숙하게 헤어지는 것이 예의였다. 대판 싸우거나 눈물 바람을 하는 이별은 최악으로, 둘 사이에서라면 몰라도 다른 친구 앞에서는 깨진 커플들도 록밴드 해산 회견처럼 깔끔하게 했다.
앞으로 나아갈 음악성이 좀 다를 뿐입니다.
누구든 발전적이면서 담백한 연인 관계 해소라고 하는, 거의 승산 없는 투쟁을 연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날 후미히로와 와카코도 흔히 사용하는 엔딩 방법을 시도하게 되었다.
굿바이 데이트.
…… 인간이 하는 일의 9할은 자신도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 하는 것이다. 사용한 휴지처럼 지저분한 탤런트의 인터뷰를 사탕 같은 말로 꾸며 준다. 다른 남자로 바꿔 탄 동거 상대와 추억의 데이트 코스를 한 바퀴 돈다. 둘 다 바보 같은 짓인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왕 하려면 제대로 할 수밖에 없다. ― 278p <슬로 굿바이>

목차

목차
작가의 글
울지 않는다
십오 분
You look good to me
연인인 척하기
진주 컵
꿈의 파수꾼
낭만 휴일
하트리스
선(線)이 주는 기쁨
슬로 굿바이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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