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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강랭 외

시리즈 : 범우문고 [110]

이태준 저 | 범우사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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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08062832 / 158쪽 110 x 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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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국단편소설의 대가 이태준의 단편소설 모음 - 패강랭 외 농군, 밤길, 돌다리, 해방 전후 등 단편 수록~! 상허 이태준의 예술적 성취는 작가의 미적 기교가 완숙기에 접어든 1930년대 후반의 작품?에서 그 진가를 한껏 발휘한다. 특히 1930년대 말에 발표된 〈까마귀〉(1936), 〈복덕방〉(1937), 〈밤길〉(1940) 등의 작품들은 한국소설사를 찬란하게 수놓으며 우리 소설문학의 가치를 드높이는 데 크게 기여를 한다. 〈밤길〉에는 식민지 사회의 변두리에 존재하는 소외된 선량하고 성실한 성품의 인물이 주인공... 한국단편소설의 대가 이태준의 단편소설 모음 - 패강랭 외 농군, 밤길, 돌다리, 해방 전후 등 단편 수록~! 상허 이태준의 예술적 성취는 작가의 미적 기교가 완숙기에 접어든 1930년대 후반의 작품에서 그 진가를 한껏 발휘한다. 특히 1930년대 말에 발표된 〈까마귀〉(1936), 〈복덕방〉(1937), 〈밤길〉(1940) 등의 작품들은 한국소설사를 찬란하게 수놓으며 우리 소설문학의 가치를 드높이는 데 크게 기여를 한다. 〈밤길〉에는 식민지 사회의 변두리에 존재하는 소외된 선량하고 성실한 성품의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서울 수표교 다리 부근에서 행랑살이를 하고 있던 황 서방은 첫아들을 보게 되자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가족을 주인집에 맡겨 놓고 인천으로 내려와 건축 공사판에서 막일을 한다. 이처럼 선량한 인간이 직면한 암울한 상황을 감정과 의식의 과잉 없이 형식적 정제를 거쳐 전달하면서 절망적 시대에 대한 작가의 현실인식을 드러내는 탁월한 수법은 가히 단편소설의 대가라는 찬사가 허튼소리가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밤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허 소설에서 사건은 밝은 대낮보다는 어슴푸레한 새벽과 저녁을 포함한 어두운 시각에 보다 많이 발생한다. 상허의 중단편 소설을 공간적 배경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고향〉(1931), 〈서글픈 이야기〉(1932) 등과 같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두루 배경이 되고 있는 작품들, 〈농군〉처럼 만주지방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 그리고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다수의 작품 등 세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상허의 중단편 소설은 이렇게 예외 없이 일제 식민지 시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약간의 공간적 변주變奏를 거쳐 당대인의 초상과 슬픈 삶을 담아 내고 있다. 중단편 소설은 다시 작가의 체험과 신변담을 다룬 작품, 작가 자신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당대인들의 불우한 처지를 애정어린 눈길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 그리고 현실세계의 일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때 일제의 식민지 치하에서 궁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좌절과 패배 등 현실성이 농후한 작품들이 많다는 것을 보아도 상허의 소설에는 사회성이 없다는 기존의 평가는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는 〈패강랭〉(1938)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을 더듬어 보자. 주인공 현은 대동강 가 부벽루, 연광정 등지를 거닐며 “조선의 자연은 왜 이다지도 슬퍼 보이나” 하고 한탄한다. 현은 소설 제작상의 문제로 평소 평양에 오고 싶었으나 좀처럼 시간을 못 냈었는데 마침 이곳의 조선어 선생으로 있는 박이란 친구의 편지를 받고 내려오게 되었다. 점차 우리말 교육을 축소하고 물자절약이라는 이유로 평양 고유의 풍습을 제한하는 등, 음산한 일본 제국주의의 바람이 피부에 와닿는다. 현은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평양이 마치 폐허처럼 느껴진다. 을밀대에 서 있는 병사를 보고 그냥 강가로 내려와 약속된 요정으로 온다. 박은 이곳 부회 의원이요 실업가인 김과 함께 와 있었다. 김은 현실적 이득을 위해서라면 조선의 전통적 문물마저도 기꺼이 버려야 한다고 자신의 현실적 처세관을 피력한다. 이에 현은 김과 한바탕 언쟁을 벌이다 “이 자식? 되나 안 되나 우린 우린…… 이래 봬두 우리……”이라는 말로 울분을 토하면서 슬리퍼 차림으로 강가로 내려온다. 그리고 그는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 즉 서리를 밟거든 그 뒤에 얼음이 올 것을 각오하라는 《주역周易》의 말을 상기하며 전신에 엄습하는 냉기를 느낀다. 이러한 작품 내용은 〈패강랭〉이 조선 고유의 혼을 말살시키려는 일제의 탄압과 그로 인한 고난의 엄습을 예감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생생하게 담아 내려 한 작품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며 노력한 경향의 작품들 중에서는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으로 〈농군〉을 언급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더 이상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고향을 버리고 만주로 이주한 윤창권 일가가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어 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투쟁을 담아 내고 있다. 는 사실적이면서도 자연친화적인 소설로 땅에 대한 신구新舊 세대의 갈등과 물질주의에 물든 가치관에 대한 비판, 그리고 농토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는 작가가 해방 전후 상황변화에 따른 주인공의 의식변화 과정에 중점을 두고 묘사되었다. 당시 식민지 현실을 살아온 주인공의 자기반성과 성찰을 중심으로 지식인의 내면의식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끝으로 해방 이듬해 여름, 작가는 월북한 것으로 보인다. -( 수록 작품 )- 패강랭, 농군, 밤길, 돌다리, 해방 전후.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 예술성 짙은 작품을 창작하여 발표한 뛰어난 소설가!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은 우리에게 상반되어 보이는 삶의 행적을 남겨 놓았다. 난과 서화 같은 고색古色 취미를 즐기고 이념적 문학에 반발해 예술성 짙은 작품을 창작한 뛰어난 소설가요, 친일을 한 문단의 지도적 인사이자 이념의 수렁에 빠져 파멸한 불운한 지식인이다. 언뜻 한 인물에게서 나온 것 같지 않은 상반된 삶의 궤적은 굴곡 많은 한국의 근대사가 개인에게 드리운 어떤 강한 영향력을 감지케 한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대립적인 삶의 발자취가 다채롭고 역동적으로 다가오기에 앞서 비극적 모순으로 느껴지는 데 한국사의 비극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상허 이태준은 1904년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부친 이창하李昌夏와 모친 순흥 안씨順興安氏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의 이력 중 특이한 점은 부친이 철원공립보통학교 교관과 덕원감리서 주사를 지낸 개화파의 일원이었다는 것과 모친이 소실이었다는 점이다. 1909년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머나먼 이국 땅 블라디보스토크〔海蔘威〕로 이주하지만, 아버지가 급작스레 별세하는 바람에 할수없이 가족들은 함북 배기미〔梨津〕에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배기미에 이주한 지 채 얼마 되지 않은 1912년, 이번에는 어머니 안씨마저 죽게 되는 불행이 닥친다. 이태준은 두 자매와 함께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는데, 이때 이태준이 9세, 손위 누이는 12세, 누이동생은 겨우 3세의 어린 나이였다. 그로 인한 고아의식이 상허의 소설에 짙은 흔적을 드리우게 된다. 이후 그는 낮에는 상점 점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 나가 공부를 하는 등, 곤궁한 생활을 꿋꿋하게 견디면서 향학열을 불태운다. 1921년 4월에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을 하는데, 이 당시 휘문에는 스승으로 가람 이병기, 같은 학예부원으로 상급반에 정지용, 김영랑, 박종화 등이 있었다. 상허는 곤궁한 생활 탓에 학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 그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된 교장의 배려로 교장실 청소를 전담하고 학비 면제의 혜택을 받는다. 이를 통해 다소간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된 그는 문학작품을 읽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태준은 학교의 비리를 규탄하는 동맹휴교 사건에 적극 가담하다가 주모자로 몰려 1924년에 학교에서 쫓겨난다. 이 사건은 그의 해방 후의 행적과 관련해 음미해 보아야 할 대목이라 생각된다. 퇴학처분을 받은 상허는 휘문고보 친구인 김연만의 도움을 받아 일본유학 길을 떠난다. 동경에서도 그는 나도향, 김진원 등과 함께 ‘우애학사’에 기거하면서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 등으로 고된 고학생활을 계속해 나간다. 그러나 1927년 4월 동경 상지대 예비과정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같은 해 11월 끝내 상지대를 중퇴하고 귀국길에 오르고 만다. 그런 이

저자 소개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부친 이문교, 모친 안순흥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1970(?)년 사망 추측). 상허(尙虛) 또는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이태준(李泰俊)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가 1909년에 아버지를, 1912년에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1918년 고향으로 돌아와 친척집에 기거하면서 어렵게 철원 봉명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어려운 가정 상황으로 인해 방황을 하다가, 1921년 휘문고보에 입학했다.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교장 선생님 등 주위 사람들의 배려로 수학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미 문학가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24년 동맹휴교 주모자로 낙인찍혀 5년제 과정 중 4학년 1학기에 퇴학을 당했다. 퇴학의 아픔을 위무하면서 상허는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나, 1927년 동경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 입학했다가 1928년 중퇴한다. 일본 유학 시절인 1925년에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귀국할 때까지 작품활동이 거의 없었다. 귀국하여 1929년 '개벽'에 입사한 후 '학생', '신생' 등의 잡지 편집에 관여했고, '어린이'에 수필과 소년독본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재개하였다. 1930년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이순옥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1931에는 '중외일보' 기자로 입사하였고, '중외일보'가 폐간되면서 개제(改題)된 '조선중앙일보'에서 학예부장으로 일하게 된다. 1933년에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서정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고, 이화여전 등에 작문교사로 출강하였다. 1939년에는 '문장'지를 창간하여 책임편집을 맡아 일제 말기 문학을 지탱해 나갔으며, 1941년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해방 후, 이태준은 지금까지의 문학적 태도와는 달리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에 가담하는데, 1945년에 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직에 참여하였고, 1946년에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해방전후'로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기념 조선문학상을 수상했다. 1946년 7∼8월경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북 직후인 1946년 10월경 조선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에 머물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부터 사상검토를 당하다가 1956년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작가의 작품활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까마귀'(1937), '이태준 단편선'(1939), '이태준 단편집'(1941)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1937), '화관'(1938), '청춘무성'(1940) 등 장편 13권을 발간하였고, 해방 후 '소련기행'(1947)이라는 기행문도 발간했다. 일제 강점기의 그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지상적 색채를 나타냈다.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묘사와 대상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시선을 통해 단편소설의 서정성과 그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광복 이후 그의 작품은 조선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생경한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의 작품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떨어지고 있다.

목차

목차
이 책을 읽는 분에게 ·7
패강랭·21
농군·39
밤길·65
돌다리·83
해방 전후―한 작가의 수기·97
□ 연 보·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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