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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760282 / 160쪽 140 x 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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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여행은 왜 기독교 신앙에 중요한가?”
기독교는 길 위에서 움직이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은유 이상이다.
아브라함의 여정에서 예수와 바울의 여행에 이르기까지, 중세 순례자에서 오늘날의 범지구촌 여행자에 이르기까지, 여행의 층위에는 다양한 종교적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여행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은유이다. 단일 지구촌 연결망과 전 세계 여행로의 확장으로 종교적 만남이 풍성해진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이 책은 관광, 방랑, 순례, 이주와 같은 여행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보고, 여행자와 방문지 주민의 힘의 격차가 여행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탐구한다. 또 풍부한 여행담을 인용하며 여행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있음을 실증한다. 여행에 대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성찰을 통해 의미 있는 여행, 하나님과의 참신한 만남으로 이끄는 실제적 방법을 소개한 책!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책소개] “여행은 왜 기독교 신앙에 중요한가?” 기독교는 길 위에서 움직이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은유 이상이다. 아브라함의 여정에서 예수와 바울의 여행에 이르기까지, 중세 순례자에서 오늘날의 범지구촌 여행자에 이르기까지, 여행의 층위에는 다양한 종교적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여행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은유이다. 단일 지구촌 연결망과 전 세계 여행로의 확장으로 종교적 만남이 풍성해진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이 책은 관광, 방랑, 순례, 이주와 같은 여행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보고, ... [책소개] “여행은 왜 기독교 신앙에 중요한가?” 기독교는 길 위에서 움직이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은유 이상이다. 아브라함의 여정에서 예수와 바울의 여행에 이르기까지, 중세 순례자에서 오늘날의 범지구촌 여행자에 이르기까지, 여행의 층위에는 다양한 종교적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여행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은유이다. 단일 지구촌 연결망과 전 세계 여행로의 확장으로 종교적 만남이 풍성해진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이 책은 관광, 방랑, 순례, 이주와 같은 여행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보고, 여행자와 방문지 주민의 힘의 격차가 여행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탐구한다. 또 풍부한 여행담을 인용하며 여행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있음을 실증한다. 여행에 대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성찰을 통해 의미 있는 여행, 하나님과의 참신한 만남으로 이끄는 실제적 방법을 소개한 책! [출판사 리뷰] “우리는 책보다 산책과 여행을 통해 하나님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운다!” - 여행에 대한 역사적ㆍ신학적 성찰 \"여행은 편견과 완고함과 좁은 마음에 특효인 만큼 바로 이 때문에 우리에게는 여행이 필요하다\"고 말한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여행은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여행이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사업으로 성장하였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여가나 생업의 연장, 나아가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정착되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레저 여행만큼이나 정치, 경제적 이유로 발생한 피난민과 이주민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이를 둘러싼 국가 간 논쟁은 여행이 사람들의 시야를 확장시키는 대신 기존의 편견을 심화시킬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지구촌 연결망과 전 세계 여행로의 확장으로 종교적 만남까지 풍성해진 우리 시대에 여행을 단지 레저 차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을 열어 이 세계의 긴장을 보고 새로운 시각과 삶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무엇보다 여행자 개인의 경험은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보다 큰 구조들에 의해 틀 지워지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온 저자는 신학자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방법으로 수많은 나라를 여행해본 여행 베테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자, 즉 여행이 유대-기독교 전통과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경험에 의미심장한 영향을 미쳤다고 확신하고 쓴 일종의 기독교 여행 신학서이다. 저자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가 특정 지역에 건물이라는 형태로 자리하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이의를 제기한다. 특히 경제적 여건이 좋아지면서 급증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선교 여행이 신앙 공동체에 있어서 일종의 기분전환이 되고 있지만, 공동체의 정체성 형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고, 기독교 신조에 참신한 관점을 제공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는 점을 아프게 지적한다. 성경과 역사를 통해 확인하게 되지만, 아브라함의 여정에서 예수와 바울의 여행에 이르기까지, 중세 순례자에서 오늘날의 범지구촌 여행자에 이르기까지, 여행의 층위에는 다양한 종교적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저자는 풍부한 여행담과 성경 이야기를 통해 여행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강력한 은유임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또한 관광, 이주, 순례, 방랑과 같은 여행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보고, 여행자와 현지 주민의 힘의 격차가 여행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탐구한다. 그리고 여행에 대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성찰을 통해 의미 있는 여행, 하나님과의 참신한 만남으로 이끄는 실제적 방법을 소개한다. 순례와 방랑, 관광과 이주 순례는 7세기 서방 기독교 세계에 기원을 둔 신앙적 순회여행으로, 12-13세기에 절정에 달했다. 중세 말에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막 싹 트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경제 발전이 그 자유를 뒷받침해줌에 따라 순례는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의 증거로도 간주되었다. 17-18세기에 이르면 교육받은 엘리트층이 문화 예술을 감상할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의 형태를 띤다. 19-20세기에 들어서는 관광산업의 발전이 순례의 개념을 더 바꿔놓아, 관광과 순례와 방랑이 좀 더 결합하여 폭넓은 사람들에게 제공되기에 이르렀다. 어디에도 소속됨 없이 자유로이 이동하는 방랑(Vagabonds)은 20세기 미국 문학의 중요한 특징이다. 돈과 지위로 확보한 안전과 안락을 포기하고 기꺼이 모험을 나선 이들의 이야기는 인상적인 교훈을 주었다. ?길 위에서 1, 2?의 잭 케루악이나 ?찰리와 함께한 여행?의 존 스타인벡,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주인공 체 게바라는 방랑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이 역시 길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거기서 발생하는 도전이 중요한 여행이다. 날이 갈수록 관광은 세계 여러 곳에서 경제적인 수익 산업으로 변모되고 있고, 관광산업은 지구촌 전역으로 경제권이 확대되는 현상과 나란히 동반 상승 중이다. 갈수록 더 많은 관광객이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추구하고 있지만, 정작 변화는 관광객보다 현지인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관광사업의 성장과 함께 나란히 성장한 또 다른 종류의 여행이 이민이다. 정치 피난민들은 그들의 용기와 담대함으로 칭송을 받지만, 경제 피난민들은 이중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인물로 묘사되기 일쑤다. 이주민의 경험은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있지만, 이들의 경험이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비슷한 정서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이 집요하게 묻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여행을 통해 우리의 시야를 넓힐 수 있는가?’이다. 그 형태가 순례나 방랑이든, 관광이나 이민이든, 중요한 것은 타인이나 환경과 실질적인 만남이 일어나는지, 또 그런 만남이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범지구촌이 형성된 세계에서, 자아와 타자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지만 타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나 자신에 대한 참신한 관점을 얻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저자는 편도 티켓만 구입한 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여행, 구약과 신약에 등장하는 다수의 여행과 비슷한 보다 실존적인 형태의 여행을 강력 추천한다. 길 위에서 완성되는 기독교 신앙 여행하는 일과 걷는 일을 모두 빼버리면 남는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성경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많다. 그만큼 여행은 기독교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길 위의 이야기'를 빼고서 기독교의 진수를 논하는 불가능하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친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는 이상한 여정을 통해서였다. 이스라엘 이야기는 이집트라는 낯선 제국 땅에서 노예생활, 이집트에서의 탈출, 광야에서 보낸 40년의 방황으로 구성된다. 훗날 유다 백성은 또 다른 제국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신세가 되었는데, 포로로 있는 동안 참신한 신학적 통찰을 발전시켰다. 즉 포로 상태에 있던 유다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노예로 삼은 강대국에 종속된 분이 아니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또 다른 사회를 허락하신 세계의 창조주임을 깨달은 것이다. 신약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경험하는 중요한 사건들은 주로 길 위에서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예수의 사역은 ‘머리 둘 곳이 없는’(눅 9:58) 사람답게 거의 전부 길 위에서 일어난다. 그의 출생과 이집트 피신으로부터, 갈릴리라는 변방 사역과 예루살렘 입성에 이르
여행은 기독교 전통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여행 없이는 그 진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대-기독교 전통 가운데 실제로 길 위에서 발전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자. 신앙의 기둥으로 꼽히는 아브라함에게 정적인 면은 거의 없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관계를 열게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친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는 이상한 여정을 통해서였다. 이스라엘 백성도 길 위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집트라는 낯선 제국 땅에서 노예생활, 이집트에서 탈출, 광야에서 보낸 40년의 방황으로 구성된다. 이 여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중요한 교훈들을 배웠는데, 그중에는 달갑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따라잡지 못한 하나님 형상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심화 같은 것들이다. 훗날 유다 백성은 또 다른 제국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신세가 되었는데, 포로로 있는 동안 근본을 뒤흔드는 참신한 신학적 통찰을 발전시켰다. 예컨대 창조에 관한 성경 자료의 상당 부분이 이 포로 시기에 만들어졌다. 즉 포로 상태에 있던 유다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노예로 삼은 강대국에 종속된 분이 아니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또 다른 사회를 허락하신 세계의 창조주임을 깨달은 것이다. _12-13쪽
길 위의 신학이 중시하는 질문은 추상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다. 하나님은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어디에서 움직이고 계신가? 우리가 하나님의 여행지를 관찰하기 시작하면 “나를 따르라”는 옛 초대의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질문의 차이점이다. “하나님은 우리 편인가?”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 편인가?” 현상유지를 옹호하는 신학자들은 보통 전자에 긍정적으로 답변한다. 이에 반해 후자는 훨씬 더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모두가 그렇다고 답변할 수 없다. 그것은 끊임없는 움직임과 항해가 필요한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여행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하나님이 우리 편인지 묻는 질문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된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편안히 거하신다고 상상하며 건물 속에 하나님을 위한 방을 마련해주면 그만이다. 여행이라도 떠날 때는 하나님을 데리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종교 여행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_ 66-67쪽
단기 집중여행과 선교 여행이 실패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선한 의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실패의 이유는 종종 지나치게 선한 의도와 관계가 있다. 선의를 품고 타인을 동등하게 대하긴 하지만 그보다 깊은 차원의 불평등과 권력상의 격차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고 불평등을 의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타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은 셈이다. _ 119쪽
여행이 저항 행위가 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현상을 뒤흔드는 여행의 속성과 결부되어 있다. 방학이나 공식 휴가 여행은 하던 일에서 손을 놓고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정원과 애완동물과 친구들을 놓아두고 떠나거나 아파트 문을 잠그는 단순한 행위조차 이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자신의 일이나 거주지에 강한 애착을 느끼는 사람들은 손을 놓고 떠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어쨌든 이것이 저항을 향한 첫 발걸음이다. _ 132쪽
목차
추천의 말
들어가는 말_기독교 신앙은 길 위에서 완성된다
1. 길 위의 경험_여행, 관광, 이주
관광
이주
여행의 두 가지 관점
2. 길 위의 신학_여행에 관한 신학적 사유
구약 성경의 여행
신약 성경의 여행
여행하는 하나님, 믿음의 여정
3. 길 위의 도전_순례자와 방랑자
순례의 길
방랑의 길
순례와 방랑
4. 종교 관광을 넘어
양방향 통행
그들 속으로
충격적인 차이 극복
도시사역이라는 대안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기
5. 지향점을 가진 여행_저항과 재구성
여행과 현대신학
여행과 권력
여행과 저항
나가는 말_이제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주(註)
추천도서
성찰 및 토론을 위한 질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