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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봉별기 외

시리즈 : 한국 문학을 읽는다 [19]

이상 저 | 푸른생각 | 201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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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1918351 / 191쪽 / 365g / 153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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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영원한 이단의 매혹-이상의 소설 이상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던 해 서울에서 태어나 1937년 그 식민 종주국의 수도인 도쿄에서 병사한 문학인이다. 그는 1930년대 한국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다양한 형태 실험과 자의식적 기술 양식을 실천한 모더니즘 문학으로 명성을 날렸다. 기존의 가치관으로는 수용이 불가능한 그의 문학과 생애는 광복 후 20세기 후반에 걸쳐서까지 꺼지지 않는 관심과 사랑을 이끌어왔다. 100년을 넘긴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이상만큼 다양한 화제를 불러 모은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상은 3세 ... 영원한 이단의 매혹-이상의 소설 이상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던 해 서울에서 태어나 1937년 그 식민 종주국의 수도인 도쿄에서 병사한 문학인이다. 그는 1930년대 한국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다양한 형태 실험과 자의식적 기술 양식을 실천한 모더니즘 문학으로 명성을 날렸다. 기존의 가치관으로는 수용이 불가능한 그의 문학과 생애는 광복 후 20세기 후반에 걸쳐서까지 꺼지지 않는 관심과 사랑을 이끌어왔다. 100년을 넘긴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이상만큼 다양한 화제를 불러 모은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상은 3세 때부터 부모 집을 떠나 큰아버지 밑에서 성장했고, 어른이 되고 문단 활동을 할 때는 본명인 김해경(金海卿)을 버리고 주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썼다. 1930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 2월호부터 10개월 동안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고, 이듬해 7월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 시 「이상한 가역반응」을 시작으로 연작시 「조감도」, 「3차각설계도」 등을 발표한 이후 시, 소설, 수필에 걸쳐 두루 자신이 처한 불안한 상황과 황량한 내면을 새로운 표현 기법에 담아냈다. 그의 문학은 초기부터 어려운 한자와 일본어를 구사하거나 숫자나 기하학의 기호를 삽입하고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등으로 형식 파괴가 예사로웠다. 이러한 특징이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뚜렷이 알려지게 된 것은 『조선중앙일보』에 시 「오감도」를 연재하면서부터이다. 그런데, 이 연재물은 독자들의 항의로 예정된 30회의 반밖에 연재하지 못하고 15회에서 중단되고 만다. 당대 현실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드러낸 그의 반리얼리즘 기법은 일반 독자들로서는 도무지 이해 불가능한 세계였다. 문제의 시 「오감도」 제1호에 나오는 ‘13인의 아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최후의 만찬’에 동석한 예수의 열세 제자라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역사가 지닌 한계성에 대한 상징적인 숫자라는 해석도 있다. 또한, 일제 치하에 놓인 조선의 열세 개 지방 도, 이상 자신만의 독특한 기호, 시인의 공포와 아이의 불안이 투사된 숫자 등등으로 풀이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감도」를 비롯한 이상의 문학은 ‘풀리지 않은 과제’로 21세기 문학에 살아남아 있다. 시에 비해 뚜렷한 서사로써 독자와 만나는 소설에서도 이상의 특징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어릴 때 백부의 양자가 된 이상이 가족과 합친 것은 1933년이다. 그러나 이상은 곧 백부의 유산을 받아 청진동에 제비다방을 개업하고 술집 여급 금홍을 마담으로 앉힌다. 구인회 회원을 비롯한 당대 문사들이 이 다방의 단골이 되는데,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정인택, 윤태영, 조용만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금홍은 다른 남자와 예사롭게 바람을 피우고 이상에게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한다. 이 시기 금홍과의 동거 체험을 배경으로 탄생한 소설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는 연애까지 유쾌하오.”로 시작되는 「날개」다. 「날개」의 ‘나’는 아내로 상징되는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내면에서 살고 있다. 의욕을 상실한 ‘나’는 골방에 틀어박혀 있다 가끔씩 외출하는 것으로 일상을 채운다. 이는 세상과 단절된 자아의 모습이자 동시대 식민지 현실을 사는 지식인의 또 다른 내면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소설은 이처럼 현실의 가치를 무화시키는 비극적 인식을 서사의 해체와 자의식적 글쓰기로 드러내면서 우리 서사가 그 후로도 거의 가닿지 않은 반리얼리즘적 세계를 제대로 구축해 보인다. 인과관계를 기반으로 한 인물관계나 스토리라인은 그의 소설 앞에 무장 해제된다. 「날개」를 비롯한 그의 소설은 식민지 현실을 불우하게 살아가는 지식인의 내적 스토리를 반영하는 것을 넘어 현대사회가 지니는 폭력으로부터 근원적인 소외를 겪고 있는 현대인의 깊은 고뇌를 드러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전성이 두드러진 「봉별기」나 「김유정」, 역시 자전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자의식과 내면 지향적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날개」나 「종생기」 등은 이상 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리는 이들 작품에서 불균형적인 가정이나 식민지 현실이라는 시대 환경, 또는 그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무질서한 결혼관계나 치명적 질병 등 개인적 이력이 기존 질서의 거부나 전통의 부정이라는 특유의 가치관과 미의식과 어우러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이상만의 세계를 구축한 예를 볼 수 있다. 이상의 문학은 이 시대에 와서도 여전한 매혹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소설은 우리에게 인간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는 그런 수준에 있는 한국 명작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충실한 원문 게재를 기본으로 작품의 문단별로 소제목을 붙였고,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에 세심하게 낱말풀이를 달았다. 각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작품 뒤에 ‘이야기 따라잡기’를 실어 줄거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쉽게 읽고 이해하기’를 마련해 작품의 세계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왔다. 책 끝에 작가의 생애를 정리한 ‘작가 알아보기’도 마련했다. 소설을 읽으며 명작을 감상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타인과 깊이 있게 소통하는 방법을 깨우치기를 기대한다.

저자 소개

1910년 9월 23일 새벽 6시경(음력 8월 20일 묘시경)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아버지 김연창(金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3세 때 조부 김병복(金炳福)의 성화로 자손이 없는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1917년 4월 인왕산 밑에 자리한 4년제 학교인 신명학교(新明學校)에 입학한다. 과목 중에 지리와 도화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뒤 불교 재단에서 경영하는 견지동의 동광학교(東光學校)에 입학한다. 하지만 해경이 입학한 지 4년째 되던 해 동광학교가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인수한 보성고보에 합병되어 4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그림을 잘 그렸으며,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풍경>으로 입선하기도 한다. 1926년 3월 5일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해경은 곧장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12명의 입학생 중에 조선인은 불과 3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해경은 3년 동안 수석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유지한다. 2학년 때에는 경성고공 회람지인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했으며 여기에 삽화와 자작시를 싣는다. 
1929년 3월 경성고공을 졸업하고 그해 4월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취직한다. 그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 기수로 자리를 옮긴다. 12월 조선건축학회 기관지 <조선(朝鮮)과 건축(建築)>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이듬해 그의 처녀작인 ≪십이월 십이일≫을 ≪조선(朝鮮)≫에 9회(2월∼12월)에 걸쳐 연재한다. 이 소설은 그의 최초의 한글 창작 소설이자 최초의 소설이며, 또한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해 여름에는 그를 죽음으로 내몬 첫 각혈을 하게 되어 건강이 쇠약해진다. 
1931년 7월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당선된 인연으로 이 잡지의 ‘만필(漫筆)’란에 일문 시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을 발표한다. 시에 전념하면서도 해경은 그림을 놓지 않았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自畵像)>이 입선되기에 이른다.
그는 서양화가 구본웅(具本雄)을 알게 된다. 꼽추 구본웅과의 교류는 그의 집으로까지 이어진다. 당시 구본웅의 집은 당대의 시인, 소설가, 화가, 영화감독 등이 모여들던 문화 아지트(구인회)였다. 1934년에 여기에 가입하여 박태원,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김유정, 김환태 등과 교류한 전후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백부의 죽음(1932년 5월 7일, 뇌일혈), 총독부 기수직 사임(1933년 3월), 금홍과의 만남과 다방 ‘제비’ 경영(1933년), 동거(1933∼1935년), 결별(1935년), 카페 ‘제비’·‘쓰루’·‘69’·‘무기’ 경영 실패, 결혼(1936년), 죽음(1937년)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생의 형언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허무의 심연이다. 이것은 생의 아이러니와 역설을 가능하게 하여 독화(毒花)로서의 미적 파토스를 발생시킨다. 생의 파멸(육체의 죽음)과 예술의 탄생이 아이러니하게 혹은 역설적으로 뒤얽혀 있는 것이다. 
1932년 3월과 4월에 소설 <지도(地圖)의 암실(暗室)>과 <휴업(休業)과 사정(事情)>, 시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는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꽃나무>(1933), <이런 시(詩)>(1933), <거울>(1933)을, 1934년 8월에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우리 시사(詩史)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오감도(烏瞰圖)>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독자의 거센 항의로 15회로 연재가 중단된 이 작품은 근대적인 삶과 예술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상투성의 파괴와 해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의 한 표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1936년은 생의 한 정점을 이룬다. 무엇보다도 <지주회시>(6월), <날개>(9월), <봉별기>(12월) 같은 그의 생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이해에 쓰였다. 그의 생이 맞닥트린 생의 심연을 넘어서려는 강한 열망을 담은 소설이 <날개>라면 <종생기>는 여기에서 훨씬 더 나아가 죽음 이후의 생이라는 역설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1936년 10월 중순경 동경에 건너가 동경부(東京府) 신전구(神田區) 신보정(神保町) 삼정목(三町目) 101의 4호의 니시카와가(西川家)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과 교유하기도 하고, 김기림, 안회남, 동생인 김운경과 서신을 교유하기도 하지만 동경 생활에 환멸을 느낀다. 1937년 2월 12일 일본 경찰에게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되어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34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3월 16일 건강악화로 풀려난다. 결국 그는 1937년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역자 소개

  • 역자 :

 

목차

목차
지주회시
날개
봉별기
종생기
실화
김유정
작가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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