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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0086615 / 320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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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스페인 문학을 총정리한 방대한 분량의 명저《스페인 문학의 사회사》가 국내 초역되었다.
‘문학사’라는 말은 그 언어의 조합에서 ‘문학’과 ‘역사’의 절묘한 만남을 전제한다. 그래서인지 사회의 변화에 의해 문학의 역사가 좌우된다는 실증주의적인 입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의 변화를 문학이 어느 정도 수용한다는 것은 19세기 이후 문학사 기술의 기본적 입장이 된 듯하다. 이 책은 이러한 문학사의 입장보다 문학의 요인으로서 역사와 사회에 조금 더 많은 비중을 허용한 작품이다. 요컨대 일반적인 문학사보다 문학의 사회적 조건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또한 역사와 사회, 문학을 바라보는 저자들의 시선이 맑스주의에 입각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작가와 작품을 포함한 문학의 흐름을 역사적 맥락 안에 구조화하기 위해 ‘서문’ 형식으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흐름을 개괄한다. 공간의 제약 및 저자들의 현학 등으로 ‘서문’들이 압축되고 난해하지만 해당 시대를 이해하기에 앞서 좋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서문에 드러난 시대설명을 염두에 두면서 이후의 문학적 흐름을 이해하면 스페인 역사 속의 문화, 문학 속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맑스주의에 입각해 수백 년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자칫 어떤 독자에게는 대단히 불편하고 또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또한 문학에서 사회적 요인이 없을 수는 없으나 이를 최소화하면서 작품들을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이 책이 어느 정도로 사회성을 강조하는지에 대해서는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다만 맑스주의가 오해받고 있듯, 사회적 요인이 예술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이 책의 저자들에게 있다는 것, 또한 “모든 예술은 사회적으로 조건지어져 있지만, 예술의 모든 측면이 사회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이들 사이에 공유되는 것은 이 작품이 지닌 적지 않은 미덕이다.
그리고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거나 “상부구조와 토대의 관계가 기계적이지 않다”는 등 1980년대 한국의 대학가를 휩쓸었던 맑스주의의 매혹적인 명제들이 논리적으로 추억된다.
그동안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스페인 문학에 대한 관심이 이번 출간을 계기로 고조될 것으로 기대된다.
[출판사서평]
맑스주의에 입각해 수백 년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자칫 어떤 독자에게는 대단히 불편하고 또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또한 문학에서 사회적 요인이 없을 수는 없으나 이를 최소화하면서 작품들을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이 책이 어느 정도로 사회성을 강조하는지에 대해서는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다만 맑스주의가 오해받고 있듯, 사회적 요인이 예술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이 책의 저자들에게 있다는 것, 또한 “모든 예술은 사회적으로 조건지어져 있지만, 예술의 모든 측면이 사회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이들 사이에 공유되는 것은 이 작품이 지닌 적지 않은 미덕이다. 그리고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거나 “상부구조와 토대의 관계가 기계적이지 않다”는 등 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가를 휩쓸었던 맑스주의의 매혹적인 명제들이 논리적으로 추억된다.
로마제국이 멸망(5세기)한 이후, 서양세계는 사회․정치적으로 유기적이면서도 폐쇄적인 봉건주의 체제로 개편되었다. 그 생산관계는 즉각적인 사용을 위한 자연경제와 농업경제에 기초하고 있어, 그 안에서의 상업적 교환은 매우 드물게 일어났다. 고립된 소도시들의 존재가 그러한 사실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준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주들이 농민들의 잉여생산물을 전유했다. 이러한 지주들은 귀족계급과 교회에 소속돼 있었는데, 경제적인 이유와 계약적 예속관계로 다양한 계급 내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었다. 여러 교단들과 교단소속의 힘 있는 수도원들(클뤼니 수도원은 910년에 설립되었고 시스터 수도원은 1098년에 설립)이 행했던 기본적인 역할 또한 대단했다. 토지에 소속된 농부들은 민사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영주가 그들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가혹한 부역과 강제징수에 시달렸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구조는 교회에 의해 신학적으로 지지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원칙상 동족의 으뜸인 왕은 신에 의해 선택된 자였다. 이른바 ‘하강이론’이라고 불리는 이런 원리는 5세기의 성 어거스틴에서부터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교회에 의해 조직되고 지속적으로 관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