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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한유주 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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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022659 / 288쪽 132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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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언어는 진화하지 않고 문학은 진보하지 않아.
베끼는 것만이 가능하지”


쓸 수도 없고 쓰지 않을 수도 없다.
완전한 침묵도 온전한 현재도 없는 세계 속에서
불가능성으로 향하는 무한한 실패의 도약!

‘쓰다’라는 실패를 경험하는 일
- 문학이란 무엇인가?


소설 형식을 파괴하는 작품 세계로 등단과 동시에 평단의 뜨거운 주목을 받아온 소설가 한유주. 제42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녀가 세번째 소설집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문학과지성사, 2011)를 묶어냈다. 첫 소설집 『달로』와 두번째 『얼음의 책』에서 보여준 읊조리는 듯한 시적 문장과 기존 서사를 해체하는 시도를 이어가면서도 이번 소설집에서는 언어 자체의 불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확장하며 문학의 본질에 대한 집요한 질문을 계속한다.

그들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차용이 아니라, 표절이기 때문인데, 이미 베끼고 있으니, 더 베낀다고 해서, 나의 시답잖은 윤리관을, 배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찾을 수가 없으니, 그들의 대화를, 문자 그대로 적는 것은, 피해갈 수 있겠지만, 나와 여러분은 모두, 남의 입을 빌려 말을 배웠으니, 남의 손을 빌려 글을 배웠으니, 베끼고 베껴지는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 그러므로 나는 다시 시작한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이번 소설집에서 한유주는 글쓰기를 일종의 받아쓰기, 혹은 베끼기라 명명한다. ‘쓰기’는 인간의 자유로운 사유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불완전한 행위이지만, 동시에 이 행위 자체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기도 한다. 한유주는 이번 소설집에서 ‘베끼기’의 필연성에 천착하여 인간의 글쓰기 욕망을 바라보고 실험한다. 수록작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쓴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의 서사(산책하다가 만나게 된 여장남자 살인범과의 동행)와 똑 빼닮은 이야기가 진행된다. 표절인가? 아니, 그녀는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베끼고 있는 행위’ 자체를 독자에게 계속 자각시킨다. 그 여장 남자가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소설 속 인물은 어떠한 공포를 느꼈는지 등은 중요하지 않고,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베꼈다는 점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서사를 압도하고 전복시켜버리는 이러한 극단적 실험을 통해 한유주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누군가를 베끼지는 마, 너는 너 자신을 쓸 수 있을 거야, 그가 말했다. 아니, 베끼지 않고 무언가를 쓸 수는 없어, 적어도 나는 누군가의 말을 따라하며 언어를 익혔어, 누군가의 문장을 흉내 내며 글쓰기를 익혔지, 내가 말했다. 그런 면에서 언어는 진화하지 않고 문학은 진보하지 않다. 베끼는 것만이 가능하지.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쓰다라는 ‘실패’를 경험하는 일
- 미래를 증거하는 일


이 책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강동호는 한유주의 소설에 대해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기꺼이 고민해보려는 독자들에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그 물음의 글쓰기’ 즉, 소설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앎이 끊임없이 무너지고 샘솟으려는 기미로 충만한 자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작가는 소설이 무엇이고 소설 쓰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러면서 한유주의 소설은 쓰여지고 계속되는 것이다.

언어에는 방향이 없다. 그러나 글은 단일한 방향으로만 쓰인다. 그러므로 한 번 쓴 문장은 고칠 수 없다. 내가 느끼는 무의미한―아니, 의미가 없지는 않은―강박은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스스로를 불편하게 한다. 내가 쓰고 싶었던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 나는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베끼고 또 베낀다. 쓰고 싶다는 욕망 혹은 욕구, 혹은 희망마저도 온전히 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농담」에서

언어의 불가능성. 기표는 도저히 기의에 가 닿을 수 없고, 왼손인 왕의 말은 오른손인 필경사에 의해 잘못 기록된다. 그러나 왕이 “네 목을 칠 것이다”라고 말하자 필경사는 “그러면 당신은 내일을 맞지 못할 것”이라 답한다. 쓰는 것에 실패하는 것, 그것 자체가 미래에 대한 증거다. 한유주는 말한다. “나는 쓸 것이다. 무엇을? 무엇을.” 말을 하는 존재인 이상 우리는 쓰고 있지 않아도 늘 쓰고 있는 중이다. 쓸 수도, 쓰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 속에서 한유주 역시 말라르메의 ‘한 권의 책’, 즉 완전한 글쓰기를 향해 실패의 도약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시간의 사제, 미래의 필경사인 것이다. 시간이 소멸되지 않는 한 그는 늘 쓰면서 쓰지 않고, 쓰지 않으면서 늘 쓰고 있는 중일 것이다.

저자 소개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 제3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소설 부문)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며, 단편소설 「막」으로 제42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으로 『달로』, 『얼음의 책』,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가, 옮긴 책으로 『작가가 작가에게』, 『눈 여행자』가 있다. 

 어렸을 때는 국어 시간을 싫어했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로 이루어진 국어 수업시간 중 마음 놓고 있었을 때는 듣기와 읽기 시간이었다. 말하기와 쓰기를 가장 싫어했는데, 어쩌다 보니 쓰는 것이, 그리고 말하는 것까지도 직업이 되었다는 사실이 생경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약력이나 여하한 자기소개서에도 별로 적을 말이 없다. 다만 본인이 포유류 중독자라는 사실을 밝혀둔다(포유류 중독은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 언젠가 호랑이의 등을 쓰다듬어보고 싶다. 몇 년 전부터 번역을 하고 있으며, 최근 ‘울리포프레스’라는 이름으로 출판 등록을 했다. 직원은 본인 단 한 명이다. 2012년 봄 현재 출간된 책은 없으나 올해 안에 누군가의 익명적 시집 한 권을 출간할 예정이다(물론 내 것은 아니다). 그 외 주요 관심사는 비밀이다(실은 너무 뻔해서 별로 공개할 것이 없다).

목차

나는 필경…… 9
농담 19
머리에 총을 51
자연사 박물관 81
돼지가 거미를 만나지 않다 111
도둑맞을 편지 137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167
인력이거나, 척력이거나 195
불가능한 동화 223

해설 시간의 사제, 미래의 필경사_강동호 258
작가의 말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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