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마광수의 뇌구조 마교수의 위험한 철학 수업

마광수 저 | 오늘의책 | 2011년 08월

미리보기 북트리

정가
$26.00
판매가
$14.3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29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9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77183254 / 208쪽 148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7,010
  • 16,920
  • 19,800
  • 15,21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인간의 행복 조건에 대한 위험한 단언 돈, 건강, 친구, 직업, 신앙, 배우자, 명예, 권력, 정신적 만족… 많은 예술가와 학자가 제시하는 행복의 조건을 누가 전적으로 부정할 것인가. 가중치를 어디에 두는가의 문제이지 결국 같은 재료의 다른 요리일 뿐일 것이다. 마광수 교수의 행복 레서피에는 주재료가 한 가지다. 동물적 본능의 충족. 그중 단연 ‘섹스’. 그에게 동물적 인간 대 정신적 인간이란 이분법적 개념 사이의 갈등이란 없다. 그에겐 ‘육체적 쾌락만이 선(善)’이며, 진정한 행복은 야한 섹스로부터 오는 부산물이다. 그... 인간의 행복 조건에 대한 위험한 단언 돈, 건강, 친구, 직업, 신앙, 배우자, 명예, 권력, 정신적 만족… 많은 예술가와 학자가 제시하는 행복의 조건을 누가 전적으로 부정할 것인가. 가중치를 어디에 두는가의 문제이지 결국 같은 재료의 다른 요리일 뿐일 것이다. 마광수 교수의 행복 레서피에는 주재료가 한 가지다. 동물적 본능의 충족. 그중 단연 ‘섹스’. 그에게 동물적 인간 대 정신적 인간이란 이분법적 개념 사이의 갈등이란 없다. 그에겐 ‘육체적 쾌락만이 선(善)’이며, 진정한 행복은 야한 섹스로부터 오는 부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적 본능의 핵심인 섹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도덕적 잣대, 제도적 규제는 성적 본능의 삐뚤어진 발산만 낳는 지배층의 무기일 뿐이다. 그는 본문에서 “극단적 쾌락주의(원나잇스탠드, 그룹섹스, 부부교환 섹스 등)를 악덕으로 공격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결국 죽을 때까지 쾌락을 좇아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므로 갖가지 보수적 윤리와 도덕에 기초하는 성에 대한 금기는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 스와핑이나 SM섹스, 그리고 성적 표현물에 관한 각종 규제가 풀리면 강간 같은 것은 차츰 없어지게 되고 성범죄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종교나 이데올로기는 성적 권태를 벌충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에 불과하다. 우울증과 권태를 포함한 현대인의 정신적 고통 또한 성적 불만족이 원인이라고 본다. 그의 존재 기반, 행복의 조건은 절대적으로 섹스다. 그는 말한다. “나는 섹스한다, 그래야만 내가 존재한다.” 마광수가 솔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척’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가 차마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은밀한 욕망의 버벌(verbal) 배설구인가 마광수 교수에게 ‘인간에게 동물적 본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이성으로 적절히 통제해야 이 사회가 유지되지 않겠냐’라는 식의 절충안을 내밀 틈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즐거운 사라』(1991년) 외설시비로 1992년 검찰에 구속되는 사건을 대표로 그의 지금까지 행보는 ‘성(性)’과 관련된 우리 시대의 통념에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그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은 관념적 굴레일 뿐 실상 인간은 ‘개인적’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마광수의 뇌구조』에서도 국가가 통제하는 지금의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를 부정하는 대신, 개인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성욕구를 표출할 수 있도록 사회제도 및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사랑’을 ‘성욕’의 다른 이름으로 보며, 궁극적 성적 만족은 종족보존의 욕구를 극복할 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성적 표현과 관련해 우리 시대 문학적, 미적 기준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소위 포르노그라피에서 통용되는 성 용어를 이 책에서도 노골적으로 사용한다. 그는 흔히 도덕적 정화를 뜻하는 ‘카타르시스’를 ‘사디스틱한 성욕과 마조히스틱한 성욕의 대리배설’로 재정의하며, 부도덕한 쾌락 욕구의 직접적 배출이 허용되지 않는 현실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배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학(예술)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얼굴보다는 마음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구호는 지극히 위선적일뿐 아니라 ‘마음’이나 ‘영혼’을 부르짖으며 ‘정신적 사랑’ 운운하는 것은 헛된 짓이라고 비난한다. 게다가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받으려면 자칫 천박해 보일 정도로 야하고 진하게 화장해야 한다는 도발적 제안을 하는가 하면, ‘밤에는 포르노 보고 낮에는 금욕주의적인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을 질타하면서 이는 문화 후진국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꼬집는다. 마광수는 변태다 그의 사고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일반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는 변태다. 권태는 변태를 낳고 변태는 창조를 낳는다는 그의 주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관능적 허기증을 앓고 있는 그가 변태적 판타지를 긍정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닌가. “하이힐처럼 뾰족하고 시스루룩처럼 엿보이며, 임자있는 사람과의 데이트처럼 아슬아슬하고 사팔뜨기 눈처럼 짝짝이(언밸런스)이고 젖꼭지를 피어싱해 어쩐지 으스스하며, 파운데이션을 두텁게 발라 목과 얼굴이 분리된 과장스러움”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그런 여자를 아름다운 여자라고 지칭하는 그의 여성관은 변태스럽다. (아니 후각, 촉각 등 오감 전체가 그렇다.) “알고 보면 사랑은 별 게 아니다. 사랑은 오로지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접촉감’일 뿐이다. Love is Touch!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만지는 것이다. 사랑은 영혼의 대화가 아니라 살갗끼리의 대화이다. 사랑은 정신적 신뢰감이 아니라 육체적 신뢰감이다. 사랑은 살갗끼리의 접촉이지 성기끼리의 접촉만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그의 사랑관은 변태스럽다. “나의 외로움, 나의 사랑, 내가 살아가는 실존적 이유의 정체가 ‘섹스’라는 것을 파악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남이 뭐라고 하든, 나의 심리가 혹 변태든 아니든,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이며 살아가는 방법이며 목표이기 때문에”라고 육체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 읊조리는 그의 내밀한 고백도 어쩐지 변태스럽다. 마광수, 그의 뇌구조는 정말 변태스러운가.

저자 소개

(1951~2017)


1989년, 마광수의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소설 『권태』의 발간으로 1980년대 민중문학은 종언을 고했다. 1987년의 시민혁명과 대선은 미완의 민주정부 쟁취와 희석화된 군부독재로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거기에서 더 이상 저항의 언어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투쟁의 당위성은 급속히 사그라졌다. 

집단의 논리에 지친 독자들은 그동안 감히 소리 내지 못하고 속으로 억눌려 있던 개인의 욕망과 감수성을 끄집어내기 시작했고, 그것은 거시의 문학에서 미시의 문학으로, 전체의 대의에 관한 이야기에서 개인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서는 출발점이었다. 그만큼이나 미래를 예견하고 남보다 앞서 갔기 때문에 마광수는 화제를 몰고 다니는 저자다. 

특히 1992년에 일어난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은 오로지 ‘시대를 앞서 간 죄’ 때문에 벌어진 문화사적(文化史的) 해프닝이었다. 여러 장르를 어우르는 50여 권의 저서를 쏟아낸 마광수는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목차

목차
Ⅰ. 마광수의 세계관_009
이 세상은 섹스로 이루어져 있다
“섹스 없이는 먹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동식물이 번식을 위해
섹스를 하여 생산해놓은 씨앗, 열매, 고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식욕 이전에 성욕이
고 성에 고프지 않을 때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Ⅱ. 마광수의 여성관_023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저는 손톱이 무지 긴 여자한테 맥을 못 춥니다.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화장과 현란한 피
어싱, 염색, 뾰족 구두 등…….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속’이 야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 잘 핥고 잘 빨아야 해요.”
Ⅲ. 마광수의 섹스관_039
섹스는 재밌는 놀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섹스 왜 했냐’ 물으면 ‘허무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쓰는 수법. 대
표적으로 무라카미 류가 그렇지. 나는 그게 아니거든. 성은 무조건 즐겁다는 거야. 그래서
명랑하게 나가잖아. 『돌아온 사라』도 얼마나 명랑해. 사회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할 수 없
이 섹스로 도피한다는 건 핑계야. 면죄부를 받는 수단이지. 신나게 야하게 묘사한 뒤에 ‘아,
허무하다’ 이거면 돼? 섹스는 만날 소외되어 있을 때만 하나? 즐거울 때도 하지. 나는 다만
섹스는 즐겁다 이거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아?”
Ⅳ. 마광수의 문학관_057
한국은 문화적으로 촌스럽다
“나한테 문학은 그냥 카타르시스야. 나도 좋고 독자도 좋자 이거지. 나도 대리배설하고
너희도 대리배설해라 이거야. 교훈? 그런 거 없어. 문학은 오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인
문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소설이고 뭐고 사랑 빼면 시체야. 근데 사랑이 뭐야, 따지고 보면
성욕이야.”
Ⅴ. 마광수의 추억관_081
내가 흡입한 여자들
“『즐거운 사라』에 나오는 국문과 교수 ‘한지섭(사라 애인)’은 저의 분신이죠. 실제로 홍대
교수 시절, 사라 같은 미술대 여학생과 진한 연애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자들과 연
애를 가장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이후론 사건 후유증 때문에 쭉 굶
었지요.”
Ⅵ. 마광수의 철학관_101
권태는 변태를 낳고 변태는 창조를 낳는다
“쾌락은 어떤 쾌락이든지 질리게 되어 있어. 그러나! 섹스만은 안 질린다. 인생도 뭐든 질
려. 심지어 밥도 먹다 보면 질려. 하지만 섹스 자체는 절대 안 질려. 물론 한 여자 한 남자하
고만 하면 질리겠지. 당연한 거 아냐? 사랑을 해도 권태가 있잖아. 권태와 변태. 권태로워
지면 변태로워지고, 변태로워지면 창조가 나온다. 그게 내 명제야.”
Ⅶ. 마광수의 미술관_165
예술은 ‘위압적威壓的 양심’과 ‘격노激怒하는 본능’을
비폭력적으로 중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손으로 비비고 문지르며 나이프로 긁어댈 수도 있는 캔버스 작업은 내게 진짜로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해주었다. 그림이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우선 나 스스로 카타르시스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붓을 휘둘러대었는데, 그러다보니 캔버스 작업은 대부분 즉흥성에
의존한 것들이 많다.”
Ⅷ. 에필로그_187
다 나처럼 되라는 것이 아니다. 나 같은 사람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