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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4017122 / 256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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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아가야, 엄마 생각하지 말고 잘 있어라. 새가 깃털을 잃으면 알을 지키기 어려운 법이다. 네가 어찌 무사할 수 있겠니? 슬프구나. 이번 생의 못 다한 인연을 후생에 다시 이어 모자지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이 작품을 쓴 김만중은 1665년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조선의 대표적인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그러나 그의 벼슬길은 순탄치 않아 자주 귀양을 가야 했다. 정치적인 변동이 있을 때마다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시문과 잡록, 소설을 남겼는데 《구운몽》과 《사씨남정기》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특히《사씨남정기》... “아가야, 엄마 생각하지 말고 잘 있어라. 새가 깃털을 잃으면 알을 지키기 어려운 법이다. 네가 어찌 무사할 수 있겠니? 슬프구나. 이번 생의 못 다한 인연을 후생에 다시 이어 모자지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이 작품을 쓴 김만중은 1665년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조선의 대표적인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그러나 그의 벼슬길은 순탄치 않아 자주 귀양을 가야 했다. 정치적인 변동이 있을 때마다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시문과 잡록, 소설을 남겼는데 《구운몽》과 《사씨남정기》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특히《사씨남정기》는 당시 사회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며 독자적인 길을 개척한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사씨남정기》는 놀라울 정도로 구성이 뛰어나다. 복선이라든가 주인공들이 끝까지 자기 역할을 다하며 짜임새 있게 행동하는 것이 현재의 소설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게다가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를 전개하고 중국 고전 작품들이나 일화들을 자연스럽게 등장시키니 김만중의 학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과연 조선 시대 소설 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또한 한 편의 연극을 보듯 극적인 부분들이 많다. 각기 성격이 뚜렷한 등장인물들이 여러 갈등 구조 속에 얽혀 있어 한층 더 흥미롭고 모든 인물들이 현실 속의 인물처럼 실감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다른 고전 소설과 달리 ‘인물 묘사의 공식성을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교씨는 물론이고 여종 설매, 동청, 냉진, 엄숭 등 부귀에 집착하는 모든 악인들로 인해 인물 간에 많은 갈등이 생기면서 작품이 한층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이 작품은 있는 그대로 읽어도 재미있다. 착한 주인공들과 악한 주인공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작품의 깊은 뜻을 생각하고 읽으면 더욱 재미있다. 악한 사람이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이 상을 받는다는 내용은 어린이들의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새롭게 역은《사씨남정기》의 흥미진진함에 푹 빠지기 바란다. * 본문 엿보기 1. 행복한 혼인 명나라 세종 황제 시절의 일이다. 서울인 북경의 순천 지역에 유희라는 귀족이 살았다. 학식과 문장이 뛰어난 유희는 예부 상서 벼슬을 맡아 황제가 나라를 통치하는 데 온갖 열의와 정성을 다해 보필(輔弼: 윗사람의 일을 도움. 또는 그런 사람.)했다. 그러나 그런 유희에게도 경쟁자는 있었다. 태학사 엄숭이 바로 그였다. “예부 상서의 그 말씀은 옳지가 않소이다. 외적이 쳐들어올 것을 대비해 항상 군량미는 비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보시오, 태학사. 하신 말씀은 옳지만 지금 정세를 보십시오. 우리 명나라의 위세에 어디 위협을 주는 세력이 있습니까? 이럴 때는 세금을 적게 거둬 백성들이 잘살게 해야 합니다. 군량미는 정세를 봐 가면서 비축하는 것이 좋소이다.” “어허, 한 치 앞의 일을 어찌 안단 말씀입니까? 옛날에 몽골의 오랑캐들이 원나라를 세울 때도 순식간에 몰려오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별로 저항도 못 하고 당했고요.” 이런 식으로 엄숭은 사사건건 유희의 이견에 쌍지팡이를 들고 나섰다. 그런 데다가 엄숭은 사람들을 잘 끌어 모아 조정에서 유희는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도저히 이런 분위기에서는 황제께 충성을 다할 수가 없구나.” 유희는 이제 나이도 있고 해서 벼슬을 관두기로 결심했다. 며칠간을 방에 틀어박혀 황제에게 벼슬을 내놓겠다는 상소(上疏: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일. 또는 그 글.)를 준비했다. 소신은 그 동안 황제 폐하의 은총을 입어 부족한 능력이나마 열심히 보필했사옵니다. 이제 병이 깊어 더 이상 곁에서 작은 힘이나마 거드는 것이 불가능해진바 고향으로 돌아갈까 하오니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부 상서 유희 올림 황제는 그 상소를 보고 주위의 신하들에게 물었다. “예부 상서 유희가 이렇게 병이 나서 벼슬을 관둔다 하니 어쩌면 좋겠나?” 그러자 늘어서 있던 신하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한 마디씩 했다. “건강이 안 좋으면 만사가 귀찮은 법입니다. 윤허(允許: 임금이 신하의 청을 허락함.)하옵소서.” “이제 예부 상서는 고향으로 돌아갈 나이가 되었사옵니다.” 그들은 모두 엄숭이 시키는 대로 떠드는 것이었지만 황제는 이를 알지 못했다. “예부 상서 유희가 원하는 대로 해 주어라.” 그러면서 황제는 특별히 태자소사라는 직함을 내려 주었다. 그것은 명예만 있는 직함이지만 권세를 계속 누릴 수 있는 벼슬이었다. 그 뒤로 유희는 비록 조정의 일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 명성만은 온 나라에 진동했다. 집으로 돌아온 유희는 모처럼 부인 최씨와 화목하게 지내며 인생을 즐겼다. “오라버니, 벼슬에서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가 돌아왔다고 하자 가장 먼저 우애가 지극한 누이가 찾아와 인사를 올렸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지만 두씨 가문에 시집을 갔다가 남편을 여읜 뒤 홀로 수절[守節: 절의(節義)를 지킴. 정절을 지킴.]하고 있어 늘 안쓰러웠다.

저자 소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1665년(현종 6)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 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거쳐 1671년(현종 12)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되어 경기·삼남(三南)의 진정(賑政)을 조사하였다. 이듬해 겸문학(兼文學)·헌납(獻納)을 역임하고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으나 1674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작고하여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서인(西人)이 패하자,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그 후 다시 등용되어 1679년(숙종 5) 예조참의, 1683년(숙종 9) 공조판서, 이어 대사헌(大司憲)이 되었으나 조지겸(趙持謙) 등의 탄핵으로 전직되었다. 1685년 홍문관대제학, 이듬해 지경연사(知經筵事)로 있으면서 김수항(金壽恒)이 아들 창협(昌協)의 비위(非違)까지 도맡아 처벌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상소했다가 선천(宣川)에 유배되었으나 1688년 방환(放還)되었다. 이듬해 박진규(朴鎭圭)·이윤수(李允修) 등의 탄핵으로 다시 남해(南海)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구운몽》은 종전까지는 남해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근래에 발견된 《서포연보(西浦年譜)》에 따르면 선천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것으로 전문을 한글로 집필하여 숙종 때 소설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한편,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였다. 1698년(숙종 24) 관직이 복구되고 1706년(숙종 32) 효행에 대해 정표(旌表)가 내려졌다. 저서에 《구운몽》,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서포만필(西浦漫筆)》, 《서포집(西浦集)》, 《고시선(古詩選)》 등이 있다. 

목차

목차
머리말
1. 행복한 혼인
2. 첩이 집안에 들어오다
3. 원한을 품다
4. 쫓겨나는 사정옥
5. 계교
6. 험난한 여행길
7. 묘혜 대사의 도움
8. 유연수에게 닥친 액운
9. 사필귀정으로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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