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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 논술한국대표문학 55

시리즈 : 논술 한국대표문학 [30]

혜 초, 김만중, 최 부 외 저 | 훈민출판사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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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6035055 / 230쪽 180 x 240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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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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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1665년(현종 6)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 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거쳐 1671년(현종 12)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되어 경기·삼남(三南)의 진정(賑政)을 조사하였다. 이듬해 겸문학(兼文學)·헌납(獻納)을 역임하고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으나 1674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작고하여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서인(西人)이 패하자,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그 후 다시 등용되어 1679년(숙종 5) 예조참의, 1683년(숙종 9) 공조판서, 이어 대사헌(大司憲)이 되었으나 조지겸(趙持謙) 등의 탄핵으로 전직되었다. 1685년 홍문관대제학, 이듬해 지경연사(知經筵事)로 있으면서 김수항(金壽恒)이 아들 창협(昌協)의 비위(非違)까지 도맡아 처벌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상소했다가 선천(宣川)에 유배되었으나 1688년 방환(放還)되었다. 이듬해 박진규(朴鎭圭)·이윤수(李允修) 등의 탄핵으로 다시 남해(南海)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구운몽》은 종전까지는 남해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근래에 발견된 《서포연보(西浦年譜)》에 따르면 선천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것으로 전문을 한글로 집필하여 숙종 때 소설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한편,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였다. 1698년(숙종 24) 관직이 복구되고 1706년(숙종 32) 효행에 대해 정표(旌表)가 내려졌다. 저서에 《구운몽》,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서포만필(西浦漫筆)》, 《서포집(西浦集)》, 《고시선(古詩選)》 등이 있다. 

혜초(慧超, 704~780년)
신라 성덕왕 18년(719년) 16세의 나이로 고국인 신라를 떠나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 당나라 현종 개원 8년(720년) 중국에 들어와 낙양과 장안에서 밀교를 퍼뜨리고 있던 인도 출신의 밀교승 금강지(金剛智, 바즈라보디Vajrabodhi)를 광주(廣州)에서 만나 사사(師事)하고, 스승의 권유로 개원 11년(723년) 광주를 떠나 바닷길을 통해서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났다. 약 4년 동안 인도와 서역의 여러 지역을 순례하고 개원 15년(727년) 11월 당시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가 있던 구자(쿠차Kucha)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다. 
당에 돌아온 혜초는 스승 금강지 밑에서 밀교를 연찬하다가 740년 스승을 도와서 대교왕경의 한역과 필수를 시작하였다. 이듬해 스승 금강지가 입적하자 작업을 일시 중단하였다. 금강지의 제자인 불공(不空)으로부터 대교왕경 강의를 받다가 774년 불공도 입적하자 불공의 유언을 받들어 그의 제자가 되어 밀교수행 도량인 관정도량(灌頂道場) 개설에 힘썼다. 대종 때 오랜 가뭄이 계속되자 하옥녀담기우표(賀玉女潭祈雨表)를 지어 황제에게 올리고 흑하(黑河)의 옥녀담(玉女潭)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당나라 덕종 건중 원년(780년)에 오대산 건원보리사에서 80여 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여 년간 밀교 연구와 전승에 매진하였다. 


저술로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있고, 번역에서 필수(筆受)를 담당하고 서문을 쓴 밀교경전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敎王經)󰡕과 기우제를 위한 표문(表文)인 「하옥녀담기우표(賀玉女潭祈雨表)」가 전해진다.

(崔溥)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연연(淵淵)이고 호는 금남(錦南)이다. 1477년 진사에 급제하고, 1482년 알성문과(謁聖文科) 을과에 급제한 후 교서관 저작과 군자감 주부 등을 지냈으며, 『동국통감(東國通鑑)』 편찬에 참여하였다. 1487년 추쇄경차관으로 제주에 파견되었다가 다음해 귀향 도중 풍랑을 만나 중국 태주 임해현 우두외양의 해안가에 표착, 북경을 경유 근 반년 만에 귀국, 왕명으로 기행문을 써서 바쳤다. 모친 탈상 후 홍문관 교리·춘추관 편수관·예문관 응교 등을 거쳤다.
그는 김종직의 제자로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함경도 단천으로 유배되었다가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처형당하였다. 1507년(중종 2)에 신원되어 승정원 도승지로 추증되었으며 문집에 『금남집(錦南集)』이 있다.
최부의 『표해록』은 1571년(선조 4) 외손자 유희춘(柳希春)이 목각하여 간행하였다. 이 책은 1769년 일본에서 주자학자 기요타 기미카네(淸田君錦)의 번역(『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으로 출간되었고, 1965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존 토머스 메스킬(John Thomas Meskill) 교수에 의해 영문으로 번역(『Choe Pu’s Diary: 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책에는 당시 명나라의 행정·사법·군사 제도 및 해로(海路)·기후·산천·도로·풍속·민요 등이 소개되었으며, 특히 수차(水車)의 제작과 이용법을 배워 후일 충청도 지방의 한발(旱魃) 때 이를 사용케 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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