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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개정판 정보
열하일기 3 [개정신판] 박지원 저 | 돌베개 | 2017년 11월 [절판]
평점 - · 리뷰 0
ISBN : 9788971993538 / 490쪽 175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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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열하일기 (돌베게) [5]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문으로 된 우리 고전 중에서 열하일기만큼 많이 번역되어 출판된 책은 없을 것이다. 조선 시대의 한글 필사본을 제외한다고 해도(公刊이 아니므로 우선 제외), 일본인 아오야기 고타로가 1915년에 번역본을 인쇄하여 출간한 이래로 오늘날까지 10여 종 이상의 번역본이 나왔고, 소설식으로 요약하거나 리라이팅한 것 또는 아동용 만화로 엮은 것 등을 합하면 그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베개가 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열하일기를 새롭게 출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야 비로소 를 읽는다! ― 오역과 오류의 악순환... 한문으로 된 우리 고전 중에서 열하일기만큼 많이 번역되어 출판된 책은 없을 것이다. 조선 시대의 한글 필사본을 제외한다고 해도(公刊이 아니므로 우선 제외), 일본인 아오야기 고타로가 1915년에 번역본을 인쇄하여 출간한 이래로 오늘날까지 10여 종 이상의 번역본이 나왔고, 소설식으로 요약하거나 리라이팅한 것 또는 아동용 만화로 엮은 것 등을 합하면 그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베개가 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열하일기를 새롭게 출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야 비로소 를 읽는다! ― 오역과 오류의 악순환을 완벽하게 바로잡은 새 번역 완역 결정판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을 고른다면 단연 손에 꼽을 정도로, 열하일기는 조선 최고의 문학 작품이다. 조선의 대문호라 불리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명성도 열하일기로 인해 더욱 높아졌다. 주지하다시피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의 중국 기행문이다. 그는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중국을 다녀왔다. 공적인 소임이 없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연암은 북경 여행과 함께 전인미답의 열하 지방을 체험하였다. 1780년(연암 44세) 10월 말, 연암 박지원은 중국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즉시 열하일기 집필에 전념했다. 이 초고는 책으로 완성되기도 전에 그 일부가 주변의 지인들에 의해 전사(傳寫)되었고, 급기야 한양에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연암체’(燕巖體)라는 새로운 글쓰기 문체가 생겨날 정도로, 열하일기는 당시 독서계와 문인 지식층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당시 문단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새로운 글쓰기 시도에 환호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나라 연호를 썼다 하여 노호지고(虜號之稿)라고 비방하였다.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추진하던 국왕 정조(正祖)까지 이 작품을 주목하고 문제시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에 속한다. 시대착오적인 반청(反淸) 사상을 풍자하고 조선을 낙후시킨 양반 사대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등 현실 비판적인 내용과 신랄한 표현이 담긴 이 책은 연암 당대는 물론이고 조선조 내내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연암 당대는 물론이고 손자 박규수가 우의정으로 있던 조선 말기에도, 그리고 서적의 출판과 보급이 비교적 활황을 보였던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도 공간(公刊)되지 못하고 오직 필사로만 유통되었다. 열하일기는 근대 이후에야 비로소 인쇄본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보급되었다. 기왕에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 한글본 열하일기가 조선 후기에 나오긴 했지만(『열하긔』, 1791년 전후로 추정; 『연암열하일긔』, 1799년 혹은 1899년으로 추정) 필사본의 형태이고, 인쇄의 방식으로 공간된 것은 1915년에 일본인 아오야기 고타로(靑柳綱太郞)가 경성(京城)에서 조선연구회 고서진서간행(古書珍書刊行)의 제 20, 21집으로 간행한 『燕巖外集』 상, 하 두 책이 처음이다. 그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십 종의 번역본이 나왔다. 열하일기 번역본의 역사 열하일기는 무수한 번역본이 있으며, 선본이 되는 책은 10여 종을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을 요하는 번역본 네 종을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성칠(金聖七) 선생이 번역하여 정음사에서 출간한 문고본 5책이다. 1948년 3월부터 1권이 간행되기 시작하여 1950년 2월에 5권이 나온 이 책은, 한국전쟁과 역자의 갑작스런 별세로 인해 완역되지 못했다. ‘도강록’에서 ‘태학유관록’까지 열하일기 전체 분량의 3분의 1를 번역했는데, 꼼꼼한 주석과 유려한 번역 문체로 가독성 높은 역작을 만들었다. 특히 『청사고』(靑史稿) 등과 같은 중국의 역사서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고증하여 주석을 달기도 하였다. 약간의 오역과 분명치 않은 전고 사용, 인명에 대한 오류 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번역서는 열하일기에 대한 최초의 전문 번역으로 손꼽을 만하다. 또한 이 책의 출간 이후 수많은 열하일기의 번역서가 이 책을 표절했는데, 이 점에서 국역 열하일기의 원조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둘째, 북한의 국립출판사에서 출판된 리상호 선생 번역 『열하일기』 3책을 들 수 있다. 1955년 상권, 1956년 중권, 그리고 1957년 하권이 발간된 이 책은 최초의 열하일기 완역본이다. 열하일기가 완성된 지 175년, 연암이 서거한 뒤 150년이 지나서 열하일기가 우리말로 최초로 완역된 것이다. 이 책은 50년대 중반 북한의 학문적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번역의 걸작이다. 한문투의 번역이 아니라 가급적 우리 토박이말을 사용하여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한 것이 그 특징이다. 이 책은 80년대 이후 북한에서 겨레고전문학선집에 뽑혀 재출간되면서 기왕의 오류를 몇 가지 정정했으나 대부분은 그대로 두었고, 이를 남한의 보리출판사에서 2004년에 3책으로 그대로 간행하였다. 셋째, 연민 이가원 선생이 번역한 『국역 열하일기』를 꼽을 수 있다. 1966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1, 2권으로 초판이 발행되었고, 1973년에 대양서적(大洋書籍)에서 세 권으로 출판되었으며, 이후 1977년과 1984년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중판이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간행되었다. 90년대를 전후하여 북한의 『열하일기』가 영인되어 학자들에게 배포되기 이전에는 이 연민 선생의 번역본이야말로 전문 학자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 가장 많이 읽히고 보급되었던 열하일기 번역본이었다. 북한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던 7, 80년대 우리 학계에서는 이 번역서가 최초의 번역서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연민 선생의 번역본은 풍부한 이본 비교를 거친 최초의 완역서이며, 열하일기의 목차를 새롭게 정리했으며, 교합본 원본텍스트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번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책이다. 특히 여러 필사본의 이본 대비를 토대로 번역은 번역대로 충실하게 하고, 동시에 여러 이본을 대비하여 원문을 수록했기 때문에 그 원문은 열하일기 교합본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연민교합본’이란 말은 이때 생겨난 말이다. 이런 호평과 번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민 선생의 번역서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많이 가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넷째, 윤재영(尹在瑛) 선생이 번역하여 1982년에서 1984년까지 박영사의 박영문고본으로 간행된 5책의 열하일기 완역본을 꼽을 수 있다. 문고본이라는 성격 때문인지 그동안 학술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존에 간행된 열하일기의 번역본을 참고하지 않고 번역자 자신이 독자적으로 번역한 것으로 판단되는 이 문고본은 지금까지 출판된 어떤 열하일기보다 정확하게 번역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 책 역시 전혀 오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존의 오역을 되풀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완역해냈다는 것은 학술사적으로 중요한 성과이다. 이상의 번역서들은 한국 고전문학의 중요한 성과물이다. 첫째, 김성칠본은 오류가 적은 번역본이지만, 일기 전체의 3분의 1 정도의 분량만 번역이 되었다. 둘째, 리상호본은 열하일기 번역사의 기념비적 책이다. 많은 오역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완역을 했고, 한글 문체가 유려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이후 남한에서 번역된 열하일기는 대부분 이 책을 참고하거나 그대로 베꼈다. 셋째, 이가원본은 필사본 간의 교감을 거친 완역본이라는 명성이 있지만, 북한의 리상호본을 그대로 전재한 곳이 대단히 많다. 넷째, 윤재영본은 독자적 번역을 하면서도 기존의 오역을 비교적 많이 바로 잡았다. 학술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번역이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전고나 오역이 있다. 열하일기 번역본의 역사는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베끼기의 역사라
목차
요술놀이 이야기―환희기幻戱記
피서산장에서 쓴 시화―피서록避暑錄
장성 밖에서 들은 신기한 이야기―구외이문口外異聞
옥갑에서의 밤 이야기―옥갑야화玉匣夜話
북경의 이곳저곳―황도기략黃圖紀略
공자 사당을 참배하고―알성퇴술謁聖退述
적바림 모음―앙엽기?葉記
동란재에서 쓰다―동란섭필銅蘭涉筆
의약 처방 기록―금료소초金蓼小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