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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이시선-한국의한시26

이이 저 | 허경진 역 | 솔 | 2004년 07월

율곡이이시선-한국의한시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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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개정판 정보

율곡 이이 시선 [개정판] 율곡 이이 저 | 평민사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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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154823 / 143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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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이이(李珥, 1536∼1584)
율곡은 퇴계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 시대의 대학자,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지었던 문학 신동, 시험에서 아홉 번이나 수석을 차지한 천재, 10만의 군대를 양성하자고 했던 선견지명을 가진 관리, 신사임당의 아들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율곡의 이름은 이이고, 자는 숙헌, 시호는 문성이다. 1536년(중종 31년)에 태어나고 49세 때인 1584년(선조 17년)에 사망했다. 아버지 이원수와 어머니 신사임당의 4남 3녀 가운데 셋째 아들이다. 율곡이 문학 신동, 대학자, 뛰어난 정치가로서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타고난 자질이 바탕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타고난 자질을 꽃피우지 못한 사람도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율곡을 율곡답게 만든 요인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두었다는 점이다. 율곡은 어렸을 때 문학, 예술에 조예가 깊은 신사임당으로부터 수학했다. 지금도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조선 시대 여자는 한문 서적을 읽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어머니에게서 글을 배우고 학문을 익히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고, 또 그것이 남들과는 독자적인 길을 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둘째, 퇴계라는 뛰어난 선배가 있었다는 점이다. 율곡은 23세 때 도산서원으로 직접 퇴계를 방문했고 그 뒤로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과 개인적 신상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퇴계를 극구 만류했고, 퇴계가 죽고 나서는 만시(輓詩)를 지어 애도했다. 율곡의 학문적 업적이 뛰어다나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고 지금도 주목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퇴계와 함께 조선 성리학의 두 줄기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대 학자들이 학파와 붕당의 형성에 따라 퇴계와 율곡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는 것처럼 만들고, 그에 따라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적대적인 관계처럼 되어버렸지만, 당대에는 서로를 인정한 좋은 선후배였다. 율곡은 그런 훌륭한 선배와의 편지 교류 등을 통해 학문적 연마를 할 수 있었고, 선배가 이루어놓은 성과를 디딤돌로 해서 자신의 학문적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셋째, 선조 시대에 활동했다는 점이다. 율곡이 관직에 진출하자마자 문정왕후가 사망하고 외척인 윤원형이 탄핵을 받았다. 사화로 얼룩졌던 시대는 지나가고 사림이 중앙의 무대에 오르는 때가 된 것이다. 개혁 의지가 강렬하고 학문적 역량이 뛰어난 율곡이 사림파가 정계의 중심이 된 때에 관직에 들어갔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율곡보다 서른다섯 살 위였던 퇴계의 경우 사림이 위축되었던 때에 관계에 있었으므로 조정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으로 물러나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던 것과는 대비된다. 물론 선조의 한계, 사림의 분열 등 이후 전개되는 상황이 율곡을 괴롭혔다는 점을 간과할 순 없다. 10만 양병설 등의 건의에 대해 선조가 미온적으로 받아들였고, 또 붕당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조율하려고 했으나 동·서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결과를 낳아 정치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렇더라도 율곡은 항상 중앙 정계의 한 중심에 서 있었다. 넷째, 뛰어난 친구들과 교류했다는 점이다. 평생의 친구인 성혼, 송익필, 정철 등 당대의 쟁쟁한 인사들이 주위에 있어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격려해 주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었다. 율곡은 몸이 좋지 않거나 뜻이 좌절될 때면 선대의 고향인 파주로 물러나 학문과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학문과 교육 분야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제자도 많이 양성했다. 저술로는 ≪성학집요≫, ≪소학집주≫, ≪경연일기≫, ≪만언봉사≫, ≪기자실기≫, <인심도심설>, <김시습전>이 있다. 5000원짜리 화폐에는 율곡의 초상이 들어 있고, 신사임당의 초상은 5만 원권 화폐에 쓰인다. 율곡은 지금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소중한 인물인 셈이다. 


 

목차

목차
-율곡전서 권1
화석정에서 / 우연히 흥이 나다 / 동문을 나서면서 / 도중에서 /
보개산을 바라보며 / 산 속에서 /
풍악산에서 작은 암자에 있는 늙은 스님에게 / 송라암 등 42편
-율곡전서 권2
정철이 약속을 해 놓고도 집에 있지 않아서 / 구월 보름 밤에 달을 보고 /
퇴계 선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 의령감 윤조의 죽음을 슬퍼하며 /
퇴직을 간청하여 허락받고 임금 은혜에 감동하여 / 세 번이나 상소한 뒤에 물러나길 허락 받고서 / 황해도 관찰사로 나가면서 안뇌경이 보내온 시에 화답하다 /
달밤에 옛친구가 쟁을 켜는 소리를 듣고서 / 김장생이 석담에 찾아와 글을 배우다가 평양으로 돌아간다기에 시를 지어서 주다 / 인감 스님이 시를 지어 달라고 하기에 / 사암 상공께 올리다 /
유월 가뭄을 걱정하면서 / 비 온 뒤에 송대립이 보낸 시에 차운하다 /
허봉이 찾아왔기에 시를 지어주다 등 26편
-율곡전서 습유 권1
강릉으로 귀성하는 장윤을 보내면서 / 청감당에서 중온의 시에 차운하여 /
아버님의 삼년상을 마치고 형님과 헤어지며 / 강을 건너는 항량을 보내며 등 17편
율곡의 생애와 시-윤기홍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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