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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패닉

2020년 9월 8일 오늘의 책

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 | 북하우스 | 2020.07

분류 : 인문/교양/철학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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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혼란이 지난 지금, 진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2019년 겨울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의 충격은 매일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갱신하면서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이 바이러스에서 자유롭지 않고, 역설적이게도 가장 선진적인 경제 시스템과 정치 체제를 자랑하던 나라일수록 속절없이 무너졌다. 지금 우리는 말 그대로 한 배에 타고 있다. 초기의 혼란이 지나자 여러 진단이 나왔다. 과학적 원인 규명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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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카니발

 

슬라보예 지젝은 오늘날 이슈 되는 내용을 발 빠르게 가져와서 자신의 주장에 활용한다. 현재까지도 가장 큰 이슈는 ‘코로나19’다. 지젝의 책은 어떤 책을 읽어도 한결같다. 지젝답게 때로는 농담을 활용해가며, 인상 깊은 영화를 예시로 들며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간다. 논지도 단단하다. 나 같은 철학 어린이이자 회색주의자에게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주장이다. 그가 펼치는 주장은 공산주의의 부활이다. 이전 저서들에 이어 한결같지만 자신을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세심하게 유의사항도 적었다. 자신이 말하는 공산주의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고 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국가의 통제나 사회 복지 시스템의 필요가 드러난 이상 지젝의 주장을 쉽게 물릴 수도 없다. 그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여긴다. 다만 그가 추구하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희미할 뿐이다. 그는 우선 세계 간의 공조를 주장한다. 이에 관해 마틴 루터 킹의 말을 인용한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 부분이다. “모두 다른 배를 타고 왔을 수는 있지만, 우리는 지금 같은 배를 타고 있다.” 이 구절을 보니 가라타니 고진이 떠오른다. 고진 역시 세계의 화합을 생각하며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는 철학자다.

 

지젝과 고진이 주장하는 바가 구체적으로는 각기 달라도 겉은 꽤 비슷하다. 지젝이 꾸준히 현안에 몰두하는 행동가에 가깝다면 고진은 이론에 몰두하는 학자에 가깝다는 차이가 있다. 고진이라면 현 사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궁금하다. 추측하자면 그는 현시대가 자유주의에서 제국주의로 옮겨지는 시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거기에 끼어든 코로나19는 어떤 크나큰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지젝이 말한 대로 코로나19는 분열되던 세계를 다시 합칠 기회이다. 오히려 코로나 이전에는 있을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규합의 기회일 수 있다. 지젝은 이를 통해 다소간 예측된 이 사태가 결과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예견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코로나로 인한 희생은 불가피하고 슬픈 일이지만 이 사태 자체는 좋은 상황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다만 이렇게 상황을 쉽게 낙관할 수 있을까 싶기는 하다. 가령 러시아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백신을 허가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국가 간의 공조는 요원해 보인다. 지젝이 말하는 공조 역시 지금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져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마르크스나 칸트, 가라타니 고진이 예언했던 일종의 붕괴 지점이 아닐까 싶다. 비극은 예상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상하게도 인큐베이터와 같은 자가 격리 상황 속에 있으면서 안정감을 느낀다.

 

‘카니발 이론’은 축제의 전복적인 기능을 설명한다. 기존의 축제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가리키는 ‘기존의 축제’를 한국으로 말하면 제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있으면 추석인데 정부에서 귀성하지 말 것을 권고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명절이면 톨게이트까지 무료로 열어주곤 하던 정부가 코로나19 앞에서 보수적인 태도를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젝의 말을 따르자면 우리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앞에서 조용히 고립되어야 할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보다 나쁘지가 않다는 거다. 원래 있던 축제는 열리지 않고 이상하고도 새로운 축제가 열린다. 이때 치러지는 축제가 바로 조용한 카니발이다.

 

한편 이번 슈퍼 감염의 원인으로 종교가 꼽히고 있다. 종교보다 기성적인 의미에서의 축제도 달리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사 문화도 따지고 보면 조선 시대부터 전해내려 왔다. 이번 사태로 인해 종교가 비난받는 상황은 단지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은 일부 종교 단체 때문만이 아니다. 보다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종교성의 문제다. 과학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종교의 힘이 한풀 꺾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종교성은 사람들 사이에 강하게 남아 있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일부 종교 단체의 행동이 문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구조적인 측면에서 들여다봤을 때 이런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는 지젝의 주장에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여전히 비합리에서 합리성을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젝 역시 그러한 기대로 코로나의 전복성에 주목했다. 적극적인 농담을 하자면 코로나19가 종교인 시대가 온 것이다. 많은 학자가 코로나19로 인해 바뀔 상황에 두려워하면서도 은근한 기대를 품고 있다. 권태로웠던 삶에 닥친 자가격리는 그 자체로 따분하지만, 지금까지 없었던 완전히 다른 상황을 우리에게 가져왔다. 그렇기에 나는 여기에서 느끼는 묘한 흥분이 두렵기도 하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것으로 인한 재잘거림도.

 

그렇다고 순순히 코로나19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죽은 희생자들을 애도할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후에 맞이하는 모든 변화가 무의미하다. 물론 그 슬픔에 너무 깊이 빠져 머물러서도 안 된다. 그거야말로 종교에 깊이 몸을 담그는 것이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확하게 애도하는 것이다. 적확한 애도라니. 그것은 측정할 수 있는 사랑만큼이나 부조리한 말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조리를 살아내야만 한다. 그게 삶의 아이러니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오늘의 책을 리뷰한 'musangbaesu'님은?
문학과 철학을 걸친 다양한 책을 좋아하는 작가 지망생입니다. 현재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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