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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개정판] 9.11 테러 이후의 세계

시리즈 : 뉴아카이브 총서 [13]

슬라보예 지젝 저 | 이현우, 김희진 역 | 자음과모음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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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구판 정보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슬라보예지젝 저 | 자음과모음 | 2011년 11월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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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438186 / 220쪽 225 x 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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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가장 뜨거운 오늘의 철학자 지젝이 쓴 가장 통렬한 메시지 슬라보예 지젝은 한국에 번역서가 이미 30권이 넘게 소개된 익숙한 철학자이지만, 그가 최근에 화제가 된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자멸을 통렬하게 지적한 월가 시위의 연설 덕분이다. 그는 연설에서 월가 시위가 “그때 우리 정말 대단했지”라는 식의 추억으로만 남게 될 것을 우려하면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저항해나갈 것을, 원하고 욕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위험한’ 주장을 할 뿐 아니라 그것을 ‘곧 행동으로 옮기는’ 가장 뜨거운 오늘의 철학자 지젝이 9.11 테러와 관련해서 쓴 논문 다섯 편을 엮은 책이다. 9.11 테러라는 사건 너머 직시해야 할 세계화 자본주의와 미국 패권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지난 2002년 이미 한국에 소개되었던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Verso, 2002)을 저본으로 하여 전면 재번역한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의 균열 속, 아직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지젝은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통해 9.11 테러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진짜 현실’에 대해 말한다. 9.11 테러 이후 우리는 다분히 미국적 입장을 반영한 ‘악의 축’이니 ‘무한한 정의’니 하는 말에 길들여졌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테러리즘’에 ‘이슬람’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하지만 지젝은 그것을 ‘놓친 기회’였다고 말한다. 우리가 9.11 테러를 통해 진정으로 읽어내야 했던 것은 승자 독식의 안온한 자본주의 체제(그는 이것을 매트릭스에 비유하였다)의 균열 그 자체이다. 지젝이 보기에 9.11 테러는 우리의 ‘안온한 삶’을 깨뜨리는 ‘악’이 아니었다. 마치 19세기 산업사회의 몰락을 드러내는 ‘타이타닉호’의 침몰처럼, 자본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자기파괴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지젝의 말처럼 “9월 11일, 미국은 자신이 그 일부로 속해 있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것을 잡지 않았”던 것이다. 지젝이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에 담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다. ‘당신은 지금의 안전하지만 통제되는 삶에서 한걸음 밖으로 빠져나올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자본주의 매트릭스의 안온한 삶에 머물면서 ’호모 서케르‘나 ’최후의 인간‘으로 살아가겠는가?’ 지젝은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처럼 독자에게 빨간 알약을 건네면서 그것을 삼키고 밖으로 걸어나와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라고 권한다. ‘지젝 읽기’ 전도사 이현우의 정확한 번역 이 책을 번역한 이현우와 김희진은 지젝의 다른 책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의 공동 번역자이기도 하다. 특히 이현우는 평소 ‘지젝 읽기’의 전도사로 평소 지젝 철학에 깊은 관심을 두고 연구해온 학자이자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하다. 이현우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자신이 가진 게 많다고 믿는 ‘대한민국 1%’는 지젝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할까? 바로 “‘이대로는 곤란하다!’라는 절박감에 더하여 ‘제대로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감에까지 시달리며 뭔가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애정을 가진 번역자의 작업 덕분에 이 책은 지젝이 자주 쓰는 복잡한 용어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며, 그것이 최대한 한국어에 근접하게 번역되는 행운을 누렸다. 또 이현우는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의 해제인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하이브리드 총서 7)을 연이어 출간하는데, 기존의 ‘지젝’ 독자뿐 아니라 처음 지젝 읽기를 시도하려는 독자들의 여정에 편안한 입문서로도 활용될 만한 책이다. 새로운 사유의 힘, 자음과모음 뉴아카이브 총서 자음과모음은 한국 내 젊고 의욕 있는 인문학자들을 발굴해 경계 간 학문하기, 새로운 장르 창출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하이브리드 총서’를 기획.출판하고 있으며, 정통 학술서를 표방하는 ‘뉴아카이브 총서’를 통해 동서를 넘나드는 통찰, 사유의 힘을 선보이고 있다.

저자 소개

1949년 슬로베니아 수도인 류블랴나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 및 사회학 등을 전공하고, 류블랴나 대학 사회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파리8대학에서 라캉 연구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독보적인 철학으로 ‘동유럽의 기적’ 혹은 라캉 정신분석학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지젝이 처음에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통해 서구 지식사회에 등장했을 때, 대중문화로 철학을 더럽히는 ‘MTV 철학자’라 불리기도 했다. 이제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철학자’가 된 그는 매년 꾸준히 2~3권의 책을 출간할 정도로 왕성하게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정치에도 관심을 보여 1990년에는 슬로베니아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 개혁파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현재는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있으며, 슬로베니아의 주간지 〈믈라디나〉의 정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삐딱하게 보기』,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까다로운 주체』, 『신체 없는 기관』, 『혁명이 다가온다』,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HOW TO READ 라캉』, 『죽은 신을 위하여』, 『시차적 관점』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 『성관계는 없다』,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레닌 재장전』등이 있다.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을 운영하면서 인터넷 서평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문학과 인문학을 주제로 활발히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로쟈의 인문학 서재》(2009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 수상), 《책을 읽을 자유》(2010년 한국출판평론상 수상),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애도와 우울증》,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아주 사적인 독서》,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20세기》,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등이 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프랑스어권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로또 맞은 여대생』, 『송라인』, 『뱀파이어의 매혹』, 『체르노빌』, 『초속 5000킬로미터』, 『곰』, 『바스티앙 비베스 블로그』, 『라스트맨 1, 2』, 『여장 남자와 살인자』 등이 있다. 

책 속에서

••• 이런 논리는 워쇼스키 형제의 히트작 <매트릭스>(1999)에서 클라이맥스에 달한다. <매트릭스>에서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주변에서 보는 물질적 현실은 가상의 것이며, 우리 모두가 연결된 거대한 메가컴퓨터가 이 가상현실을 생성하고 조정한다. 주인공(키아누 리브스)은 ‘진짜 현실’에 눈을 뜨는데,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불에 타 잔해만이 남은 황량한 풍경, 다름 아닌 세계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시카고의 모습이다. 저항군 지도자 모피어스(모르페우스)는 아이러니한 인사를 건넨다.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9월 11일 뉴욕에서 일어난 사건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뉴욕 시민들은 ‘실재의 사막’으로 인도되었다. 할리우드에 익숙해진 우리는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과 그 풍경을 보면서 대규모 재난 영화에서 본 숨 막히는 장면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테러 공격이 얼마나 예기치 못한 큰 충격이었으며, 어떻게 상상할 수도 없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결정적 참사가 있다. 20세기 초에 일어난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이다. 이 사건 역시 충격이었지만, 이데올로기적 환상 속에는 이 사건이 일어날 만한 장소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타이타닉호는 19세기 산업문명이 가진 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9.11 테러 공격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본문 28~29쪽

••• 서구에 사는 우리가 착취하는 주인처럼 인식될지 몰라도, 사실 하인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우리이다. 하인은 삶과 쾌락에 집착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내걸 수가 없지만(콜린 파월이 내건 사상자 없는 하이테크 전쟁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보라), 가난한 무슬림 급진주의자들은 목숨을 기꺼이 바칠 태세인 주인들이다……. 그러나 ‘문명의 충돌’이라는 이 개념은 거부되어야 한다. 우리가 오늘날 목도하는 것은 ‘문명 간의 충돌’이라기보다 각 문명 ‘내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슬람과 기독교의 역사를 간략히 비교해보면, 이슬람의 ‘인권 상황’이(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용어를 사용하자면) 기독교의 인권 상황보다 훨씬 더 낫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과거 이슬람은 기독교보다 다른 종교들에 대해 훨씬 관용적이었다. 중세에 서유럽에 사는 우리가 고대 그리스의 유산들을 다시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아랍인들을 통해서였다는 사실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사실들이 오늘날의 테러 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다루는 것이 이슬람 ‘그 자체’에 새겨진 어떤 특징이 아니라 근대 정치사회적 상황의 결과물이라는 점만은 확실히 보여준다.
—본문 63쪽

••• 세계무역센터 공격으로 인해 우리는 이중의 협박이라는 유혹에 저항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만일 공격을 무조건 비난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제3세계 악의 공격을 받은 미국의 결백함이라는 뻔뻔스러운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반면 아랍 극단주의의보다 심층적인 정치사회적 대의에 관심을 집중한다면 우리는 결국 당연한 벌을 받았다며 희생자를 비난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여기서 유일하게 가능한 해결책은 이런 대립 자체를 거부하고 두 가지 입장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성이라는 변증법적 범주에 기대야만 한다. 이 두 입장은 각각은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둘 다 일면적이고 틀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명확한 윤리적 자세를 채택할 수 있는 사례를 제시하기는커녕, 도덕적 추론의 한계와 마주친다.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희생자들은 결백하고, 테러행위는 가증스러운 범죄다. 그러나 이 결백함 자체는 결백하지 않다. 오늘날의 전 세계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이런 ‘결백한’ 위치를 취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허위 추상화이다. 보다 이데올로기적인 해석상의 충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세계무역센터 공격이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민주주의적 자유의 모든 것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무슬림과 다른 근본주의자들이 비난하는 퇴폐적인 서구의 생활방식은 여성 인권과 다문화주의적 관용의 세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이 공격이 전 세계적 금융자본주의의 중심과 그 상징에 대한 공격이라 주장할 수 있다. 이는 죄책감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타협안을 수반하는 게 결코 아니다(테러리스트들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미국인들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운운……). 요점은 오히려 두 입장이 정말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영역에 속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채택해야 할 입장은 한마디로, 테러리즘과 맞서 싸워야 할 필요성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테러리즘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확장하여 미국과 다른 서구 국가들의 행위(일부)도 거기에 포함되도록 하는 것이다.
—본문 74~75쪽

••• 말인들의 ‘탈형이상학적’인 생존주의적 입장은 결국, 핏기 없는 삶의 광경이 그런 삶 자체의 그림자처럼 지루하게 오래 지속되는 결과로 끝난다. 오늘날 드높아지는 사형제에 대한 거부의 목소리를, 우리는 이런 지평을 배경으로 삼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거부를 지탱하는 숨겨진 ‘생체정치’를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의 신성함’을 주장하며 그것에 기생하는 초월적 힘들의 위협으로부터 생명을 수호하려는 이들은 결국 ‘우리가 고통 없이, 안전하게, 그리고 지루하게 살아가게 될 관리된 세상’으로 귀결하게 된다. 그 공식적 목표인 ‘오래 사는 즐거운 삶’을 위해 모든 실제 쾌락이 금지되거나 엄격하게 통제되는 세상으로 말이다.
—본문 130쪽

목차

옮긴이의 말
서문: 사라진 잉크

1. 실재에 대한 열정, 가상에 대한 열정
2. 재전유 : 물라 오마르의 교훈
3. 9.11 이후의 행복
4. 호모 서케르에서 호모 사케르로
5. 호모 사케르에서 이웃으로

결론: 사랑의 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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