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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 식탐

2014년 3월 6일 오늘의 책

풍년 식탐

황풍년 | 르네상스 | 2013.11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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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전라도 엄니들의 손맛과 토속음식의 근원을 찾아 떠난 식탐(食探) 여행 누구에게나 특별히 그리운 음식이 있다. 찬바람은 불고 마음마저 헛헛할 때, 무더위에 입맛도 잃고 삶의 의욕도 한풀 꺾일 때, 문득 고향집과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 저마다 간절하게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몸과 마음이 하염없이 갈구하는 그리운 음식은 소문난 맛집도, 일류 호텔 주방장도 채워줄 수 없는 노릇. 특히 수많은 사람의 입맛과 비위를 맞춰야 하는 대중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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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어매들이 차린 풍성하고 개미진 밥상

 

요즘 같이 찬바람 부는 날이면 설설 끓는 안방에 모여 앉아 식구들과 함께 만들어 먹던 만두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밀가루 반죽을 하고, 어머니는 만두를 빚고, 자식들은 주전자 뚜껑으로 만두피를 만들으랴, 몰래 만두소를 먹느라 나름대로 손길이 바빴다. 오래 전 유년시절의 일이었지만 내겐 아직도 몹시 그리운 추억이요 음식이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족 사랑 표현에 서툴기만 했던 아버지와 함께 했던 가장 행복한 나날이 아니었나 싶다. 그 맛과 정겨움의 기억이 머릿속 창고에 차곡차곡 쟁여져 또렷한데, 다시는 그 맛을 볼 수 없는 애석함이라니...

 

이 책 《풍년식탐》은 이렇게 찬바람 불고 마음이 스산할 때, 문득 인생이 허무해질 때, 서럽도록 고향이 그리울 때, 정신의 허기마저 따스하게 채워줄 애틋한 어머니의 밥상과 인생 이야기다. <월간 전라도닷컴>의 편집장인 저자 황풍년 말대로 책 제목인 '식탐'의 탐은 탐(貪)하려는 게 아닌 찾으려는(探) 시도다. 돈 받고 팔 일도 없고, 누구한테 치사받으려는 뜻도 없는, 그저 무심한 듯 차려낸 무수한 삼시 세끼의 이야기. 전라도 어매들이 차린 풍성하고 '개미진 밥상'이 저자가 탐하는 대상이다. 

 

전라도 어매들이 차린 고봉밥처럼 수북한 밥상 이야기

 

그토록 순정한 엄니들의 애환과 아기자기한 지혜가 오롯한 밥상은 기실 엄니의 엄니, 저어기 윗대 할매의 할매로부터 '어깨너머로 배웠다'는 민초들의 생활사이기도 하다.

비록 화려한 궁중의 수라상과 내로라하는 종가의 대물림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몸을 불리고 맘을 살찌워 온 소중하고 애틋한 식담(食談)이다. 

 

책을 읽다보니 흔한 음식 책이 아니다. "영혼의 헛헛함까지 달래주는 질박하고 정직한 맛의 진수"를 선보인다더니 정작 저자는 유명한 맛집이나 식당을 찾지 않는다. 대신 책에는 다채로운 집 밥 음식과 함께 26명의 '아짐', 1명의 '아재'가 등장한다. 전라도 곳곳 이 마을 저 마을을 기웃거리며 엄니들의 소박한 밥상을 찾아다닌다. 아짐들과 함께 꼬막을 사러 함께 시장에 가고, 낙지를 찾으러 뻘에 들어가고, 산나물을 캐러 바구니를 끼고 들로 나간다. 이렇게 책속엔 상에 올라오는 음식뿐만 아니라 식재료를 찾는 과정, 만드는 과정이 모두 담겨 있다. 

 

구례 김정자 아짐의 새꼬막과 고치적, 완도 황성순 아짐의 해우국, 고창 김정숙 아짐의 노랑조개회무침과 김칫국, 남원 고광자 아짐의 나물전….

 

여느 식당마다 붙어 있는 'ㅇㅇTV 출연' 알림판들은 이제 흔한 현상이 되었다. 하지만 《풍년식탐》 아짐들의 음식엔 과장이 없다. 미식을 탐하는 음식 프로그램들의 홍수 속에서 "음마? 이름은 뭐더게(무엇하게) 물어봐싸? 넘덜한테 내 놀 만한 음석(음식)이 아니여"라며 한사코 '맛자랑'을 거부하는 엄니들은 손사래를 치고 세상에 흔하디 흔한 '맛 자랑'을 도리에 맞지 않다 여긴다. 텃밭의 푸성귀, 뒷산의 나물, 마을 앞 갯벌의 조개, 동네 특산물을 가져다가 가족들 입맛에 맞춰 뚝딱 뚝딱 차려낸 음식들이야말로 영혼의 헛헛함까지 달래주는 질박하고 정직한 맛의 진수였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 풍년식탐의 주인공은 아짐들이다. 

 

"차린 게 없어서 미안시러와 어찌까"

 

“밥은 묵었능가? 여그는 밥집이 없슨게….”
“오메! 어찌까. 끄니(끼니) 때가 지났는디 시장흐겄네, 짜잔해도 기냥 한술 허실라?”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시골 엄니들은 대뜸 나그네의 끼니부터 걱정한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손을 잡아끌어 당신의 밥상으로 인도하는 일이 그곳에서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도 후한 인심과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저자는 ‘물심’을 놓아버리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삶의 소중한 가치를 새삼 발견하기도 한다. 

 

생판 모르는 식객을 맞으면서도 한상 떡 하니 내놓는 아짐의 마음, 그러면서도 "미안시러와 어찌까. 차린 것이 없어서"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 책은 담고 있다. 음식 재료값이라고 건넨 저자의 손을 뿌리치며 대신 그 손에 각종 음식을 쥐어주는 모습은 《풍년식탐》 아짐들의 공통점이자 우리네 어머니의 공통점일 것이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섬긴다."(삼봉 정도전)

그래! 아짐 역시 자식새끼들의 입에 들어가는 먹을 것이 기실 하늘이었으리라.

 

솔찬히 재미지는 전라도 말의 성찬 

 

재료와 음식을 앞에 두고 내뱉는 아짐들과 저자의 표현력도 그렇게 오질 수가 없다. "(돼지고기를) 사르라니 볶아"라는 이인심 아짐과 "(죽순튀김은) 놀짱흐니 꾸워야 맛있제"라는 천인순 아짐의 말엔 정확히 알아들을 순 없지만 의미하는 바를 추리하게 하는 묘미가 있다. 말에 얼추 모양이 담긴 게 언어의 진수를 보는 듯하다.

 

질 좋은 홍어애를 두고 김문심 아짐의 딸 주서영씨는 "봉께로(보니까) 때깔도 노릿노릿험서 낭창낭창헌 것이 존놈(좋은 것)으로 줬드랑께"라고 말한다. 홍어애를 보고 기껏해야 '야들야들'이란 표현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낭창낭창'이란 표현의 등장은 신세계다. 

 

《풍년식탐》은 음식과 말이 벌이는 흔치않은 레시피 사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입에 배기 어렵지만 두어 장 넘기다보면 흡사 랩의 가사를 따라 부르는듯 입에 착착 붙는 전라도 사투리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책에 가장 자주 나오는 표현인 '개미진 맛'이란, 맛에 있어서 보통 음식맛과는 다른 특별한 맛으로 남도 음식에만 사용되는 순 우리말이다.    

 

《풍년식탐》이 보여주려는 것은 아짐이요, 어머니다. 전라도는 장소일 뿐 책의 주인공은 우리네 엄니의 손이다. 저자는 "우리가 진짜 숭배하고 기억할 음식은 궁중의 수라상, 종가의 대물림, 전국 팔도의 별미가 아닌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에게 삼백예순날 무시로 밥상을 차려주셨던 어머니들 밥상 안에 있다"라고 말한다. 책 속에 저자 자신의 어머니 이름 세 글자와 함께 적어 놓은 글이 가슴속에 아릿하게 남는다. 

 

"당신을 갉고 삭혀낸 눈물의 끼니끼니가 제 몸과 맘을 지어냈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써니21’님은?
소박하게 먹고, 가진 것을 줄이기, 이방인으로서 겸손하기, 모든 것을 새롭게 보기를 실천하며 늘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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