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4일 오늘의 책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열린책들 | 2015.10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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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게, 또한 어린이였던 어른들에게 바치는 소설 누구나 한 번쯤은 성장의 문턱에서 를 만나기 마련이다. 1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1억 부 이상 판매된 이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 중 하나로서, 수많은 독자들이 독서 경험의 입문처럼 읽게 되는 소설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읽었던 문장들을 세월이 지나 다시 읽을 때마다 더욱 깊은 의미를 곱씹게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견 동화처럼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 삶과 관계에 대한...
해외여행을 가면 꼭 서점에 들러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어린 왕자』를 사서 모은다는 어느 청취자의 사연을 라디오에서 들은 적 있다. 나만 인상 깊게 들은 건 아니었는지 라디오 진행자가 다른 매체에서 그 사연을 다시 언급하기도 했다. 청취자의 서재가 궁금하기도 하고 왜 나는 진작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나 싶었다. 세계 어느 서점에 들러도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어린 왕자』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다.
적어도 나에게 『어린 왕자』는 한 번만 읽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생 시절, 어린이 문고본으로 만났던 『어린 왕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글자의 조합이었다. 어린 나의 눈에도 모자로 보였던 그림이 사실은 모자가 아니라 보아 구렁이가 코끼리를 삼키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은 흥미로웠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왜 이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어린 왕자』를 반도 넘기지 못하고 책장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어린 왕자』를 어려웠던 책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 다시 어린 왕자를 찾게 되는 것도, 다시 읽어본 『어린 왕자』의 문장이 이해되고, 여러 번 읽을 때마다 그때그때 다른 인상을 받는다는 것 역시 나 혼자만 그런 건 아니었다.
아직 어린이 문고본 『어린 왕자』를 읽고 있던 나는 제대로 된 『어린 왕자』를 사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어린 왕자』를 찾는 일은 밤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처럼 느껴졌다. 『어린 왕자』를 출간하지 않은 출판사가 없을 정도로 서점에 가면 여러 종류의 『어린 왕자』가 있지만, 저렴한 가격, 예쁜 일러스트에도 혹하거나 휩쓸리지 않고 늦더라도 제대로 된 책을 보고 싶었다. 어느 날, 상이라도 받는 건지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어린 왕자』가 출간됐다. 출판사만으로도 큰 신뢰가 갔는데, 황현산의 번역이라 하니,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 끈질기게 기다린 '제대로’ 된 『어린 왕자』가 나타난 것이다.
단단히 벼르고 읽은 『어린 왕자』는 여전했다. 소행성 B612에서 온 어린 왕자는 사실 처음 출간됐던 73년 전이나, 내가 처음 펼쳤던 20여 년 전이나, 현재 2015년의 가을이나 변함없었다. 어린 왕자는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다. 틀린 건 나다. 나는 지금도 틀리고 그때도 틀리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코끼리를 소화하고 있는 보아뱀을 알아보고 『어린 왕자』를 재미있게 읽었더라면, 나이를 먹어 갈수록 『어린 왕자』가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 된다면 나는 진작에 뭐라도 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이상한 어른에서 아주 이상한 어른, 확실히 이상야릇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어딘가에서 『어린 왕자』는 꾸준히 이상함을 업그레이드하는 어른인 나에게 항상 너그러웠다. 명대사가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린 왕자가 여러 별을 여행하고 지구를 여행하며 마주한 어른들이 나를 비추는 거울 같아 반성문으로 다가오는 때도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어린 왕자』를 펼쳐 들었다가도 책을 덮을 즈음엔 자주 부끄러워졌다. 언젠가 이 책이 아주 무서운 인상을 남기며 읽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린 왕자』에는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여전히 나는 사막을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어린 왕자』를 온전히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른인지도 모르겠다. 시기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어쩌면 내가 구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어린 왕자』에 더 길들어야 할 것이다. 의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간절히 길들고 싶다. 그토록 기다렸던 책을 손에 쥐고 큰 기대를 품고 즐거운 독서를 했음에도 그동안 『어린 왕자』를 읽었던 지난 시간이 비어 있는 것 같다. 『어린 왕자』에 따르면 내가 이 책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내가 『어린 왕자』에 소비한 시간 때문이다. 『어린 왕자』에 길들고 싶었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어린 왕자』를 길들이고 있었다.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길들인 것에 나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다.
나는 『어린 왕자』에 책임이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어린 왕자』를 찾을 땐 가벼운 마음이 아닌 책임감을 가지고 읽어봐야겠다. 그때 『어린 왕자』는 나에게 어떤 새로운 인상을 남길지 기대된다. 동시에 내가 『어린 왕자』를 온전히 다 이해하고 눈에 보이지 않던 중요한 무언가를 찾게 된 그날이 올까 봐 두렵다.
버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라고 나 대신 김중혁 작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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