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3일 오늘의 책
임경선 | 한겨레출판 | 2020.10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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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복잡한 마음’이다 그 ‘복잡한 마음’에는 슬픔과 아름다움이 함께 깃든다. 누군가를 좋아할 땐 한없이 설레고 행복하다가도 어느새 고통이나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뒤따라 찾아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우리는 그 누구나, 조금 더 ‘좋은’ 혹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곁에 남아 있는 사람》, 《태도에 관하여》 등 소설과 에세이로 오랜 시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임경선 작가가 가을에 어울리는 신작 소설...
소설은 계절이 바뀌는 순간, 생강차를 마시는 딱 지금과 같은 순간 시작한다. 작가의 말처럼 ‘각자의 자유가 다양하게 제한되고 사람들 사이엔 미움과 검열이 생겨’난 가을이다. 잠시라 생각한 시간이 길어지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그때부터 러브 스토리를 찾았다.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인정할 수 없을 때는 사랑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이 사막 같고 화가 나 참을 수가 없는 시간에는 사랑 이야기만 읽혔기 때문이다.
소설은 단숨에 읽힌다. 수진처럼 두꺼운 양말을 꺼내 신고 생강차를 마시며 순식간에 두 번을 읽었다. 현실은 어른의 언어를 잃고 나만의 시간을 조금도 가질 수 없는 24시간으로 꽉 채워져 있지만, 책을 읽는 사이사이 나는 서른 후반으로 돌아간다. 이야기의 가장 좋았던 지점은 삼십 대라는 주인공의 ‘나이’였다.
소설은 계속해서 어른을 이야기한다. 삼십 대의 수진이 이십 대의 한솔을 만나 사랑을 한다. 삼십 대의 수진은 사십 대의 혁범을 사랑한다. 세 사람은 모두 8살 차이로 하나의 세대를 대표한다. 재미있는 건 이 중 나이를 말하고 어른을 인식하는 건 오직 삼십 대의 수진 뿐이라는 거다.
다 큰 어른은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책임질 수 없는 것엔 확실히 거리를 두어야 하니까. (53쪽)
그의 글에선 누군가를 의심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맑고 곧은 성정이 엿보였고, 어딘가 모르게 처음으로 취직한 설계사무소에서 혁범을 알아가던 28살 무렵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65쪽)
후회하거나 미안해할 일, 상대를 희망 고문에 빠트리는 일은 어른스럽지 못한 일이다. (103쪽)
이 나이에 어리광 따윈 부리는 게 아니라고 수진은 자주 생각했다. (115쪽)
나이란, 어른이란 무얼까. 망설이고 외면하며 어른의 가면 속에 숨어 좋은 사람이길 바라는 수진의 외로운 마음은 낯설지 않다. 어쩌면 작가가 사랑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이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적어도 내게는 한솔의 이 말이 무척 위로가 되어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어른스럽지 않아도 돼요. 어른스럽지 않아도 좋아요. (156쪽)
추측하고 판단하고 재지 않는 한솔이 처음에는 비현실적인 인물로 느껴졌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살피고, 사랑할 때 사랑한다며 그 마음을 있는 힘껏 표현하는 한솔의 마음은 눈부시게 건강하다. 강해만 보이던 혁범의 마음은 유리처럼 쉽게 부서지도록 약했음이 마지막에서야 드러난다. 어른의 가면 속에 숨겨진 마음은 겉보기처럼 단단하지 않다. 그걸 내보인 후에야 사랑은 시작된다.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불행한’(208쪽) 사랑을 수진은 혁범과 이룬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하지만 적어도 자신에겐 살아오면서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아무리 사람들이 말려도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 그 어떤 말을 들어도 상관없다고 느껴지는 것, 바로 사랑이었다. 그 마음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사랑 앞에선 좀처럼 면역이 생기지 않았다. (187쪽)
어떤 사랑은 지금을 살게 할 것이고 어떤 사랑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고, 선이고 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서가 아니다. 누군가는 십대에도 이십 대에도 알 수 있을 마음이다. 말라가던 수진을 살린 한솔의 맑은 사랑이 수진을 살렸고 혁범도 살렸다. 언뜻 보기에 한솔은 수진을 살리기만 한 것 같지만 아마 한솔 또한 어떤 면에서는 살렸으리라. 서른의 생일에 머나먼 이국땅에서 함께 초를 끈 소녀의 어머니의 말처럼 말이다.
내가 알게 된 많은 것들은 항상 ‘이별’이 알려주었다고 생각해. 자신의 의지로 버릴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가야 할 때도 있고,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잃어버린 것들도 있지. 살다 보면 알게 돼.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바로 그 잃어버린 것들 덕분에 얻은 것이란 걸. (136쪽)
이 계절 수진은 한솔을 생각하며 아들의 시간을 더한다. 그렇게 사랑은 계속되고 삶은 이어져간다. 아침저녁 서늘한 공기를 맞으며 한동안 그들이 떠오를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고라니'님은?
힘들 땐 책 속으로 달려가는 독자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그만큼 사 모으는 것도 좋아한다. 코로나 시대, 책에 더욱 빠져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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