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일 오늘의 책
이장욱 | 문학과지성사㈜ | 2015.04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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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 것만 같은,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세계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이 세계의 안입니까 바깥입니까?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소설은 문득 도착해 있습니다” “우리 시의 미래에 이장욱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 소설의 미래도 이장욱을 가졌다”(백지은)라는 평을 들은 지 2년, 이제 우리 소설의 ‘현재’가 된 이장욱의 두번째 소설집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고백의 제왕』 이...
책을 절반쯤 읽다가 저자의 나이를 찾아봤다. 그는 최근에 젊은 작가상을 받았는데, 책에 담긴 주제 의식은 결코 젊지 않았다. 20대가 썼다면 가증스러웠을 것이고, 30대가 썼다면 불쌍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40대였다. 그렇다면 인생의 불가항력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자연스럽다.
인생은 흐른다.
첫 번째 단편인 「절반의 하루오」에서 하루오가 겐지스강 화장터 근처에서 배영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이 책을 읽는 큰 바탕이 되었다. 하루오는 가끔 팔을 저어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지만, 그것은 인생이라는 큰 강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삶과 죽음이 뒤엉킨 채 흐른다. 저항과 순응은 분리될 수 없다.
20대 혹은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삶은 죽음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지향하며 목표를 닮아가는 것이 인생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것이 힘에 부치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자책하기만 했는데 이 책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어 줬다.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나 vs 세계”라는 말도 안 되게 불리한 게임이 인생이다. 인생에서 나의 의지는 타자의 의지에 의해 억압될 수밖에 없으며 타자는 너무 많다. 진시황, 징기스칸, 나폴레옹조차 모든 타자에게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지 못했다. 하물며 소시민의 인생은 오죽할까.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로 기린을 설명하듯 나 아닌 모든 것의 이야기로 나를 설명하게 되면서, 「우리 모두의 정귀보」처럼 정귀보의 인생은 실체와 무관하게 그들에 의해 존재한다. 「칠레의 세계」의 아내처럼 타자를 그저 긍정해버리는 것도 어쩌면 이 인생이라는 게임의 ‘치트키(cheat key)’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누구의 악몽인가? (285쪽)
내 의지대로 살 수 없다면, 인생은 그저 누군가의 꿈이며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악몽이나 다름없다. 이대로 악몽에 갇혀 있을 것인가? 아니다. 대하와도 같은 불가항력을 인정하면 된다. 그러면 하루오처럼 흐름에 나를 맡겨보자는 묘한 위로가 차오른다. 인생의 불가항력을 수용하는 것이 패배는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물론, 승리도 아니겠지만.
하루오의 대척점에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가 있다. 산티아고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상어에게 모두 빼앗긴다. 중요한 것은 물고기의 뼈가 아니라 상어로부터 물고기를 지키려고 했던 산티아고의 의지다. 이를 통해 헤밍웨이는 인생은 파멸 당할 수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고 했다.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긴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 산티아고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산티아고에게는 없는 가족, 친구, 회사 동료 등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수험생들에게는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을 권하지 못하겠다. 그들은 아직 승리를 생각하며 자기 의지를 밀어붙이는 것이 좋으리라. 누구나 산티아고의 시절은 필요하고, 규칙과 책임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어린 나이는 불가항력에 저항하기도 쉬우니까. 그러나 일상에 짓눌린 나이라면, 더 이상 될 수 있는 게 남아 있지 않은 소시민이라면, 꼭 권하고 싶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은 하루오의 얼굴을 하고 당신을 위로해 줄 것이다. 너무 애쓰지 말라고. 흘러가는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괜찮다고.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1)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 :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 인생에 대한 위로라면『노인과 바다』는 인생을 향한 뜨거움이다.
(2) 더블 (박민규) : 「근처」의 '번진다'는 정서가 하루오에게도 묻어 있다. 그걸 떠나서 『더블』은 서사가 텍스트로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다.
(3) 피로사회 (한병철) : 현대인들이 자아가 위축된 채 살아가는 철학적 이유를 다룬다.
(4) 크리스티앙 (앤서니 애이스버크) : 거두절미하고 인생에 위로가 필요한 건 사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최고선에 대한 책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봉쌤'
입시 논술 강사 봉쌤(blog.naver.com/nonsulroad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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