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9일 오늘의 책
크리스토퍼 듀드니 | 예원미디어 | 2010.01
분류 : 인문/교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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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 많은 화제를 모았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본선무대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클럽 못 가잖아요!”라며 아쉬워하는 장면이 나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나는 그 방송 장면을 보면서 혈기왕성한 청춘에게 ‘밤’이란 열정의 분출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내 20대도 그랬기 때문이다. 그런 20대의 청춘을 옛날에 떠나보낸 지금의 내게 ‘밤’은 이제 열정의 분출보다는 내면의 침잠(沈潛)으로 이어지는 시간이다. 이 같은 고독의 시간에 밤으로의 여행에 동승하자는 내용의 초청장을 보내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시인이자 에세이이스트인 크리스토퍼 듀드니의 《밤으로의 여행》은 밤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로 꽉 채워진 책이다. 신화와 역사, 문화와 철학, 과학과 문학은 물론이고 곤충학과 동물학까지 아우르며 전 방위적 측면에서 ‘밤’을 사유하고 그것에 대해 기록했다. 저자가 시인이라는 점에서 짐작 가듯, 밤을 표현하는 그의 문장들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밤을 은유한 유명 시인들의 시를 인용해가며 저자는 존재하나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밤이라는 신비한 현상을, 인간의 언어로 어디까지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는지 마치 실험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크리스토퍼 듀드니의 책은 밤에 읽기 좋은 책으로써는 화룡점정이라 할만하다. 이 근사한 책을 밤에 읽는 순간, 당신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빛날 것이다. 게다가 밤을 지새우기보다 밤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펼쳐본다면 당신의 오늘밤은 어젯밤과는 많은 면에서 달라질 게 분명하다. 밤에 관한 개론서라고 이 책을 그는 정의하고 있지만 내가 볼 때 이 말은 겸손의 말로 읽힌다. 적어도 책의 표제처럼,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밤이라는 미개척지를 탐방하는 탐험가로 변신할 테니 말이다.
"흰색이 모든 색채의 현존이라면, 검은색은 모든 색채의 가능성이다. 네온사인이 눈부시게 빛나고 오로라가 춤추고 반딧불이 깜박이고 별이 반짝이고 발광성 플랑크톤이 빛나고 폭죽이 터지는 것은 오직 밤의 어둠 속뿐이다. 밤은 낮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밤의 심연 속에 모든 희망과 순수가 있다. 밤은 행성들이 집단으로 펼치는 장관이다. 밤은 신비하고 매혹적인 왕국이며 지금도 탐구가 진행 중인 미개척 영역이다." (33쪽)
우주의 기원과 맞닿아 있는 밤으로의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저자는 세계 어디를 가나 객관적으로 통용되는 시간개념 안에서 밤을 얘기하고 있다. 즉,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를 밤의 세계로 정의한다. 지구라는 행성에 처음 드리운 최초의 밤을 포함해 책은 총 14개의 챕터로 진행된다. 그중 12개의 챕터가, 밤으로 통칭되는 1시간 단위 시간대별로 미개척지 영역인 밤을 탐방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과 달리 지구 최초의 밤은 단 몇 분간만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 최초의 밤을 시작으로 밤의 역사는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주의 탄생과 팽창 안에서 놓고 보자면 지구의 밤 역사는 너무나 짧다. 하나의 점에서 우주가 탄생했다면 그 하나의 점은 밤, 어둠 그 자체였다. 때문에 밤은 빛의 자궁이자 어둠을 품은 출구와도 같다. 무엇보다 밤은 낮에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모든 것들을 하나로 만든다. 그럼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우리에게 묻거나 존재의 증명을 하기도 하다. 그렇다. 밤은 우주의 기원에 눈 뜨는 때이다. 우주를 우리의 삶에서 인식하는 시간인 밤은 우주로 열려 있는 창문이라 칭할 수 있다. 그렇게 무한의 공간을 느끼는 일은 우주의 축소판인 내면으로의 탐구를 유도한다. 그래서 밤은 고독의 시간이기도 하다.
"자정은 또 다른 종류의 밤, 깊은 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침대에 누워 꿈을 꾸는 ‘심야’의 시작을 알린다. 만일 소로우 시대의 아프리카 심장부처럼 밤의 어느 부분이 여전히 미지의 대륙으로 남는다면, 그것은 한밤일 것이다. 자정은 셰익스피어가 《한여름 밤의 꿈》에서 그린 것처럼 낭만과 마법의 시간이다. (중략) 때로는 ‘마녀가 쏘다니는 시간’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자정은 분명 날아다니는 빗자루들만큼이나 많은 로맨스를 만들어 낸다." (257쪽)
이렇듯 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빛나는 그림자이다. 이에 빅토르 위고는 “빛나는 세계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세계”라며 “우리의 육신에 달린 눈은 오직 밤만을 본다”고 이미 정의내린바 있다. 그럼 밤은 어떻게 올까? 아니 어디서 오는 걸까? 일몰은 밤의 시작을 알리는 색채의 황홀한 쇼 타임이자 밤의 전조이다. 일몰의 시작과 함께 밤은 동남쪽에서부터 빛을 거둬들이며 퍼져간다. 밤이 온 세상에 이불처럼 내려앉는 것을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저자처럼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밤이 어디서 오는 지에 대한 답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 사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제야 밤이 우주의 몸피임을 진심으로 깨달았다. 우주를 지배하는 것은 밤이다. 위에서 말했듯, 밤이 빛의 자궁이라면 인간은 그 빛의 자궁에서 태어난 존재다. 하지만 인간은 낮의 생물이다. 빛의 지배를 벗어난 밤은 인간에서 역사적으로 적이었다. 인간과 밤의 대립관계로 인해 밤에 관한 모든 신화와 전설,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저자가 시간대별로 밤에 관해 얘기하는 내용도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밤은 내릴 때만큼이나 신비롭게 그리고 차츰차츰 물러가기 시작한다. 동쪽 하늘은 밝아 오고, 별들은 파리한 빛을 흘리다 하나씩 사그라진다. 이제 곧 밤이 남긴 모든 것들이 수사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중략) 이제는 밤의 마지막 순간들이다. 그러나 깊은 숲속과 산골짜기와 도시의 골목길에는 여전히 어둠이 깃들어 있다. 밤의 마지막 저항이다. 이렇게 아직 스러지지 않은 어스름의 연못들 속에서, 마치 망명이나 추억처럼, 마치 꼬마 멜리사의 상자 속 마법의 밤처럼, 어둠이 여전히 군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 이때이다." (491쪽)
빛나는 그림자의 세계에서 우리가 태어났고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빛을 볼 수 있다. 이 책을 덮고 이 사실만 가슴 절절하게 느끼더라도 밤으로의 여행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아직까지 밤은 미개척지인 만큼 인간에게 위험한 영역이다. 밤은 온갖 범죄가 일어나는 시간이기도 하고 유흥과 향락, 욕망의 배설장으로 우리를 유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밤은 분명 매혹적인 존재이다.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마저 사라지고 있는 팍팍한 낮의 세계에서 밤은 우리를 구출한다. 고독이라는 내면의 하늘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주의 기원과 맞닿아 있는 존재의 긍정을 이끌어낸다. 천 개의 눈이 떠지는 시간, 한밤에 이르면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공존하는 기시감에 휩싸인다. 이것이 지긋지긋하다 못해 넌덜머리나는 낮의 세계를 다시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준다. 여행작가 후지와라 신야는 “인간은 늘 빛 속에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그 전까지는 빛이라는 알레고리 안에서만 이해했다. 크리스토퍼 듀드니의 책을 읽은 지금은 어둠 속에서도 빛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삶이라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이란 미래로 발걸음을 뗄 수 있는 거다. 오늘은 한번쯤 우주의 창문인 밤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자. 비록 두꺼운 구름에 별빛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 고독의 심연 속에서 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빛나고 있다. 그리고 내면에 존재하는 천 개의 눈동자로 그 빛을 느끼게 될 때 밤으로의 여행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페루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말마따나, 카시오페아가 천국의 문에 그녀의 드레스를 걸어두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취한미남’님은?
절망, 불운의 꼬리표를 달고 폭풍 같은 3년 여의 시간을 보냈다.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는 이 시기에, 나는 정말 우연히도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만약 책이 없었다면, 지난 3년의 시간을 나는 진정 불행한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책이 있어 나는 견뎠고 조심스레 희망도 품었으며, 새로운 꿈도 갖게 됐다. 책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책 많이 읽는다고 해서 인생이 하루아침에 역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책을 가까이 함으로써 인간은 生의 의지를 끈덕지게 붙들고 늘어진다. 못 믿겠다고? 지금의 내가 그 산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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