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3일 오늘의 책
최인호, 신영복, 김수환 외 | 책읽는섬 | 2017.04
분류 : 여행/취미/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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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시인의 길을 동행했던 가슴 뭉클한 수필들 시인은 그 글들을 잃어버렸다.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기에 잊어버릴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 글들을 읽었을 때의 감흥은 사라지지 않고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처음 만났던 때처럼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치리라. 그러면 오래전의 친구를 길에서 만난 듯 반가우리라. 그 글들은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은행에서 아무렇게나 뽑아든...
| Editor - 송보배
뭉클의 사전적 의미는 ‘슬픔이나 노여움 따위의 감정이 북받치어 가슴이 갑자기 꽉 차는 듯한 느낌’이다. 뭉클하다는 건 우리가 사회적 인간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사연에 뭉클하기도 하고, 가족의 편지에 뭉클하기도 한다. 봄을 맞아 툭툭 터져 나오는 꽃을 보며 가슴 뭉클해 하기도 하다. 인간 속에, 자연 속에 끊임없이 관계 맺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뭉클함을 느낀다.
뭉클하다는 건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며,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느낌이다. 타인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고,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능력이 ‘뭉클’의 전제가 되는 까닭이다.
시인은 일생동안 어느 글에 ‘뭉클’했을까. 『뭉클』은 1935년에 태어난 신경림 시인, 그의 시사(詩史) 60년에 함께 한 산문을 엮은 책이다. 그의 인간됨은 그 무엇과 공명하고 있을까. 책을 보며 그의 감정 어느 곳과 잇닿은 느낌을 받았다.
나를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한 데는 선행 시의 힘이 물론 컸지만 산문의 영향도 그에 못지않았다. 가령 김기림의 「길」이나 정지용의 산문들을 읽었을 때 가슴에 와 닿던 감동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5쪽)
글을 선選하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문학적’이 아니고 ‘뭉클’임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뭉클’은 ‘문학적’보다도 한 자리 위의 개념일 터이다. (6쪽)
책에는 『봄봄』의 소설가 김유정부터 앵커 손석희까지, 시인의 길 60년에 동행한 수필이 담겨 있다.
신경림 시인은 감동을 주었던 산문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도 찾기가 어려워, 이참에 가슴 뭉클하게 한 산문들을 엮어 책으로 냈다고 한다.
수록된 첫 산문은 소설가 김유정의 「필승 전前」이다.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15쪽)
첫 문장부터 애달픈 이 산문은 김유정의 마지막 편지다. 이 편지에서 김유정은 친구 안회남에게 번역일 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는 편지를 쓸 때 김유정은 폐결핵이 악화돼 죽어가고 있었다. 편지를 남기고 11일 후 그는 향년 30세 나이로 눈을 감는다. 최후의 순간에도 생의 의지를 다짐하는 편지를 보니, 그가 털어놓는 곤궁함조차 숙연하게 느껴진다.
김수환 추기경이 쓴 「어머니, 우리 어머니」 이야기도 인상 깊다. 김수환 추기경은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의 어머니 서중하 여사가 살림을 꾸리며 김 추기경 형제를 돌보았단다. 가난한 초가삼간 살림에도 그의 어머니는 그때로서는 드물게도 늘 방을 깨끗이 도배하고, 아이들에게 잡곡 섞인 쌀밥을 먹였다고 한다. 곤궁함 살림에도 정갈하게 먹고 입히느라 어머니는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차마 헤아리기 어렵다. 김 추기경의 큰 형이 일본에서 화상을 입어 죽어갈 때 그의 어머니는 즉시 일본에 건너가 형을 데려왔고, 3년간 온갖 조약을 써서 완치시켰다. 일본어를 모르는 어머니가 주소 하나만 들고 홀로 일본에 건너가 형을 데려온 일이며, 다리가 썩어가던 형을 완치시킨 일이 김 추기경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일로 기억된다고 한다. 형은 다리가 완치되자 만주로 가 소식이 끊겼는데, 어머니는 소식 끊긴 형을 찾아 세 번이나 만주를 찾아갔다고 한다.
나에게 어머니의 사랑은 나의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내는” 사랑이다. 가실 줄 모르는 사랑, 그것이 나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다. (99쪽)
김수환 추기경이 어머니를 회고한 구절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최근 지인 어머니의 장례식에 다녀왔기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이 곁에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별도 낯설지 않은, 그런 나이가 됐음을 실감한다.
인생과 만남, 유한한 것을 앞에 두고 다만 오늘 최선을 다짐한다.
10rim@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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