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일 오늘의 책
김소민 | 한겨레출판 | 2020.02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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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상처받고 괜찮은 척, 나에게 상처 주고 아닌 척했던 지난날 세상에 휘둘려 말하지 못한 ‘나의 긴 이야기’ 그 오답 같은 해답의 기록들 회사와 이별하고, 연인과도 이별하고. 거기에 늙은(?) 여성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사추기 성징인 ‘젊음(?)’과의 작별까지. 사십 평생 수긍하고 수용할 줄만 알았던 작가는 이 모든 것과의 이별 뒤에 오히려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용기 있게 고백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
책을 읽다 보면 이 사람 아는 사람인가? 싶을 때가 있다. 나이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어찌 보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의 이야기인데도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이 책 역시 그랬다. 내 우울함, 울분, ‘이불킥’ 하고 싶은 만큼 부끄러웠던 일과 수치심,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매일 절절맸던 고민과 상처들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었다. 근데, 우울하지 않고 재밌다. 그야말로 ‘찐’ 재미와 ‘찐’ 인생 이야기가 있었다.
그녀는 40대 백수다. 어느 날 불어온 뇌의 호르몬 폭풍 때문에 1년쯤 생존할 수 있는 통장 잔고만 믿고 직장을 때려치웠다.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는 한 달을 보내고(난 일주일 지나서였는데), “망했다”라는 생각과 함께 오라는 회사가 없다는 현실만 뼈저리게 느낄 뿐이다.
백수가 되니 존재가 쪼그라드는 경험도 한다.
만나자는 사람도 없고 나를 소개할 말도 없다.
회사에서만 사회 속의 나를 경험한 탓이기도 하다.
인간관계도 회사가 둘러쳐줬고, 하루 필요 인간 접촉 양도 회사가 제공했다. (19쪽)
이 책은 현실의 나도, 과거의 나도, 그리고 미래의 나도 생각나게 한다. 한때 욱해서 회사를 때려치웠던 그날의 기억…. 자존감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경험과 함께 그때의 막막함이 되살아난다. 내가 잘난 것이 아니라 조직의 울타리 속에서 혜택을 받고 있었던 것이구나 실감하게 되었던 그날의 나로 돌아가고 만다. 근데 책은 너무 재미진다. 그녀는 그녀의 글 속에 숨겨진 비밀을 말해준다. “존버의 삶을 어떻게 승화시키는지.”
삶의 사건은 대부분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이야기는 내가 쓸 수 있다. 콧물과 눈물을 빼면서, 쓰고 지웠다 쓰고 지우면서, 이별을 독립의 이야기로, 상실의 고통을 한때 가졌던 행운의 증거로, 결핍을 공감의 끈으로, 그리움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으로, 쓸 수 있다.
쓸 수 있다고, 쓰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내 인생에 “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와 타인을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다시 쓰다 보면, 핏빛 태평양을 표류하면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생명체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밝고 시끄럽고, 묘하고 섬세한 생명의 표정”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76쪽)
그리고 또 하나, 색다른 재미가 이 책에 숨겨져 있다. 무수히 많은 그녀만의 독서리스트 및 드라마, 영화 리뷰가 그것이다. 글은 읽은 만큼, 느낀 만큼, 그리고 해석한 만큼 자기 삶으로 끌어올 수 있다. 불안하고 고독한 40대의 삶 안에서 그 삶을 불행과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단단한 자신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찌질하고 처절한 40대 백수 싱글의 이야기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어떤 책과 함께 자기 삶을 희극과 비극을 오가면서 이야기해줄까 기대하게 된다.
그녀는 책의 형식을 빌려 1인 연극이자 드라마이자 영화를 찍고 있다. 그 장르는 때론 멜로, 코미디, 비극, 미스터리, 스릴러까지 다양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웃다가 가끔 슬퍼지다가, 또다시 웃게 되는 이상한 책이다.
상상은 무라카미 하루키였는데, 실상은 동네 백수다. (46쪽)
존버로 사는 게 창피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면, 이 책을 읽는 순간 “존버라서” 다행이다라는 위안과 위로를 받게 된다. 같은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불안에 기대어 산다는 것을 실감한다. 어쩌면 “다행이다. 나만 사는 게 창피한 게 아니었구나”하고 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mira4536'님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40대 직장인이자 동네 친구들과 독서 모임으로 책 읽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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