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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해원과 축원의 시로 되살아나는 얼굴들 “넋이야 넋이로구나 이 넋이는 누 넋인고” 오봉옥 시인은 33년 만에 『붉은산 검은피』를 다시 펴내며 “‘화순항쟁’에서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식으로 구성을 다시 했고, 보다 더 단단한 짜임새를 위해 불필요한 삽화들은 걷어냈다. 그리고 약간의 오류가 있었던 부분들을 바로잡았다.”(‘시인의 말’)고 한다. 시집은 1989년 출간 직후 곧 판매 금지되었기에, 시인이 말한 개정은 단지 수정을 넘어 되찾은 목소리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장대한 서사시는, 머슴이었던 우리의 아비가 황토현에서 동학농민군이 되어 싸우고 빨치산 아들의 죽음 앞에 서는 “천년만년 넋풀이” 「서시 1, 2, 3」으로 그 막을 연다. “넋이야 넋이로구나 이 넋이가 누 넋인고 […] 가자서라 가자서라 넋 맞으러 가자서라”(「서시3」, 42~43쪽) 하며 ‘씻김굿’을 시작한다. 발문에서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서문의 “씻김굿이란 문자 그대로 망자(亡者)의 영혼을 씻어 이승의 한을 풀고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굿으로 굿에 참여한 죽은 자와 산 자 모두가 생기복덕을 입는 한바탕의 축제”라고 평한다. 오봉옥 시인은 이 ‘씻김굿’으로 1894년의 동학농민군 아비와 식민지 시대 만주에서 무장투쟁한 아비와 한국전쟁 전의 빨치산 아비, 1980년 광주에서 죽어간 오월 아비들로 이어지는 넋을 풀어낸다. 서사시의 주요 인물 석이는 “지도 커서 장군이 되고 싶었지 호랭이가 되어 너른 들판에 떠억하니 눕고”(「제1장」, 61쪽) 싶어하다가도 “참 재미나네 그래도 먹을 것이 생각”(「제1장」, 58쪽)나는 장난꾸러기 아이다. 석이에게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어머니와 누이, 기나긴 곡을 하다 “저문 들처럼 살다가 저문 들처럼” 돌아가신 할머니가 있다. 그리고 산에서 살아가는 빨치산 항일 독립유격대에 대한 “진짜배기 이야기 보따리를” 들려주는 독립운동가 사평아재가 있다.(「제2장」, 77쪽) 식민지 하에서 누이 미순은 굶주림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산으로 숨는다. 누이 미순이가 숨은 이 산은 “큰 산 아래 하루가 기울고/큰 산 아래 하루가 일어나는/산처녀 시상살이야/산이 무섭고/산이 든든하지요/살아 있는 산이 떠억 내려다보고 있으니/그 안에서 쥐 죽은 듯 살아야지요”(「제3장」, 95쪽) 하는 산이다. 민중의 삶과 항쟁의 역사에서 ‘산’은 중요한 무대였다. 숨을 곳 없는 그들을 최후에 감싸준 너른 품이자 삶의 의지를 복돋아주는 장소가 다름 아닌 ‘붉은산’이었다. 앓아누운 어머니는 더는 어머니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일어나선/죽은 할머니 흉내”를 내는 것이다. 석이가 “언제나 잘 사요?/물으면/‘그저그래야’ 하더니/‘나 이제 가야 쓰것다’/뒷짐 딱 지고 앙개앙개 걸어서/싸립문 열고 나갔지요/그때 새벽닭이 막 꼬꼬댁 울고/할머니가 된 엄니 저만큼 가더니/엄니 자신으로 돌아와서/‘아이고 춥다’/가느다란 몸 움츠”린다.(「제3장」, 106~108쪽) 어머니-민중은 현실을 견디며 다 말하지 못하고 떠난, 죽은 이의 목소리로 변모하는 것이다. 『붉은산 검은피』에서 이 어머니의 존재는 특기할 만하다. 어머니는 역사적·문학적 전형성에서 탈피해 고통의 구체적인 얼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어머니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의 삶을 함께 앓으며, 술에 취해 “곤드레만드레 속타령”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제3장」, 109쪽) 서사시의 전반부에서는 이처럼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석이의 성장과 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압도적으로 그려내며 백미를 이루고 있다. 검은피로 흐르는, 붉은산에서 부르는 해방의 이름들 “말혀봐 말혀봐 도당체 해방이 뭐시였냐고?” 이제 서사시는 독립운동의 과정과 석이의 징용, 해방을 맞은 이들을 이야기한다.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된 사평아재가 고난을 당하고,(「제4장」) 석이는 일본으로 징용을 가서 전쟁과 해방을 맞는다.(「제5장」) 드디어 해방을 맞은 조선에서 사평아재가 출감하고,(「제6장」) 해방된 조선에 외국 군대가 등장한다.(「제7장」) 사평아재는 “아무래도 이곳에선/탄광촌 일이 가장 중요하지라우/아무래도 이 마을에선/죽은 아내의 혼이 떠도는 것 같어라우” 하며 탄광촌으로 떠난다.(「제6장」, 145쪽) 오랜 역사의 고난 끝에 해방을 맞았지만, “이봐요 이봐요/삼대째 오대째 이어온 소작쟁이님/당신 아내가 종이고/당신 아비가 머슴이고/당신이 소작쟁이인데/해방이 다 뭣이다요” 하고,(「제7장」, 151쪽) “말혀봐/말혀봐 도당체/해방이 뭐시였냐고?”(「제8장」, 167쪽) 하며, 과연 자신들에게 ‘해방은 무엇인가’ 묻는다. 민중에게 해방은 “소문”과 같은 것이었으며, 해방 공간에 민중의 자리는 없었다. 해방이 됐다는데, 사람들은 다시 떠난다. 탄광으로 들어간 석이와 사평아재. “파내야지/이 시퍼런 삽날/이 날 선 곡괭이로/한 자 한 자 서러운 내 이름자 파내야지/소작쟁이 아비/소작쟁이 어미/날 때부터 서러운 내 이름자”(「제8장」, 161쪽) 그들이 괭이로 파내려는 것은 탄더미에 묻힌 이름들이다. 마지막 「제9장」에 이르러 해방 일 년을 맞아 기념식장에 가던 석이와 사평아재를 비롯한 3천여 광부들은 자신들을 막아선 미군을 뚫고 갔다가 죽임을 당한다. 「맺음시」 ‘기억하라’에서 여전히 계속되는 침략의 역사와 전쟁에 대한 기억을 촉구한다. 장편 서사시 『붉은산 검은피』를 통해 독자들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식민지 시대와 해방, 미군 점령과 분단에 이르는 현대사를 살아간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날 선 곡괭이질과도 같이 형상화된 시적 화자는 문학의 언어가 어떻게 역사적 언술과 다르게 현재의 독자들에게 닿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기도 한다. 현대시에서 그 맥이 단절된 다성의 화자를 복원해내며, 구체적인 목소리로 형상화한 탁월한 문학적 성과를 보여준 오봉옥 시인의 『붉은산 검은피』는, 그 역사적 의미를 더해 오늘의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시인의 말
서시 1
서시 2
서시 3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맺음시
발문 : 수정판 『붉은산 검은피』 출간에 부쳐_최원식
간행의 말_임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