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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2351119 / 480쪽 188 x 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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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은 백두산과 간도를 말할 때, 흔히 그곳은 우리 땅이라고 말한다. 덧붙여서 일제가 만주 지역의 철도 부설권, 광물 채굴권을 얻기 위해 간도조약을 체결하면서 간도를 넘겼다거나, 조중 국경 조약 때, 북한이 백두산을 중국에 넘겼다는 설이 한때 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저자는 1989년 처음 만주 땅을 밟고, 1991년 고구려 유적 답사차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북한과 중국의 합의로 설치된 국경 푯말을 목격하면서부터 한 중 국경 문제, 백두산 정계비 문제, 간도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1990년 ...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은 백두산과 간도를 말할 때, 흔히 그곳은 우리 땅이라고 말한다. 덧붙여서 일제가 만주 지역의 철도 부설권, 광물 채굴권을 얻기 위해 간도조약을 체결하면서 간도를 넘겼다거나, 조중 국경 조약 때, 북한이 백두산을 중국에 넘겼다는 설이 한때 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저자는 1989년 처음 만주 땅을 밟고, 1991년 고구려 유적 답사차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북한과 중국의 합의로 설치된 국경 푯말을 목격하면서부터 한 중 국경 문제, 백두산 정계비 문제, 간도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1990년 처음 백두산을 오른 뒤 20년 동안 30차례 이상 백두산을 오르내리고, 백두산에서 흘러내린 압록강과 두만강을 수없이 답사를 거듭했다. 이 책은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줄기에 남은 선사시대ㆍ단군조선ㆍ고구려ㆍ발해ㆍ요ㆍ금ㆍ청의 수많은 역사유적을 답사하면서 얻은 모든 지식과 자료를 한데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청나라의 지방관리로 1908년 백두산 일대를 조사한 유건봉(劉建封)의 활동을 상세히 소개하며우리 학자들이 그동안 놓쳐왔던 간도협약 이전의 역사적 사실, 즉 청나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얼마나 집요한 노력과 공작을 펼쳤는지를 추적했다. 또한 정확한 증거를 단 한 가지도 대지 못하는 유건봉의 주장을 오늘날 중국이 백두산 국경 문제 해결의 증거 자료로 삼으려는 데 이의를 제기하고 우리 학자들의 분발을 요구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1962년 북한과 중국이 체결한 조중 국경조약, 국경 문제 회담 기록, 의정서를 분석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에 있는 섬 451개 가운데 187개는 중국, 264개는 북한에 속한다는 분석 결과를 도표를 그려 소개했다. 이 책은 모두 4마당으로 짜여 있다. 첫째 마당에서는 만주에서 한반도까지 우리 역사의 모든 영역을 백두산이라는 한 주제를 놓고, 시대적으로는 옛 조선에서부터 최근까지 모든 역사를 역사적 영토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정리하였다. 특히 중화주의로 인해 왜곡된 동아시아사 연구에 새롭고 보편 타당한 잣대를 제시하면서, 그 기준에서 백두산을 자리매김하였다. 둘째 마당에서는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과 우리나라 국경을 확정한 1960년대 조 중 국경조약을 집중 분석하였다. 1960년대 조 중 국경조약은 당사자인 중국과 북한에서 금기사항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직 단 한 편의 논문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조 중 국경조약의 체결 배경과 내용, 백두산 국경,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 조 중 국경조약 체결 이후 맺어진 각종 협정을 자세히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셋째 마당에서는 중국의 다민족 통일국가론과 역사상 강역이론에 대한 분석, 그리고 이에 따른 우리의 대응 문제를 다루었다. 중국은 새로운 강역이론으로 “삼국시대 한국과 중국의 국경은 한강이다”는 완전히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동북공정이다. 이러한 중국의 새로운 연구 경향에 따라 한국 학계도 새로운 시각의 연구방법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한국 학계의 반성과 대응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였다. 넷째 마당에서는 조 중 국경조약은 물론, 압록강과 두만강에 있는 섬의 일람표까지 모두 번역하여 실었다. 1964년 의정서가 나온 뒤 50년이 다 되어가나 한 중 국경 연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것은 조약문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경 조약문, 국경 문제 회담기록, 의정서, 그리고 압록강과 두만강의 섬 목록을 모두 번역하여 원문과 함께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불어 1963년 6월 28일, 주은래 총리가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접견할 때 발표했던 ‘중국-조선 관계’ 담화 내용을 원문과 같이 실었다. *신문 서평 1. 서길수 교수 20년 연구 집약 ‘백두산 국경 연구’ 출간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는 1909년 9월 4일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고 간도지역을 청나라에 넘겼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지만 간도협약에 대해선 ‘일제가 만주 지역의 철도 부설권, 광물 채굴권 같은 이권을 얻기 위해 간도를 넘겼다’는 식의 단편적인 해석이 대부분이다. 청나라가 간도협약 체결 전부터 간도를 손에 넣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던 사실은 부각되지 않았다. 연구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서길수 서경대 교수(사진)는 최근 낸 연구서 ‘백두산 국경 연구’(여유당)에서 백두산 일대와 간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간도협약 이전에 역사적 사실을 날조한 중국의 공작을 살폈다. 20년 동안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 일대를 답사하며 직접 살핀 내용 및 고지도와 사료를 분석한 연구를 집약한 책이다. 서 교수는 청나라의 지방관리로 1908년 백두산 일대를 조사한 유건봉의 활동을 상세히 소개했다. 유건봉은 조사원과 군인들을 데리고 3개월에 걸쳐 백두산 일대를 조사했다. 그는 조사 결과를 자료로 내면서 1712년 청나라가 세운 국경 표시인 백두산정계비의 위치를 원래보다 아래쪽인 소백산 쪽으로 옮겼다. 또 소백산보다 더 아래인 포태산을 중심으로 ‘압록강∼포태산∼두만강’으로 이어지는 국경을 주장함으로써 백두산과 간도 지역을 한국 땅에서 제외시켰다. 서 교수는 “유건봉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단 한 가지도 대지 못했다”면서 “그런데도 최근 중국은 유건봉의 주장을 한중 국경 문제 해결의 교과서로 사용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1987년 유건봉의 자료집을 토대로 한 장백총서가 나온 뒤 관련 연구와 논문이 잇따르고 있고, 작년에는 유건봉의 백두산 답사 100주년 기념사업이 대대적으로 펼쳐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우리 학계는 이제부터라도 역사적 사례 연구를 깊이 해서 중국의 의도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구려연구회장을 지낸 서 교수는 1991년 고구려 유적 답사차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도중 북한과 중국의 합의로 설치된 국경 푯말을 목격했다. 그때부터 서 교수는 한중 국경 문제, 백두산정계비 문제, 간도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50차례 이상 백두산 일대를 답사했다. 서 교수는 책에서 1962년 북한과 중국 사이에 체결된 조중 국경조약도 상세히 분석했다. 그는 이 조약에 따라 설치된 푯말 28개의 좌표를 추정 제시했고, 압록강과 두만강에 있는 섬 451개 가운데 187개는 중국, 264개는 북한에 속한다는 분석 결과를 소개했다. 2. “백두산 할양설 사실과 다르다” 고구려 전문가 서길수 교수 ‘백두산 국경연구’ 펴내 “백두산은 북한 국경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국경이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고구려연구 전문가인 서길수(65) 서경대 교수가 백두산의 국경 문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백두산 국경 연구’(여유당)를 펴냈다. 단군조선에서 현재까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국경사를 통사적으로 집대성한 책이다. 9일 서울 동교동 개인 연구실에서 만난 서 교수는 “1990년 백두산을 처음 접한 이래 지금까지 30번쯤 오르내렸고, 압록강과 두만강도 수없이 다녔다.”면서 “20여년 간 역사 유적을 답사하며 직접 보고 듣고, 수집한 자료들을 정리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 60년대 조·중 국경조약 원문 분석 가장 주목할 부분은 1960년대 북한과 중국이 맺은 조·중 국경조약의 내용을 전면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1962년 조약을 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1964년 국경을 확정했지만 지금까지 북한과 중국 어디에서도 조약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나 검토는 이뤄지지 않았다. 서 교수는 “50년이 지나도록 북한과 중국이 조약 내용을 완전히 공개하지 않은
목차
책머리에 • 12
첫째 마당 백두산과 역사적 국경
Ⅰ. 옛 조선‧삼국시대의 백두산과 국경 • 23
1. 옛 조선(朝鮮)의 단군과 태백산 • 27
2. 한나라 점령기의 이름, 백두산\u003d불함산(不咸山) • 27
3. 고구려의 시조 추모(鄒牟)와 대백산(大白山)‧태백산(太白山) • 28
4. 고구려 때 삼국지와 위서(魏書)의 기록, 백두산\u003d개마대산(蓋馬大山)‧도태산(徒太山) • 31
1) 삼국지와 후한서의 기록, 백두산\u003d개마대산(蓋馬大山)
2) 위서와 수서의 기록, 백두산\u003d도태산(徒太山)‧백산(白山)
5. 신라에도 대(태)백산이 있었다 • 34
6. '백두산'이란 낱말을 가장 먼저 기록한 책 '『삼국유사』' • 35
Ⅱ. 고려시대의 백두산 • 39
1. 고려-요 시대의 백두산 • 39
1) 고려시대 최초의 '백두산' 기록 -991년 성종 10년
2) 최초의 '장백산(長白山)' -『요사(遼史)』
3) 윤관의 선춘령(先春嶺) 국경비
2. 고려-금 시대의 백두산 • 50
3. 고려-원 시대의 백두산 • 56
Ⅲ. 조선-명나라 시기의 백두산과 국경 • 59
1. 조선-명나라 시기의 백두산 명칭 : 백산, 백두산, 장백산 • 60
2. 조선 왕조의 백두산에 대한 인식 • 67
3. 조선 초 백두산과 명나라와 관계 기록 • 74
1) 태종 때 명나라가 백두산 북쪽에 사사(寺社)를 수축하였다.
2) 세종 때 명나라 관군이 백두산 동쪽에서 조선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였다.
3) 명나라 매 사냥 사신에게 곡식 수송
4) 조선-명나라의 백두산
4. 조선 초 이후 여진과 백두산 • 81
1) 조선 초 여진에 대한 명나라와의 외교전
2) 4군 6진의 개척
3) 4군 6진 이후의 조선-여진 관계와 백두산
Ⅳ. 조선-청나라 시기의 백두산과 국경 • 90
1. 청나라와 백두산•90
2. 백두산 정계비의 설립 배경 • 93
3. 목극등과 접반사 일행의 15일 일정 • 95
4. 압록강 근원과 목극등 • 104
5. 정계비 설치와 토문강 문제 • 110
1) 경계비 설치의 전말
2) 명나라 『요동지(遼東志)』- 토문은 송화강이다.
3) 목극등의 행로 검토를 통해서 본 토문강
4) 한‧청 간 국경회담과 토문강
Ⅴ. 청국의 백두산 국경 날조사건(1908)과 청‧일 간도협약(1909) • 135
1. 1908년(광서 34년) 청나라의 백두산 전면 조사 동기와 진행 과정 • 137
1) 전면 조사의 동기
2) 조사 진행 과정과 결과물
2. 1908년 청나라가 날조한 한‧청 국경 • 145
1) 백두산정계비(穆石)와 십자정계비(十字界碑) 날조
2) 흙무지‧돌무지는 각라오목눌(覺羅吳木訥)이 쌓았다는 날조
3) 차령산맥 주변 산과 강의 작명과 역사 왜곡
4) 청나라가 날조한 압록강 쪽 국경
5) 청나라가 날조한 두만강 상류 국경
6) 한‧청 국경회담에서 대립된 '홍토수가 청의 발상지(發祥地)'라는 날조
3. 청국의 백두산 국경 날조와 역사 왜곡의 계승 • 179
4. 1909년 간도협약 체결 과정과 내용 • 184
1) 간도협약 채결 과정
2) 간도협약 내용
5. '간도 문제'의 발생과 간도협약에 관한 국제법적 논의 • 188
1) '간도 문제'의 발생
2) 간도협약의 국제법적 논의
둘째 마당 1960년대 조‧중 국경조약에 대한 분석 연구
Ⅰ. 조‧중 국경조약의 체결 배경과 과정 • 135
1. 조‧중 국경조약 체결 배경 • 195
2. 조‧중 국경조약 체결 과정 • 197
1) 조‧중 국경 문제에 대한 회담기요(會談紀要)
2) 조‧중 국경조약
3) 조‧중 국경에 관한 의정서
Ⅱ. 조‧중 국경조약 분석(1) - 백두산 국경 • 203
1. 백두산 국경지도 제작 • 207
1) 정확한 좌표 값 산출
2) GPS와 관련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지도에 표시
3) 오차 수정 및 지도 작성
2. 천지를 양분하는 국경 분석 • 211
3. 천지에서 압록강까지의 국경 분석 • 213
1) 1호 국경 푯말
2) 2호 국경 푯말
3) 3호 국경 푯말
4) 4호 국경 푯말
5) 5호 국경 푯말까지의 국경
4. 천지에서 두만강까지의 국경 분석 • 222
1) 7호 국경 푯말
2) 8호 국경 푯말
3) 9호 국경 푯말
4) 10~13호 국경 푯말
5) 14호 국경 푯말
6) 15~18호 국경 푯말
7) 19~20호 국경 푯말
8) 21호 국경 푯말
Ⅲ. 조‧중 국경조약 분석(2) -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 • 237
1.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 안에 있는 섬과 모래섬의 귀속 • 237
1) 국경 강 기슭에 있는 섬과 모래섬에 대한 「국경조약」과 「의정서」의 규정
2) 압록강과 두만강의 섬과 모래섬에 대한 계량 분석
2. 압록강‧바다 국경선 • 245
3. 서해의 해상 분계선과 자유항행구역 • 250
4. 압록강과 두만강의 공유와 공동 관리 • 253
5. 국경의 유지 보호와 관리에 관한 협정 • 256
1) 덧붙인 지도에 대한 규정
2) 국경 경계 푯말의 관리에 관한 규정
3) 백두산 동쪽 산림지역에 관한 특별 시설
4) 「의정서」17조 : 강에 길을 고치거나 설치를 할 때의 조치
5) 「의정서」18조 : 연합검사에 관한 규정
Ⅳ. 1964년 「의정서」이후(1964~2003) 체결된 국경업무 조약 분석 • 261
1. 두만강 국경수역 경계선 획정 협정 • 261
1) 조‧중‧러 간 두만강 국경수역 경계선 획정 협정
2) 조‧중‧러 간 두만강 국경 교차지점에 관한 의정서
2. 상호 왕래 및 보안에 관한 협정 • 266
1) 조‧중 간 국경철도에 관한 협정(1976 체결, 1977년 발효)
2) 조‧중 간 국경 통과지점 및 그 관리제도에 관한 협정
3. 압록강과 두만강의 공동 이용에 관한 협정 • 270
1) 수력발전소 - 조‧중 압록강 수풍 수력발전공사(中朝鴨綠江水豊水電公司)
2) 양어사업 - 조‧중 간 수풍호 어족자원 공동 보호증식 및 이용에 관한 의정서
3) 뗏목을 통한 목재 운송
4. 두만강 경제개발 • 275
Ⅴ. 국경조약에 대한 논의와 역사적 의미 • 276
1. 한국의 '6‧25 참전 대가, 백두산 천지 할양설' 발생과 전개 과정 • 276
1) 교과서에 나온 백두산의 국경
2) 1980년대 백두산 문제의 대두
3) 1983년 한국 국회의 백두산 영유권에 관한 결의안 제출과 백두산 할양설의 일반화
4) 학계의 백두산 천지 할양설
5) '6‧25 참전 대가, 백두산 천지 할양설'의 현황
2. 한국에서의 조‧중 국경조약 연구와 인식 • 289
1) 간접자료(다른 나라 지도와 현장 답사)를 통해서 알려진 조‧중 국경조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