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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내 딸이 우리를 떠났다는 걸 알아. 심장으로 그걸 알지.”
이 소설에서 주목되는 것은, 딸자식을 향한 모성은 소름이 돋을 만큼 끔찍하다는 것을 잘 그려냈다는 점이다. 엄마는 아홉 살에 스물일곱 살이나 된 아버지와 결혼했다. 당시 이란에서는 특별하달 것 없는 일이었지만 나히드는 이를 ‘수치스럽다’고 표현했다. 엄마는 열두 살에 큰언니 마리암을 낳는다. 열두 살 엄마에게 아기는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아마 엄마는 마음을 닫아걸었을 거고, 그게 그나마 가능한 유일한 대처법이었을 거라고 나히드는 회상한다. 아기를 품에 안은 열두 살 엄마. 달리 뭘 어쩔 수 있었을까? 그렇게 주변엔 관심도 두지 못하고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살아내기에만 몰두했던 엄마다.
그런 엄마는 아버지의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사건을 맞게 된다. 생기발랄하고 똑똑한 막내 누라, 나히드와 함께 혁명을 부르짖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실종된다.
시위가 있고 난 후 돌아오지 않는 두 딸 나히드와 누라. 엄마는 문 앞에서 꼼짝도 않고 기도하며 자식의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그리고 이튿날, 무사히 돌아온 나히드. 엄마의 기쁨은 간절한 소망이 신의 뜻에 닿았다는 기쁨으로까지 이어진다. 그것도 잠시, 엄마는 혼절하고 만다. 막내딸 누라의 알 수 없는 생사는 곧 무너질 만큼 불행한 육감으로 다가왔고, 이내 정신을 잃고 만 것이리라.
넋이 나간 채 엄마는 막내 누라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교도소까지 찾아가 확인한다. 포기할 수 없었겠지, 자식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그렇게 엄마라는 존재는 죽음과 맞바꾸는 위험일지라도 그 어떤 장애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간절히 누라를 찾던 엄마는 어느 날 나히드와 함께 정치범들이 매장되어 있는 묘지에 찾아간다. 처형된 이들은 따로 무덤이 없는, 그저 땅 속에 매장된 묘. 통고를 받지 못해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누라가 여기 있을 거라고 짐작만 하고 찾아간 곳. 꿋꿋하게 걸음을 옮기던 엄마가 땅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러고는 땅에 계속 입맞춤을 한다. 계속 속삭이며.
이 광경은 열네 살 어린 딸의 원통한 죽음을 가슴으로 달래는 엄마의 비통함을 절절히 드러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내 딸이 우리를 떠났다는 걸 알아. 심장으로 그걸 알지.”
이 말 한 마디는 확인할 수조차 없는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엄마의 심정을 단적으로 드러내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준다.
나히드가 추구한 삶,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마음이 이런 걸까?
이 소설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시한부 진단을 받고 죽음을 향해 점점 다가가는 사람의 심정, 심리, 갈등이 섬세하고 솔직하게 잘 드러난다는 점이다.
6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드러나는 나히드 내면의 혼란스러운 감정은 곧 나(독자)의 감정으로 인식된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진단을 내리는 의사에 대한 맘속으로의 외침, 딸에게 갑작스런 부모의 죽음이 나을지 아닐지를 따져보는 나히드. 죽음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나히드는 죽지 않고 싸우겠다며 당장 치료를 요청한다.
“…치료에 들어가려면 조금 기다리셔야 될 거예요. 곧 부활절 휴가거든요. 치료 시작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나히드.”
순간 허공에 맴도는 울림, 나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의사의 말에 나히드는 자신의 죽음은 응급상황이라며 항변한다. 그러나 ‘암은 만성질환’으로 분류된다며 기다려도 된다는 무미건조한 의사의 말. 죽음 앞에 놓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괴리감을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죽음을 앞둔 이의 허망함이 잘 드러나고 있다.
거를 수 없는 죽음의 문턱에 오른 나히드는 입퇴원을 반복하며 유일한 보호자 딸 아람과의 갈등과 심리를 놀라울 만큼 솔직하게 드러낸다. 아무도 보살펴 줄 사람 하나 없는 스웨덴에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될 딸 아람이 측은한 엄마 나히드. 그러나 그의 행동은 맘과는 달리 역설적이다. 게다가 그 속마음을 알지 못하는 딸 마리암. 나히드를 통해, ‘죽음이 데려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비참함과 힘겨움은 독자에게 ‘죽음’의 입장을 곱씹어 보게 한다.
하루하루, 점점 더 가까이 죽음을 향하는 나히드의 상황은 아람의 임신, 곧 할머니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새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한때는 삶의 의욕이 솟구친다. 잃어버린 누라를 대신해 선물로 오게 될 손주의 존재를 통해 엄마에 대한 죄책감에서도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는 나히드. 결국 맞이하는 죽음의 문턱에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저 느낌으로만 알아채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나히드는 생각한다.
“우린 서로 아주 가까이 있어, 아기와 나는. 난 죽음에 가까이 있고 아기는 삶에 가까이 있으니, 곧 둘의 가는 줄이 엇갈릴 거야. 어쩌면 우린 같은 곳에 있어.”
죽어가는 순간, 그래서 아주 행복하다고, 혼자가 아니며 홀로 죽지 않을 것이니 안심이라고 나히드는 생각한다. “우리는 만나서 손을 잡을 거고, 그런 다음 서로 가만히 당겨서 선을 넘을 것”이라며.
이생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손녀를 맞이하며 나히드는 황홀경에 빠진다. 자유와 평화가 있는 이곳 스웨덴, 과거 자신이 살았던 이란과는 달리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이곳에서 당당히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남편 마수드와 자신이 해낸 것이라고, 나의 사랑하는 자식들이 잘 살아가도록 ‘우리가 해낸 것임’에 감격한다.
이 소설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우리가 맞을 죽음과 그간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