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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8912865 / 184쪽 106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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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특서 청소년 문학’으로 처음 독자들을 찾아온 『깡깡이』는 신판소리로 만들어져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정도로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온 끝에, 드디어 성인 독자를 위한 특별판으로 출간되었다.『깡깡이』특별판은 김선영 작가의 『내일은 내일에게』, 박현숙 작가의 『구미호 식당』에 이은 특별판 시리즈 세 번째 소설책으로, 청소년문학에서 검증된 바와 같이 생명력이 흘러넘치는 이야기를 통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출판사 리뷰
<줄거리>
부산 시내와 이어지는 영도다리를 건너 대평동과 봉래동 일대, 짠 바닷바람에 노출된 배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었고 바닷물에 잠긴 아랫부분에는 따개비나 담치 같은 해양생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것들은 배의 속도를 느리게 할 뿐 아니라 쇠를 부식시키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벗겨내고 새로 페인트를 칠해야 했다.
깡깡이 아지매들은 끝이 납작한 끌처럼 생긴 망치로 쇠를 두드려 배에 붙어 있는 녹을 떨어낸 다음 쇠 솔로 다시 한 번 더 문질러 남은 녹까지 깨끗하게 털어내는 일을 했다. 수리하는 배의 안과 밖, 구석구석까지 깡깡이 아지매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깡깡이 아지매들은 자신들의 삶에 녹처럼 붙어 있는 가난을 떨어내듯 안간힘을 다해 망치질을 했다.
“깡깡깡깡…….”
쇠와 쇠가 부딪쳐 내는 깡마른 그 소리에는 가난한 살림을 붙들고 사는 깡깡이 아지매들의 결기도 섞여 있었고 칡뿌리처럼 감겨드는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절,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부모님의 말에 얽매여 기특한 딸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정은.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깡깡이 일을 하는 엄마를 대신하여 네 동생을 돌보며 살림을 살아야 했던 맏딸 정은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돌보면서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회상한다.
1970년대 부산 영도구 대평동, 밖에서 보면 개미굴 모양의 골목 안에 다섯 집이 모여 살았다. 고만고만한 십대들이 형이고 누나고 친구이며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쏟아낸다. 집 나가 있는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 정은의 엄마는 다섯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깡깡이 일을 한다. 동생 넷을 돌보며 살림을 사는 정은은 국민학교 졸업을 앞두었지만 중학교 진학은 꿈도 꿀 수가 없다. 막냇동생 동우가 엄마 젖을 먹어야 할 시간이면 들쳐 업고 엄마의 일터로 찾아가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신문 배달도 한다. 내기를 하다가 폭풍 속에서 파도에 휩쓸려 갈 뻔한 남동생 동식이, 오빠를 따라 나섰다가 길을 잃은 여섯 살 정희, 동생들의 사건, 사고가 끊임없는 것이 정은의 일상이다. 결국 젖먹이 막냇동생 동우를 여섯 살 때 잃어버리고 가족 모두가 큰 상처를 안고 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정은과 동생들은 어른이 되고, 자신 몫의 삶을 살아간다.
“니는 내처럼 맏딸이라는 말에 묶여 살지 마라.
사람은 배워야 제대로 대접받고 살 수 있는 기라.”
당신도 맏딸이기에 희생만 해야 했던 어머니는 맏딸 정은이 공부하도록 했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힘들게 공부한 정은은 꿈꾸던 화가가 되었다. 하지만 정은은 가족이든 친구든 객관화시켜 바라보며 문제의 핵심을 명료하게 하기까지 참 오랜 세월을 맏딸이라는 책임감에 눌려 살았음을 고백한다.
“내가 자유로우니 동생도 엄마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엄마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1970년대 영도구 대평동 2가 143번지, 그 골목에서 그 시간을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한정기 작가의 빼어난 글과 이야기 솜씨로 이 시대 문학으로 다시 피어났다. 지나간 시절과 사라진 공간을 기록해 남겨야 한다는 사명을 겸손하게 받아들인 한정기 작가의 용기가 독자들을 추억의 시간과 공간 한가운데 불러들여 아련한 감동을 선사한다.
나는 동해안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부산 영도로 이사를 왔다. 가난을 떨쳐내기 위한 경제개발운동이 한창이던 때였고, 영도 대평동과 그 언저리에서 나는 사춘기를 보냈다. 『깡깡이』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 삼아 소설로 재탄생한 이야기다.
70년대 대평동은 수리조선소가 번성하던 때였다. 조선소 도크에 올라온 배에서 떨어낸 녹과 쇳가루가 마을을 뒤덮었고 여기저기서 용접 불티가 튀었지만 몇 걸음만 나가면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지는 대평동. 좁은 골목에는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웃음소리 가득했고 깡깡이 아지매들은 내 힘으로 벌어 자식들 공부시키고 식구들 먹여 살린다는 자긍심 하나로 그 힘든 노동을 이겨냈다. 거칠고 척박한 환경은 문제도 아니었던, 건강한 삶이 살아 꿈틀대던 그 동네. 우리나라 조선 산업의 견인차역할을 했던 70년대 대평동의 수리조선소가 내 삶에 이렇게 내려앉게 될 줄 나도 몰랐다. (…)
배타적 경제 수역이라는 정책 때문에 원양어선들이 다 사라지고 그 여파로 수리조선소와 함께 번성하던 대평동은 이제 깡깡이예술마을로 새로운 변신을 하고 있다. 아무리 새롭게 변하고 바뀐다 해도 이제 깡깡이 아지매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가장 번성했던 대평동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시절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소설을 통해서나 겨우 만날 수밖에 없지 싶다. 그런 차원에서 지나간 한 시절을 복기해내는 소설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집 살림 밑천 기특한 맏딸!”
아버지의 그 말은 나를 옥죄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 말에 꼼짝없이 묶여 기특한 딸이 되어야 했다. 칭찬은 좋은 면만 있는 게 아니었다. (본문 16쪽)
시내와 이어지는 영도다리를 건너오면 대평동과 봉래동 일대 바닷가에는 선박을 수리하는 작은 조선소가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깡깡이 아지매’들은 낡은 배를 수리하거나 새로 페인트칠할 때 배의 녹을 떨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짠 바닷바람에 노출된 배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었고 바닷물에 잠긴 아랫부분에는 따개비나 담치 같은 해양생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런 것들은 배의 속도를 느리게 할 뿐 아니라 쇠를 부식시키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벗겨내고 새로 페인트를 칠해야 했다.
깡깡이 아지매들은 끝이 납작한 끌처럼 생긴 망치로 쇠를 두드려 녹을 떨어낸 다음 쇠 솔로 다시 한 번 더 문질러 남은 녹까지 깨끗하게 털어내는 일을 했다. 수리하는 배의 안과 밖, 구석구석까지 깡깡이 아지매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깡깡이 아지매들은 자신들의 삶에 녹처럼 붙어 있는 가난을 떨어내듯 안간힘을 다해 망치질을 했다.
“깡깡깡깡…….”
쇠와 쇠가 부딪쳐 내는 깡마른 그 소리에는 가난한 살림을 붙들고 사는 깡깡이 아지매들의 결기도 섞여 있었고 칡뿌리처럼 감겨드는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기도 했다.
“깡깡깡깡 깡깡깡깡…….”
봉래동과 대평동 해안가에는 깡깡이 아지매들의 망치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었고 망치 소리가 끝나면 하루가 저물었다. (본문 46, 47쪽)
팔 남매 중 유일한 딸이었던 엄마. 치매에 걸리기 전 엄마는 가끔 옛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우리 아버지가 꽃분이라는 고운 이름을 지어줬지. 엄마는 나를 알뜰하게 부려먹기만 하고 공부도 제대로 시켜주지 않고 시집 보냈어. 그 많은 땅 한 뙈기 안 주고. 농사짓는 부모 대신 동생들 돌보며 살림 사느라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했어. 그때는 다른 부모들도 다 그랬어. 나는 딸한테 안 그러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돼야지…….”
엄마는 그런 말을 하면서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인간은 자기가 경험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다 부모님 두 분. 거기다 일곱 동생들까지. 식구가 열두 명이었다, 열두 명! 대식구에 치여 느그 아버지는 홀어머니와 동생 하나뿐이라 식구 단출해 좋다고 결혼했지. 바늘 하나 꽂을 땅도 없는 가난한 살림인 줄은 몰랐지. 인물은 참 훤했지. 노래도 잘했고.”
엄마는 아버지가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뒤에도 마음을 못 접었다.
“내가 조금만 더 배웠으면 그년한테 안 뺏겼지.”
엄마와 함께 자식을 다섯이나 낳아놓고 다른 여자한테 가버린 아버지. 아버지는 한 번인가 잠깐 우리를 찾아왔다가 수출선을 타러 나가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에게 아버지란 말은 무책임이란 말과 동의어였지만 엄마는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도 젊은 시절 의 아버지를 잊지 못했다.
아버지를 대신한 엄마의 노동을 지켜보며 아이답게 자라지 못한 나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응어리졌고 나는 남자라는 인간 전체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기억으로부터 벗어난 지금 엄마는 아버지한테서 자유로워졌을까?
(본문 63, 64쪽)
“옛날에 엄마랑 이모 정말 가난하게 살았어요?”
“가난? 글쎄? 그때는 다 그렇게 비슷하게 살았지. 우리 주변에는 다 그런 사람들이 살아서 우리가 특별히 가난하다는 생각은 안 하고 살았지만……, 호호호, 아니네. 우린 좀 더 가난했지. 맞아. 좀 더 가난한 집!”
“레벨이 좀 더 높았네요.”
“맞아. 레벨이 높았지. 그렇지만 그게 불행과 비례하는 건 아니었어. 가난해도 그닥 불행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지금 너희들이 사는 거에 견주면 재밌는 사건도 많았고. 너희 엄마 어릴 때 길 잃어버렸던 얘기 아니?”
“예? 엄마가요?”
“그럼. 까딱했으면 너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걸?”
조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며 돌아오는 길은 혼자 돌아올 때보다 훨씬 마음이 따뜻했다. (본문 137쪽)
깡깡이 망치를 쥐던 꿋꿋한 손.
쇳가루로 범벅 된 시꺼먼 얼굴.
지금 잠들어 있는 엄마의 부드러운 손과 하얀 얼굴 어디에도 예전의 그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엄마는 아내라는 자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낳은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고등학교까지는 내가 공부시켜주지만 그 뒤에는 느그들 스스로 알아서 살아라. 엄마한테 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라.”
아버지의 죽음과 힘든 노동의 시간들이 엄마를 그리 만들었을 것이다.
딸들은 자유롭게 만들어준 엄마였지만 큰아들에 대한 집착만큼은 끝까지 내려놓지 못했다. 엄마한테도 동식이에게도 불행한 일이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맏딸이라는 책임감에서 벗어나자 엄마도 동생들도 비로소 한 사람의 인격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이니까 무조건 이해하고 사랑해야 된다는 생각은 사람의 운신 폭을 얼마나 좁게 만드는지. 내가 자유로우니 동생과 엄마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엄마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본문 166, 167쪽)
영도구 대평동 2가 143번지
문철이와 숙희
동식이
깡깡이
흰 젖가슴
엄마의 노래
그림으로 그린 집
오아시스
아시바
거짓말
숙희
태풍 불던 날
여름, 1974년
자갈치 도선
은실 언니
어린 마음
말하지 않아도
담임 선생님
깡깡이 소리
에필로그
작가의 말
본문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