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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의 분위기

박민정 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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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037554 / 260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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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그때 거기서 일어난 일이 지금 여기도 일어나고 있다 그 영상을 본 이후, 내 삶의 질은 다섯 단계쯤 낮아졌죠. 어린 시절 알 수 없는 공간에 감금되어 잠시 죽었다 살아 돌아왔는데도 괜찮았던 내가. 그런데 삶의 질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 삶의 다섯 단계쯤 위는 뭐고, 여기서부터 다섯 단계쯤 아래는 무얼까? 내가 다시는 영상을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모르그 디오라마」, p. 24) 구글 페이지에서 자료를 찾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지금 우리는 이미 종말 이후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불법 촬영 따위가 인간의 존엄을 영영 파괴할 수는 없으리라고 믿지만(그러려고 하지만) 간혹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 끝난 거 아닌가, 이만하면. (박민정, 현대문학상 수상 소감) 역사적 모티프와 현실의 문제를 병치하여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폭력이 오늘도 반복되고 있음’을 통렬하게 제시하는 박민정의 소설 작법은 이번 수록작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구경거리로 전락한 시체 공시소 모르그와 현재 온라인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비동의 불법 촬영물 유포 범죄를 연결하여 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피해자 다수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르그 디오라마」. 축제 기간에 여성이 추행되는 영상이 아카이빙되는 미국 뉴올리언즈의 ‘마르디 그라’와 예쁘다, 귀엽다는 식의 ‘얼평(얼굴 평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일상이 겹쳐져 여성의 몸과 시선의 폭력을 상기하는 「세실, 주희」. “혹시 생기는 게 딸이면 떼버리라는 말도 거침없이” 하던 여아 낙태의 유구한 역사와 딸이라는 이유로 해외에 입양 보내진 강장희 강장선 자매 이야기로 여성혐오 문제를 풀어내는 「신세이다이 가옥」. 이렇듯 박민정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억압의 통시-공시적 연속성을 발견해 세밀하게 엮어냄으로써 끝없이 되풀이되는 폭력의 면면을 보여준다. 판단 중지의 순간 확장되는 사유의 넓이 주희는 기분이 이상해져 세실을 돌아봤다. 세실은 멀리 있는 것을 보려는 듯 발돋움을 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주희는 세실을 속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실, 당신의 할머니와 여기서 말하는 피해자 할머니들은 조금 달라요…… 세실의 할머니는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면서요…… 그런 말을 세실에게는 결코 할 수 없었고 주희는 조금 참담해졌다. (「세실, 주희」, p. 73) 성별·민족적 혐오의 정동을 문제화하고, 더 나아가 그 속을 살아가는 세 여성 사이에 여성으로서의 동일성 못지않게 차이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는 난감한 문제까지를 사유하고 있는 이 소설의 깊이와 넓이는 놀랍다. (신형철, 젊은작가상 대상 심사평) 피해-가해, 선-악이 완벽하게 구분되지 않는 소설은 읽는 이에게 어려움과 난감함을 안기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민낯이기도 하다. 「세실, 주희」에서 미국 여행 중 몰카 피해를 당한 주희가 어렵게 영작해낸 ‘저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slut이 아닙니다’라는 호소와, 2차 대전 때 자결한 할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고 한국어로 작문하는 세실의 사이에 놓인 번역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차이. 「천국과 지옥은 사실이야」에서 필리핀 군사정권에 저항하다 한국으로 피신한 레니와 코피노 셔리스의 관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면 단위 출신’ 유진의 고통과 허탈함. 이렇게 복잡한 맥락들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독자는 끝내 해소되지 않는 질문들로 인해 판단 중지의 순간을 맞게 된다. 이러한 ‘막막함’ ‘단언할 수 없음’이 결국 우리의 삶과 적극적으로 맞닿는 사유의 지점을 열어주어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계기가 마련된다는 점이 박민정 소설의 큰 매력이다. 인간은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 오빠의 가장 큰 잘못을 유미는 기억했다. 그녀의 PC통신 아이디를 해킹해서 그녀의 사적 기록을 훔쳐보고, 졸업을 목전에 둔 그녀에 대한 악질적인 소문을 퍼뜨렸다는 것을. 온통 수재들이라는 그 학교 학생들은 왜 고작 그런 소문 때문에 그녀를 비웃었다는 걸까. 부모에게 사정을 전해 들은 유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믿기지 않지? 그런 걸로 사람을 매장할 수 없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바비의 분위기」, p. 114) 휴머니즘적 이해 가능성을 차단하는 사례들은 인간이야말로, 등 뒤가 없는 로봇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 박민정이 던지는 도발적인 물음은 그의 소설이 새로운 소설적 탐구 영역에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증명하고 있다. (강동호 문학평론가, 이 계절의 소설 심사평) 박민정이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을 놓고 골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은 현실과 비인간적인 인간사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자리를 묻는 박민정의 예리한 질문들이 그의 소설을 이끈다. 2018년 『빅이슈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반反지성을 경계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며, 정신을 똑바로 차린 ‘날카로운 작품’을 쓰고 싶다.” 그렇게 꾸준히 공부하고 용감한 목소리를 더해가는 박민정의 소설들은 여전히 혼란으로 가득한 2020년을 보내는 우리에게 경솔한 정답 대신 빛나는 고민들을 안겨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 소개

  • 저자 : 박민정
저자 : 박민정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 『서독 이모』가 있다.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모르그 디오라마
세실, 주희
바비의 분위기
신세이다이 가옥
숙모들
천사의 비밀
천국과 지옥은 사실이야

해설 괴물과 사실, 그리고 앎의 장치로서의 소설·송종원
작가의 말
추천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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