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은는이가 - 문학동네시인선 63

시리즈 : 문학동네 시인선 [149]

정끝별 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북트리

정가
$24.00
판매가
$13.2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26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54626248 / 124쪽 / 236g / 130 x 224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6,200
  • 17,820
  • 15,300
  • 10,8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 편집자의 책 소개

그러니까 이건 너무 새로운 사랑 이야기


시인을 업으로 삼은 지 26년. 그리고 다섯 권의 시집. 대략적인 계산으로 치자면 5년에 한 번 새 시집을 펴낸 셈이니 시를 두고 그리 서두르지도 그리 게으르지도 않았다는 증거. ‘그냥 그런’ 속도가 실은 ‘최상의 타이밍’이기도 하다는 알 듯 모를 듯한 삶의 이야기를 품고 여기 정끝별 시인이 다섯번째 시집을 내놓는다. 그리하여『은는이가』. 지금껏 시인이 펴낸 시집들을 열거해보자면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이거니와 뭐랄까, 어떤 규격이나 기본적인 틀은 있되 그 안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자유로움이라든가 일탈이라든가 묘한 천진이 꿈틀거리기도 하는 바, 우리 문장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조사들을 조합하여 내놓은 이번 시집 『은는이가』까지 합하고 보니 정말이지 정끝별 시인의 시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이 증폭됨을 느낀다. 시가 거기 있다면 그곳에서 절로 몸이 휘고 시가 저기 있다면 저리에서 절로 입이 트이는 시의 유연성, 그 타고남을 운명으로 살아온 시인 정끝별. 총 58편의 시가 담긴 새 시집 『은는이가』를 살짝 들여다보자면 이렇다.

총 4부로 구성을 한 이번 시집은 생과 사의 소란스러우면서도 쓸쓸한 낯빛을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통통 튀는 언어 감각으로 자칫 비루할 수 있는 삶에 반짝, 거울에 비친 볕의 쨍함을 희망으로 비추는 시인 특유의 재주가 탁월하게 발휘된 시편들로 가득하다. “일생을 건 일순의 급소”(「사랑의 병법」)를 순식간에 알아채는 육식의 눈이 있는가 하면, 기다리고 기다렸다 “주르륵 미끄러지는 것”(「꽃들의 만(灣)」)을 꽃이라 정의하고 기다리는 초식의 엉덩이도 있다. 그뿐인가. 너무나 당연해서, 너무나 마땅해서 자세히 들여다볼 여지조차 가지지 않았던 사람과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고 바라봐주고 웃어줄 수 있는, 그래서 귀하고 중하고 유일한 존재로 만들어줄 줄 아는 모성의 가슴도 팔 할이다. 사실 우리 모두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한다지만 사실 너나 나나 “그냥 그런 사람”(「그냥 그런 사람」)이지 않은가. 그냥 그런 보통 사람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괄호에 묶어둘 누군가가 있다는 건 든든한 일”(앞의 시)이기도 하며 “담담해서 한껏 삼삼한 일”(앞의 시)이기도 할 것이다. 혹여 세상에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을 이 시집의 제목처럼 문장을 받치는 조사 ‘은’과 ‘는’과 ‘이’와 ‘가’에 비유한다면 무리가 되려나.

당신은 사랑‘이’ 하면서 바람에 말을 걸고
나는 사랑‘은’ 하면서 바람을 가둔다

안 보면서 보는 당신은 ‘이(가)’로 세상과 놀고
보면서 안 보는 나는 ‘은(는)’으로 세상을 잰다

당신의 혀끝은 멀리 달아나려는 원심력이고
내 혀끝은 가까이 닿으려는 구심력이다

그러니 입술이여, 두 혀를 섞어다오
비문(非文)의 사랑을 완성해다오
-「은는이가」 부분

화려한 꽃술 같은 의성어나 의태어가 아닌, 화려한 꽃술의 꽃받침 같은 조사 하나가 문장의 고삐를 틀어쥐었다는 사실, 문장을 읽고 문장을 써본 자들은 무릎을 치고 알아먹을 것이다. 하이힐이 삐끗하듯 조사 하나의 잘못 디딤으로 사유까지 길을 틀기도 하는 경우 왕왕이기 때문이다. “한잠에서 떨어진 단추 하나가 한잠의 사랑을 고백하듯/ 한잠에서 떨어진 음모 한 가닥이 한잠의 배반을 부르듯”(「한밤이라는 배후」) 떨어진 단추 하나이며 떨어진 음모 한 가닥은 다름 아닌 우리…… 이 근원으로부터 우리가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누군들 모를까. 그러나 우리는 참 잘도 잊기에 평생을 크고 이름난 존재를 좇다가 “어둠을 가늠하는 흙의 말로/ 여든다섯에 아버지”(「묵묵부답」)가 흙에 묻히는 순간에야 비로소 눈을 깊이 내리깔고 이렇게 묻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산 거야, 당신은?”(「별책부록」)

언제 죽을지 몰라 셋방조차 구하기 어려운 독거노인들이 외로움에 지쳐 독방에서 이런저런 줄을 목에 걸고,
세상 끝 놀이를 하다 정말 목을 매기도 했어
-「목에 걸고」 부분

파도든 해일이든 벌건 눈으로 맞으며
핏줄의 피로랄까 연명의 연속이랄까
냉동과 해동을 거듭 오가다 병상에 누워
안 보여야, 셋째 아들한테만 귀띔한 채
그리 부릅뜨고 계셨던 아버지의 먼눈
끝내 입에 넣을 수 없는

젓가락이 들어올린
허공을 삼킨 동공
-「동태 눈알」부분

“모든 죽음은 자살 아니면 의문사라고/ 당신을 보내고 내가 삼킨 문장들”(「별책부록」)은 다시금 세상 곳곳으로 그 시선을 가닿게 한다. 의문을 부르는 죽음이 매 순간마다 벌어지고 그때마다 수거하지 못한 물음표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삶에서 호기심 많은 이 시인은 그때마다 구령도 없이 운명처럼 우뚝 선 꽃과 마주하고 애인과 마주하고 시와 마주한다. 돌고 돌아 마주한 그 지점에서 맞이한 그 이름, 사랑! “너도 쉰 소리를 내는구나”(「노을」) 할 만큼 연륜 깊어진 그 이름, 사랑! ‘그러니까 이건 너무 오래된 사랑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 시집과 함께한 시인 진은영의 발문 또한 새겨 읽어봄직하다.

네가 나를 베려는 순간 내가 너를 베는 궁극의 타이밍을 일격(一擊)이라 하고
뿌리가 같고 가지 잎새가 하나로 꿰는 이치를 일관(一貫)이라 한다

한 점 두려움 없이 열매처럼 나를 주고 너를 받는 기미가 일격이고
흙 없이 뿌리 없듯 뿌리 없이 가지 잎새 없고 너 없이 나 없는 그 수미가 일관이라면

너를 관(觀)하여 나를 통(通)하는 한가락이 일격이고
나를 관(觀)하여 너를 통(通)하는 한마음이 일관이다

일격이 일관을 꽃피울 때
단숨이 솟고 바람이 부푼다
무인이 그렇고 애인이 그렇다

일생을 건 일순의 급소
너를 통과하는 외마디를 들은 것도 같다

단숨에 내리친 단 한 번의 사랑
나를 읽어버린 첫 포옹이 지나간 것도 같다
바람을 베낀 긴 침묵을 읽은 것도 같다

굳이 시의 병법이라 말하지 않겠다

-「사랑의 병법」 전문

저자 소개

1988년 『문학사상』 신인발굴 시 부문 신인상에 「칼레의 바다」 외 6편의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삼천갑자 복사빛』『와락』, 시론․평론집으로는 『패러디 시학』『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오룩의 노래』『파이의 시학』, 시선평론 『시가 말을 걸어요』『밥』『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등이 있다. 유심작품상과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명지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머리말

● 시인의 말

다섯번째 패를 돌린다
이렇다 할 도박력도 없이
이렇다 할 판돈도 없이
발바닥에 젖꼭지가 돋거나
손바닥에 닭살이 돋거나

2014년 10월
정끝별

책 속에서

은는이가

당신은 당신 뒤에 ‘이(가)’를 붙이기 좋아하고
나는 내 뒤에 ‘은(는)’을 붙이기 좋아한다

당신은 내‘가’ 하며 힘을 빼 한 발 물러서고
나는 나‘는’ 하며 힘을 넣어 한 발 앞선다

강‘이’ 하면서 강을 따라 출렁출렁 달려가고
강‘은’ 하면서 달려가는 강을 불러세우듯
구름이나 바람에게도 그러하고
산‘이’ 하면서 산을 풀어놓고
산‘은’ 하면서 산을 주저앉히듯
꽃과 나무와 꿈과 마음에게도 그러하다

당신은 사랑‘이’ 하면서 바람에 말을 걸고
나는 사랑‘은’ 하면서 바람을 가둔다

안 보면서 보는 당신은 ‘이(가)’로 세상과 놀고
보면서 안 보는 나는 ‘은(는)’으로 세상을 잰다

당신의 혀끝은 멀리 달아나려는 원심력이고
내 혀끝은 가까이 닿으려는 구심력이다

그러니 입술이여, 두 혀를 섞어다오
비문(非文)의 사랑을 완성해다오


기나긴 그믐

소크라테스였던가 플라톤이었던가
비스듬히 머리 괴고 누워 포도알을 떼먹으며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몇 날 며칠 디스커션하는 거
내 꿈은 그런 향연이었어

누군가와는 짧게
누군가와는 오래

벌거벗고 누운 그랑 오달리스크처럼
공작새 깃털로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살짝 돌아서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는 팜므의 능선들
그 파탈의 능금을 깨물고 싶었어

누군가에게는 싸게
누군가에게는 비싸게

오 마리아의 팔에 안긴 지저스 크라이스트!
누군가의 품에 그렇게 길게 누워
나 다 탕진했노라 쭉 뻗은 채
이 기립된 생을 마감하고 싶었어

누군가는 하염없이 울고
누군가는 탄식조차 없고

검은 관 속에 누운 노스페라투 백작처럼
그날이 그날인 이따위 불멸을 저주하며
첫닭이 울 때까지 아침빛에 스러질 때까지
내 사랑의 이빨을 누군가의 목에 꽂고 싶었어

누군가처럼 목욕탕에서 침대에서
누군가처럼 길바닥에서 관 속에서

다시 차오를 때까지




목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