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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이 궁금하다

시리즈 : 청어 시인선 [180]

조미경 저 | 청어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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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8608453 / 104쪽 145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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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울산 북구 강동 출생 
2005년 『文學空間』 수필 부문 신인상 등단 
2019년 『계간문예』 시 부문 신인상 등단 
울산문인협회 회원 
갈꽃동인 
시집 『풀숲이 궁금하다』

머리말

□ 시인의 말

사방에 봄을 깨우는 소리
한 해 농사 준비를 합니다
아버지 떠나신 지 여섯 해 또 다른 시간이 왔습니다
풍경처럼 보아온 농사일도 조금씩 알아갑니다
농사일이나 시를 쓰는 일이나 내겐 서툰 일들입니다
시를 쓰면서 지금껏 살아온 시간을 돌아봅니다
내 시어에 새 기운을 불어넣고 싹을 틔워
봄처럼 피어나길 기원하며
뜨거움에 목이 멜 밥 한 술을 위해 고생하신
아버지 무릎 아래 못난 시집 한 권 바칩니다

2020년 봄
조미경

책 속에서

*볍씨를 담그며

곡우는 스무날이나 남았다
벚꽃 망울 터뜨리는 소리에
세상은 화사히 물이 오르고
연분홍으로 소독된 볍씨에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물을 붓는다
달빛과 햇살로 달궈진 무논에
조바심 가득 끓여 담는다
구멍 숭숭 난 모판에 바람 들지 못하도록
신문 깔고 고운 흙 채워 한 편에 두고
일곱 날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아, 드디어 찬바람 머금은 볍씨의 탄생
조곤히 소쿠리로 물을 빼고 모판 파종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무논은 다시 바빠질 것이다
백만대군의 출정을 기다리는 숨 막히는 시간
드센 비바람과 햇빛 맞을 준비가 되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아버지의 아버지 그 뒤를 이어
나는 오늘 볍씨를 담근다
뜨거움에 목이 멜 한 술의 밥을 위하여


*봄이 데워지는 동안

흙 속에서 혈관들이 꿈틀거립니다
나무뿌리마다 달아오른 몸
몸의 온도에 따라
저만의 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파르르 끓어오른 벚꽃은 금방 피었다 지고
은근히 데워진 나무들은 느긋이 푸른 잎으로 익어갑니다
색색으로 피어나는 봄은
향기도 색색입니다
내 안의 혈관은 아직껏 겨울인지
꽃 진 자리 차가움만 서럽습니다
아직 피어나지 못한 소망 하나
꽃잎에 날려 봅니다
제비가 물고 올 소식 한 잎 기다리며
토닥토닥 봄바람, 다독여 봅니다


*벽의 두께

집과 집 방과 방 사이
막아선 경계가 있다
오랜 시간 비와 바람을 견딘 나무로
모래와 물로 다진 벽돌로
단단히 쌓아올린 벽은
서로의 속내를 감춘다
벽 안쪽은 보이지 않아서
더 궁금하다
막힌 벽이 두꺼우면
밖이 더 두려워지고
치욕스런 비밀이 감춰지기도 한다
문을 열려고 두드리는
소리들이 울린다
왕래할 수도 없고
소통할 수도 없는 벽은
절망과 비애가
벽의 두께만큼 갇혀진다
새벽안개처럼
얇은 창호지처럼
뚫을 수 없는 철벽처럼
어둠의 장막을 치는 벽은
매일 아침 높아지다가
밤이면 허물어진다


*푸른 혓바닥

해가 길어지면
칡은 혓바닥이 길어진다
푸른 혀 가득 힘을 무장하고 있다
마름모 손바닥은 뜨거운 햇살도 휘어 놓으며
당당하게 주위를 덮어간다
푸르고 긴 혀를 납작하게 엎드려
야금야금 타고 들어가는 것이다
결코 뱀의 혓바닥으로 날름거리진 않는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나무도 뒤덮고 세상도 뒤덮을 듯
뱀이 먹이를 삼키듯
단번에 주변을 휘감는다

우리들의 뿌리는 지금 무엇을 키우는가
세상은 여전히 얽히고설키고
분열과 부패는 칡덩굴처럼 자리를 넓히는데
저 푸른 혓바닥
언제쯤 뜨거운 햇살 피해 그늘을 찾을는지


*달빛 아버지

달빛, 잔잔히 산허리를 두릅니다
초저녁 한잠 주무시고 일어난 아버지
논두렁에 삽자루 세워 달빛을 걸어둡니다
개구리도 달빛을 쬐는지 이따금씩 노래를 멈춥니다
봄바람에도 달빛이 젖어듭니다
뜨거운 태양이 푸른 논을 데우면
논두렁 풀들의 함성은 높이 올라갑니다
어느새 아버지의 달빛은 꺼져버렸습니다
동생의 머리엔 달 대신
헤드랜턴이 밝게 떴습니다
그날 밤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는 잠들지 않습니다


한 시인에 있어 첫 번째 시집이 점하는 위치와 의미는 자못 각별하다. 오랜 여정을 한몸 삼아 살아가야 할 고독한 시의 길, 그 길에 대한 뚜렷한 이정표와 자신의 존재론적 좌표 설정을 어느
정도 제시해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풀숲이 궁금하다』는 총 70편의 시 작품을 1부 풀숲이 궁금하다, 2부 봄이 데워지는 동안, 3부 벽의 두께, 4부 푸른 혓바닥, 5부 달빛 아버지 등에 나누어 담고 있는데, 삶의 체험에서 비롯되는 깊고 넓은 내면적 성찰과 보편적 일상을 특별한 체험의 정서와 철학으로 이끌어 내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이제 식물들의 숨소리와 스멀거리는 땅의 촉각에 귀 기울이며 조미경이 일구어 놓은 시의 채마밭으로 들어가 보자.

 

 

목차

시인의 말

1부 풀숲이 궁금하다

볍씨를 담그며
봄까치꽃
풀숲이 궁금하다
마지막 단맛
복사꽃 지는 날
탁
조련사
일벌 소리
여기저기 가을 밥상
수국을 사이에 두고
바다 교실
단맛 감별사
물을 지키다
겨울 농막

2부 봄이 데워지는 동안

봄이 데워지는 동안
바람 한 잔
수세미와 그녀
앓다, 증명사진
여름을 듣다
담벼락 너머
그녀는 악마였을까
개의 이웃들
백두의 정기로
물, 바람, 모래와 함께 살다가
그곳에 가다
낯선 곳에서 소망하다
붉었던 그날처럼
뿌리의 발끝

3부 벽의 두께

틈
크라커족처럼
벽의 두께
선옹초 사랑
묵은 말을 비비다
모란이 왔다
매미를 듣다
두레밥상에 마음을 차려
나팔꽃 일념
김장놀이 사는놀이
바람 분다, 지금
가득한 빈 터
가을 통증
축이 무너지다

4부 푸른 혓바닥

밀잠자리처럼
뒤늦은 입학식
그녀의 비빔밥
뒤늦은 날개를 저어
봉숭아 꽃물 들 즈음
소주 속 이야기
어울렁더울렁
푸른 혓바닥
풍덩
홍역의 시간
한여름 속으로
소리가 잠들 무렵
양말의 온도
토담식당 이야기

5부 달빛 아버지

맏이
달빛 아버지
사랑이 박제되어
인진쑥, 그 쓴맛 돌던 날
논두렁을 깁고 세워
아버지와 봄
그 환한 길
마지막 증명사진
엄마와의 목욕
떡갈나무 품처럼
칠월이 오면
딸아이와 ‘양반이’
부석사 탑돌이
딸아이와 ‘양반이’·2

해설
식물 근성이 키우는 청량한 시_이자영(시인·대학 외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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