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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8607180 / 280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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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 작가의 말
나이를 먹었다는 건 돌이켜 볼 일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겠다. 예순 나이를 넘기고 보니 다가올 시간보다 지나온 날들이 더 많아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씁쓸하다. 사실 바쁜 일상에 쫓겨 어제를 곱씹거나 내일을 운운하고 할 시간이 있는 건 아니다. 동서남북을 두루 둘러보며 살지는 못하더라도 좌우로는 목을 좀 돌려보곤 해야 했다. 나름대로 목표지점을 세워놓고 참 열심히도 달렸다. 돌이켜보면 어느 한 순간도 나태한 적은 없었다. 다만 목표점이 앞에만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이 어리석은 후회로 다가오는 것이다.
오래 전에 글쟁이로 등단했다. 글을 쓴다는 건 나름대로 보람된 일이었다. 아픔을 글로 한풀이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남의 아픔을 내 것인 양 착각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이곳 진주로 이사 온 지 15년이 되어가고 있다.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글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다. 스스로 어린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르다고 여기고 있던 터여서 그 마음을 기반으로 민간 어린이집을 시작했는데 만만찮은 일이었다. 한마디로 온갖 일을 다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시간들의 누적이 가슴의 응어리로 굳어져 글로 신들리기에 이르렀다.
이윽고 장편 『오늘의 저편』을 경남일보에 연재하면서 글쓰기를 재개했다. 이어 민간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일들을 담은 소설집 『남녀칠세부동석』과 수필집 『바다 해海 신선 선仙』을 출간했다.
이번에 10번째의 소설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표제작인 「하얀 무덤」은 20대 초반에 발표한 처녀작으로, 「하품」,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내 나이 풋풋하던 시절에 쓴 단편들이다. 「공범」, 「가벼운 일탈」, 「가출」, 「어떤 도피」, 「갈 데가 없어」 등의 단편은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아프게 부딪쳤던 일들을 재구성하여 글로 한풀이를 한 것이다. 중편인 「오늘의 야곱」에는 생명 의식을 담고자 했다. 반목과 대립으로 불신과 이기심이 팽배해지고 있는 현실에 즈음하여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청년들에게 따뜻함을 선사하고 싶기도 했다.
고달프지 않으면 삶이 아닐까. 글쟁이인 이상 고단한 우리들의 인생사에 신들리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소설로 한풀이를 하며 언제까지나 동행할 것이다. 그리하여 내 곁에는 늘 소설이 있을 것이다.
2020년 겨울에
이해선
하얀 무덤
새하얀 눈이 탐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까운 쌀가루 같은 것이 바람에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다. 철없는 아이들은 하늘에서 흰 것만 내려오면 뭐가 그리 좋은지 뭉치로 만들어 던지고 이리저리 뛰고 하면서 난리들을 해댔다.
‘공치게 생겼네. 오늘은.’
소리 없는 한숨과 함께 내 입에서 튀어나와 버린 말이었다. 방문을 열고 선 채 물끄러미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간 재빨리 몸을 굽혀 신발을 집어 들었다. 하마터면 눈에 완전히 파묻힐 뻔했던 그것을 방 안에 들여놓으며 문을 닫았다.
부엌으로 나가는 샛문을 열었다. 비어 있는 물동이를 채워놓아야 했다. 높은 지대 탓인지 가는 물줄기로 치사하게 찔끔거리던 우리 집 수도는 일찌감치 물을 닫아버렸다. 발 내릴 곳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개의 물동이를 양손으로 집어 들며 손바닥보다 비좁은 부엌으로 나갔다.
‘뭐야 또 눈이야?’
심선이의 얼굴이 눈앞에서 크게 돋아났다. 일주일째 집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 그녀는 번번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을 잘도 집어먹곤 했다. 이전에는 하루걸러 집에 들어오지 않고는 했다.
이곳 B동 산동네는 먹고 살기에만 급급한 우리들의 보금자리였다. 밝히지 않아도 S시의 대표 빈촌으로 이미 소문이 날대로 나버린 곳이었다. 무허가로 시작된 동네였는지는 모르지만 집들을 점고해보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눈비를 피할 수 있거니와 시멘트 벽돌로 벽체를 쌓고는 해서 바람이 어지간히 지랄을 해대도 쓰러질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이토록 튼튼한 집들은 리어카 한 대 너비로 내리뻗은 언덕길의 양 옆으로 미로처럼 구불거리는 골목길을 끼고는 옹기종기 잘도 얽혀 있었다.
행정구역으로 표시되는 주소는 엄연히 있었다. 발음하기에 정겨운 달동네로 잘 통하는 건 아무래도 좀 높은 곳에 있어서일 터였다. 덕택이라고 표현하면 콧방귀 세례를 받게 되겠지만 목만 들면 하늘이 바로 눈에 들어오곤 했다. 정작 우리들은 눈길을 위쪽으로 긋고는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우리 집은 맨 위 꼭대기에 떨어져 있었다. 윗집과 옆집이 없어서 외톨이인 셈이었다. 아래로 이어지는 비탈길 첫발에 면하여 있어서 구석진 느낌은 들지 않았다. 방문만 열면 좀 사는 찻길 맞은편의 아랫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이제 곧 발아래의 그쪽이나 이쪽이나 하얀색에 파묻히고 말 것이었다.
작가의 말
하얀 무덤
하품
어머니의 죽음
공범
가벼운 일탈
가출
어떤 도피
갈 데가 없어
오늘의 야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