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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명에서 백신애 중단편선

시리즈 :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0]

백신애 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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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035994 / 416쪽 134 x 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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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본문에서 “꺼래이, 꺼래이……” 하는 가장 귀 익은 단어가 화살같이 두 귀에 꽂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꺼래이’라는 것은 고려라는 말이니 즉 조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꺼래이’라는 그 귀 익고 그리운 소리가 그때의 순이들에게는 끝없는 분노를 자아내는 말 같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웃음거리가 되어 있는 것이로구나. 치움에 못 이겨, 또 아무 죄도 없이 죽음의 길인지 삶의 길인지도 모르고 무슨 까닭에 꾸벅꾸벅 그들의 명령대로만 따르겠느냐.” 라고 순이는 부르짖었습니다. _「꺼래이」 부분 기운이 진하여 간심을 주지 못하는 벙어리를 앞에 놓고 늙은이 가슴은 어리둥절하였다. 그는 생각다 못하여 얼른 밖으로 나와 물 한 바가지를 솥에 붓고 장 찌꺼기를 조금 부어 김이 나게 끓여서 한 그릇 들고 들어왔다. 벙어리는 팔을 휘저으며 두 눈이 발칵 뒤집혀져서 그 물을 벌떡벌떡 마시고 난 후 “아버바…… 어버버……” 하고 곤두박질을 쳤다. 늙은이는 재치 있게 벙어리 배를 누르며 연방 들여다보며 하는 사이에 철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으아.” 하며 새빨간 고깃덩어리가 방바닥에 내뿌리듯 떨어졌다. _「적빈」 부분 그는 정환이가 가르쳐주던 계교가 다시금 생각났다. “될 수 있는 대로 며느리를 귀히 여기는 척하여 그동안 상했던 사이를 회복시킨 후 이혼만 하면 아들이 돌아온다고 하니, 이혼장에 도장만 찍어 동경으로 보내면 아들이 돌아올 테니 돌아오면 시부모가 잘 회유하여 서로 의가 상합하도록 할 테니 염려 말고 도장만 찍어라. 그리고 너의 친정 부모도 알면 재미없으니 네가 가만히 도장을 찍어가지고 오너라.” 고만 자꾸 꾀던 정환의 얼굴이 떠오르며 몸에 소름이 끼쳤다. _「어느 전원의 풍경」 부분 그때의 나의 괴로움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나의 이혼이었습니다. 이혼! 이것은 과연 중대한 문제이지요. 그러나 나는 이혼이란 그것이 중대한 문제인 까닭에 괴로워한 것은 아니랍니다. 이것은 제삼자의 눈에는 중대한 문제로 보였을지 모르나 나로서는 급작스런, 무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가장 자연스런 해결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던진 돌멩이는 반드시 그 높이에서 떨어져 땅에 닿을 때까지의 얼마간의 시각만이 문제이지 반드시 도로 땅 위에 떨어짐에는 틀림없는 자연법칙입니다. 나의 결혼은 하늘을 향하여 돌멩이를 던진 것과 같은 결혼이었어요. _「혼명에서」 부분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요사이 며칠간 나의 모든 정열을 뒤끓게 한 그 원인이 되는 소년에 대한 생각을 무시하려고 시집이요 나의 아들이 있는 집을 향해 갔습니다. 그 집 대문 앞에 이르자 집 안에서 내 아들 석주가 무엇이라 크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또다시 두 발이 땅에 딱 들어붙는 듯하며 ‘네가 어미냐! 네 아들이 지금 열여섯 살이나 되었다.’ 라고 외치는 듯하여 나는 깜짝 놀란 듯 휙 돌아서서 달아나듯 골목쟁이를 뛰어나오고 말았어요. _「아름다운 노을」 부분

저자 소개

190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집과 향교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영천공립보통학교 4년 과정을 졸업하고, 경북사범학교 강습과를 나와 2년 동안 교사로 지냈다. 1926년 교사 시절, 북풍파인 ‘경성여자청년동맹’ ‘조선여성동우회’에 가입하여 비밀리에 여성운동을 한 것이 탄로 나 권고사직을 당하고 서울로 올라가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필명 박계화(朴啓華)로 「나의 어머니」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신춘문예 첫 여성 작가라는 기록을 세웠다. 결혼 후 경산군 반야월의 과수원에 기거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이때 체험한 가난한 농민들의 생활이 「복선이」(1934), 「채색교(彩色橋)」(1934), 「악부자(顎富者)」(1935), 「식인(食因)」(1936) 등의 바탕이 되었다. 식민지 조국을 떠나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방황하는 실향민들을 그린 「꺼래이」(1934)와 현모양처의 삶을 살았음에도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인의 심정을 담아낸 「광인수기」(1938)를 포함해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소설 20여 편과 수필 및 기행문 등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1939년 6월 23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책 속에서

“꺼래이, 꺼래이……”
하는 가장 귀 익은 단어가 화살같이 두 귀에 꽂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꺼래이’라는 것은 고려라는 말이니 즉 조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꺼래이’라는 그 귀 익고 그리운 소리가 그때의 순이들에게는 끝없는 분노를 자아내는 말 같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웃음거리가 되어 있는 것이로구나. 치움에 못 이겨, 또 아무 죄도 없이 죽음의 길인지 삶의 길인지도 모르고 무슨 까닭에 꾸벅꾸벅 그들의 명령대로만 따르겠느냐.”
라고 순이는 부르짖었습니다.
_「꺼래이」 부분 


기운이 진하여 간심을 주지 못하는 벙어리를 앞에 놓고 늙은이 가슴은 어리둥절하였다. 그는 생각다 못하여 얼른 밖으로 나와 물 한 바가지를 솥에 붓고 장 찌꺼기를 조금 부어 김이 나게 끓여서 한 그릇 들고 들어왔다.
벙어리는 팔을 휘저으며 두 눈이 발칵 뒤집혀져서 그 물을 벌떡벌떡 마시고 난 후
“아버바…… 어버버……”
하고 곤두박질을 쳤다. 늙은이는 재치 있게 벙어리 배를 누르며 연방 들여다보며 하는 사이에 철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으아.”
하며 새빨간 고깃덩어리가 방바닥에 내뿌리듯 떨어졌다.
_「적빈」 부분 


그는 정환이가 가르쳐주던 계교가 다시금 생각났다.
“될 수 있는 대로 며느리를 귀히 여기는 척하여 그동안 상했던 사이를 회복시킨 후 이혼만 하면 아들이 돌아온다고 하니, 이혼장에 도장만 찍어 동경으로 보내면 아들이 돌아올 테니 돌아오면 시부모가 잘 회유하여 서로 의가 상합하도록 할 테니 염려 말고 도장만 찍어라. 그리고 너의 친정 부모도 알면 재미없으니 네가 가만히 도장을 찍어가지고 오너라.”
고만 자꾸 꾀던 정환의 얼굴이 떠오르며 몸에 소름이 끼쳤다.
_「어느 전원의 풍경」 부분 


그때의 나의 괴로움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나의 이혼이었습니다.
이혼! 이것은 과연 중대한 문제이지요. 그러나 나는 이혼이란 그것이 중대한 문제인 까닭에 괴로워한 것은 아니랍니다. 이것은 제삼자의 눈에는 중대한 문제로 보였을지 모르나 나로서는 급작스런, 무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가장 자연스런 해결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던진 돌멩이는 반드시 그 높이에서 떨어져 땅에 닿을 때까지의 얼마간의 시각만이 문제이지 반드시 도로 땅 위에 떨어짐에는 틀림없는 자연법칙입니다.
나의 결혼은 하늘을 향하여 돌멩이를 던진 것과 같은 결혼이었어요.
_「혼명에서」 부분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요사이 며칠간 나의 모든 정열을 뒤끓게 한 그 원인이 되는 소년에 대한 생각을 무시하려고 시집이요 나의 아들이 있는 집을 향해 갔습니다. 그 집 대문 앞에 이르자 집 안에서 내 아들 석주가 무엇이라 크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또다시 두 발이 땅에 딱 들어붙는 듯하며
‘네가 어미냐! 네 아들이 지금 열여섯 살이나 되었다.’
라고 외치는 듯하여 나는 깜짝 놀란 듯 휙 돌아서서 달아나듯 골목쟁이를 뛰어나오고 말았어요.
_「아름다운 노을」 부분 

목차

일러두기

나의 어머니
꺼래이
복선이
채색교
적빈
낙오
악부자
정현수
학사
호도
어느 전원의 풍경
광인수기
소독부
일여인
혼명에서
아름다운 노을

주

작품 해설―제도의 구속 안에 머물며 다른 세상을 꿈꾸다 / 서영인
작가 연보
작품 목록
참고 문헌
기획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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