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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수많은 시간을 관통하여 다양한 의미에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 그리고 어른으로서 저자가 전하는 다양한 끝맺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MD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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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550141 / 248쪽 140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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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끝맺음을 전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누구나 자연스레 어른이 된다. 아니다. 그저 어른으로 불릴 뿐이다.
우리는 과연 ‘괜찮은 어른’으로 살고 있는가?
수많은 시간을 관통하여 다양한 의미에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 그리고 어른으로서 저자가 전하는 다양한 끝맺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는 죽음에서부터, 누군가에게는 그저 삶의 수단이자, 누군가에게는 삶의 의미가 되는 일의 끝맺음, 그물처럼 얽혀 있는 인간관계의 끝맺음,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사회운동가로 또 어른으로서 맺어야 할 사회적 끝맺음, 손에 쥐는 즐거움에서 이제는 하나씩 내려놓아야 할 생활 속의 끝맺음까지…. 어떤 의미에서 이 모든 끝맺음은 마무리를,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 남겨진 날들을 더 멋지게, 더 홀가분하고 편안하게 살아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래서 『어른의 끝맺음』은 끝이 아닌, 다시 인생이 시작되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내가 괜찮은 어른인가?’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사람.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괜찮은 어른이다. 나이가 들면 모든 사람은 어른이 된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불리는 모든 사람이 어른다운가?’ 이 질문에 우리는 분명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과연 ‘괜찮은 어른’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사람,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괜찮은 어른인지 모른다. 일본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오치아이 게이코는 그래서 괜찮은 어른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여성들을 위해서, 환경을 위해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녀는 분노한다. 그 분노는 그녀를 행동하게 한다. 그래서 그녀는 어른답다. 그러나 그녀를 더욱 어른답게 느끼게 하는 건 자신의 삶을 대하는 자세다. 죽음은 선착순이 아닌 선발순임을, 그래서 그녀는 차근차근 여러 의미의 끝맺음을 준비한다. 일에서의 끝맺음, 인간관계에서의 끝맺음, 사회에서의 끝맺음, 생활에서의 끝맺음, 그리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나의 끝맺음. 하지만 그녀의 끝맺음은 종착역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더 멋진 나로 살아가겠다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준비이다. 그래서 이 책은 비단 저자와 비슷한 관록, 연류의 사람들에게만 읽히지 않는다.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을,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다. 계절의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는 행복, 나이가 들어서야 아는 행복이 있다. 오치아이 게이코의 글이 좋은 것은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기대를 가져보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삶의 끝을 향한 그 걸음이 마냥 좋을 사람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녀의 글을 피할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시기가 마냥 두렵거나 밀어내고 싶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즈음에만 가질 수 있는 여유, 그즈음에만 가질 수 있는 지혜, 그즈음에만 할 수 있는 내려놓음. 고즈넉한 계절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고즈넉한 공간에서 고즈넉한 마음으로 마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하게 한다. 책 속에서 소녀였던 아침과 훌쩍 늙어 노파가 된 저녁 사이에는 다양한 나이의 ‘내’가 존재한다. 같은 하루에 소녀인 ‘나’도, 젊은 아가씨인 ‘나’도, 40대와 50대인 ‘나’도, 여든 살 먹은 호호할머니인 ‘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도대체 ‘어른’이란 무엇이며, 어른의 조건은 무엇일까. 도통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저절로 ‘어른’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또 수없이 많은 경험을 해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하지 못하면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의 끝맺음’이라는 제목을 앞에 두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마치 숙제를 내팽개쳐두고 여름방학 내내 신나게 놀다 개학이 코앞에 닥친 저 먼 옛날의 어린아이처럼. 어른은 ‘끌어들이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닐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숙제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내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 <‘어른’의 조건> 중에서 (16p.) 한 번 손에 넣은 것을 내어놓는 것은, 무언가를 손에 넣기보다 더 어렵다. 많이 가질수록 손에 쥔 것을 놓아버리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지킬 게 많아질수록 정신적으로 보수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더 많이’를 바라야 직성이 풀릴까. 일정한 연령대에 들어서면 ‘더 많이 갖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삶이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실제로 나이를 먹으면 기억력, 체력, 집중력이 부쩍 떨어지며 예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무언가를 얻으면 예전에 얻은 다른 무언가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신의 손바닥에 쥘 수 있는, 정말로 소중한 무언가는 꼭 부여잡고, 나머지는 그만 놓아주는 ‘끝맺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의 짐’은 ‘여행의 짐’과 매한가지다.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홀가분해진다. 이기지도 못할 짐을 무리하게 이고 지고 산다면 말 그대로 ‘짐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악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짐’을 선별해 불필요한 짐을 덜어내야 한다. ― <‘여행의 짐’과‘인생의 짐’은 가벼울수록 좋다> 중에서 (30~31p.) 일은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는 정체성, 그 자체에 가깝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일이 점점 줄어들고 어느덧 사라져 간다. 급여생활자는 내가 회사에서 필요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서운해진다. 또 청춘을 바쳐 열심히 일한 대가가 고작 이거냐며 후회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갑작스럽게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심경이 아닐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정년퇴직 후에는 기존의 직함이나 직위가 확실히 사라진다. 그럴 때는 내가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전임자가 그 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기업이 존재하는 한 되풀이되는 일이다.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나면 본격적으로 중요한 과제를 생각할 시간이 온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전념하고 열정을 바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면 충분할까? 우리가 ‘일’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자신이 열정을 바치며 보람을 느끼고 만족할 수 있으며, 그 일을 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통틀어 일컫는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해본다. 많은 사람이 평생 현역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역일 때 느낀 고양된 감정을 오로지 ‘일’에서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일에 쏟은 열정과 의욕, 능력을 그간 발휘해왔던 장소, 지금까지 사용한 명함에 적힌 회사와 다른, 또 다른 활동 중에서 찾아낼 수도 있다. 의외로 이런저런 곳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많은 퇴직자가 시민단체 모임에 의욕적으로 덤벼드는 이유에서도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일터’이외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중에서 (54~55p.) 인간관계를 정리하면 상대방은 물론 주위 사람이 ‘차가운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꼬리표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참고 사는 자신’을 평생 바꿀 수 없거니와, 상대방이 앞으로 달라질 가능성마저 박탈하게 된다. 그래도 괜찮다면 상관없겠지만, 아무래도 찜찜하다면 내가 바뀌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상대방 쪽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내 쪽에 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를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 싫다’는 감정이 아마 있을 터이다. 그러다 가까스로 깨달았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내가 ‘좋은 사람’이고 싶은 관계는 내가 존경하고 공감하는 사람과의 관계다. 존경이 사라지고 공감이 멀어지며 표면상의 친밀함만을 유지하게 된 건 내 책임이다. 모든 방향, 모든 날씨에 적응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언제나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적어도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사람의 마음만은 저버리고 싶지 않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마음은 오히려 나이와 더불어 강해져 간다고 생각한다. ―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중에서 (101~102p.) 원래 물건이 없는 단순한 공간을 좋아하는데 슬금슬금 물건이 늘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맙소사, 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또 하나 깨달았다. 무언가를 ‘내 것’으로 삼으려고 할 때는 자각하지 못해도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다. 정신적으로 충만한 때는 ‘갖고 싶다’는 욕망도 그다지 생기지 않고 물건도 늘어나지 않는다. 모든 욕망에서 해방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으나, 해가 갈수록 ‘갖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며 원래 내가 좋아하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다. 그림과 장식이 서서히 사라져도, 채반 위에 잘생긴 가지와 오이가 각각 가지색과 오이색으로 빛나고, 토마토는 토마토색으로 빛나는 모습만 보아도 멋진 그림이고 장식이다. 실제로 채소는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답다. 줄곧 곁에 두고 싶을 정도다. 오이는 쌀겨에 소금을 넣고 발효시켜 장아찌를 담그거나, 식초에 간장과 맛술을 넣어 만든 양념에 미역과 함께 넣고 조물조물 버무린다. 가지는 된장 양념으로 맛깔스럽게 볶아내고, 토마토는 샐러드로 만들어서 내 뱃속에 넣어둔다. 가까이에 제철 채소만 있어도 소박한 방에 계절의 바람이 지나간다. ― <공간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중에서 (192~193p.) 귀가가 늦어지는 날에는 남는 에너지가 있으면 외출하기 전에 저녁식사를 준비해 둔다. 간단히 미리 손질해 두기만 할 때도 있고, 가끔 스튜나 카레, 어묵탕처럼 뭉근하게 끓여야 맛이 나는 요리는 외출 준비를 하면서 얼추 완성해 둔다. 제철 채소가 한창 맛있는 시기에 손이 큰 나는 무심코 많은 양을 사버린다. 버려지지 않도록, 예를 들어 토마토라면 미트소스와 토마토소스 등의 보존식품을 넉넉하게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 둔다. 이 작업이 밤까지 걸릴 때도 있지만, 원고를 쓰다 지쳤을 때 요리는 좋은 기분전환이 되어 준다. 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왁자지껄하게 한 집에 모여 살았던 적도 있고 혼자 산 경험도 있다. 혼자 살다 보면 대파 한 단, 양배추 한 덩어리가 시들기 전에 다 먹어 치우는 것이 아무래도 버겁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주신 생산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다 먹지 못하고 썩혀서 버릴 때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생각할 수 있는 대로 모조리 요리로 만들어 어떻게든 소비하려 애쓴다. 한 상 가득 요리를 담은 접시가 올라와 있는 풍성한 식탁을 좋아해 많이 만들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올래?”라고 초대한다. 여럿이 떠들썩하게 식사하는 날이 이어지면 이번에는 ‘녹찻물에 간단한 고명만 얹어서 밥만 말아 먹어도 좋으니 혼자 조용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두레 밥상과 혼자 밥상. 모두 풍요롭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 <혼자 먹는 행복> 중에서 (230~231p.)
소녀였던 아침과 훌쩍 늙어 노파가 된 저녁 사이에는 다양한 나이의 ‘내’가 존재한다. 같은 하루에 소녀인 ‘나’도, 젊은 아가씨인 ‘나’도, 40대와 50대인 ‘나’도, 여든 살 먹은 호호할머니인 ‘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도대체 ‘어른’이란 무엇이며, 어른의 조건은 무엇일까. 도통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저절로 ‘어른’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또 수없이 많은 경험을 해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하지 못하면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의 끝맺음’이라는 제목을 앞에 두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마치 숙제를 내팽개쳐두고 여름방학 내내 신나게 놀다 개학이 코앞에 닥친 저 먼 옛날의 어린아이처럼.
어른은 ‘끌어들이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닐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숙제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내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 <‘어른’의 조건> 중에서 (16p.)
한 번 손에 넣은 것을 내어놓는 것은, 무언가를 손에 넣기보다 더 어렵다. 많이 가질수록 손에 쥔 것을 놓아버리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지킬 게 많아질수록 정신적으로 보수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더 많이’를 바라야 직성이 풀릴까. 일정한 연령대에 들어서면 ‘더 많이 갖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삶이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실제로 나이를 먹으면 기억력, 체력, 집중력이 부쩍 떨어지며 예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무언가를 얻으면 예전에 얻은 다른 무언가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신의 손바닥에 쥘 수 있는, 정말로 소중한 무언가는 꼭 부여잡고, 나머지는 그만 놓아주는 ‘끝맺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의 짐’은 ‘여행의 짐’과 매한가지다.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홀가분해진다.
이기지도 못할 짐을 무리하게 이고 지고 산다면 말 그대로 ‘짐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악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짐’을 선별해 불필요한 짐을 덜어내야 한다.
― <‘여행의 짐’과‘인생의 짐’은 가벼울수록 좋다> 중에서 (30~31p.)
일은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는 정체성, 그 자체에 가깝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일이 점점 줄어들고 어느덧 사라져 간다.
급여생활자는 내가 회사에서 필요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서운해진다. 또 청춘을 바쳐 열심히 일한 대가가 고작 이거냐며 후회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갑작스럽게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심경이 아닐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정년퇴직 후에는 기존의 직함이나 직위가 확실히 사라진다. 그럴 때는 내가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전임자가 그 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기업이 존재하는 한 되풀이되는 일이다.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나면 본격적으로 중요한 과제를 생각할 시간이 온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전념하고 열정을 바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면 충분할까?
우리가 ‘일’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자신이 열정을 바치며 보람을 느끼고 만족할 수 있으며, 그 일을 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통틀어 일컫는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해본다.
많은 사람이 평생 현역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역일 때 느낀 고양된 감정을 오로지 ‘일’에서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일에 쏟은 열정과 의욕, 능력을 그간 발휘해왔던 장소, 지금까지 사용한 명함에 적힌 회사와 다른, 또 다른 활동 중에서 찾아낼 수도 있다. 의외로 이런저런 곳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많은 퇴직자가 시민단체 모임에 의욕적으로 덤벼드는 이유에서도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일터’이외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중에서 (54~55p.)
인간관계를 정리하면 상대방은 물론 주위 사람이 ‘차가운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꼬리표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참고 사는 자신’을 평생 바꿀 수 없거니와, 상대방이 앞으로 달라질 가능성마저 박탈하게 된다. 그래도 괜찮다면 상관없겠지만, 아무래도 찜찜하다면 내가 바뀌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상대방 쪽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내 쪽에 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를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 싫다’는 감정이 아마 있을 터이다. 그러다 가까스로 깨달았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내가 ‘좋은 사람’이고 싶은 관계는 내가 존경하고 공감하는 사람과의 관계다.
존경이 사라지고 공감이 멀어지며 표면상의 친밀함만을 유지하게 된 건 내 책임이다. 모든 방향, 모든 날씨에 적응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언제나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적어도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사람의 마음만은 저버리고 싶지 않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마음은 오히려 나이와 더불어 강해져 간다고 생각한다.
―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중에서 (101~102p.)
원래 물건이 없는 단순한 공간을 좋아하는데 슬금슬금 물건이 늘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맙소사, 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또 하나 깨달았다. 무언가를 ‘내 것’으로 삼으려고 할 때는 자각하지 못해도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다. 정신적으로 충만한 때는 ‘갖고 싶다’는 욕망도 그다지 생기지 않고 물건도 늘어나지 않는다.
모든 욕망에서 해방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으나, 해가 갈수록 ‘갖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며 원래 내가 좋아하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다.
그림과 장식이 서서히 사라져도, 채반 위에 잘생긴 가지와 오이가 각각 가지색과 오이색으로 빛나고, 토마토는 토마토색으로 빛나는 모습만 보아도 멋진 그림이고 장식이다. 실제로 채소는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답다. 줄곧 곁에 두고 싶을 정도다. 오이는 쌀겨에 소금을 넣고 발효시켜 장아찌를 담그거나, 식초에 간장과 맛술을 넣어 만든 양념에 미역과 함께 넣고 조물조물 버무린다. 가지는 된장 양념으로 맛깔스럽게 볶아내고, 토마토는 샐러드로 만들어서 내 뱃속에 넣어둔다. 가까이에 제철 채소만 있어도 소박한 방에 계절의 바람이 지나간다.
― <공간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중에서 (192~193p.)
귀가가 늦어지는 날에는 남는 에너지가 있으면 외출하기 전에 저녁식사를 준비해 둔다. 간단히 미리 손질해 두기만 할 때도 있고, 가끔 스튜나 카레, 어묵탕처럼 뭉근하게 끓여야 맛이 나는 요리는 외출 준비를 하면서 얼추 완성해 둔다.
제철 채소가 한창 맛있는 시기에 손이 큰 나는 무심코 많은 양을 사버린다. 버려지지 않도록, 예를 들어 토마토라면 미트소스와 토마토소스 등의 보존식품을 넉넉하게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 둔다. 이 작업이 밤까지 걸릴 때도 있지만, 원고를 쓰다 지쳤을 때 요리는 좋은 기분전환이 되어 준다.
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왁자지껄하게 한 집에 모여 살았던 적도 있고 혼자 산 경험도 있다. 혼자 살다 보면 대파 한 단, 양배추 한 덩어리가 시들기 전에 다 먹어 치우는 것이 아무래도 버겁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주신 생산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다 먹지 못하고 썩혀서 버릴 때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생각할 수 있는 대로 모조리 요리로 만들어 어떻게든 소비하려 애쓴다.
한 상 가득 요리를 담은 접시가 올라와 있는 풍성한 식탁을 좋아해 많이 만들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올래?”라고 초대한다.
여럿이 떠들썩하게 식사하는 날이 이어지면 이번에는 ‘녹찻물에 간단한 고명만 얹어서 밥만 말아 먹어도 좋으니 혼자 조용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두레 밥상과 혼자 밥상. 모두 풍요롭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 <혼자 먹는 행복> 중에서 (230~231p.)

1장 어른의 끝맺음이란 무엇인가?
_언젠가 꼭, 이라는 생각만으로는 ‘언젠가’는 절대 오지 않는다.
‘어른’의 조건 ∥ ‘끝맺음’이 서툴다 ∥ ‘끝맺음’의 의미 ∥ 삶의 방식 되돌아보기 ∥ 인생의 풍경 바꾸기 ∥ ‘더 적게, 더 천천히, 더 작게’ ∥ ‘여행의 짐’과 ‘인생의 짐’은 가벼울수록 좋다 ∥ ‘유언장’을 쓴다 ∥ 인생 마지막 장의 ‘나’를 축으로 삼는다 ∥ ‘나다움’에 얽매이지 않는다 ∥ STAND ALONE ∥ ‘멋있는 나’란? ∥ 포기도 때로 중요 ∥ ‘어른의 끝맺음’은 내 숙제
2장 일의 끝맺음
_일은 즐거운가. 아니면 그저 고통스러울 따름인가.
즐거움과 고통을 알록달록 덧칠한 그러데이션 그림이 대개 현실이라 부르는 모습이다.
‘일터’ 이외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 정년퇴직 후의 깊이 ∥ 명함의 직함을 삭제한다 ∥ 과거가 아닌, 현재 ∥가망 없는 일은 깨끗이 손을 뗀다 ∥ 내가 번 돈으로 산다 ∥ 두 번째 생일 ∥ 피라미드형에서 평지형으로 ∥ 책임질 수 있는 일만 한다 ∥ 이제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까? ∥ 남은 욕망 ∥ 다음 세대에 넘겨준다 ∥ 혼자가 되면 하고 싶은 일 ∥ 무엇을 하면 즐거운가 ∥ 새로운 도전 ∥ ‘어른’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 ∥ 모든 것은 이어진다
3장 인간관계의 끝맺음
_혈연이 전부인가? ‘가족’이라 부르는 인간관계에서, ‘가정’이라 부르는 공간에서
상처받고 있는 사람은 없는가?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친구 관계·디톡스 ∥ ‘내가 좀 참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해방 ∥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 관계에 숨 막히는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을 때 ∥ 이상적인 가족 따윈 없다 ∥ ‘결연한 가족’이라는 형태 ∥ 자식이 없더라도 ∥ 왜 나는 어머니를 간병했나 ∥ 같이 쓰러지지 않으려고 ∥ 부부의 형태에 ‘정답’은 없다 ∥ ‘대화가 없어?’ ∥ 식사 준비는 누가 해? ∥ 부부란 뭘까? ∥ 우정, 이 달콤쌉싸래한 감정 ∥ 이렇게나 증후군 ∥ 선을 긋다 ∥ ‘차경(借景)’으로 사랑한다 ∥ 배턴을 넘겨준다 ∥ 변화하는 나와 어떻게 마주할까
4장 사회의 끝맺음
_자유롭게 살고 싶다. 평화롭게 살고 싶다. 차별은 하고 싶지도 않고, 당하고 싶지도 않다.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법률 따위 이제 그만. 그래서 나는 목소리를 높인다.
간과할 수 없는 문제 ∥ 분노의 에너지 ∥ 약속을 지킨다 ∥ 뒷수습하기 ∥ 그 나이가 되어서야 다시 만난 사람 ∥ 어른의 책임 ∥ 젊은이는 어른을 보고 있다 ∥ 말의 힘 ∥ 이노우에 히사시의 ‘어려운 것은 쉽게’ ∥ 전해지는 말을 찾는다 ∥ 자신에게 다가간다 ∥ 자기규제는 하지 않는다 ∥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행복 ∥ 불평불만은 배제한다 ∥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홀가분함 ∥ 표현은 ‘강자’도 될 수 있다 ∥ 미디어의 부자유 ∥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 ‘올바름’이라는 좁은 틀 ∥ 존경하는 ‘멋진 어른들’ ∥ 물려받아 전해지는 것
5장 생활의 끝맺음
_생활, 이 사랑스럽고 그립고 그러나 때로 지긋지긋한 말.
공간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 정리 책을 읽어도 정리할 수 없다 ∥ 정리정돈은 스위치가 켜졌을 때! ∥ 단순하게 꾸민다 ∥ 일 년에 한두 번은 옷장 속의 옷가지를 모두 꺼낸다 ∥ 사이즈다운 ∥ ‘건강의 근원’은 줄이지 않는다 ∥ 마음이 복잡해지는 ‘책’과 ‘편지’ ∥ 선택을 위한 ‘체’· ∥ 마음속은 단순해질 수 없다
6장 ‘나’의 끝맺음
_제1장부터 제5장까지, 어떻게든 넘어왔지만……
가장 높은 장벽이 아직 남아 있다.
노화는 꺼림칙한 대상일까? ∥ 안티, 안티 에이징 ∥ 흰 머리 그대로 ∥ 홀가분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자유·217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 깊이 마주한다 ∥ 기쁨을 나눈다 ∥ 한 그루 나무를 알면 인생이 달라진다 ∥ 바쁠수록 손수 요리한다 ∥ 마음먹고 날을 잡아 요리한다 ∥ 혼자 먹는 행복 ∥ 고독이라는 열매 ∥ 마지막에 고독해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찾아 ∥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
맺음말을 대신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