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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4995388 / 152쪽 120 x 186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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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6 오늘의 책
반디앤루니스 리뷰
자전적 글쓰기’라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
아니 에르노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작품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첫 문장만으로 전 세계 독자에게 충격을 선사한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아니 에르노의 여덟 번째 소설로, 열두 살 때 노동계층 부모와 기독교 사립학교 사이의 간극을 체험하고 존재의 불편함을 느꼈던 원체험(기억에 각인되어 영향을 받게 되는 어린 시절의 체험)에 대한 회고이다. 《단순한 열정》을 발표하고 한동안 윤리적 논란에 휩싸였을 때 자전적 서사 그 이상을 제시함으로써 모든 논란을 잠재우고 작가로서 일대 전환을 이루어낸 작품이다.
비채는 모던&클래식 시리즈를 통해 《부끄러움》을 내며, 이 작품이 작가 아니 에르노에게 갖는 의의를 소개한 신수정 문학평론가의 해제와 이재룡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의 작품해설을 실어 이해를 도왔다. 또한 작가연보를 통해 데뷔 사십오 년에 이른 아니 에르노의 문학적 궤적을 정리했다. 오늘의 어법에 맞게 번역문을 세심히 다듬었으며 주석을 보강하고 표지 이미지를 통해 ‘원체험의 응시’라는 주제를 담담하고도 강렬하게 표현했다.
출판사 리뷰
나의 삶을 지배한 원체험에 대한 고요한 응시
“그날 이후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1952년 6월 15일, 아버지는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이다 홧김에 낫을 든다. 이어지는 어머니의 비명소리.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부모님은 식탁에 앉는다. 흔한 부부싸움은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열두 살의 아니 에르노에게 ‘그날의 사건’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난한 노동계층의 외동딸로서 중산층 이상이 다니는 기독교 사립학교에 입학한 에르노에게 부모의 세계와 사립학교의 세계 사이에 놓인 간극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각인시켰다. 가난하고 천박한 부모가 부끄럽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기 존재의 뿌리라는 것.
1996년, 어느덧 중년이 된 에르노는 사십여 년 전의 기억을 다시 꺼냈다. 열두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만, 그날의 사건만큼은 결코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는 에르노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하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사로잡은 그 원체험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1952년으로 돌아간다.
존재의 불편함을 마주하겠다는 칼 같은 각오
“나는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되겠다.”
에르노의 회상은 철저하게 객관적이다. 그날의 사건 전후에 찍힌 자기 사진들, 1952년의 신문 기사들, 전후 재개발이 한창인 작은 도시 이브토, 부모님이 운영했던 식당 겸 식품점을 세세히 묘사한다. 하지만 여기에 감상을 덧칠하거나 추억에 빠지지 않는다. 대신 에르노는 ‘우리’라고 인식되어온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말투, 행동, 관습을 마치 사회과학 서적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세계, 또 다른 ‘우리’인 기독교 사립학교의 엄격한 규율, 예절, 분위기 또한 같은 방식으로 서술한다. 동일한 형식에 상충되는 내용은 두 세계의 대비를 극적으로 드러내며 개인의 이야기를 계급의식의 문제로 확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 방식으로 존재의 불편함을 변호하거나 순화하지 않는다. 에르노는 노래를 흥얼거리다 자신이 천박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 갑자기 노래를 멈춘 것을, 친구들 앞에서 더러운 속옷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낸 어머니의 존재가 우스꽝스럽다고 느낀 것을 가차 없이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되어야 한다며 자신의 존재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인 에르노의 글쓰기에 대해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어떤 ‘부끄러움’은 어떤 식으로도 발화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글쓰기야말로 “부끄러움의 최선의 발화”라고 말한다. 그래서 『부끄러움』은 슬프면서도 강하다.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되겠다는 것”은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존재의 불편함을 정면으로 응시하겠다는 “칼 같은 각오”이기 때문이다.
가장 ‘아니 에르노’다운 글쓰기
“타인의 시선을 견딜 수 없는 책. 나는 그런 책을 쓰고 싶었다.”
현대문학에서 에르노의 글쓰기가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주체의 죽음이라는 거대 담론에 맞서 일인칭 글쓰기를 통해 주체의 귀환을 외친 당시 프랑스 문단에서, 일인칭을 넘어 어떤 과거 윤색이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에르노의 ‘자전적 글쓰기’는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전적’이라는 특성은 양날의 검이 되기도 했다.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담은 『남자의 자리』로 1984년 르노도상을 수상한 에르노는 이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인 『한 여자』와 자신의 절절한 사랑 체험을 다룬 『단순한 열정』을 발표했다. 특히 『단순한 열정』은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유부남과의 연애라는 경험담에 쏟아지는 윤리적 비난 또한 피하기 어려웠다. 이와 함께 이전 작품들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지나치게 솔직한 관점이 재평가되면서 문단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에르노는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자전적 글쓰기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부끄러움』을 발표했다. “나는 항상 타인의 시선을 견딜 수 없는 책을 쓰고 싶었다”는 에르노는 “칼 같은 각오”로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이후 낙태, 실연, 질투 등 경험담의 단순 서술을 넘어 내면 깊숙이 자리한 감정을 담아낸 책을 연달아 발표했다.
『부끄러움』은 단순히 사십여 년간 발표된 에르노의 작품 20편 중 하나가 아니다. 자전적 글쓰기의 한계를 단칼에 거부한 전환점이자 작품세계의 근간으로서 각인된 기억, 그 원체험에 담긴 존재의 불편함을 정면으로 응시한, 에르노의 모든 것이 담긴, 가장 ‘아니 에르노’다운 자전적 글쓰기이다.
작가의 한마디
내게 글쓰기는 헌신이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없다면, 실존은 공허하다. 만일 책을 쓰지 않았다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_23쪽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 이런 일들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자주 다른 가정에서도 벌어지는 평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글, 모든 글은 가장 극적인 것을 포함한 어떤 행위도 정상적인 것처럼 만들어버리나 보다. _26쪽
당연히 현실을 추적하는 대신 현실을 생산하고자 하는 옛날이야기는 꾸며내지 말 것. 추억 속의 이미지를 거론하여 번역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 이미지를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는 자료로 취급할 것.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될 것. _47쪽
그녀는 “청년 축제에 갔었니?”라고 물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응”이라고 말하고 둘 사이에 형성된 공감대의 표시로 큰 미소를 곁들였다. 그런데 곧바로 나는 그녀의 묘한 어투 때문에 그것이 “너는 체육복밖에는 입을 게 없니?”라는 뜻임을 알아챘다. _126쪽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_137쪽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_137쪽
책이 나온 뒤에는 다시는 책에 대해 말도 꺼낼 수 없고 타인의 시선이 견딜 수 없게 되는 그런 책, 나는 항상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열두 살에 느꼈던 부끄러움의 발치에라도 따라가려면 어떤 책을 써야 할까? _138쪽
사진 속 여자아이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이제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내게 이 책을 쓰게 만든 6월 일요일의 그 장면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_13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