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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30036489 / 616쪽 14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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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친구로는 지내기로 했잖아.”
두 달 전 우연히 마주쳐 재회를 기뻐하는 그를 거절하지 못하고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세상에 이런 불편한 친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이없는 짓이었다.
“그래, 딱 거기까지만…….”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 보고 섹스까지 하는 친구.”
하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꼭 놀란 토끼 같아 정헌은 낮게 웃었다. 저 잿빛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들면 기다란 귀가 쫑긋 튀어나올 것 같다.
“너…….”
“나는 그런 친구 말한 건데.”
눈만 붉은 줄 알았더니 서서히 붉어지는 얼굴이 보는 재미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하민은 그의 몇 마디에 얼굴을 붉히곤 했다.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할지 몰라도 너와 난 안 돼.”
정헌이 짧게 말했다. 애초에 친구는 불가능했다. 자신의 곁에 두어야 하는 것, 우정헌에게 정하민은 그런 존재다. 열린 가게 문틈으로 온갖 향기가 흘러나와 코를 찔렀다. 독할 법도 한데 향기 하나하나가 살아 있어 오히려 조화롭다. 마치 정하민의 냄새 같다.
“우정헌.”
“응.”
“정헌아.”
“설레게 왜 자꾸 불러?”
설렌다는 말과 달리 가라앉은 그 눈을 하민이 응시했다.
“못 들은 걸로 할게.”
“너도 나도 결혼할 사람 찾고 있는 건 마찬가지잖아.”
하민은 시선을 떨궈 정헌의 손에 있는 자신의 열쇠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하려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려는 것처럼 애써 주의를 돌렸다.
“나는 왜 안 돼?”
그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여 기어이 하민과 눈을 맞췄다.
“왜 안 되는 걸까.”
그 이유는 네가 잘 알지 않느냐 묻고 싶다. 최대한 그와의 접점이 없게끔 살아왔다. 이제 와서 우정헌과 엮일 순 없다.
“결혼이 안 된다면 잠깐 곁에 두기라도 해.”
정헌이 다정하게 덧붙였다.
“곁에 잠시 두면?”
“너 잘하잖아, 곁에 두고서 사람 피 말리면서 손끝 하나로 부리는 거.”
그가 한 손으로 문을 열고 하민이 들어가길 기다리며 부드럽게 속삭인다.
하민은 구역질이 치솟아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이럴 줄 알았다. 그가 잊었을 리 없다. 그때의 이기적이었던 자신을.
“하민아, 가장 잘하는 걸 해.”
그 목소리는 귀가 녹아버릴 만큼 소름 끼치게 달콤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만히 정면만 쳐다보며 얼어 있는 그녀의 턱 끝에 정헌의 손가락이 스쳤다. 미처 온기를 느끼기도 전에 그가 잡고 있었던 문이 천천히 닫혔다.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 같다.
자신을 선택하라고 속삭이면서 사라지는 우정헌을 하민은 차마 돌아볼 수 없었다.
저자 : 춈춈
촘촘 아닙니다. 춈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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