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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존 스튜어트 밀 저 | 박홍규 역 | 문예 | 201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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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1011395 / 392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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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19세기 영국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르네상스적 지성인이 쓴 성찰적 자서전!
―시대를 빛낸 지성 밀을 만든 고전 독서와 토론, 영재 교육을 만나다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사회과학자라고 소개되고 있지만, 더 나아가 앞의 셋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에서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경제학이나 철학만이 아니라 정치학, 종교학, 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또한 밀이 어릴 때 아버지인 제임스 밀(1773~1836)로부터 받은 교육은 영재 교육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문예출판사에서 박홍규 교수의 번역으로 출판한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은 이처럼 위대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이기도 했던 존 스튜어트 밀이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영재 교육부터, 다른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어가는 과정, 인생의 동반자이자 여성 해방에 대한 시각을 일깨워준 해리엇 테일러와의 만남, 점진적 사회주의자로서의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의 독서 교육과 토론, 밀이 받은 영재 교육
밀의 아버지인 제임스 밀은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서, 벤담의 ‘백지설(theory of the tabula rasa)’의 영향을 받아 아들인 밀의 교육을 이끌었다. 제임스 밀은 자연과학과 고전 중심으로 교육했고, 밀은 논리학과 경제학, 역사학, 철학, 자연과학을 읽음으로써 사물과 인생의 목표에 대한 통일된 관념을 형성할 수 있었다.

보통 천재 교육이 사회교육이나 실천교육을 결여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데, 제임스 밀은 주입식 암기가 아닌 밀이 스스로 독서하며 요약과 비판을 하게 했고, 아버지인 자신과 질의응답을 통해 이해력을 더욱 깊이 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이끌었다. 이러한 교육은 개성교육이라는 점에서 진취적이었다.

공리주의와 밀, 신문 투고와 동인도회사에서의 일
영국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벤담은 밀의 아버지 제임스와도 친해서 밀이 자연스럽게 공리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밀은 1821년 프랑스에 돌아온 직후, 본격적으로 공리주의자와 토론을 거쳐 자신만의 ‘공리주의’에 대한 사상을 확립한다. 밀은 유용성이 최대 행복이라고 보았다. 즉 인간의 행동은 행복을 증진시키는 유용성 정도에 따라서 옳다는 것이다. 가령 사형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유용한가, 참된 억제력이 있는가에 따라 판단되어야지 그 자체를 두고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자연권에 대한 신념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좋은 국가를 갖게 하는 유일하게 확실한 방법이라는 이유에서 옹호했다.

밀은 열여섯 살이던 1822년부터 신문과 잡지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열일곱 살에 쓴 글에서 표현의 자유를 논한 데서 36년 뒤인 쉰세 살에 쓰는 《자유론》의 씨앗을 볼 수 있다. 밀은 열일곱 살에 동인도회사에 취직해 동인도회사가 폐지된 1858년까지 평생 근무한다. 밀은 자신이 평생 근무한 동인도회사의 인도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을 뿐 아니라 영국의 제국주의 지배도 정당화한다. 그는 유럽을 진보적 세계, 비유럽을 정체된 세계로 보고, 유럽-영국인을 인류 전체 진보의 선구자로 본 당시 대영제국의 역사관을 공유했다. 이러한 점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이자 사상가였던 밀도, 당대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을 보여준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지적 동반자인 해리엣 테일러와의 만남
1830년 밀은 해리엣 테일러(1807~1858)을 만난다. 밀의 친구였던 존 테일러와 결혼한 사이였던 해리엣은 정치에 대해 급진적 관점을 가지고 일찍이 여성의 권리를 지지한 유리테리언의 성직자 윌리엄 폭스의 영향을 받아 여성 문제와 철학 등에 관심이 많았고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남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꾸려나가던 중, 자신을 한 사람의 동료로 대우해준 밀과의 만남은 인생의 새로운 전환을 가져왔다. 두 사람은 결혼과 여성의 권리라는 주제들로 쓴 에세이를 교환하며 서로에 대한 우정과 사랑을 키워갔다. 해리엣은 여성 인권 문제에 있어 밀보다 급진적인 관점을 지지했고, 로버트 오언의 사상에 의해 촉진된 사회주의 철학에도 영향을 받았다. 밀과 해리엣의 교제는 밀의 사상에도 영향을 미쳐 이후 《자유론》, 《여성의 예속》, 《경제학 원리》 등의 책에 그 영향이 나타난다. 1849년 해리엣의 남편인 존 테일러가 사망하자, 밀과 해리엣은 결혼한다.

민주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밀
밀은 1843년 《논리학체계》와 1848년 《경제학 원리》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밀의 대표작인 《자유론》(1859), 《대의정치론》(1861), 《공리주의》(1863), 《여성의 예속》(1869) 그리고 사후에 발표된 《자서전》(1873), 《사회주의》(1891) 등이 바로 이 시기에 쓰였다. 그러나 1854년부터 결핵을 앓게 되면서 힘든 투병생활도 함께 이어갔다. 1865년 밀은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여성참정권, 비례대표제, 노동자계급의 선거권 등을 주장했으나 실현하지는 못했고, 1868년 선거에서 낙선한 뒤 1873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죽었다.

밀은 민주주의가 유일하게 옳은 정치 형태라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잠재적으로 가장 억압적 정치 형태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밀은 권력의 집중, 사회의 획일화, 감시 사회화 속에서 인간이 자동인형으로 변해 자유의 살해자로 등장하는 것을 우려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밀은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고, 저항하는 독립된 개인을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밀의 주장에 대해 한계나 인간을 과도하게 합리적으로 보았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도리어 편견, 열등, 집단적 하향화에 억눌려 차별받은 사람들에 주목하고, 그들이 가져야 할 가장 본질적 권리가 박탈되었다고 항의한 《자유론》의 주장에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한다.

저자 소개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밀은 정규학교에서가 아니라 경제학자인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에게 세 살 때부터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해, 열네 살까지 그리스어, 문학, 논리학, 역사, 수학, 경제학의 중요한 고전들을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독특한 천재 교육을 받았다. 이 교육 방식은 아침 식사 전에 항상 함께 산책을 하면서 밀이 전날 읽은 책의 내용을 암기하도록 하고, 그 주제의 핵심을 주입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밀이 스스로 생각해 어느 정도 이해한 다음에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 후 1년간 프랑스에서 생시몽의 사회주의와 콩트의 실증주의를 접하는 등 견문을 쌓았다. 17세에 아버지의 조수로 동인도회사에서 근무했고, 20세 무렵 인간이 행복하려면 엄격한 이성주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히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섬세한 감성이 필요하다고 느껴 음악, 시, 미술 등에 깊은 관심을 쏟았다. 또한 아버지의 친구인 벤담의 공리주의(功利主義)에 공감해 ≪판례의 합리적 근거≫의 저술에 참여하고 토론회를 결성해 왕성하게 보급했으며, 동인도회사가 해산될 때까지 30여 년간 근무하면서 틈틈이 저술들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자연과학의 방법을 사회과학에 적용하고 경험적 사례들에서 일반적 법칙을 발견해 내는 귀납논리를 정립한 ≪논리학 체계≫(1843), 생산법칙과 분배법칙을 분리해 경제학을 사회과학으로 체계화하고 개인의 욕구와 다수의 행복을 대화와 타협으로 조정해 노동계급의 지위와 복리를 향상시킨 ≪정치경제학 원리≫(1848), 개인의 자유와 사회 권력의 올바른 관계 속에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통해 민주사회의 기본 원리를 확립한 ≪자유론≫(1859), 공리주의에 질적 요소를 보완해 원숙한 윤리학으로 제시한 ≪공리주의≫(1863), 민주정부의 이상을 밝히고 대중정치의 문제점을 분석한 ≪대의제정부 고찰≫(1863), 남녀평등 보통선거와 비례대표제 등을 실시할 것을 주장한 ≪여성의 종속≫(1869)이 있다. ≪자서전≫(1873), ≪종교에 관한 에세이≫(1874), ≪사회주의론≫(1879)은 사후에 출간되었다. 

역자 소개

법학자이자 인문과 예술의 부활을 꿈꾸며 철학·정치·문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씀으로써, ‘르네상스맨’이라 불린다. 1952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영남대 법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사카 시립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법대와 영국 노팅엄대 법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했으며, 일본 오사카대와 고베대, 리츠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자유인 루쉰』,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마키아벨리, 시민정치의 오래된 미래』, 『독서독인(讀書讀人): 독서는 인간을 어떻게 단련시키는가』, 『아나키즘 이야기』, 『플라톤 다시 보기』,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 『세상을 바꾼 자본』, 『리더의 철학』, 『내 친구 빈센트』, 『오노레 도미에: 만화의 아버지가 그린 근대의 풍경』, 『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 등이 있고,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역서로는 『자유론』, 『오리엔탈리즘』, 『간디 자서전』, 『상식, 인권』 등이 있다.

책 속에서


■ 지금부터 자서전적 스케치를 하기 전에 나의 평범한 삶에 대한 기억을 남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이유를 설명하면 적절할 듯하다. 나는 내가 서술해야 할 어떤 부분이든, 하나의 이야기로서나 나 자신과 관련된 것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흥미로울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교육과 그 개선이, 과거 영국 역사의 어느 시대보다 결코 심각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활발하게 연구되는 이 시대에, 나의 경우처럼 여러 가지 점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차치하더라도, 교육이라는 보통의 방법으로는 거의 낭비되는 유년기에, 일반적으로 상상하기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로 주목할 만한 교육의 기록을 남기는 것은 유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15쪽)

■ 어린 시절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오락 중 하나는 실험과학이었지만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말 그대로 실제 실험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실험을 시도하지 못한 것을 나는 종종 후회했다. 심지어 실험을 보지도 못하고 단지 그것에 대해 읽었을 뿐이다. 조이스99의 《과학적 대화》 만큼 열중해서 읽은 책이 없는데 이 책 첫 부분에 풍부하게 서술된 물리학의 중요한 원리에 대해 틀린 추론이 있다고 한 아버지의 비판에 반발할 정도였다. (35쪽)

■ 모든 것을 스스로 찾도록 하기 위해 내 능력을 지나칠 정도로 활동시키는 일을 환기하려 애썼던 그는 내가 갖가지 어려움을 충분히 깨달은 뒤에야(그전이 아니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 두 가지 큰 주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당시 이해되던 한도까지 주었을 뿐 아니라, 나를 그 두 가지 분야의 사상가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거의 처음부터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생각이 다를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몇 가지 사소한 것에만 그랬고, 아버지의 의견을 궁극적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훗날 내가 아버지를 설득해서 몇 가지 사소한 점에서 의견을 바꾸게 한 적도 가끔 있다. 이는 내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하는 말이다. 이는 아버지의 완전한 용기와 아버지의 교육법이 지닌 참된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45쪽)

■ 내가 받은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내가 배운 어떤 것도 단순한 기억의 연습으로 타락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해력을 교육의 모든 단계와 함께 가게 했을 뿐 아니라, 가능하면 이해력을 선행시키려고 노력했다. (46쪽)

■ 백과사전에 밀(이하 밀이라 함은 존 스튜어트 밀을 말한다. 따라서 다른 밀을 말하는 경우에만 이름까지 밝힌다)은 영국의 ‘경제학자, 철학자, 사회과학자, 사상가’로 소개되어 있으나, 한마디로 말하면 앞의 셋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경제학이나 철학만이 아니라 정치학, 종교학, 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밀은 그와 비슷한 시대에 오랫동안 런던에서 함께 살았던(그러나 만난 적은 없었던) 독일 출신 마르크스처럼 체계적 거대 이론을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19세기 영국에서는 마르크스보다 중요한 사상가로서 당대의 아리스토텔레스로 불릴 정도였다. (‘옮긴이 해설’, 322쪽)

목차

옮긴이 머리말

1. 소년기와 조기교육
2. 소년기에 받은 도덕적 영향, 아버지의 성격과 사상
3. 교육의 마지막 단계와 독학의 첫 단계
4. 젊은 날의 홍보 활동, 《웨스트민스터 리뷰》
5. 내 정신사의 위기, 일보 전진
6. 내 생애 가장 귀중한 교제의 시작, 아버지의 죽음, 1840년까지의 저술과 여타 일들
7. 내 마지막 생애의 개관

옮긴이 해설
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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