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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편지

원제 : Lettres philosophiques

볼테르 저 | 이봉지 역 | 문학동네 | 201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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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655095 / 228쪽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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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부조리한 권력과 광신에 펜으로 맞선 시대의 정신
추방당한 철학자 볼테르의 기지와 사상의 보고寶庫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재치와 기지, 사상이 한데 결합된 걸작 『철학편지』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5번으로 출간되었다. 귀족과의 다툼으로 망명생활을 하게 된 볼테르가 3년간 영국에서 지내며 써내려간 글들의 묶음으로, 당시 프랑스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였던 영국의 면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조국인 프랑스에 유머러스한 독설을 던진 작품이다. “구체제에 던져진 최초의 폭탄”이라고 평가받는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금서조치를 당했고, 볼테르에게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또다시 파리를 떠나 피신해야 했다. 추방의 산물인 동시에 새로운 추방을 초래한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평생 부조리한 권력과 광신에 펜으로 맞서 투쟁한 볼테르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그의 전 생애의 요약판과도 같은 작품이다.

18세기 프랑스를 지배한 비판적 정신
이성·관용·정의의 수호자 볼테르


빛의 세기를 밝힌 위대한 사상가,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본명은 프랑수아마리 아루에로, 1694년 파리에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수학하며 라틴어와 수사학 등을 배웠고, 고전문학과 연극에 특히 관심을 가졌으며 언어와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다. 1717년 루이 14세 사후 섭정 오를레앙 공을 비방하는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고, 수감생활 동안 첫 희곡작품 「오이디푸스」를 집필했다. 출옥 후 이 작품의 초연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라신의 후계자”로 평가받았고, 이때부터 ‘볼테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문학적으로 인정받고 명성을 얻으나 1726년 한 귀족과의 말다툼으로 또다시 바스티유에 수감되며, 영국으로 망명을 가는 조건으로 곧 풀려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강한 환멸을 느끼게 된다.
볼테르는 당시 프랑스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였던 영국에서 3년간 생활하며 사회적·사상적 자유를 만끽했다. 그곳에서 관찰한 바를 토대로 『철학편지』를 집필했으며, 프랑스에서는 1734년 출간했다. 1745년 왕실 사료편찬관이 되었고, 1750년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으로 베를린에 체류하게 되지만 베를린 아카데미 원장인 모페르튀이와의 논전으로 그곳 역시 떠나게 된다. 1758년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역 페르네에 정착해 대표작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출간했다. 이후 『백과전서』 편찬에 관여해 여러 항목을 집필했으며, 반봉건·반교회 운동의 지도자로서 인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불의에 관용으로, 광신에 이성으로 맞서 끊임없이 투쟁한 볼테르는 시, 희곡, 역사서 등 많은 작품을 집필했으나 그중 대다수가 금서조치를 당했다. 1778년 「이렌」의 상연을 위해 파리로 돌아왔다가 8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으며, 프랑스혁명 시기에 유해가 판테온으로 이전되었다.

추방당한 철학자 볼테르의 사상과 재기가 한데 결합된
『철학편지』 혹은 『영국에 관한 편지』


18세기 초, 볼테르는 귀족의 멸시를 받는 평민의 신분이었다. 1726년 1월 어느 날 밤,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대귀족 가문의 자제인 슈발리에 드 로앙 샤보가 “볼테르 씨, 아니 아루에 씬가, 당신 이름이 뭐요?” 하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볼테르요. 내 이름은 나로부터 시작되지만 당신 이름은 당신으로 끝날 거요.” 모욕을 당한 로앙 샤보는 며칠 후 하인들을 시켜 그를 급습했고, 루이 15세를 움직여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시키기에 이른다. 볼테르는 곧 영국 망명을 조건으로 석방되었고, 그해 5월 영국으로 떠난다.
영국에서 머무는 동안 그는 부지런히 영어를 익혀 영어로 일기나 논문을 썼고 그곳 사람들과 유창하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당대 작가인 알렉산더 포프, 조너선 스위프트, 윌리엄 콩그리브, 철학자 조지 버클리와 신학자 새뮤얼 클라크 등과 교유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관람했으며, 뉴턴의 연구와 로크의
철학에 관심을 가졌다. 18세기는 영국이 봉건귀족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가는 전환기였고, 볼테르는 영국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특히 감명을 받았다. ‘자유의 나라’ 영국에서 방대한 독서와 자료수집에 몰두했고, 이 망명생활은 곧 볼테르의 인생과 사상적 경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그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고 의회정치가 실현된 영국의 모습을 톺아보며 한 편씩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탄생한 『철학편지』는 영국의 정치·종교·사상·예술·과학 등 볼테르가 그곳에서 보고 느낀 모든 것을 망라한 책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면면을 관찰하고 프랑스와 비교하며 조국에 대해 유머러스한 독설을 날리는 이 작품은 ‘편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나 사적인 편지, 수신인이 정해진 편지가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는 편지, 열린 편지의 형태를 띤다. 대부분 영어로 직접 집필했고 1733년 8월, 런던에서 『영국에 관한 편지』라는 제목으로 먼저 출간했다. 당시 판본에는 『팡세』에 대한 볼테르의 비판인 「편지25 파스칼 씨의 『팡세』에 관하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이후 런던에서 출간된 최초의 프랑스어판 『영국에 관한 편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음해인 1734년, 현재 대표적인 원전으로 간주되는, 「편지25」를 포함한 『철학편지』가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영국의 자유와 관용에 관한 볼테르의 감탄이 녹아든 이 책은 프랑스의 정부와 종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져 출간하자마자 금서조치가 내려졌다. 더불어 체포영장까지 발부되어 볼테르는 또다시 파리를 떠나 연인 샤틀레 부인의 집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결국, 이 작품은 추방의 산물인 동시에 새로운 추방을 초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곳곳에서 특유의 신랄한 재치가 빛을 발하는 『철학편지』는 볼테르의 근대적 사고와 비판적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시대의 지성으로, 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평생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권력을 비웃으며 관념을 풍자하고 조롱한 볼테르의 정신은 2백 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우리가 진정으로 존경해야 할 사람은 무력을 사용하여 타인을 노예로 만든 사람이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정신을 지배한 인물이며, 세계를 파괴한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제대로 알게 만든 사람이다.”

저자 소개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 사상가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기도 하다. 1694년, 파리에서 출생하여 1778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이지만, 정부와 교회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저술 활동을 계속했다.
루이 14세 사후,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한 필립 오를레앙의 섭정(1715년~1723년) 시기에는 오를레앙 공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이 모이는 문학 살롱에 참여했다. 그러던 1716년, 오를레앙 공을 비방하는 시 〈나는 보았네〉를 썼다는 죄목으로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비극이나 서사시와 같이 당대에 인정받고 있던 장르에 도전했는데, 이름을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바꾼 것도 이때이다. 그리고는 1718년 11월(24세), 옥중에서 집필한 비극 『오이디푸스』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어느 귀족과의 싸움으로 다시 부당하게 투옥되었다가 국외 망명을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볼테르는 구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1726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영국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타고난 비판 정신을 더욱 키워 나갔다. 그 결과, 16세기 내내 프랑스를 분열시켰던 신교와 구교 간의 종교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앙리 4세를 찬양하는 서사시 『앙리아드』(1728년)를 펴낸다. 
1729년, 프랑스로 돌아온 후에는 비극 『자이르』 (1732년)를 발표하기도 했다. 1733년에는 수학과 물리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샤틀레 후작부인(에밀리 뒤 샤틀레)의 애인이 되어 그녀의 영향으로 문학가에서 철학자로 변신한다. 볼테르는 『철학 편지』(1734년)를 통하여 영국의 입헌군주정을 이상화하고 프랑스의 절대 왕정을 비판함으로써, 프랑스 왕실과 종교계의 미움을 사게 된다. 문제가 되자 즉시 사죄의 글을 발표하여 파리 입성은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지만, 샤틀레 가문의 영지에 머물면서 10여 년간 저술과 연구 활동에 매진했다. 이 시기에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뉴턴에 관한 편지』(1736년)와 『뉴턴 이론의 철학적 요소들』(1736년)을 출간하고 비극 『마호메트』(1741년)와 『메로프』(1743년) 등도 발표하였다. 
1744년에는 친구의 외무장관 취임을 계기로 루이 15세의 궁정에 들어가 역사 편찬관이 되었다. 이후 1746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뽑혀 비로소 입지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던 1750년, 이미 오래전부터 친분을 쌓아 둔 프로이센의 계몽 군주인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을 받아들여 베를린으로 간다. 그곳에서 역사서 『루이 14세의 세기』(1751년)를 완성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와 마찰이 일어나자, 1753년에는 베를린을 떠나게 된다. 
이후 프로이센의 여러 도시를 거쳐 프랑스의 국경에 도착(1754년)한 볼테르는 파리 입성이 금지된 사실을 알고 스위스 국경 인근인 페르네에 정착한다. 이곳에 머무는 20여 년간 볼테르는 계몽 사상가로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당시 볼테르는 수많은 저서 출판과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해 왔는데, 그러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여 성을 재건하고 주변을 정비하는 등,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던 페르네를 활기찬 소도시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볼테르는 반봉건·반교회 운동의 지도자로서 공격적인 글을 수없이 발표했다. 이 시기에 종교적 편견에 의한 불공정한 재판을 규탄한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원서 제목: 관용에 대한 개론)』(1763년)와 세계 문명사인 『풍속에 관한 에세이』(1756년), 철학 콩트인 『캉디드』(1759년), 『철학 사전』 (1764년) 등이 만년에 출간되었다. 
1778년, 드디어 파리로 입성한다. 생애 마지막 비극 작품인 『이렌』 의 상연을 위해 파리를 찾은 볼테르는 이 작품의 첫 공연을 직접 감독했다고 하는데, 당시 그의 나이 83세였다. 『이렌』을 관람하기 위해 ‘코메디 프랑세즈’를 찾은 대중들은 그를 둘러싸고 “칼라스 옹호자 만세!”라고 외치며 열렬히 환영했다고 한다. 사실 그들은 작품보다는 ‘작가’를 보러 온 것이었으며, 볼테르가 일생 동안 제안한 새로운 가치관, 즉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잃지 않은 이성’에 대한 믿음과 실천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1778년 5월 30일에 사망한 볼테르는 비록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대혁명을 보지는 못했지만,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잠들어 있는 ‘팡테옹’에 안치되었다.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배재대학교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Le Roman à éditeur》, 《서사학과 페미니즘》이 있으며 역서로는 《수녀》, 《페루 여인의 편지》, 《공화정과 쿠데타》, 《육체와 예술》(공역), 《프랑스혁명의 지적 기원》(공역), 《두 친구》, 《캉디드》, 《숙녀들의 도시》, 《포르투갈 수녀의 편지/헨리 부인의 편지》, 《보바리 부인》등이 있다.


 

책 속에서




(30쪽) 이곳은 다양한 종파의 나라다. 영국인은 자유인답게 자기 마음에 드는 길을 따라 천국에 간다. _「편지5 영국국교회에 관하여」

(43쪽) 로마의 경우, 내전의 결과는 노예화였는 데 반해 영국은 분쟁의 결과로 자유를 얻었다. 영국은 왕권에 저항함으로써 왕권을 규제하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마침내 매우 현명한 정부를 수립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_「편지8 의회에 관하여」

(45쪽) 프랑스의 내전은 영국의 내전보다 더 길고, 더 잔혹하고, 더 많은 범죄로 점철되었다. 게다가 그 많은 내전 중에 어느 것도 자유가 목적은 아니었다. _「편지8 의회에 관하여」

(56쪽) 프랑스에서는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후작이 될 수 있다. 귀족풍의 이름에다 돈푼깨나 가지고 파리로 올라온 시골뜨기들까지도 '나 같은 사람, 나 같은 신분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상인을 버러지처럼 멸시한다. _「편지10 상업에 관하여」

(76쪽) 나는 육체이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상은 모른다. _「편지13 로크 씨에 관하여」

(128쪽) 영국 사람들은 대체로 생각을 많이 하며 문학도 프랑스보다 훨씬 나은 대접을 받고 있다. 이것은 영국 정치체제의 영향이다. 런던에는 대중 앞에서 연설하고 나라의 이익을 옹호할 권리를 지닌 사람이 800명가량 있다. _「편지19 희극에 관하여」

(156쪽) 가장 유용한 발견은 가장 미개한 시대에 이루어졌다. 가장 계몽된 시대, 가장 학식 높은 단체의 역할이란 이 무지한 사람들이 발명한 것을 연구하는 데 있다. _「편지24 아카데미에 관하여」

(179쪽)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희망이다. 희망은 우리의 슬픔을 달래주고 현재 누리는 기쁨을 통해 미래에 다가올 기쁨을 그려 보인다. _「편지25 파스칼 씨의 『팡세』에 관하여」

목차

편지1 퀘이커교도에 관하여
편지2 퀘이커교도에 관하여
편지3 퀘이커교도에 관하여
편지4 퀘이커교도에 관하여
편지5 영국국교회에 관하여
편지6 장로교에 관하여
편지7 소치니파, 또는 아리우스파, 또는 반反삼위일체파에 관하여
편지8 의회에 관하여
편지9 정부에 관하여
편지10 상업에 관하여
편지11 천연두 접종에 관하여
편지12 베이컨 대법관에 관하여
편지13 로크 씨에 관하여
편지14 데카르트와 뉴턴에 관하여
편지15 인력引力의 체계에 관하여
편지16 뉴턴 씨의 광학에 관하여
편지17 무한과 연대기에 관하여
편지18 비극에 관하여
편지19 희극에 관하여
편지20 문학을 하는 귀족들에 관하여
편지21 로체스터 백작과 월러 씨에 관하여
편지22 포프 씨와 몇몇 유명 시인에 관하여
편지23 문인들의 처우에 관하여
편지24 아카데미에 관하여
편지25 파스칼 씨의 『팡세』에 관하여
해설 | 영국으로 추방된 젊은 프랑스 철학자의 편지
볼테르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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