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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의 무덤

볼테르 저 | 고선일 역 | 바오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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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1428256 / 272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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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이 책은 그리스도교 세계가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책이 될 것이다.”
볼테르, 광신으로 얼룩진 그리스도교를 고발하다!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볼테르의 비판에서 자유로운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볼테르만큼 미움을 산 작가는 없을 것이다. 일종의 적그리스도로 간주되었다. 그는 서양의 사상가 중에서 그리스도교에 가장 비판적이었다. 다양한 장르의 저작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과 조롱, 풍자가 넘쳐난다.
볼테르는 평생 종교적 광신에 맞서 싸웠다. 광신은 악을 생성시킬 뿐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폭넓은 검토를 통해, 신앙의 뿌리인 성경의 반역사성과 허구성을 폭로하고, 순교와 박해, 기적 같은 교회의 기록과 전승은 과장되거나 조작, 왜곡된 경우가 많다고 고발한다. 따라서 광신으로 얼룩진 그리스도교는 ‘허구와 조작으로 쌓아올린 신앙체계’일 뿐이며, “양식과 덕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교에 반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결론 내린다.
당연히 이 책은 ‘그리스도교 세계가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책’이 되었다. 출간 후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지금까지 ‘그리스도교를 이성적,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고전적 전범’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한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오늘의 그리스도교는 어디에 서 있는가? 예수인가 맘몬인가?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보는 눈길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많은 잘못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볼테르가 지적한 것처럼 성경의 예수보다는 현실의 맘몬을 섬기는 것 같다. 다른 종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볼테르 당대에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은 모두가 한 분인 신을 열정적으로 섬기는데, 그 신은 다름 아닌 돈이다. … 각 종파를 이끄는 우두머리들의 목표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있는 힘을 다해 부를 쌓는 것이며, 그들 모두가 백성들의 빈곤 위에 세워진 피가 엉겨 붙은 권좌에 오르는 것밖에 관심이 없다.”
또 같은 신을 섬기더라도 뜻이 다르면 쉽게 이단 딱지를 붙인다. 게다가 패를 갈라 싸우기도 한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 그 신의 이름으로 다른 의견을 단죄한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종파가 생겨나 저마다의 진리를 주장한다. 그리스도교는 사랑과 평화의 종교가 아니라 미움과 파괴의 종교가 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조작과 과장, 허구로 쌓아올린 신앙체계일 뿐

볼테르에게 당대의 종교 권력, 즉 가톨릭교회는 전제정치와 더불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구체제의 상징이었다. 종교 권력의 성채를 허물어뜨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 전반에 대한 검토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는 모두 38장에 걸쳐 성경의 성립 과정에서부터 유대교, 예언자, 초대 교회, 예수와 그 제자들, 그리스도교의 성립과 교회의 탄생, 교황, 교리, 기적, 탄압, 박해, 순교 등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검토한다.
일방적인 주장과 비판이 아니라 백과사전파답게 방대한 전적과 사료 비판이라는 실증의 토대 위에서 상식과 이성에 따라 독자들을 설득한다. 유대민족의 신화와 역사가 상당 부분 허구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서 성경 기록의 신뢰성을 뿌리째 뒤흔들고, 신앙의 역사에서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순교와 탄압, 기적 등의 전승과 기록이 실제 사실과 달리 조작, 과장, 왜곡된 경우가 많다고 폭로한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성경부터 조작과 오류투성이의 기록일 뿐더러 후대의 귀감이 되는 신앙의 전범들도 사실과 크게 다른, ‘허구로 쌓아올린 신앙체계’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덕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교에 반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광신은 불관용에서 태어난 괴물이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범죄와 학살은 광신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가장 선하고 정직해야 할 자들이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 조작과 은폐를 서슴지 않았다. 볼테르는 이렇게 질문한다. “고귀한 생명을 얼마나 죽여야 광신의 수레바퀴를 멈출까? 순교자를 얼마나 더 만들어야 역사를 조작하는 짓을 그만둘까!” 일단 광신에 물들면, 자신과 같은 의견이 아닌 모든 사람이 틀렸다고 단정하게 되고 결국에는 불신자들을 죽여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결론에 다다른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수많았던 화형과 마녀사냥, 교리 논쟁을 통한 파문과 단죄는 이런 배경 하에 일어났다.
그래서 볼테르는 “광신이라는 정신의 질병은 이성의 빛을 쬐는 것, 즉 관용을 통해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광신은 불관용에서 태어난 괴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관용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생 동안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혀 있던 교회 권력을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조롱했던 것이다. 그가 세상에 고발하여 알려지게 된 칼라스 사건과 그 과정에서 집필한 『관용론』(1763)은 종교적 광신에 맞서 관용을 부르짖은 저항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볼테르의 비판에서 자유로운가?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어떤가. 볼테르가 검토하고 지적했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에 다른 이들을 억압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불관용을 선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낮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감싸고 껴안기보다는 그들을 멸시하거나 배척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의 길을 따르기보다는 맘몬의 길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만인의 교회가 아닌 나만의, 내 가족만의 교회를 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왜 교회는 커져야 하고, 울타리는 높이 쌓아올려야 하며, 돈과 신자는 점점 많아져야만 하는가.
볼테르가 맞서 싸워야 했던 18세기의 교회 권력과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21세기 한국 그리스도교의 현실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볼테르가 겨냥한 과녁들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 소개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 사상가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기도 하다. 1694년, 파리에서 출생하여 1778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이지만, 정부와 교회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저술 활동을 계속했다.
루이 14세 사후,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한 필립 오를레앙의 섭정(1715년~1723년) 시기에는 오를레앙 공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이 모이는 문학 살롱에 참여했다. 그러던 1716년, 오를레앙 공을 비방하는 시 〈나는 보았네〉를 썼다는 죄목으로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비극이나 서사시와 같이 당대에 인정받고 있던 장르에 도전했는데, 이름을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바꾼 것도 이때이다. 그리고는 1718년 11월(24세), 옥중에서 집필한 비극 『오이디푸스』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어느 귀족과의 싸움으로 다시 부당하게 투옥되었다가 국외 망명을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볼테르는 구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1726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영국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타고난 비판 정신을 더욱 키워 나갔다. 그 결과, 16세기 내내 프랑스를 분열시켰던 신교와 구교 간의 종교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앙리 4세를 찬양하는 서사시 『앙리아드』(1728년)를 펴낸다. 
1729년, 프랑스로 돌아온 후에는 비극 『자이르』 (1732년)를 발표하기도 했다. 1733년에는 수학과 물리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샤틀레 후작부인(에밀리 뒤 샤틀레)의 애인이 되어 그녀의 영향으로 문학가에서 철학자로 변신한다. 볼테르는 『철학 편지』(1734년)를 통하여 영국의 입헌군주정을 이상화하고 프랑스의 절대 왕정을 비판함으로써, 프랑스 왕실과 종교계의 미움을 사게 된다. 문제가 되자 즉시 사죄의 글을 발표하여 파리 입성은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지만, 샤틀레 가문의 영지에 머물면서 10여 년간 저술과 연구 활동에 매진했다. 이 시기에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뉴턴에 관한 편지』(1736년)와 『뉴턴 이론의 철학적 요소들』(1736년)을 출간하고 비극 『마호메트』(1741년)와 『메로프』(1743년) 등도 발표하였다. 
1744년에는 친구의 외무장관 취임을 계기로 루이 15세의 궁정에 들어가 역사 편찬관이 되었다. 이후 1746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뽑혀 비로소 입지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던 1750년, 이미 오래전부터 친분을 쌓아 둔 프로이센의 계몽 군주인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을 받아들여 베를린으로 간다. 그곳에서 역사서 『루이 14세의 세기』(1751년)를 완성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와 마찰이 일어나자, 1753년에는 베를린을 떠나게 된다. 
이후 프로이센의 여러 도시를 거쳐 프랑스의 국경에 도착(1754년)한 볼테르는 파리 입성이 금지된 사실을 알고 스위스 국경 인근인 페르네에 정착한다. 이곳에 머무는 20여 년간 볼테르는 계몽 사상가로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당시 볼테르는 수많은 저서 출판과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해 왔는데, 그러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여 성을 재건하고 주변을 정비하는 등,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던 페르네를 활기찬 소도시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볼테르는 반봉건·반교회 운동의 지도자로서 공격적인 글을 수없이 발표했다. 이 시기에 종교적 편견에 의한 불공정한 재판을 규탄한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원서 제목: 관용에 대한 개론)』(1763년)와 세계 문명사인 『풍속에 관한 에세이』(1756년), 철학 콩트인 『캉디드』(1759년), 『철학 사전』 (1764년) 등이 만년에 출간되었다. 
1778년, 드디어 파리로 입성한다. 생애 마지막 비극 작품인 『이렌』 의 상연을 위해 파리를 찾은 볼테르는 이 작품의 첫 공연을 직접 감독했다고 하는데, 당시 그의 나이 83세였다. 『이렌』을 관람하기 위해 ‘코메디 프랑세즈’를 찾은 대중들은 그를 둘러싸고 “칼라스 옹호자 만세!”라고 외치며 열렬히 환영했다고 한다. 사실 그들은 작품보다는 ‘작가’를 보러 온 것이었으며, 볼테르가 일생 동안 제안한 새로운 가치관, 즉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잃지 않은 이성’에 대한 믿음과 실천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1778년 5월 30일에 사망한 볼테르는 비록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대혁명을 보지는 못했지만,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잠들어 있는 ‘팡테옹’에 안치되었다. 

 

역자 소개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그르노블 3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후, 서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베르사유》, 《창해 ABC북》, 《예뻐라! 하느님의 동물들》, 《죽음 앞의 인간》, 《만화로 보는 신약 성서》 시리즈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책 속에서

각 종파를 이끄는 우두머리들의 목표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힘을 다해 부를 쌓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일본 천황에서 로마교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백성들의 빈곤 위에 세워졌을 뿐 아니라 그들의 피가 엉겨 붙은 권좌에 오르는 것밖에 관심이 없다는 점, 이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리스도교에 대한) 의심은 더욱 커진다. -머리말 중에서

뱀이 하와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고, 하느님은 뱀에게 말씀하시고, 하느님께서 날마다 정오가 되면 면 에덴동산을 거닐고. 하느님께서 친히 아담에게는 짧은 팬츠를, 그리고 그의 아내 하와에게는 치부를 가릴 천 조각을 건네셨다는 대목에서는 솔직히 고백하건대 웃음을 참기가 어렵다. -6장 창세기 중에서

하느님의 성육화, 하느님의 죽음, 하느님의 부활, 삼위일체의 하느님, 가루로 만든 빵이 하느님이 된다는 성변화 교리, 그리스도교인들을 야만인보다도 저급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그 지긋지긋한 교리들을 믿었던 교황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물론 그들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함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던 그들은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추악한 범죄 행위로 스스로의 명예를 더럽혔던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그리스도교 교리들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함이 무신론자들을 양산한다는 것을! -38장 로마 가톨릭교회의 폐해 중에서

우리 인간은 참으로 맹목적이고 한심한 존재들이다. 그리스도교인들 스스로가 고백하기를 … 단순하고 보편적인 종교보다, 형리들이 떠받치고 화형대들로 둘러싸인 부조리하고 잔혹한 종교, 그 종교를 이용하여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 자들만이 인정하는 종교, 세계의 일부분에서만 인정받는 특수한 종교를 선호하니 말이다. -결론 중에서

목차

머리말/5
I
1장 모세서·19/2장 모세라는 인물·22/3장 유대서에 부여된 신성·28/4장 모세오경의 저자는 누구인가?·30/5장 유대인은 다른 민족들에게서 무엇을 빌려왔을까?·35/6장 창세기·38/7장 유대인의 풍습·41/8장 유대인의 풍습: 왕정 시대 및 판관 시대, 그리고 로마인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기까지·46/9장 예언자들·52

II
10장 예수라는 인물·61/11장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74/12장 그리스도교의 성립-특히 바울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77/13장 복음서·86/14장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로마인을 어떻게 대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들은 시빌라의 예언(탁선)을 위조해냈을까?·95/15장 그리스도교인들은 유대교도를 어떻게 대했을까? 예언자들에 대한 황당무계한 설명·101/16장 복음서에 내재된 잘못된 인용과 잘못된 예언·105/17장 세상의 종말과 새로운 예루살렘·108/18장 알레고리(비유, 예표)·112/19장 위조와 위서·114

III
20장 초기 그리스도교인의 주요 기만행위·121/21장 그리스도교 초기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인의 교리와 형이상학-유스티누스·129/22장 테르툴리아누스·133/23장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40/24장 이레네우스·145/25장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148/26장 순교자들·155/27장 기적·169

IV
28장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에서 콘스탄티누스 시대까지의 그리스도교인·177/29장 콘스탄티누스·186/30장 콘스탄티누스 이전 및 그의 치하에서 그리스도교인의 분쟁·190/31장 아리우스주의와 아타나시우스주의·194/32장 콘스탄티누스의 아들들, 그리스도교인들이 “배교자”라는 별명을 붙인 철학자 율리아누스·201/33장 율리아누스에 대한 고찰·210/34장 테오도시우스 시대까지의 그리스도교인·214/35장 이슬람교의 성립까지 그리스도교의 여러 종파와 그리스도교인의 불행·219/36장 교황들의 횡포에 대한 간략한 서술·223/37장 그리스도교 박해의 잔혹성·226/38장 로마 가톨릭교회의 폐해·232

결론/236
편지: 볼링브룩 경이 콘즈버리 경에게·243/콘즈버리 경이 볼링브룩 경에게/252
이 책에 대한 간략한 해설: 광신과 불관용에 맞선 지적 투쟁/256
찾아보기/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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