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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 문학동네시인선 116

시리즈 : 문학동네 시인선 [149]

장석주 저 | 문학동네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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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654562 / 148쪽 130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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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 편집자의 책소개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장석주 시인의 신작 시집을 펴낸다.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은 시인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전방위 글쓰기의 그 선봉에서 다양한 장르에 걸쳐 놀랄 만한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뜨겁고 폭발적인 에너지로 일궈낸 다양한 저작들 가운데 그럼에도 수줍은 듯 그런 만큼 늘 새로운 듯 작심 끝에 꺼내 보이는 마음이 있었으니 그건 ‘시’라는 장르에서의 시심(詩心)이다. 제 글쓰기의 기원이 시로부터 비롯함을 평생 염두해온 탓이리라.
시력 40년 동안 십여 권의 시집을 펴냈으나 유독 이번 시집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에서 그 ‘청년’다움에 빠져드는 이유는 시를 향한 그만의 초발심(初發心)이 다시금 발휘되어서이기도 할 테다. 총 4부에 나뉘어 담긴 이번 시집의 주제를 ‘사랑’이라 아니할 수 없을 터인데 그의 이즈음의 사랑이란 곧 죽음과 그 궤를 한데 하고 있기에 그 큼이 참으로 지극히 넓고도 깊음을 일단은 알게 한다. 세상에 영원한 사랑은 없고 세상에 영원한 삶 또한 없는 것, 그 끝을 알고 몸을 밀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과정만이 영원한 사랑이고 영원한 삶일 터, 이쯤 되니 그가 “살아도 살았다고 말 못 한다”라고 말하는 대목에 대한 이해가 무릎을 크게 치게 한다.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수 있는 일, 헤어짐도 울음도 다 초월한 둘의 하나됨의 그림, 그 둥그런 원 하나가 우리 모두라 할 때 세상 이치가 뭐 그리 복잡할까 고요하게 적요하게 자연으로 눈을 돌리는 우리들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소용을 무용으로 만드는 시, 그렇게 손에서 쥐기보다 손에서 놓는 일의 귀함을 찾게 하는 태도, 장석주 시인의 이번 시집은 그런 의미에서 참 귀하다. 있어서 고통일 수 있는 당신이 내 안에 없기 때문에 몸이 아픈 나. 당신의 꼬리를 내가 물고 내 꼬리를 당신이 물고 우리는 그렇게 원으로 뱅뱅 돌다 원으로 사라지지 않겠는가. 온갖 둥근 것들에게서 나를 보게 하는 시집. 이 시집은 그런 위로 속에 혼자인 나를 또한 안도하게 한다. 4부 마지막이 시극(詩劇)으로 장식됨을 또한 주목해주시라.

저자 소개

시인, 문장 노동자, 독서광. 논산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날마다 책을 읽고 산책하는 걸 인생의 큰 보람으로 삼는 사람이다. 1975년 《월간 문학》 신인상 공모에 시,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했다. 시집 《오랫동안》과 《몽해항로》를 포함해 책을 여럿 썼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청하에서 열다섯 해 동안 편집자로 일했다. 그 뒤 전업 작가로 살며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 명지전문대 등에서 강의했다. 

2007년에서 2010년까지 국악방송에서 <문화 사랑방>에 이어 <행복한 문학>의 진행자로 활동했다. 《소설 : 장석주의 소설창작 특강》(2002년 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풍경의 탄생》(2005년 문예진흥원 우수문학도서), 《붉디붉은 호랑이》(2005년 문화예술위 우수문학도서), 《들뢰즈, 카프카, 김훈》(2006년 문화부 우수학술도서), 《장소의 탄생》(2007년 예술원 창작기금 수혜 및 문화부 우수교양도서), 《절벽》(2008년 문화예술위 창작기금 수혜 및 우수문학도서), 《이상과 모던뽀이들》(2011년 문화예술위 우수문학도서), 《마흔의 서재》(2013년 문화부 우수교양도서), 《동물원과 유토피아》(2013년 문화예술위 우수문학도서) 등 다수의 저서를 발간했다. 지금은 안성에서 책을 읽고 쓰며 살고 있다. 

머리말

1
봄날 새벽의 노란 별자리를 보며 점을 쳤다. 큰 누에들이 뽕잎을 갉아먹는 방에서 깨기를 바랐건만 시는 잠결의 무심한 뒤척임, 가느다란 꿈의 파동으로 왔다. 시는 우연, 빛과 소리, 날씨와 구름의 움직임에 대한 계시(啓示)에 가까웠다. 내 점은 자꾸 빗나갔다.
2
이번 시집은 작다. 작아지려고 탕약처럼 뭉근한 불로 오래 졸였다. 작은 슬픔으로 큰 슬픔에 닿기 위하여 애썼다. 덕분에 내 상상력은 뿔냉이나 엽낭게의 감정노동만큼 조촐해졌다. 작음은 이번 시집에서 내세울 단 하나의 자랑거리다. 더 작아지지 못한 건 흠이다. 더 작아져서 큰 실패에 닿지 못했음을 후회할 거다.

2019년 1월
장석주

책 속에서

노포에 옛날이 말상 얼굴로 앉아 있다.
어깨 위에 검은 머리통 얹은 이가 들어왔다가
둘러보고 나간다.
하오의 그림자가 기웃거리다가 만다.
아이들은 어디로 갔나?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을 안고 나부낀다.
꿈속의 꿈이라고
꿈 밖의 꿈이라고
코와 눈 뭉개진 세월이
귀신을 데리고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간다.
나는 살아도 살았다고 말 못한다.
말상 얼굴로 앉은 옛날 귀신에게
귀 없는 고요가 친구하자고 덤빈다.
서촌 통인동, 슬하 슬픔 여럿 거느리고
춘분 지난 어느 날
혼자 마흔두어 해 더 지나 찾은 곳이다.

—「버드나무 속—손(巽)」 전문


그해의 아궁이에 쌓인 착한 재들,
1964년의 식은 피들이다.

추리소설을 읽던 딸들이 가출했다. 한낮에 수탉의 울음소리가 퍼지고 창문을 열었다. 창문 여는 것은 점잖은 사람의 할 일, 바람은 풍속과 흰 깃발을 붙들고 펄럭이며 울었다. 버드나무 푸른 가지가 나부낄 때 우리는 세상의 참상을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춤추는 버드나무야, 올해의 금빛 기쁨을 품은 회색의 재들아, 아, 겨우 한 순배의 죽음이 돌았을 뿐이다. 비비추가 땅거죽을 밀며 올라올 때 왜 배신과 음모가 많아지는가. 왜 비바람 치는 날씨가 기분을 망치고, 가는 봄은 종달새 꽁지에 매달려 영산홍 꽃잎을 낚아채는가. 왜 봄날의 덜 닫힌 문은 자주 덜컹거리는가. 재작년의 바다에는 재작년의 주검이 떠돌고, 당신은 명랑과 쓸쓸 사이에서 웃었다.

밀레니엄 소동이 끝나고 새봄이 왔을 때 내 안의 소년이 죽었다. 나는 순진하지 않았다. 미인의 선한 눈매에도 심장은 두근대지 않았다. 무논에서 개구리 우는 봄밤은 비극이거나 재난이다. 바다가 멀리에서 저음(低音)으로 울었다. 딸들의 웃음소리가 만천하에 꽃으로 피어 만발하였다. 조카를 유괴한 이모와 담배를 찍, 뱉는 자가 쉽게 연애에 빠졌다. 당신이 옛날이 좋았다고 말한다. 당신에게 사월의 청명한 날씨가 만드는 내 기분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콩팥과 오장육부, 바다와 괄약근을 모른 채 살았다.
다만 추억은 병이 아님을 아는 당신은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버드나무의 사생활」 전문

목차

시인의 말

1부 좋은 시절은 가고 간 것은 다시 오지 않아요
내륙의 운문집 / 생일 / 키스 / 양화대교 / 곡우 / 망종 / 연애 / 손금 / 모자 / 여름의 끝 / 여름의 느낌 / 바람의 혼례 / 오래된 연애 / 춘분 / 버드나무의 사생활 / 악몽은 밤에 더 번성하겠죠 / 절필

2부 시 강좌에 나오던 여자가 내 구두 한 짝을 훔쳐갔다
서교동 1 / 서교동 2 / 당신은 종달새였다―연남동 0 / 기다림의 자세―연남동 1 / 구월의 기분―연남동 2 / 발코니와 후박나무―연남동 3 / 푸른 양말을 신던 봄날―연남동 4 / 당신은 공중 도약에 실패한다―연남동 5 / 최후의 시집이 온다―연남동 6 / 그 버드나무는 내게 뭐라고 말했나?―몽(夢) 1 / 그 버드나무는 내게 뭐라고 말했나?―夢 2 / 일인칭의 계절 / 부패한 빵 / 베를린의 아침 / 베를린의 한낮 / 베를린의 저녁 / 해 질 무렵 / 동물원 옆 동네 / 일요일 저녁/ 가을의 노래 / 빨래가 마르는 오후 / 먼바다에서 고래가 울 때―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부쳐 / 파주 하늘에 뜬 기러기떼 / 절편 예찬 /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1 /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2

3부 나는 살아도 살았다고 말 못 한다
서른 즈음―가객을 위하여 / 인생의 이치 / 증평(曾坪) / 겨울 대파밭에서 / 밤 해변에서 / 꿈속에서, 꿈의 조각을 줍다 / 노포(老鋪)에서 / 증평에 눈 온다 / 이별들 / 버드나무 / 플랫폼에 빈 기차가 들어올 때―건(乾) / 얼굴 / 멀리서 뭔가가 다가온다―곤(坤) / 내 오른쪽은 너의 왼쪽―진(震) / 버드나무 속―손(巽) / 자연에게 / 가을 저녁 잿빛 허공에 비―간(艮) / 음악들―태(兌) / 가족과 가축 / 빵 부스러기 떨어진 저녁 식탁 / 주역 읽는 밤―설괘전

4부 내 안에 당신이 없기 때문에 나는 몸이 아프고
시극(詩劇): 손님―쌍절금(雙節琴) 애사

해설| 영원의 가장자리에서 우연을 견디다
오민석(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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