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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0214019 / 112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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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강희안 시인의 시집 『신발 신겨주는 여자』가 시작연애시선 0002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1990년 『문학사상』 신인발굴 당선으로 등단하여 시집 『지나간 슬픔이 강물이라면』 『거미는 몸에 산다』 『나탈리 망세의 첼로』 『물고기 강의실』 『오리의 탁락』(시선집) 등을 펴낸 중견 시인이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젊은 날에 사랑하는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를 헌시와 답글의 형식으로 묶어낸 연애시선이다. ‘시인의 말’을 빌면 “활활 소각시켜 버리려 했던 아린 상처들”이 “더 붉은 속울음으로 타오르는 무거운 돌무덤”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시인은 젊은 날의 사랑을 ‘상처’ 혹은 ‘상처의 흔적’이라 명명하지만 시집 안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사랑의 정서가 온전히 녹아 흐르고 있다. 헌시에는 진흙 속에서 진주를 골라내는 심정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바칠 언어를 밤새 고르느라 뒤척이는 화자의 눈물겨운 몸짓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시집의 또 다른 묘미는 헌시를 받고 이에 답하는, 시인의 말을 빌면 “극지의 크레바스처럼 차고 깊”은 여인의 존재이다. 정열적으로 불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화자에게 쉽게 빈틈을 보이지 않으며 자신의 삶과 사랑을 지켜나가는 여인의 답글은 헌시와의 대비를 통해 균형을 맞출 뿐만 아니라 시적 긴장감을 형성하면서 시집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 준다. 여기에 시적 정황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내는 그림은 독자들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상상하는 기쁨을 선사해 줄 것이다. “무거운 돌무덤을 헤집어보는 심정”으로 시집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 속에서 빛나는 시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한 시절의 영사기를 되돌려 보면
동화 속 신데렐라를 만났던가 싶다.
나는 유리 구두를 신겨줄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내가 아니었던가.
깊은 밤 자정의 종소리와 함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사라진 여자!
얼마 전 작고하신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
손 닿지 않던 벽장 구석
내 젊은 날의 유물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외로운 그림자와 함께
활활 소각시켜 버리려 했던 아린 상처들!
먼 시간에서 당긴 상처의 흔적은
싱그런 오늘로 포물선을 그었다.
그녀와 나눈 수많은 편지글과 시편들
내가 던지면 잔잔한 물이랑으로 받아내던
쌉쌀하게 감도는 잉크 냄새
극지의 크레바스처럼 차고 깊어
비밀하게 준비한 유리 구두를
차마 내밀 수 없었던 여자
내 가슴에 수만 개의 타르초로 나부끼다
애린으로 남은 오늘의 LH
이제서야 더 붉은 속울음으로 타오르는
무거운 돌무덤을 헤집어본다.
2018년 가을날
강희안
신발 신겨주는 여자
헌시
그대는 주점에서 술 마실 때 나의 말에 짝짝 입을 맞추어줍니다 향그런 웃음도 짝짝 손뼉을 치다가 시간을 잃었습니다 술자리 파할 때 그대는 꼬옥 나의 신발을 신겨줍니다 비싸게 취하지 않아 제대로 발에 넣어준 적도 없습니다
그대는 늘 다른 사람의 신발 한쪽과 나의 신발을 달리 신겨줍니다 헐렁 나의 작은 발을 서툴게 품은 누군가의 신짝, 집으로 가는 길을 지체하려는 고도의 전략일까요 그대는 외진 골목조차 짝짝이의 길이라고 넌지시 운을 뗍니다
그대와 나는 한밤 외진 골목 가등 밑에서 기우뚱 신발을 비춰보며 멋쩍게 웃습니다 짝짝 서로 다른 입을 맞추고 외로운 등을 나누며 또각또각 서로의 방으로 돌아갑니다 나의 신장에는 짝짝 코가 틀린 신발들 투성이입니다
답글
주점의 왁자한 소음의 결을 거스르는 남자가 있지. 늘 말의 품을 팔아 먹고사는 그였지. 나는 싸구려 소줏집에서 그가 쏟아내는 말을 곁들여 시간의 여행객이 되곤 하지.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잠시 아찔 현기증에 중심을 잃지만, 현재라는 시간의 간이역에서 다시 갈 길을 재촉하지. 우리는 때로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저지르기도 하고, 해야 할 것들을 놓치기도 했지. 오늘 품 판 당신의 말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비틀대는 발에 신발을 넣어주었지. 의심 없이 주점을 나서는 그는 짝짝이 신발로 인해 내일 품 팔 말이 생겼다며 너털웃음을 날렸지. 인생이 술에 취해 코가 삐뚤어지는 날, 바뀐 신발 신고 짝짝 맞지 않아 비틀대는 날이 있었지.
시인의 말
그대의 동심원 10
단 하나의 사전 12
신발 신겨주는 여자 14
피의 성배 16
그대의 손 1 18
마지막 별 20
잘난 시그널 24
비 오는 날의 우산 26
그대의 손 2 28
피의 방정식 30
사랑의 빳데루 32
아름다운 병 34
적막한 메아리 36
너트의 블랙홀 40
쉽게 씌어진 시 42
자신의 책 44
몸의 대화 46
그대의 벼랑 48
빗방울 정치학 50
몸가물이 든 날 52
톡톡톡 56
말의 온도 58
닫히지 않는 문 60
눈물의 농도 62
빼어난 시인 66
연애의 심리전 68
그대의 인형 70
향기의 얼굴 72
외로움의 골수분자 74
흑백의 추억 78
나의 피리 80
동그란 파문 82
가난한 적막 84
그대에게 전한 높잎말 86
통풍의 자리 88
그리움의 화점 90
침묵의 기교 92
면책 시인 94
그리움의 주소지 96
말의 피학성 98
묵언수행 100
언어의 편식주의자 102
그리움의 사시 104
마지막 사랑의 동심원 106
고요한 호수로 누워 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