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나는나 1 - 큰글씨책

가네코 후미코 저 | 조정민 역 | 산지니 | 2018년 05월

북트리

정가
$50.00
판매가
$27.5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55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65455134 / 188쪽 187 x 257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0,800
  • 15,120
  • 17,820
  • 25,2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 국가와 가부장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수기 이 책은 조선의 독립운동가 박열의 아내이자 일본의 젊은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1903~1926)가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쓴 수기이다. 그녀는 일본과 조선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조선인 무정부주의자 박열과 같이 생활하고 옥중에서 결혼하였으며, 천황과 황태자의 암살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아 수감되어 있던 중 23살의 나이로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지금은 경북 문경 박열의사기념관 옆에 잠들어 있는 그녀의 불꽃 같은 삶은 국내에서 관련 도서나 「KBS 스페셜」 등을 통해 발표된 적이 있다. 7월 23일, 가네코 후미코 사망 86주기에 맞춰 발간된 이 수기는 어린 시절부터 박열과의 동거까지를 다루고 있다. 독자들은 가네코 후미코가 무슨 생각으로 이 짧은 생을 살았는지,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저주받은 나의 생활 최후의 기록” 가네코 후미코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가난하고 서로 사이가 좋지 못했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무적자’인 탓에 취학 연령이 되어도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사설 학교에서 잠시 공부했으나 이마저도 생활고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여동생(후미코의 이모)과 새 가정을 꾸리고 어머니도 재혼을 거듭하면서 후미코는 친척집에서 지내다 1912년에 당시 충청북도 부강에 살던 고모의 양녀가 되어 조선으로 건너가 약 7년간 생활한다. 그곳에서 식모로 전락한 후미코는 자살까지 결심할 정도로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았다. 수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조선에서의 유년기는 그녀의 인격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후미코는 배움을 열망하게 되었고, 부당한 폭력에 대한 투쟁을 마음먹게 되었으며, 자신처럼 고통 받는 다른 사람들을 동정하게 되었다. ▶ “나는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 1919년에 파양되어 일본으로 돌아온 후미코는 다음 해 봄에 배움의 뜻을 안고 도쿄로 상경한다. 신문팔이, 노점상, 행상, 식모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고학의 길을 걸었지만 도쿄에서의 생활 역시 순탄치 않았다. 그녀는 부지런히 공부해서 남들이 선망하는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은 자기 인생의 목표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든 일에 열정을 갖던 당시 나는 고학을 해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확실히 깨달았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고학을 하더라도 훌륭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훌륭하다고 대접받는 사람만큼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한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 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노예로 살아왔다. 참으로 많은 남자들의 장난감으로 살아왔다. 나는 나 자신을 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 그렇다. 나 자신의 일이다. 그러나 나 자신의 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그것을 알고 싶다. 그것을 깨달아 실천하고 싶다.(‘일! 나 자신을 위한 일!’) 이후 후미코는 더 이상 고학에만 의지를 불태우지 않는다. 사회주의자, 부르주아, 조선인 유학생, 기독교도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고 또한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히비야에 있는 속칭 ‘사회주의 오뎅’이라 불리는 요릿집에서 일하던 어느 날, 『청년조선(?年朝鮮)』에 실린 박열의 시 「개새끼(犬コロ)」를 읽고 큰 감동을 받은 후미코는 1922년 4월경부터 박열과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후미코를 박열의 부인, 전시에 조선인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에는 문제가 있다. 그녀는 조선인 독립운동가의 일본인 아내이기 이전에 이미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혁명가였다. ▶ “모든 환경 속에서 학대받을 만큼 학대받은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심지어 친척과 가족마저도 그녀를 끊임없이 학대하고 억압했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결코 나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난에 감사하고 그것을 자신이 성장하는 계기로 삼았다. 또한 주어진 상황을 무력하게 비관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가려고 노력했다. 내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모든 환경 속에서 학대받을 만큼 학대받은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나의 아버지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면, 아마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성격,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에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불운한 탓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벌써 열일곱 살이 되었다. 나는 이미 자립할 수 있는 연령에 달해 있다. 그렇다. 나는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도쿄로!) 아무리 우리 사회에서 이상을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자신을 위한 일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을 성취하든 성취하지 않든 그것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진정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진정한 생활인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진정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생활은 곧 우리와 일치된다. 먼 저편에 이상적인 목표를 두는 것과 다른 것이다.(‘일! 나 자신을 위한 일!’)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언제나 열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네코 후미코는 항상 성실하고 솔직했으며 자신의 욕망과 이상에 충실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배우고 일함으로써 자신의 자립과 진정한 독립을 추구했다. 천황제와 군국주의, 가부장제와 남성 우월주의라는 폭력적인 이데올로기들에 맞선 한 여인의 투쟁의 삶을 담은 이 수기는 어떠한 재산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가네코 후미코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유일한 선물이다.

저자 소개

1903년 일본 야마나시 현 요코하마 시에서 태어난다. 부모의 사이가 원만치 못하여 어릴 때부터 갖은 고생을 한 가네코 후미코는 어머니와 함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1912년부터 7년 동안 충북 청원 부강리의 고모 집에서 온갖 학대 속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부강고등소학교를 졸업한다.


 


1919년에 일본으로 돌아온 가네코 후미코는 1920년에 도쿄로 나와 신문팔이, 가루비누 행상, 식모살이, 식당 종업원 등을 하며 고학을 한다. 그 사이에 조선 유학생과 일본인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 등과 교류하며 사회주의에 눈을 뜬다. 그리고 여러 사상을 공부하고, 특히 슈티르너, 니체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우연히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1922년 초부터 박열과 교제를 한다. 박열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아나키스트가 된 가네코 후미코는 1922년 봄부터 박열과 동거를 시작한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과 함께 흑도회의 기관지 『흑도』(1, 2호)를 발간하고, 아나키스 단체 흑우회를 결성하며, 또한 『후데이센징』(1~4호)을 발간하고, 대중 단체 불령사를 조직하는 등 아나키스트 운동을 활발하게 한다. 


 


간토대지진 발생으로 1923년 9월 3일 검속된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은 10월 20일 불령사 동인 16명과 함께 기소된다. 그후 폭탄 입수 계획이 드러나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대심원으로 넘겨져, 1926년 3월 25일 사형선고를 받는다. 열흘 뒤 ‘은사’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가네코 후미코는 7월 23일 옥중에서 죽는다. 1926년 11월 5일 가네코 후미코의 유골은 박열의 선영에 안장되고, 2003년 11월 가네코 후미코의 묘를 박열의 생가 뒤편에 있는 박열의사기념관 옆으로 이장한다.
가네코 후미코 여사는 현재 그의 영원한 동지이자 사랑하는 남편이었던 박열을 기념하는 박열의사기념관 옆의 양지바른 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역자 소개

부경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규슈대학 비교사회문화연구과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전후 일본문학이 패전 후 연합국의 일본 점령을 어떻게 기억하였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아, 같은 테마로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학위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 『만들어진 점령서사』(산지니, 2009)를 출간하였다. 지금까지 전쟁, 점령, 민족, 젠더, 언어 등의 문제가 서로 교차하면서 어떤 위계가 만들어지고 또 무너지는지에 대해 주목해왔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군국주의적 천황제의 억압과 통제에 추상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분명히 실천했던 가네코 후미코의 삶에 감동하여 그녀의 수기를 번역하게 되었다. 현재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로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잊지 못할 모습-구리하라 가즈오·007
첨삭에 관한 희망·011
머리말·012

1부 어린 시절
아버지·021
어머니·040
고바야시의 고향·065
어머니의 친정·079

2부 조선
새로운 집·091
부강·094
이와시타 가문·098
조선 생활·10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