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열하일기 1 [개정신판]

박지원 저 | 김혈조 역 | 돌베개 | 2017년 11월

미리보기 북트리

정가
$60.00
판매가
$33.0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66 (2%P)

판매가 종료된 상품입니다.

북카트 바로구매 위시리스트

이책의 구판 정보

열하일기 1 박지원 저 | 돌베개 | 2009년 09월 [절판]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71998281 / 560쪽 177 x 226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5,120
  • 16,650
  • 17,820
  • 18,9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선명한 초고본의 빨간 맛! ‘개정신판’ 완역 『열하일기』 ‘조선 시대 최고의 여행기’, ‘조선 최고의 명문장’…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늘 엄청난 수식어들이 따라 붙는다. 하지만 18세기 조선에서 『열하일기』는 점잖은 사람은 내놓고 보지 않는 빨간책이었다. 1780년 열하 여행 이후 3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 『열하일기』. 이 3년의 시간 동안 연암은 당대의 금압과 제약에 눌려 초고를 자기검열 해야 했고, 책이 완성되기도 전에 날개 돋친 듯 필사된 판본들과 근대에 와서 공간(公刊)된 『열하일기』는 필사자의 의도대로 개악... 선명한 초고본의 빨간 맛! ‘개정신판’ 완역 『열하일기』 ‘조선 시대 최고의 여행기’, ‘조선 최고의 명문장’…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늘 엄청난 수식어들이 따라 붙는다. 하지만 18세기 조선에서 『열하일기』는 점잖은 사람은 내놓고 보지 않는 빨간책이었다. 1780년 열하 여행 이후 3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 『열하일기』. 이 3년의 시간 동안 연암은 당대의 금압과 제약에 눌려 초고를 자기검열 해야 했고, 책이 완성되기도 전에 날개 돋친 듯 필사된 판본들과 근대에 와서 공간(公刊)된 『열하일기』는 필사자의 의도대로 개악(改惡)이 이루어졌다. 초고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금, 이제 초고본 본연의 모습, 좀 더 선명하고 뜨거운 『열하일기』의 맛을 이 책을 통해 보여드린다. “『열하일기』를 새롭게 제 맛으로 읽는다!” → 개정신판엔 있고, 기존 판본엔 없는 초고본 열하일기의 선명한 빨간 맛! 남색(男色, 동성애)은 당시 풍속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성행위일 텐데도, 연암은 그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물론 본인이 직접 본 것이 아니라 하인 창대의 언급을 옮긴 것이다. 이 내용은 「경개록」편 ‘왕삼빈’을 소개하는 항목에 나온다. 하지만 이 내용은 초고본 계열인 옥류산장본과 만송문고본, 그리고 충남대본에만 수록되어 있고, 여타의 필사본이나 활자본 어디에도 수록되지 않았다. 문제적 내용이기 때문에 이 항목 자체를 누락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누락하지 않고 수록했다. 왕삼빈王三賓은 민? 지방(복건성福建省) 사람이다. 나이는 스물다섯인데, 아마도 윤형산의 청지기 같기도 하고 혹시 기려천의 비복 같기도 하다. 창대가 말하기를, “어제 아침에 우연히 명륜당 오른쪽 문 가리개 아래에 있었는데, 기려천과 왕삼빈이 팔짱을 끼고 목을 나란히 하여 홰나무 뒤에 서 있더니 한참 뒤에 입을 맞추고 혀를 빨더군요. 마치 전각 위의 얼룩무늬 목을 한 비둘기처럼 하였는데, 사람이 가리개 사이에 있으면서 훔쳐보는 줄도 모릅디다. 왕삼빈은 수도 없이 음란한 교태를 간드러지게 떨더이다. 그저께 새벽에는 책을 가지고 윤 대인의 구들방에 갔더니 왕삼빈이 윤 대인의 이불 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책을 받았습지요.” 라고 한다. 곡정의 비복인 악씨鄂氏도 그 아름다운 젊은이를 닮았다. 왕삼빈은 비단 얼굴이 잘생겼을 뿐 아니라, 글씨를 이해하고 그림을 잘 그린다. 조선의 블랙리스트! 연암 박지원과 『열하일기』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을 고른다면 단연 손에 꼽을 정도로, 『열하일기』는 조선 최고의 문학 작품이다. 조선의 대문호라 불리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명성도 『열하일기』로 인해 더욱 높아졌다. 주지하다시피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의 중국 기행문이다. 그는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중국을 다녀왔다. 공적인 소임이 없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연암은 북경 여행과 함께 전인미답의 열하 지방을 체험하였다. 1780년(연암 44세) 10월 말, 연암 박지원은 중국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즉시 『열하일기』 집필에 전념했다. 이 초고는 책으로 완성되기도 전에 그 일부가 주변의 지인들에 의해 전사(傳寫)되었고, 급기야 한양에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연암체’(燕巖體)라는 새로운 글쓰기 문체가 생겨날 정도로, 『열하일기』는 당시 독서계와 문인 지식층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당시 문단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새로운 글쓰기 시도에 환호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나라 연호를 썼다 하여 노호지고(虜號之稿)라고 비방하였다.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추진하던 국왕 정조(正祖)까지 이 작품을 주목하고 문제시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에 속한다. 시대착오적인 반청(反淸) 사상을 풍자하고 조선을 낙후시킨 양반 사대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등 현실 비판적인 내용과 신랄한 표현이 담긴 이 책은 연암 당대는 물론이고 조선조 내내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연암 당대는 물론이고 손자 박규수가 우의정으로 있던 조선 말기에도, 그리고 서적의 출판과 보급이 비교적 활황을 보였던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도 공간(公刊)되지 못하고 오직 필사로만 유통되었다. 개정신판!! 『열하일기』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열하일기』는 책으로 완성되기 전부터 필사되어 주변에 전파되었고, 이로 인해 현재 여러 개의 판본이 존재한다. 게다가 2012년에는 이가원(1917~2000) 선생이 소장하던 『열하일기』 초고본 혹은 초고본 계열(제자, 후배 등이 필사한 책) 책이 영인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를 통해 『열하일기』 최초의 모습 즉 친필본 저작의 실체를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필사본의 형태로 존재해 왔던 수많은 이본들이 본래의 모습에서 어떻게 변질되고 훼손되었는가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009년에 김혈조 교수가 『열하일기』를 번역 출간할 당시에는 친필본 혹은 그 계열의 책은 미공개된 상태였으므로 참고하거나 대조할 수 없었다. 김혈조 교수가 저본으로 삼은 것은 1932년에 공간된 ‘박영철본’과 당시까지 공개된 필사본들이다. ‘박영철본’은 박지원의 저작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활자로 공간된 책이어서 학계에 광범하게 유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판본은 초고본의 계열에서도 몇 걸음 더 나간, 말하자면 몇 차례의 윤색을 거친 책이었다. 결국 박영철본을 번역의 저본으로 삼았다는 것은 윤색된 『열하일기』를 번역했다는 문제를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다. 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역자는 3년여의 시간 동안 『열하일기』의 초고본과 초고본 계열의 판본을 모두 검토하여 번역의 저본을 확정한 후 다시 한 번 번역에 임하였다. 이후 2년여의 기간을 들여 개정판 출판에 공을 들였다. 이를 통해 『열하일기』의 실체적 모습은 물론 박지원의 생생한 숨소리 하나조차 놓치지 않고 함께 호흡하는 새로운 모습의 개정신판을 내놓게 된 것이다. 『열하일기』를 검열하다! 검열(檢閱), 폭력적인 어감의 이 말은 국가 권력이 사상을 통제하거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서 자행되었다. 문체반정 시기에 『열하일기』에는 이런 검열이 있었던가? 역사 자료를 살펴보면 국가 차원에서의 강제적인 검열은 없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은 사회적 금압(禁壓)은 작용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박규수가 아우 박선수로부터 조부 박지원의 문집을 간행하자는 의견을 들었을 때, 박규수는 「호질」과 「허생전」이 평소에 유림의 기롱과 비방을 받았기 때문에 간행은 어렵다고 한다. 「호질」과 「허생전」은 『열하일기』에 수록된 대표 작품이다. 단편적인 일화를 통해서 당대 조선인들의 의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의식적, 무의식적인 사상 검열이 있었다. 판본 비교를 통해 연암이 스스로 행한 자기검열의 흔적, 당대인의 필사의 과정에서 행한 내용 분식 등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필사본들의 윤색과 왜곡은 몇 가지 유형으로 가해졌는데, 전체적으로는 『열하일기』만의 개성과 참신성을 없애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첫째, 명(明)을 높이고 청(淸)을 깎아내렸다. 초고본은 날짜를 표기하면서 건륭이라는 청나라 연호를 사용하여, 오랑캐 연호를 쓴 책이라는 뜻의 ‘노호지고’(虜號之稿)라고 폄하되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이후의 필사본들은 이 연호를 삭제하는 반면 명에 대해서는 ‘황명’(皇明) ‘유명’(有明)으로 표현함으로써 숭명반청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명·청에 대한 표현 문제는 북학(北學)과

저자 소개

  박지원은 1737년 서울 명문가 집안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장인인 이보천에게 학문을 배운 박지원은 영조가 감탄할 만큼 글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당시의 정치 상황에 염증을 느끼고 과거 시험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등 실학자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학문을 닦는데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1780년 팔촌 형 박명원을 따라 자제군관 자격으로 청나라에 사행을 다녀오게 됩니다. 이때의 기록으로 남긴 《열하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걸작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저명한 작가이자 실학자로, 호는 연암燕巖이다. 한양의 명문 양반가 출신으로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드러내어 장래가 매우 촉망되었다. 그러나 혼탁한 정치 현실과 양반 사회의 타락상을 혐오해서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오랫동안 재야의 선비로 지내면서 창작과 학문에만 전념했다. 50대 이후 비로소 벼슬길에 나서 음직蔭職으로 안의安義 현감, 면천沔川 군수, 양양襄陽 부사 등을 지냈다. 그의 문집인 [연암집]燕巖集에는 [양반전]과 [열녀 함양 박씨전] 등 한문소설을 포함한 주옥같은 시문詩文들과 [열하일기]熱河日記 및 [과농소초]課農小抄가 수록되어 있다. 

역자 소개

  • 이름 : 김혈조
    국적 : 대한민국
    직업 :
    분류 : 인문/철학자 , 기타
    인기지수 [178]
    작가상세보기 관심작가 등록/신간알림 받기
    [최근저서]전체보기
1954년 경북 선산에서 출생하였다. 성균관대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한문학과에서 『연암 박지원의 사유양식과 산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이래로 영남대 한문교육과에 재직하며 한국한문학의 산문 문학에 관심을 두고, 특히 연암의 산문 문학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최근에는 『열하일기』의 각종 이본을 대조하며 원문 정본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연암 관련 저서로 『박지원의 산문문학』과 역서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를 출판하였다.

책 속에서

 

목차

머리말 /「열하일기서」 熱河日記序
압록강을 건너며 / 도강록 渡江錄
심양의 이모저모 / 성경잡지 盛京雜識
말을 타고 가듯 빠르게 쓴 수필 일신수필馹迅隨筆
산해관에서 북경까지의 이야기 / 관내정사關內程史
북경에서 북으로 열하를 향해 /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