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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과학 인간의 생존에 공감은 왜 필수적인가?

원제 : EMPATHIE : Die Macht des Mitgefühls

베르너 바르텐스 저 | 장혜경 역 | 니케북스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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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361703 / 220쪽 147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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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문재인과 오바마에 열광하는 이유! 그들은 더 많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공감하도록 진화했을까? 인류 진화의 결정체, 공감을 분석하다! “산, 강, 그리고 도시만을 생각한다면 세상은 공허한 곳이지만, 비록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와 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지구는 사람이 사는 정원이 될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생물학자 프란스 드 발은 말했다. 인간이 오로지 타인을 이용하려고만 했다면, 진화는 이뤄지지 않았을 거라고. 이 책은 공감과 연민이 얼마나 다양한 효과를... 문재인과 오바마에 열광하는 이유! 그들은 더 많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공감하도록 진화했을까? 인류 진화의 결정체, 공감을 분석하다! “산, 강, 그리고 도시만을 생각한다면 세상은 공허한 곳이지만, 비록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와 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지구는 사람이 사는 정원이 될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생물학자 프란스 드 발은 말했다. 인간이 오로지 타인을 이용하려고만 했다면, 진화는 이뤄지지 않았을 거라고. 이 책은 공감과 연민이 얼마나 다양한 효과를 가져오는지, 그 놀라운 능력을 과학적 근거를 들어가며 하나하나 짚어준다. 타인이 나를 걱정하고 내 마음을 헤아려 준다는 건 언제나 좋은 느낌이다. 힘들여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이 감동으로 와닿고 잔잔한 행복이 느껴진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마디로 타인의 감정을 잘 헤아리고 공감하는 사람이 얻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이다. 또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은 타인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공감을 하는 나 자신도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얻을 수 있다. 현대의학은 공감을 잘 하는 사람은 우울증이나 심리적 고통에 노출될 확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공감은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건강하고 강인하게 만든다. 타인과 함께 느끼고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은 병에 대한 방어력도 뛰어나다. 타인에게 열려 있을수록 신체 기관의 면역체계는 긍정적으로 움직인다. 또한 공감능력이 큰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적고, 고통을 견디는 힘이 뛰어나다고 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이러한 의학적 실험 결과를 통해, 인간의 몸은 선한 존재가 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닐까 의문을 던진다. 우리가 진정으로 타인의 아픔을 향해 공감할 수 있을 때, 사회는 좀 더 건강하게 결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타인의 감정에 너무 심하게 빠져들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과 소시오패스나 범죄자의 공감능력을 살피며 우리 안의 선과 악, 인간성에 대해 고찰한다. 저자는 독일 최고의 의학 저널리스트이자 여러 차례 수상 경력을 지닌 베스트셀러 저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공감과 연민’에 대한 수백 개의 새로운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 속으로 추가] 인간은 ‘촉감의 공감’이 가능한 존재이다. 접촉 장면은, 특히 당혹스러운 접촉의 경우 쳐다보기만 해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가슴이나 다리, 그 밖의 부위를 무엇인가가 잡거나 그 피부에서 뭔가가 움직이면 우리 뇌의 전두엽과 두정엽 사이 어딘가, 소위 말하는 뇌의 2차 전운동 피질에서 촉각이 활성화된다. 그곳 대뇌피질에서 특수 신경세포가 접촉의 방식을 파악하고 분류하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번개처럼 빠르게 인식한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손길일까? 적대적이고 위협적인 행동인가? 무엇인가 스멀스멀 움직이는 느낌이 들면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각인된 기억이 위협의 신호를 전달한다. 하지만 그것이 부드러운 사람의 손길인지 거미나 뱀 같은 위험한 곤충의 움직임인지는 확실히 구분하지 못한다. 두뇌의 신경은 또 우리가 직접 그 접촉을 느끼는 것과 다른 사람의 접촉을 눈으로 보면서 그의 심정을 공감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실제로 두뇌 촬영을 통해서 보면 두 경우 모두 뇌의 흥분이 매우 비슷하게 진행된다. 바로 이것이 영화나 재미난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쉽게 감동하는 이유이다. ─p.111 [공감의 유익함에 대하여] 中 “6세 아동은 자기 집단에 관대했다. 하지만 8세 아동에게서는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기 집단의 일원이 그랬건 낯선 사람이 그랬건, 이기주의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설사 낯선 사람일지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경우 그를 피해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공감이 발달한다. 또 이 연구팀은 정의감이 문화에 따른 것인지 인류 보편의 유산인지도 조사했다. 결과는 공감과 정의감은 어릴 때부터 나타나며, 경제학자나 정치가들이 생물학적 청사진을 이용해 무한 경쟁을 정당화하고 이기주의를 덕목으로 찬양하는 것과 달리 인간은 ‘천성적으로’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p.122 [공감도 나이가 든다] 中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은 또 다른 긍정적 특징이 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정시키며 체내 보상 시스템을 활성화시킨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부담으로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이 너무 과도하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주변에서 특히 친절하다고 소문이 난 사람, 다른 사람들을 잘 껴안고 그들에게 자신의 애정과 존중을 표하는 사람은 대부분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도 훨씬 더 크다. 스트레스와 관련된 독창적인 실험이 있다. 골치 아픈 사고력 문제를 풀게 하거나 갈등 상황을 눈으로 보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평소 다정다감하고 사교성이 좋은 사람은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능력도 더 뛰어나다. 이 사실은 혈중 옥시토신 농도에도 반영된다.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은 혈중 옥시토신 농도가 높고, 이는 스트레스의 영향력을 쉽게 줄일 수 있으며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를 더 심도 있게, 더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p.134~135 [사랑은 같은 파장으로] 中 이해와 공감을 받았다는 느낌이 얼마나 긍정적인 기분을 자아내고 사람을 관대하게 만드는지는 음식점에서 실시한 다양한 실험에서도 잘 드러난다. 바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바텐더가 손님과 신체적 접촉을 자주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손님 가까이 다가간다. 손님의 목에 팔을 두르기도 하고 근심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주기도 한다. 그런 식의 접촉은 친밀감을 키울 뿐 아니라 놀랍게도 손님의 음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말하는 접촉은 2차를 기약하는 엉큼하고 에로틱한 접촉이 아니다. 그저 손이나 팔, 등을 슬쩍 건드리는 작은 터치 정도이다. 그럼에도 연구 결과를 보면 바텐더나 종업원이 손님의 어깨나 팔꿈치를 슬쩍슬쩍 건드릴 경우 손님들이 술을 더 많이 마셨다. ─p.155~156 [공감으로 성공을] 中 대부분이 남보다 착한 사람들이다. 이상주의자들이다. 가진 것을 다 주고도 더 줄 것이 없나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다. 늘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 남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사람들. 그러나 언젠가는 그 불길도 잦아든다. 더 이상 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감은 이렇듯 위험한 것일까? 상한선을 정하라고 경고해야 할까? 해가 될 정도, 자기 몸을 괴롭힐 정도의 공감은 안 된다고? 정말 그럴까? 공감이 정말로 그렇게 위험한 것일까? 하지만 공감이 우리 몸과 마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그렇다면 뭐가 잘못된 것일까? 공감을 대하는 자세? 기술? 몇몇 학자들은 공감과 동감을 구분한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공감은 나와 상대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동감은 나와 상대가 똑같은 생각을 하기를 원하고 강제하는 것, 즉 도를 넘어선 공감이다. ─p.191~192 [공감에 지친다?] 中 분자 생물학자이자 불교 승려인 마티유 리카르Matthieu Ricard는 이런 부정적 공감을 극복하고 진정한 참여를 경험하기 위해 직접 자신의 두뇌를 촬영했다. 그는 루마니아 고아들을 촬영한 BBC 다큐멘터리를 본 후 그 아이들의 고통을 온전히 공감하려 애썼는데, “얼마 못 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감정이 바닥난 것 같은 느낌,

저자 소개

독일의 저명한 의사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이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1966년생인 바르텐스는 기센대학교와 프라이부르크대학교, 프랑스 몽펠리에대학교와 미국 워싱턴대학교를 거치며 의학과 역사, 독어독문학을 공부했다. 1992년 미국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한 뒤 메릴랜드 국제보건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에서 연구활동을 했으며, 1993년 독일 의사국가고시를 통과한 직후 ‘유전자가 심근경색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라이부르크와 뷔르츠부르크 대학병원에서 의사로 재직했고,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면역생물학을 연구했다. 
1997년부터 작가이자 번역가, 저널리스트로 나섰다. 〈쥐트도이체 차이퉁〉 〈디 차이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과학 전문편집자로 일하는 동안 ‘올해의 저널리즘 상’(2008)과 ‘올해의 과학 저널리스트 상’(2009, 2012), 퇴니스슈타이너 미디어상(2013) 등을 수차례 수상했다. 같은 기간 출간한 《몸의 행복》 《의사들이 싫어하는 책》 《의학 오류사전》 《연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 《환자들의 희생으로》 등이 연달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대중이 믿고 따르는 작가로 거듭났다.
현재 〈쥐트도이체 차이퉁〉 수석편집자로 재직하는 바르텐스의 책들은 12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역자 소개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독일 하노버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나는 왜 너를 선택했는가》, 《바보들의 심리학》,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사랑의 코드》, 《오디세이 3000》, 《피의 문화사》, 《오노 요코》, 《누구나 혼자입니다》,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유럽의 역사》,《돼지개 죽이기》, 《느림의 발견》, 《마지막 사진 한 장》, 《세상의 모든 질문》, 《검은 여름》, 《파편》, 《우리는 왜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 《방황의 기술》,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 《나는 정신병원으로 출근한다》, 《세계사 로드무비》,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예술가의 여행》, 《기억력 공부의 기술을 완성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움직이는 법》,《주도권을 결정하는 한마디 말》 등 다수의 문학과 인문교양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책 속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정이 다르다. 무슨 일을 해도 안 풀리고 어디서나 무시당하는 사람들, 존중받지 못하고 좌절하는 사람들. 심리학자들은 이를 만족감 위기gratification crisis라고 부른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엔 스트레스가 심장과 머리와 뼈를 강타한다. 번지르르한 말로 포장하고 연봉이나 신분의 상징으로 은근슬쩍 스트레스를 숨길 수는 있겠지만 진심으로 자신의 업무, 자신의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전력으로 질주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쓰러질 수밖에 없다.
-----p.44 <서로를 가깝게 느끼다> 中


놀랍게도 신체 접촉은 세상 어디서나 매우 유사한 감정을 일깨운다. 내가 상대를 이해한다는, 아니 적어도 이해할 마음이 있다는 신호로 통하는 것이다. 상대의 어깨에 기대거나 상대와 손을 맞잡으면 상대가 나를 인정한다는 기분이 든다. 내 기분을 상대가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다.
-----p.49 <서로를 가깝게 느끼다> 中


우리는 유독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다. 남에게는 감히 하지 못할 비판과 책망도 자신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며, 남이라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었을 실책도 자신이 저질렀다면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늘 자신에게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자신의 최적화에 힘쓰며 심지어 완벽까지 꿈꾼다. 프라이부르크의 사회학자 울리히 브뢰클링의 주장대로 이것은 우리 사회가 최근 들어 더 야심 차게 쫓고 있는 목표들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자신에게 공감하고 자신의 실수를 용인하고 용서할 때,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남에게 선사하는 만큼의 관심과 선의를 선사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더 튼튼해진다.
-----p.53 <자신에게 주는 선물: 자기 공감> 中


우리는 상대가 요구하지 않아도 메아리를 보낸다. 아기에게 밥을 먹이는 엄마는 마치 자기가 밥을 먹는 것처럼 이빨을 부딪치며 씹는 시늉을 한다. 자동차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운전을 할 수 없으면서도 자꾸만 발로 브레이크를 밟고 손으로 핸들 돌리는 시늉을 한다. 테니스 선생님은 학생이 공을 칠 때마다 옆에서 허공에 채를 휘두른다. 머리 위에 매달린 것을 잡으려고 애쓰는 사람을 보면 인간도 원숭이도 열심히 그 동작을 따라 한다.
-----p.69 <공감하는 몸> 中


파르마 대학교 신경 심리학자 지아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는 1990년대 초반에 공감하는 신경세포를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했다. 원숭이가 과일을 잡는 등 스스로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뇌에서 점화되는 특수 뉴런이 다른 원숭이가 같은 행동을 하는 광경을 지켜보기만 해도 역시 점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런데 이 뉴런의 동조가 어찌나 정확한지 원숭이는 상대의 행동이 어떤 목적인지도 금방 알아차렸고 그에 따라 그 목적에 맞는 신경센터가 뇌에서 활성화되었다.
실제로 원숭이도 사람도 상대가 병을 움켜잡는 동작만 보고도 병에 든 내용물을 마시려는 것인지 그 병을 벽장에 집어넣으려는 것인지를 별 어려움 없이 간파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스스로 행동을 하건 남의 행동을 관찰하건 점화되는 뇌 부위는 거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p.86 <공감의 유익함에 대하여> 中


신체 부위 중에서 등만큼 심리상태에 크게 영향을 받는 부위도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와 만성적인 짜증, 특히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등에 무서운 통증을 유발한다. 엑스레이 촬영으로는 전혀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등 통증은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 크게 좌우된다. 독일 국민의 70퍼센트가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등 통증을 호소한다. 하지만 만성적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 7명 중 6명은 신체적인 원인을 찾을 수 없다.
몇 년 전 스위스에서 이와 관련된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등 통증을 느끼지 않는 건강한 사람들의 척추를 촬영한 후 정형외과 의사와 방사선과 의사에게 그 사진을 보고 척추의 상태를 진단하게 했다. 당연히 의사는 그 사진의 주인공을 직접 만날 수 없었다. 사진을 본 의사의 1/3가량이 수술을 권하거나 다른 치료를 권했다. 하지만 사진의 주인공들은 통증이나 다른 증상을 전혀 호소한 바가 없었다. 그러니까 사진만 보고서는 환자가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다는 소리이다.
-----p.100 <공감의 유익함에 대하여> 中


인간은 ‘촉감의 공감’이 가능한 존재이다. 접촉 장면은, 특히 당혹스러운 접촉의 경우 쳐다보기만 해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가슴이나 다리, 그 밖의 부위를 무엇인가가 잡거나 그 피부에서 뭔가가 움직이면 우리 뇌의 전두엽과 두정엽 사이 어딘가, 소위 말하는 뇌의 2차 전운동 피질에서 촉각이 활성화된다. 그곳 대뇌피질에서 특수 신경세포가 접촉의 방식을 파악하고 분류하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번개처럼 빠르게 인식한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손길일까? 적대적이고 위협적인 행동인가? 무엇인가 스멀스멀 움직이는 느낌이 들면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각인된 기억이 위협의 신호를 전달한다. 하지만 그것이 부드러운 사람의 손길인지 거미나 뱀 같은 위험한 곤충의 움직임인지는 확실히 구분하지 못한다.
두뇌의 신경은 또 우리가 직접 그 접촉을 느끼는 것과 다른 사람의 접촉을 눈으로 보면서 그의 심정을 공감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실제로 두뇌 촬영을 통해서 보면 두 경우 모두 뇌의 흥분이 매우 비슷하게 진행된다. 바로 이것이 영화나 재미난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쉽게 감동하는 이유이다.
-----p.111 <공감의 유익함에 대하여> 中


“6세 아동은 자기 집단에 관대했다. 하지만 8세 아동에게서는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기 집단의 일원이 그랬건 낯선 사람이 그랬건, 이기주의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설사 낯선 사람일지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경우 그를 피해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공감이 발달한다.
또 이 연구팀은 정의감이 문화에 따른 것인지 인류 보편의 유산인지도 조사했다. 결과는 공감과 정의감은 어릴 때부터 나타나며, 경제학자나 정치가들이 생물학적 청사진을 이용해 무한 경쟁을 정당화하고 이기주의를 덕목으로 찬양하는 것과 달리 인간은 ‘천성적으로’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p.122 <공감도 나이가 든다> 中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은 또 다른 긍정적 특징이 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정시키며 체내 보상 시스템을 활성화시킨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부담으로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이 너무 과도하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주변에서 특히 친절하다고 소문이 난 사람, 다른 사람들을 잘 껴안고 그들에게 자신의 애정과 존중을 표하는 사람은 대부분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도 훨씬 더 크다.
스트레스와 관련된 독창적인 실험이 있다. 골치 아픈 사고력 문제를 풀게 하거나 갈등 상황을 눈으로 보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평소 다정다감하고 사교성이 좋은 사람은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능력도 더 뛰어나다. 이 사실은 혈중 옥시토신 농도에도 반영된다.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은 혈중 옥시토신 농도가 높고, 이는 스트레스의 영향력을 쉽게 줄일 수 있으며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를 더 심도 있게, 더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p.134~135 <사랑은 같은 파장으로> 中


이해와 공감을 받았다는 느낌이 얼마나 긍정적인 기분을 자아내고 사람을 관대하게 만드는지는 음식점에서 실시한 다양한 실험에서도 잘 드러난다. 바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바텐더가 손님과 신체적 접촉을 자주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손님 가까이 다가간다. 손님의 목에 팔을 두르기도 하고 근심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주기도 한다.
그런 식의 접촉은 친밀감을 키울 뿐 아니라 놀랍게도 손님의 음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말하는 접촉은 2차를 기약하는 엉큼하고 에로틱한 접촉이 아니다. 그저 손이나 팔, 등을 슬쩍 건드리는 작은 터치 정도이다. 그럼에도 연구 결과를 보면 바텐더나 종업원이 손님의 어깨나 팔꿈치를 슬쩍슬쩍 건드릴 경우 손님들이 술을 더 많이 마셨다.
-----p.155~156 <공감으로 성공을> 中


대부분이 남보다 착한 사람들이다. 이상주의자들이다. 가진 것을 다 주고도 더 줄 것이 없나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다. 늘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 남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사람들. 그러나 언젠가는 그 불길도 잦아든다. 더 이상 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감은 이렇듯 위험한 것일까? 상한선을 정하라고 경고해야 할까? 해가 될 정도, 자기 몸을 괴롭힐 정도의 공감은 안 된다고?
정말 그럴까? 공감이 정말로 그렇게 위험한 것일까? 하지만 공감이 우리 몸과 마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그렇다면 뭐가 잘못된 것일까? 공감을 대하는 자세? 기술? 몇몇 학자들은 공감과 동감을 구분한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공감은 나와 상대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동감은 나와 상대가 똑같은 생각을 하기를 원하고 강제하는 것, 즉 도를 넘어선 공감이다.
-----p.191~192 <공감에 지친다?> 中


분자 생물학자이자 불교 승려인 마티유 리카르Matthieu Ricard는 이런 부정적 공감을 극복하고 진정한 참여를 경험하기 위해 직접 자신의 두뇌를 촬영했다. 그는 루마니아 고아들을 촬영한 BBC 다큐멘터리를 본 후 그 아이들의 고통을 온전히 공감하려 애썼는데, “얼마 못 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감정이 바닥난 것 같은 느낌, 번아웃과 아주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그는 완전히 탈진했다. 이제 선택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만두고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공감의 형태를 바꾸든가 둘 중 하나였다. 그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심리 상태를 바꾸었다. 여전히 아이들의 영상이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이제는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는 그 상태를 “부정적인 감정 대신 강한 관계친화적 동기와 결합된 따듯하고 긍정적인 상태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그 아이들에 대한 자연스럽고 무한한 사랑을 느꼈고 그들에게 다가가 위안을 줄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아이들과 나의 거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리카르는 충격적인 그날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낯설다고 느낄 테지만 그의 이 말은 ‘희생적인’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다른 두 가지 반응을 정확하게 짚어 내고 있다.
-----p.193 <공감에 지친다?> 中


인류의 역사는 비열함과 기만의 연속이며 잔혹함과 폭력의 연쇄이다. 적의 두개골을 내리치던 석기시대의 돌도끼에서 지하 감옥의 교묘한 고문기술과 수십만의 목숨을 빼앗은 대학살에 이르기까지 잔혹과 유혈의 역사이다. (중략)
이런 끔찍한 만화경에서 인간의 선함을 찾기란 쉬운 게임이 아니다. 그러자면 인간이 오래 고민하지 않을 때 ‘천성적으로’ 샘솟는 그것에 주목해야 한다. 고민하지 않을 때 인간은 친절하고 인간적이다. 자기에게 아무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데도 타인을 위해 힘쓰고 심지어 목숨까지 건다. 달리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남을 돕고 남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추진력이기 때문이다. 그 추진력이 아무리 대가가 커도 남을 도와야 한다고 속삭인다.
-----p.216 <끝말> 中

목차

시작하는 말
공감의 공간
인간의 선한 면
서로를 가깝게 느끼다
자신에게 주는 선물, 자기 공감
공감하는 몸
공감의 유익함에 대하여
공감도 나이가 든다
사랑은 같은 파장으로
당신은 날 이해 못 해, 공감의 덫에 빠진 남과 여
공감으로 성공을
흔적을 찾아서: 공감은 어디서 발현되나
이윤의 독재와 의료계의 공감 부족
공감에 지친다?
선과 악의 저편에서
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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