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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295020 / 228쪽 129 x 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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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사노 요코의 귀거래, 기타가루이자와 일기 ‘산도 강도 부엌도, 몇 년 과거도 수천 년 과거도,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시선으로 보는 저자의 시선에 감동을 느낀다.’ -가쿠타 미츠요 사노 요코는 60세 무렵부터 번잡한 도쿄를 떠나 일본 최초의 컬러 영화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의 촬영지인 군마 현의 산촌에서 생활했다. ‘대학촌’이라고 불리는 기타가루이자와에서의 약 5년간의 전원생활을 주로 다룬 연작 에세이집이 바로 [어쩌면 좋아]이다. [어쩌면 좋아]는 기타가루이자와 지역 별장에 사는 사람들을 비롯해 지역 토박이들과의 ... 사노 요코의 귀거래, 기타가루이자와 일기 ‘산도 강도 부엌도, 몇 년 과거도 수천 년 과거도,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시선으로 보는 저자의 시선에 감동을 느낀다.’ -가쿠타 미츠요 사노 요코는 60세 무렵부터 번잡한 도쿄를 떠나 일본 최초의 컬러 영화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의 촬영지인 군마 현의 산촌에서 생활했다. ‘대학촌’이라고 불리는 기타가루이자와에서의 약 5년간의 전원생활을 주로 다룬 연작 에세이집이 바로 [어쩌면 좋아]이다. [어쩌면 좋아]는 기타가루이자와 지역 별장에 사는 사람들을 비롯해 지역 토박이들과의 교류를 그린 ‘커뮤니티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사노 요코처럼 60세 이상이므로 ‘초로初老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좋아]는 일본 근대 문예 평론의 창시자라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이름을 딴 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사노 요코의 삶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가슴 먹먹하게 하는 통찰이 잘 녹아 있는 연작 에세이집이다. 사노 요코는 젊었을 때부터 죽음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도 실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노 요코가 창작 초기부터 죽음이라는 주제에 몰두했던 것에는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두 남자인 아버지와 어려서 죽은 오빠의 영향이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불화했던 어머니와의 관계와 함께 그녀의 삶과 창작을 지배한 원초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와의 불화는 오빠와 아버지의 때 이른 죽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어쩌면 좋아] 역시 사노 요코의 에세이답게 전체적으로 밝음을 기조로 하고 있으면서도 상실과 애수의 터치가 곳곳에 섞여 있다. 유머를 잃지 않는 사노 요코의 에세이들 속에는 그녀가 툭툭 던져놓은 죽음에 대한 단상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죽음과 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는데도 그 분위기는 전혀 어둡지 않다. 오히려 하나하나가 다 재미있다. 그리고 재미 뒤에는 한 편의 이야기를 읽은 뒤 책을 잠시 덮고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독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일본의 한 후배 작가가 표현했듯이 이건, 오직 사노 요코만이 할 수 있는 기예다. 기타가루이자와의 산촌에서 사노 요코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이 펼쳐놓는 축복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필요한 것은 돈을 주고 사서 써온 자신의 삶을 대지에 단단하게 발을 딛고 선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보고, 몸에 조그만 이상만 있어도 신이 나서 병원으로 달려가는 자신과 미련할 정도로 느긋한 농부의 아내를 비교하며 도시의 삶 속에서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상이 아닐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머윗대로 조림을 만들고, 한 포기 수선화를 마당에 옮겨 심고, 자연의 시간이 담긴 한 통의 꿀을 맛보며 감동에 젖고 위대한 대자연의 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촐랑맞은 존재인지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하게 펼쳐 보인다. 요코 아줌마의 나이 어느덧 예순 줄. 쏜살같은 세월은 아직도 일곱 살이라고 마음 한구석에서 느끼는 자신을 무참할 정도로 변화시키고 이러한 변화는 ‘엣, 설마, 내가 예순 살, 거짓말?’ 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마음이 들게 하지만 어느 누가 안 그럴까. 이런 게 인생이구나, 이런 게 삶이구나, 사기 당한 기분에 젖는다. 지금의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는 자신이 예순이든 여든이든 별다를 게 없는 할머니로 보일 것이라는 씁쓸함은 지우기 어렵지만 결국 인생이란, 아니 생명이란 이름의 모든 존재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던가. 대자연 속에서 자연을 닮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노 요코는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한 지혜를 일상의 생활 속에서 배워 간다. 자기연민에 빠질 새도 없이 생명을 가꾸고 돌보는 농부들의 담담한 모습에서 진한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도 모종을 얻으며 이것이 내년에 잘 자랄지 걱정하고 생각보다 잘 자라면 기뻐하자고 마음먹는다. 모두가 느끼는 삶의 허무를, 그리고 그 삶의 허무를 넘어서려는 생명의 의지를 그 마무리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되어 사노 요코는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한다. ‘언제 죽어도 좋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 사노 요코의 에세이는 육성 그대로다. 가식이 없다. 아는 체하지도 않고, 싫으면 싫다고 쓴다. 그런데도 대단한 것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기예다. 사노 요코 말고는 누구도 할 수 없는 기예. -가쿠다 미츠요(작가) 나는 ‘다정한 게 미덕’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재미없는 인간이라서 사노 요코 씨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엄청나게 엄청나게 부끄러워진다. -가와카미 히로미(작가) 사노 요코 씨는 마음이 넓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너무도 너무나도 멋진 여성이었습니다. -사와노 히토시(그림책 작가) 그랬다. 요코 씨는 맨몸으로 ‘세상의 바람’에 맞섰다. 슝슝 바람에 날려 몸이 얼고 온몸이 긁힌 상처투성이인데도 세간에서 말하는 지적인 자기 방어의 옷을 입으려 하지 않았다. -구도 나오코(그림책 작가) 세상에는 희망밖에는 쓰여 있지 않은 거짓 위안 범벅인 책들로 넘치지만 사노 씨는 결코 절망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의 수많은 그림책과 에세이에는 리얼함이 가득가득하다. -사이바라 리에코(만화가) 봉천 출신의 아베 코보의 ‘철학성’, 신경에서 성장한 오자와 세이지의 ‘세계성’, 대련에서 중학교를 다닌 야마다 요지가 만들어낸 주인공 ‘토라 상’이 자아내는 ‘정처 없는 쓸쓸함’, 대륙 출신자들의 표현에 공통되는 무언가를 그 마지막 세대였던 사노 요코의 문학은 갖고 있다. -세키카와 나쓰오(작가)

지난주에는 사토 부부와 함께 실버 할인으로 <해리 포터>를 보러 갔다. 다 같이 꺄아 꺄아, 신이 났다. “굉장하지, 800엔 득봤어.” “아 신나.” “영화 보러 계속 오자, 웁하하하.” 하지만 나는 아랫배가 불편했다. “실버”라고 내가 외쳤을 때 티켓 파는 아가씨는 내 얼굴을 보고 납득한다는 얼굴로 쓰윽 표를 내밀었다. 나는 ‘당신 나이 속이는 거 아냐?’ 하고 의심의 눈으로 봐주길 바랐는데.
나는 놀랐다. 이제 다른 사람의 눈에도 내가 실버로 보이는구나. 어느새 예순셋이 된 거냐고. 난 몰랐어. 정말로 몰랐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살고 있다. 사는 동안은 살아가는 것 말고는 달리 없다. 산다는 건 뭐냐. 그래, 내일 아라이 씨네로 커다란 머위 뿌리를 나눠받으러 가는 거다. 그래서 내년에 커다란 머위가 싹을 낼지 안 낼지 걱정하는 거다. 그리고 조금 큰 어린 꽃대가 나오면 기뻐하는 거다. 언제 죽어도 좋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도대체 몇 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걸까. 혼란스럽기는 아홉 살 때보다 더하고 바닥은 더 깊어질 뿐이었다. 인간은 조금도 똑똑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똑똑한 녀석은 태어났을 때부터 똑똑하다. 바보는 태생이 바보고,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바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바보는 똑똑한 놈이 경험하지 않는 바보의 인생을 계속해서 되풀이한다. 마흔이든 쉰이든 아홉 살 때와 다르지 않은 후회와 기쁨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바보의 인생을 사는 쪽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아라이 씨 부인이 밭에서 골판지 상자를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옥수수를 따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무릎이 아파서” 하기에, “그럼 의사한테 가봐야죠” 하고 내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러나 아라이 씨 부인은 “응, 옥수수가 끝나면” 하고 웃으며 말하고 일을 계속했다. 나는 왜 저렇게 미련하게 굴지 하고 조바심을 치면서도, 정말은 어디가 조금만 아프면 바로 신이 나서 의사한테 달려가는 내가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라이 씨 부인은 나처럼 마구 덤벙대면서 다급하게 살지 않는 것일 뿐이다.
통조림을 한 숟가락 덜어내어 작은 접시에 담아서 후네의 코끝으로 가져갔다.
냄새를 맡고 나서 후네는 한 숟가락 분량을 다 먹었다. 나는 용기가 나서 한 숟가락 더 떠놨다. 후네는 입을 다문 채 내 눈을 봤다. “그래, 어서 먹어”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내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고양이를 예뻐할 때 내는 목소리가 전혀 아니다. 나는 평생 예뻐할 때 내는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평소의 목소리밖에 안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다들 다른 목소리를 내던데. 고양이는 나도 그런 목소리로 말을 걸어주길 바랄까.
“자아, 한 입 더 먹어봐.” 평소의 목소리로 나는 또 말했다. 후네는 내 눈을 보면서 혀를 내밀어 흰살을 딱 한 번 핥았다. 내 목소리에 열심히 대답하려고 했다. 네가 이렇게 착한 애였는지 몰랐다.
사토 군은 세상 여자를 알기 쉽게 둘로 나눈다.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가 나와 “어떤 사람?” 하고 물으면 “그게 미인이야”라든가 “미인은 아니지만”이라고밖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어느 날 밤, 아내 마리코가 홀로 일어나 앉아 침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텔레비전 속에서 ‘미인’이란 말이 나온 순간, 푹 잠든 줄 알았던 사토 군이 벌떡 일어나서 “어디?” 하고 물었다고 한다.
어쩌면 남자 일반은 매일 이런 기분일까. 나와 베컴 사이에는 그 어떤 관계도 생길 일이 없다. 그런 관계를 가지고 싶은 마음조차 없지만, 그를 보면 뱃속 저 밑바닥에서부터 작은 기쁨이 거품처럼 보글보글 솟아오른다. 나이를 생각해. 사는 나라도 다르단다. 하지만 종종걸음으로 전철 안의 미인 앞에 서는 남자 역시 어떻게 해보자고 하는 게 아니고 단지 작은 기쁨을 온몸에 가득 채운 후, 다시 종종걸음으로 전철에서 내리는 것뿐이리라.
이것은 성욕하고도 무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순넷의 여자에게 성욕이 있을지 어떨지, 스스로도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억지로 파고 파고 마구 파면 강바닥의 사금 한 알 같은 것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그것을 사용하라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베컴님을 위해서 사용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꽃과 봉오리가 많이 붙어 있었다. 내가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할 수 없구나’ 하고 가져와준 걸까. 후루야 씨는 “조용히, 조용히, 꽃이 눈치 채지 않게”라고 말하며 살그머니 조심스럽게 내게 수선을 건넸다.
“해가 잘 드는 곳이 좋아요” 해서, 걱정이 됐다. 우리 집은 해가 잘 드는 곳이 적다. 살그머니 살짝 건네받은 수선을 들고 히죽거리며 멍청히 서 있었더니, 후루야 씨는 “꽃한테 장소가 바뀌었다는 걸 들키지 않게 해야 해요” 하고 한 번 더 말하고 에리코 씨와 함께 돌아갔다.
나는 살그머니 바로 심었지만 걱정이었다. 수선은 정말로 눈치채지 못할까. 나는 확실히 하기 위해서 “너, 어디에도 옮겨 심지 않았어” 하고 꽃을 향해 말했다.
이듬해 봄이 되었을 때 꽃이 세 송이 피었다. 에리코 씨 집에서 피었을 때보다 조금 작은 것 같았다. “너,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라 에리코 씨 집 마당이야” 하고 하얀 작은 꽃을 향해 다시 한 번 말했다. 역시 햇볕이 조금 부족했나.
나는 받아온 꿀을 보물처럼 아껴가며 아주 조금씩 맛봤다. 버터 토스트에 벌꿀을 발라서 먹으니 황홀했다. 물엿이 들어간 꿀을 사서 먹는 전국의 사람들을 향해 “앗하하하” 하고 웃고 싶어졌다.
손님이 오면 나는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은혜라도 베풀듯이 ‘진짜 벌꿀’을 내놓고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다 발휘해 자랑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벌꿀을 푹 떠서 빵 위에 두텁게 바르는 남자가 있으면, 나는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쥐고 꼼짝 않고 째려본다. 너, 시중 잡꿀과 진짜 꿀의 차이를 아느냐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일흔일곱 살의 어머니를 유럽여행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스위스의 융프라우 산자락, 하이디가 뛰어놀았을 것 같은 마을을 내려다보며 어머니가 “여기서 죽어도 좋아”라고 기뻐했을 때,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져 어머니에게 명중해서 절명했다면, 어머니는 행복한 채로 천국에 갈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일이 때때로 있다. 그로부터 11년, 어머니는 난 누구? 여기는 어디? 지금은 언제? 하고 말하고 또 말하는 부조리극의 주인공처럼 되어버렸다. 어쩌다 진짜 부조리극을 보게 되면, “뭐, 그 정도 가지고 호들갑이냐. 입으로만 부조리극을 하는 것들, 우리 엄마를 보면, 졌다, 미안, 하고 머리 숙일걸” 하고 나는 독살스러운 말을 속으로 퍼붓는다.
20분을 더 달리자 무서움이 어둠 그 자체가 되어 나를 짓눌러왔다. 그 무서움은 곰이 튀어나오거나 권총을 든 강도가 튀어나오거나 하는 종류의 무서움이 아니었다. 왠지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만약에 곰이 나왔다면 “아아, 다행이다, 나 무서워” 하며 곰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정도로 요사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무서움이었다.
어젯밤에 텔레비전이 고장 났다. 아무리 리모컨을 눌러도 텔레비전이 켜지지 않았다. 리모컨의 건전지를 바꿔 넣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텔레비전이 고장 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손에 든 리모컨을 다시 보니까 리모컨이 아니라 전화기였다.
1년쯤 전이었을까. 냉장고를 열고 오싹했다. 처음 열었을 때는 분명 씻은 커피 잔이 세 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참 후에 냉장고를 다시 여니 씻어 놓은 절구와 나무공이가 놓여 있었다.
아라이 씨는 기억력이 매우 좋은 사람으로, 나는 ‘아라이 씨는 학자가 될 수 있겠어’ 하고 때때로 생각했다. 그런 아라이 씨가 “나는 한 번 한 이야기를 같은 사람에게 또다시 이야기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있어요”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아라이 씨도 그런 일이 있나, 싶었다. 그런데 “나는 같은 얘기를 같은 사람에게 또 다시 이야기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적어도 세 번은 나한테 말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어렸을 때 10엔을 훔친 벌로 산 속에 있는 나무에 묶였었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그때마다 아라이 씨조차 건망증이 다소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아아, 나는 왜 다른 사람의 건망증이 이렇게 기쁠까.
“어젯밤에 뭘 먹었는지를 기억할 수 있으면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어젯밤에 뭘 먹었는지 기억해내려고 해봤는데 엄청 시간이 걸렸다.
다른 사람에게 받은 것도, 준 것도 바로 잊는다. 언젠가 마리코한테 어디선가 받은 장아찌를 반 나눠서 가져갔더니, “뭐야, 이거 내가 준 거잖아” 했다.
코짱의 죽음이 나에게 가져온 쇼크, 그것은 지금까지 전혀 느낀 적 없던 외로움이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하고도, 오빠가 죽었을 때하고도 달랐다. 우리는 늙어가고 있으며 그래서 누구에게나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다. 앞으로 계속 산다는 것은, 내 주위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계속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그런 외로움인 거다.
한 달 전에는 바닥을 두드리며 울었는데, 지금 나는 텔레비전의 바보프로그램을 보며 큰 소리로 웃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잔혹하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계속 웃는다.
이제 인류는 장로의 지혜란 것이 없어졌다. 장로는 주름투성이어야 한다. 장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장로는 괴로운 인생을 적어도 40년은 음미하면서 씹는담배 같은 쓴 즙을 계속 빨아야 한다. 그 쓴 즙이 인생의 지혜인 거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장로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 자체가 파괴되어 버린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계속 개인으로 싸워야 한다. 지금 사회에서는 늙은 몸과 마음은 방해물일 뿐이며, 장로라는 것은 너무 오래 살아서 세금만 거덜 내는 존재인 거다.
옛날에 일본 공산당원 중에 이토 리쓰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기의 사상과 신념에 따라서 일본을 버리고 러시아인지 중국인지로 건너간 사람이었을 것이다.
꽤 오래전 이야긴데, 그 사람이 늙어서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뉴스가 신문에 실렸다. 돌아오면 재판을 받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귀국한 이유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서라는 거였다. 그때 신문에서 그 기사를 읽고 나는 별안간 깨달았다. 어떠한 사상도 신념도 믿을 만하지 못하다. 머리로 생각한 것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
원래 고향이라는 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나지만, 그 기사를 본 이후로 머리로 생각한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뢰를 보내지 않게 됐다. 생각하는 머리도 없으므로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야만인인 채로 어른이 되고 야만인인 채로 죽으리라.
“비싸요, 처음 심어서 팔 때까지 최저 5년은 키워야 하는 거라고요. 인삼은 조금씩밖에 안 자라요. 우엉하고는 달라요. 뭐에 쓸 건가요?” “요리요.” “호오.” “5백 그램만 안 파실래요?” “으-음, 5백이라. 부인, 어디 살아요?” “기타가루이자와요.” “아- 기타카루이자와, 나 거기 가본 적 있어요. 거기, 쓰치야라는 쌀집이 있지요?” “있어요, 있어.” “그럼, 한달음이지. 부인, 바깥양반더러 태워달라고 해서 와요.” “남편이 없는데요...” “헛, 혼자요?” “네.” “남편이 없군요. 흐응-”
나는 왠지 당황했다. “있었어요, 있었어요. 전에는 있었어요. 둘이나 있었어요.” ...“엇, 둘, 호오-. 둘씩이나!!”.... 어쩐지 기분 나쁜 침묵이 이어졌다.
이것은 사기?
고맙다
오늘이 아니라도 좋아
무지개를 바라보며 죽는다
목소리는 배에서부터 내라
예사롭게 죽다
그런 거야?
그건, 그건 말이지요
그렇다면 괜찮지만
헛간, 헛간
보통이 아니야
어쩌면 좋아
아무것도 몰랐다
산의 백화점 호소카와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토끼
수수께끼의 인물 하야시 씨
돈으로 산다
후기를 대신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