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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8933197 / 244쪽 140 x 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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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여든의 세월이 전하는,
삶의 끝이 오니 보이는 것들
사실 고백부터 하자면, 이 책은 만든 이로서는 매우 부끄러운 책입니다. 계산이 다분히 앞섰던 책이었으니까요. 이 책은 멘토가 절실한 시대, 그러나 참된 멘토를 만나기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내 아비의 일기장’과 같은 느낌으로 작가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얻은 통찰을 전하면 의미도 있고 잘 팔리지 않을까, 그저 얄팍한 계산으로 시작한 책이었습니다.
그렇게 김욱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오랜 기간 언론사에서 일하셨고, 일흔이 넘어서야 진정으로 자신이 원했던 ‘...
여든의 세월이 전하는,
삶의 끝이 오니 보이는 것들
사실 고백부터 하자면, 이 책은 만든 이로서는 매우 부끄러운 책입니다. 계산이 다분히 앞섰던 책이었으니까요. 이 책은 멘토가 절실한 시대, 그러나 참된 멘토를 만나기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내 아비의 일기장’과 같은 느낌으로 작가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얻은 통찰을 전하면 의미도 있고 잘 팔리지 않을까, 그저 얄팍한 계산으로 시작한 책이었습니다.
그렇게 김욱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오랜 기간 언론사에서 일하셨고, 일흔이 넘어서야 진정으로 자신이 원했던 ‘작가의 길’을 걷고 계신 분이었기에 애초의 의도와도 잘 어울리는 분이었습니다. 원고 청탁을 드렸고, 원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원고를 받아보고는, 두려움이 덜컥 앞섰습니다. ‘이 책을 우리가 내도될까?’ 싶은 마음과 함께 말이죠. 애초에 기대했던 아버지의 일기장이라기보다는…… 뭐랄까요, 죽음을 앞둔 한 노인의 유언장과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얄팍한 머리로 상상했던 그런 수준의 글이 아니었습니다. 가슴을 마구 때리다 못해 울리는 그런 글이었으니까요. 마흔이 넘은 제가 감히 범접하기 힘든 세월의 깨달음이 그의 삶 속에서 후회와 반성이라는 큰 이야기 줄기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만드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이 책을 소개하는 글 역시 매우 고민스러웠습니다. 감히 마흔이 갓 넘은 제가 노년과 죽음, 이상과 꿈, 현실과 일, 아비와 아들, 외로움과 고독, 인간의 욕망과 같은 삶을 관통하는 묵직한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는 그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손에 잡히지 않았으니까요.
고민 끝에 결국 정공법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유독 제 마음을 끌었던 한 챕터를 소개하기로 말이죠(하지만 이 한 꼭지조차 그의 글맛을 잘 살려 설명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로 시작합니다. 그는 열두 살 때 남대문 뒤편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했는데, 당시의 감상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열두 살 소년의 죄의식이 ‘죄와 벌’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고른 책이었는데, 막상 줄거리는 돈 없는 가난한 고학생이 인정머리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고리대금 노파를 죽이러 갔다가 노파에게 빌붙어 사는 천치 여동생까지 두 명을 때려죽여 놓고 괴로워하는 이야기였다.’
그가 다시 이 책을 읽게 된 건 혈기왕성한 20대가 되어서였습니다. 이야기는 물론 처음 읽었던 그때와는 한참이나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십여 년 뒤에 다시 읽게 된 『죄와 벌』에서 라스콜니코프의 고뇌와 갈등은 친구들과 막걸리 사발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쓰라리게 내뱉는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악독한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았다. 그 노파는 고리대금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전당포 노파로, 어차피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였다. 노파의 돈은 젊고 똑똑한 라스콜니코프의 삶에서 더욱 유용하게 쓰일 것이며,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의 미래는 돈의 가치를 보다 찬찬하게 빛내는 길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중략)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의 말미가 싫었다. 라스콜니코프가 소냐라는 여성에게 감화되어 자신의 범죄를 깨닫고 법정에서 순순히 죄를 자복하는 대목 말이다. 겨우 여자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시베리아 유형지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나로 하여금 그녀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알코올중독에 걸린 아버지, 폐병에 걸린 계모,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배다른 동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거리에서 몸을 파는 그깟 창녀 하나 때문에…….’
그런 저자가 이 책을 다시 펼친 건 여든이 넘어서였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말이죠.
‘나의 아버지는 기분 좋은 날이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는 젊은 시절 도쿄에서 음악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그런데 나의 성장기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서울역 근처에서 냉면집을 운영했던 모습밖에 남아있지 않다. 나는 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켤 때면 집 밖으로 나가 버리곤 했다. 그때 나는 소냐가 자신의 몸을 팔아 산 빵을 동생들에게 건네며 지었던 억지스러운 미소를 아버지의 바이올린 소리에서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런 바이올린 소리도 내가 대학에 입학한 뒤로는 사라졌다. 아버지가 바이올린을 팔아 내 대학등록금에 보탰기 때문이었다. (중략)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라스콜니코프가 왜 소냐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왜 그녀 앞에서만 비로소 죄의식을 느꼈는지. 여든이 넘어 꺼내 읽은 『죄와 벌』은 내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질문에 답을 준다. 라스콜니코프가 소냐를 사랑하게 된 것이야말로 그가 저지른 살인에 되한 죗값이었음을.’
그러면서 그는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습니다.
‘소냐에 대한 나의 사랑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이 차가운 마음이 빨리 데워지지는 않았을까, 허무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이 서글플 따름이다.’
왜 이 책을 소개하는데 하필 이 챕터냐고 제 후배가 묻더라고요. 흠……. 저는 이 챕터를 읽으면 당신은 허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이제는 누군가의 아비가 된 두 아들 걱정을 입에 달고 사는 제 어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실은 이런 글을 읽을 때만 그런 어머니를 떠올렸다가도 반나절도 못가 잊어버리는 못된 아들놈인 저란 인간이 미워서인 것이 보다 솔직한 대답이겠죠).
이 책의 에필로그 제목은 ‘작별을 준비하다’입니다. ‘작별’이라는 단어가 제 삶에 이렇게 서글프게 다가왔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진정 진심으로 들려왔습니다. 원고 마무리 과정에서 저는 김욱 선생님께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와 기력을 의식했을 때, 살아온 시간을 진솔하게 되돌아보며 독자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써내려갔습니다. 내가 저지른 후회와 실수, 그리고 한편으로 여전히 품고 있는 열망들이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아비처럼 제 삶을 헛되이 살지 않겠다며 글 쓰는 길을 쫓고 있는 나의 아들과, 산다는 것의 재미와 긴장에 무감각해진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이 책을 권합니다. 특히 산다는 것의 재미와 긴장에 무감각해진 저와 같은 많은 이들에게 말입니다.
-이 책의 에디터
책속으로 추가
지금 내 나이라면 죽어도 호상이라느니, 천수를 누린 것 아니냐는 말들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는다. 나의 오늘은 그간 경험했던 수없이 많은 ‘오늘’과 바꾸지 못할 단 하루다. 갓 태어난 생일날의 오늘, 스무 살의 오늘, 마흔 살의 오늘, 여든 살의 오늘은 전혀 다르지 않다. 어제보다 못하고 내일보다 덜 소중한 오늘은 없다. 그러므로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감히 입에 담지 못한다. 그따위 거짓말로 내가 살아온 시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나는 더 살고 싶은 것이다. 계속해서 무엇인가 뜻 깊은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오늘을 반복하고 싶다. (p.209)
내가 죽은 후 화장터 가마에서 한 줌 뼛가루로 회귀한 아버지를 품에 안고 외로이 호국원 언덕길을 오르며 난생처음 죽음과 마주하게 될 아들에게 아비로서의 가르침은 단 하나, 누구도 너의 생애에 너를 대신해 변명과 이유를 부연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누구도 너의 생애에 너 이상의 영향력과 지시를 내리지 못하도록 당당하게 살아가라.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는 너의 세계가 비록 누추하고 보잘것없어 너 자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내보여줄 수 없을 만큼 비참하더라도 책임과 연유를 너 자신 외에서는 찾지 말아주기를……. 이 가르침이 비록 아들의 귀에는
일흔 살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을 스무 살의 내가 하지 못했을 리 없다. 단지 나는 비겁했을 뿐이다. 스무 살에 이루지 못한 꿈을 서른에, 마흔에, 쉰에, 예순에도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후회하고 아파하며 삶의 끝자락에서 떠나버린 꿈이라 도 되돌려볼까, 앙상한 고목나무 가지 같은 팔꿈치를 휘두르며 빼곡하게 채워져 버린 시간 사이에서 아직 내 손이 닿지 않은 흰 종이 한 장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p.20)
박탈감과 모멸감이 반사적으로 내 안에서 무엇인가를 일깨웠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아가 무엇을 하며 죽음을 기다릴 것인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결국, 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빈털터리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삶의 전부였다. 희망을 품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몰라도 꽤 많은 것을 가지고 누려봤던 사람은 그것들을 잃게 되었을 때 깨닫게 된다. 상실이라는 극단의 망각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사랑했던 기억, 감사했던 기억, 성취와 희열의 감각은 집과 돈과 그것들을 소유라는 울타리 안에 억지로 편입시켰던 세월을 지켜주지 못한다. (p.57)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고통을 유발하는 통점이다. 하지만 내가 그 욕심을 버리면 나는 세상에 널린 무명작가들, 시민문화센터에서 글짓기를 배우는 아주머니들, 몰래 시인을 꿈꾸는 재수생이 되어버린다. 내가 꾸린 글밭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독자의 비위를 맞추고,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 생각을 강요당하고, 그 나이가 되었으니 당연히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겠느냐는 억측에 시달린 기생의 결과물이다. (p.78)
인간은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생명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단순화시키려고 한다. 오죽하면 거대한 바닷물을 이루는 그 많은 호흡의 뒤섞임을 단순한 분자기호 몇 개로 대상화시켜 버리지 않았는가. 바닷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서도 바다를 이루는 물의 분자를 알고 있으므로 바다에 대해서는 더는 궁금한 게 없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들이 필요에 따라 내가 꺼낸 가면만 보고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 위기를 모면하는 지혜가 되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상은 내가 뒤집어쓴 가면으로 나의 전부를 판단해버린다. 그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가면 쓴 내 모습 외에는 봐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 정도에서 그친다면 다행이다. 용기를 내어 나의 진짜 얼굴을 드러냈을 때 세상은 분노하며 나를 거짓말쟁이로 내모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p.107)
사람이 밉고 싫어져 사람 사는 곳으로는 창문조차 내지 않았다는 남자의 속 깊은 감정까지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관계처럼 기준이 모호하고 시비가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웃고 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모두가 나를 위해 울어줄 때, 정작 나는 그 눈물이 달갑지 않을 때가 있다. 그 광범위한 오류의 특성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단일화시키려는 의지에서 옳지 못한 정치사상이 등장하고, 언론은 여론을 호도하는 주범이 되고, 비열해진 종교는 서로가 원하는 종말이 다르다는 근거로 테러를 순교로 자각한다. (p.171)
사랑도 다르지 않다. 풍파와 고비를 버텨내고 또 버텨내 준 사랑 중에 일부만이 질기게 살아남아 그 사람과의 결혼생활을 유지시킨다. 비록 그 열매가 작고 씁쓸하더라도 거기에는 세상 그 어떤 과정에서도 맛볼 수 없는 맛이 숨어 있다.
그만큼의 수고가 고작 작은 결실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허무해 할 이유는 없다. 우리 삶에 허무하지 않은 것이 어디 하나둘인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내와 수고가 배신해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히 여기고 있다. (p.182)
나는 『15소년 표류기』를 읽으며 부표처럼 떠돌기를 그치지 못하는 나의 삶을 떠올리고 있다. 나는 분명 열심히 살았다. 지난날에 아쉬움은 남아도 부끄럽지는 않은 까닭이다. 열심히 살기는 살았는데 바깥만 보았다. 바깥의 상황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바깥의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내 안의 ‘나’, 무인도처럼 내 안에 감춰진 진짜 ‘나’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퇴직을 하고, 사람들이 곁을 떠나고, 거울 속 내 모습에서 젊음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길 없는 지금에서야 ‘나’를 찾게 되었는데, 서글프게도 먹다 남긴 옥수수 알맹이만큼이나 짜글짜글하다. (p.191)
지금 내 나이라면 죽어도 호상이라느니, 천수를 누린 것 아니냐는 말들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는다. 나의 오늘은 그간 경험했던 수없이 많은 ‘오늘’과 바꾸지 못할 단 하루다. 갓 태어난 생일날의 오늘, 스무 살의 오늘, 마흔 살의 오늘, 여든 살의 오늘은 전혀 다르지 않다. 어제보다 못하고 내일보다 덜 소중한 오늘은 없다. 그러므로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감히 입에 담지 못한다. 그따위 거짓말로 내가 살아온 시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나는 더 살고 싶은 것이다. 계속해서 무엇인가 뜻 깊은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오늘을 반복하고 싶다. (p.209)
내가 죽은 후 화장터 가마에서 한 줌 뼛가루로 회귀한 아버지를 품에 안고 외로이 호국원 언덕길을 오르며 난생처음 죽음과 마주하게 될 아들에게 아비로서의 가르침은 단 하나, 누구도 너의 생애에 너를 대신해 변명과 이유를 부연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누구도 너의 생애에 너 이상의 영향력과 지시를 내리지 못하도록 당당하게 살아가라.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는 너의 세계가 비록 누추하고 보잘것없어 너 자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내보여줄 수 없을 만큼 비참하더라도 책임과 연유를 너 자신 외에서는 찾지 말아주기를……. 이 가르침이 비록 아들의 귀에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했던 아비로서의 기억을 가슴 아프게 끌어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늙은 남자의 씁쓸한 자책처럼 들려 비웃고 싶어질 수도 있겠으나 반드시 기억해주기를 나는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p.236)
목차
프롤로그. 오래된 육신의 낡은 생각들을 정리하며
1.
너희 젊은이는 꿈을 꾸리라
삶은 언제까지 두려워질까
상대에게서 끌어내는 나, 그것이 사랑
소냐 마르멜라도바를 향한 사랑 이야기
2.
그 많은 빚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내 영혼의 붉은 궁전
견뎌내는 힘을 기르다
3.
너는 왜 그곳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나
성장이 멈춘 곳으로부터의 기억
극이 끝날 때까지 가면을 벗지 아니하리라
4.
미완의 남자, 미완의 인생
창조적 실패학
늦음은 증명되지 않는다는 고쿠라의 믿음
발밑을 바라보며
5.
개의 죽음
남으로 창을 내겠소
검붉게 익어가는 블루베리처럼
졸혼(卒婚)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
여든 살 소년 표류기
풀리지 않는 욕망의 상속
6.
자기 타살을 위한 충동
선배에게 주어지는 희생의 의무
자신감에 대하여
공존이라는 두 얼굴
에필로그. 작별을 준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