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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으로 읽는 예수

김경윤 저 | 삶창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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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6550685 / 188쪽 130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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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는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낡은 틀에 갇혀 예수를 사유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인용한 요한복음 15장 15절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예수\u003d친구’론을 제안합니다. ‘예수\u003d친구’론은 그리스도론이 가지고 있는 타율적이고 외재적인 담론을 대신할 자율적이고 내재적 담론의 형성에 유용합니다. 무엇보다 현대사회에 확산될 수 있는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u003d친구’론은 기존의 배타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해온 기독교의 해악을 제거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예수\u003d친구’론은 적어... 이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는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낡은 틀에 갇혀 예수를 사유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인용한 요한복음 15장 15절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예수\u003d친구’론을 제안합니다. ‘예수\u003d친구’론은 그리스도론이 가지고 있는 타율적이고 외재적인 담론을 대신할 자율적이고 내재적 담론의 형성에 유용합니다. 무엇보다 현대사회에 확산될 수 있는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u003d친구’론은 기존의 배타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해온 기독교의 해악을 제거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예수\u003d친구’론은 적어도 권위나 배타에 의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 ‘예수\u003d친구’론에 따라 살아가는 현대 종교인을 저는 그리스도인(\u003d기독교인)이라는 말 대신에 ‘예수인(Jesusian)’이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인입니다. 예수, 내 친구! 지저스, 아미고(Jesus Amigo)! 예수는 내 친구 《삶이보이는 창》에 3년간 연재하는 동안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경윤의 『제정신으로 읽는 예수』가 묶여 나왔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친구’다. 이런 예수에 대한 새로운 규정은 당장 현실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취급하겠지만, 저자는 왜 예수가 오늘날 ‘우리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숱한 교리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 결과를 들어 하나하나 논박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기존의 신학적 해석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을 갖는 것은 아니다. 책의 차례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저자는 예수의 ‘운동’이 오늘날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예수가 2000년 전에 ‘왜’ 그런 운동을 했는지, 예수가 그 운동에서 ‘무엇을’ 말하고 실천했는지 밝혀준다. 예수를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삶을 살아갈 도반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모두 ‘예수인(Jesusian)’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그리스도론이라는 타율적 해방의 담론에서 자율적 해방의 담론으로, 구속과 속박의 종교에서 자유와 창조의 종교로 전환하는 시기가 바로 현대입니다. 현대에 맞는 신학이론을 구성하려는 돈 큐핏의 노력은 충분히 검토해볼 만합니다. 그는 같은 책에서 “종교의 낡은 형태, 즉 철저히 타율적인 외부의 통제체계인 이전의 종교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렸다”고 진단하면서 “자율적인 도덕성과 의식의 시대에, 타율적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겉치레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진지한 통찰은 이러한 발언을 할 때 그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34~35쪽) 저자는 그러니까 이 책에서 종교는 삶을 억압하는 기제가 아니라 삶을 해방시키는 기폭제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거창하게 ‘해방신학’까지 떠올릴 필요는 없다. 왜냐면, 예수는 내 친구이니까! 부활은,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친구로 화할 때, 우리는 예수의 부활 사건도 새로운 시각으로 읽을 수 있으며, 나아가 그 부활 사건을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예수가 말하는 부활(resurrection)은 소생(revival)이 아닙니다. 잠시 죽었다가 살아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의학적인 소생술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소생된 사람은 그러나 또 죽습니다. 부활은 그러한 생물학적 소생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천국을 경험하고 다시 소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묶여 한 때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있지만, 부활은 그러한 것과는 아무런 관련성도 없습니다. 부활은 영원한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nirvana)와 같은 층위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38쪽) 부활이 “해탈(nirvana)과 같은 층위에서” 말해져야 한다는 것은, 부활 자체가 구원이며 새로운 삶을 사는 하나의 계기임을 뜻하는 것이다. 부활이 단지 죽었다가 살아나는 사건으로 축소될 때 우리의 삶은 지옥이 될 수도 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만약에 예수의 삶이 당대 사람에게 어떠한 희망도 주지 않는 것이었다면 예수의 부활은 저주와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라는 주장은 구원이나 해방이 되지 않는 부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저자가, “예수의 부활은 민중에게는 복음(good news)이며, 권력자들에는 공포”라고 말한 것은 예수의 운동과 그의 십자가형, 그리고 부활 사건 모두가 당대의 정치적 흐름과 같은 궤에 있다고 강조하기 위함이다. (물론 저자는 모두에서 예수 생존 당시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을 쓸 때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였으며, 저자는 그 고통을 통해 낡은 가치를 뒤집은 예수의 메시지를 다시금 곱씹은 듯하다. 예수의 삶은 낡은 가치를 전복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거짓 우상을 파괴하는 우상 파괴자였습니다. 그는 부조리한 명령이나 폭력에 저항하는 저항자였습니다.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복음 5:39)는 말은 무기력한 대응의 메시지가 아니라 급진적인 저항의 언어입니다.(40쪽) 예수의 여성성 저자가 다시금 환기시키는 예수의 삶과 운동의 동력은 과연 무엇인 걸까. 저자는 예수가 가지고 있던 ‘여성성’을 꼽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예수의 ‘섹슈얼리티’를 두 개의 챕터로 나누어서 다루고 있는데, 그만큼 예수가 ‘여성성’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여성성’은 바로 어머니 마리아의 삶과 어릴 적부터 교유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대목은 예수의 출생 비밀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아버지 요셉의 이른 죽음도 암암리에 전제되어 있다. 『신의 인간성(Humanity of God)』을 쓴 엘리자베스 몰트만 웬델에 따르면, “예수는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를 조화롭게 통합한 최초 인물이다”라는 평가가 가능한 거지요. 근거를 대자면,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수많은 여성 주인공들, 예를 들면 열 명의 신부 이야기(마가복음 25:1~3), 누룩을 넣어 떡을 만드는 여인(누가복음 13:21), 동전을 찾은 과부(누가복음 15: 8~10) 등이 이를 방증합니다. 이러한 비유 등은 예수가 젊은 시절 어머니 주변의 여성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든 비유입니다. 저는 예수에게 열두 제자가 있었던 것처럼, 만약 열두 명의 스승이 있었다면 그중 최소 5할은 여성일 거라고 추정합니다.(61쪽) 예수의 여성성이야말로 예수에게 존재한다고 회자되는 신성의 다른 이름이라는 저자의 통찰은 오늘날까지도 여성에 대한 배제와 억압을 당연시하는 남성에 대한 직격이기도 하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정치적 사건이다 예수의 삶과 운동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많은 성서학자들과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이 지적했듯이, 예수의 운동은 ‘하느님 나라 운동’이며, 그 운동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임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 로마 황제에게만 부여되었던 ‘그리스도’를 예수의 제자들이 주창한 것에는 바로 이런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며, 예수가 당시 갈릴리 지방의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웃고, 마시고 몰려다닌 사실이 이미 정치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조직은 그 정신에 있어 평등과 섬김을 강조합니다.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무력이

저자 소개

인문학 작가, 자유청소년도서관 관장.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자유청소년도서관의 관장이자 인문학 작가다. 청소년,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양문고 성인인문학 ‘철학의 향기’,청년인문학 ‘청설모’, 고양인문학모임 ‘귀가쫑긋 동양철학반’, 부천여성인문학 ‘호호호’, 대화도서관 ‘청소년인문학’, 종교 팟캐스트 ‘주동아리’, 책 팟캐스트 ‘한양R&B’ 등을 진행하고, 「고양신문」에 ‘김경윤의 하류인문학’을 연재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철학의 쓸모』, 『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 『처음 만나는 동양고전』(생각의길), 『장자, 아파트 경비원이 되다』(사계절), 『청소년 농부 학교』(창비교육), 『논어-참된 인간의
길을 묻다』, 『장자-가장 유쾌한 자유와 평등 이야기』(파란클래식),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레시피』, 『제정신으로 읽는 예수』(삶창), 『허균, 서울대 가다』, 『스피노자, 퍼즐을 맞추다』,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을 가다』, 『묵자 양주, 로봇이 되다』(탐), 『내가 나 같지 않아서』(청어람e)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를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말의 당대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늘날에도 그대로 고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쓰였을 때만 하더라도 이 말은 국가반역죄에 해당하는 엄청난 고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이 최초로 고백되었던 로마제국 지배 사회에서는 그리스도[Christ]요 하느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는 사람은 로마 황제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초기 기독교인의 이 고백은 당대의 지배 권력을 부정하고 새로운 권력을 추대하는 엄연한 국가반역적 행위를 공공연하게 선포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그 고백의 결과가 사형이었던 것입니다. 당대의 그 고백은 가장 혁명적 언사였으며, 목숨을 걸고 내걸었던 슬로건인 것이지요.
―「1. 화면 조정 : 예수의 시대」, 23쪽.

예수가 죽음의 길로 걸어갈 때, 많은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그때 예수는 말합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어라.” 우리는 죽지 말아야 할 죽음 앞에서 한없이 눈물이 납니다. 지난 며칠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차가운 바닷속에서 구원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절망의 시간을 보내야했던 아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무기력한 우리 자신이 원망스러워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예수 정신이 아닙니다.
울음이 방향성을 잃고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때, 하릴 없이 소주만 기울이게 될 때, 울음의 방향성을 잡아야 합니다. 비참한 현실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고 바로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가 넋 놓고 울기만 한다면 절망의 현실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는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말했습니다. “강도 맞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길거리에 누워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기면서도 자기 일이 바빠서 지나쳐 간다. 자기가 당한 불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 한 사람이 지나가다 그를 발견하고 그를 응급치료하고 부축하여 쉴 곳에 옮긴 다음 그를 잘 보살펴주라고 말하고 그에 대한 비용을 자신이 대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 강도 맞은 사람의 이웃이냐?”
―「3. 부활, 새로운 가치의 선택」, 44쪽.

유대인 사회에서 예수의 신관은 거의 독보적 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관의 차이는 윤리관의 차이를 낳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관점의 차이를 낳습니다. 예수가 당대 민중에게 절대적 환호를 받은 반면, 당대의 권력자나 지식인들에게 절대적 증오의 대상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격하게 결론을 내리자면, 예수의 여성성이 예수의 전생애를 관통하고 있으며, 예수는 바로 그 여성성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당대 이스라엘의 지식인이나 권력자들에게는 너무도 낯설고 두려운 새로운 신성(神性)이자, 인간성(人間性)을 예수가 담고 있었으니까요.
―「6. 예수와 섹슈얼리티(2)」, 87쪽.

예수는 가난하기에 더러웠고, 그러한 처지였기에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인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을 감사하지는 않았지만 가난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더러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그는 적어도 그 자신과 그의 조직에게는 극빈에 해당하는 가난을 절대적 조건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권력의 차별성을 혐오하고, 더 낮아지고 더 섬기며 꼴찌가 되기를 추구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랑의 윤리학을 완성했습니다.
가난하고 더러운 자의 윤리학이라 지칭했던 무조건적 사랑의 윤리학이 지향하는 목표는 당연히 가난하고 더러운 자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했고,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의 가장 일상적 모습은 무차별적으로 열린 식사였지요. 어떠한 조건도 없이 초대되는 이 식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1. 예수의 윤리학」, 167쪽.

목차

목차
저자의 말 6
1 화면 조정 : 예수의 시대 13
2 관점 변화 : 예수 내 친구 25
3 부활, 새로운 가치의 선택 37
4 어린이와 하느님 나라 48
5 예수와 섹슈얼리티(1) 58
6 예수와 섹슈얼리티(2) 73
7 농부 예?수 88
8 개그맨 예수 104
9 예수 경제학 120
10 예수 공동체의 조직론-예수의 제자들 137
11 예수의 윤리학 154
12 예수 이후-쓰레기처럼, 찌꺼기처럼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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