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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400106 / 380쪽 / 532g / 153 x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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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스무 권의 수필집을 펴낸 한국을 대표하는 수필가, 30년간 문학잡지 발간, 사학재단의 설립과 운영, 국내 최초로 한국현대문학관 건립, 40년 가까이 ‘한국펜클럽’을 이끌며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헌신했고 한국인 최초로 국제펜클럽 런던본부 종신 부회장을 역임……. 이런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떠올릴 수가 없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바로, 벽강(璧江) 전숙희다. 한글과 한국문학의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50년대 후반부터 수없이 해외를 드나들며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생을 바친 벽강 전숙... 스무 권의 수필집을 펴낸 한국을 대표하는 수필가, 30년간 문학잡지 발간, 사학재단의 설립과 운영, 국내 최초로 한국현대문학관 건립, 40년 가까이 ‘한국펜클럽’을 이끌며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헌신했고 한국인 최초로 국제펜클럽 런던본부 종신 부회장을 역임……. 이런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떠올릴 수가 없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바로, 벽강(璧江) 전숙희다. 한글과 한국문학의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50년대 후반부터 수없이 해외를 드나들며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생을 바친 벽강 전숙희 선생의 생애를 다룬 책이 한겨레출판에서 출간되었다. 스무 권의 수필집을 펴낸 한국을 대표하는 수필가 1916년생인 전숙희는 강원도 통천군에서 태어나 원산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이화여고 시절부터 문학에 소질을 보였던 그는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35년 당시 이화여전 교수였던 소설가 이태준 선생의 지도 아래 〈시골로 가는 노파〉 등 네다섯 편의 단편소설을《여성》, 《사상계》에 발표하며 등단한다. 등단 초기에 십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나 이후 그는 수필문학에 주력한다. 문학평론가 서정자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미 소설에서부터 자기폭로와 고백에 대담성을 보인 전숙희의 특성이 소설보다는 자기고백적인 수필에 더 어울렸다고 말이다. 20대 초반에 결혼하여 사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이 어렵게 되자 마음을 담은 수필 쓰기로 마음의 공허를 메웠다고 그는 고백하기도 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수필 쓰기 방법과 자세를 솔직성과 진정성으로 천명하며 그 원칙을 지켜나간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전숙희의 수필은 한층 더 깊어졌다. 부산 피난시절, 마음이 답답할 때면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송도 바닷가로 나가곤 했다. 그 시절 쓴 〈마음의 행로〉에는 현실을 극대화하지 않고 담담하게 썼음에도 전쟁의 비극적인 기운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쟁이 끝난 1954년, 전숙희는 그동안 쓴 글들을 모아 첫 수필집 《탕자의 변》을 출간한다. 소설가 박종화는 이 책의 서문에서 “수필 쓰는 이가 우리 문단에 수로는 많았으나 진정으로 쓰는 이는 청천 김진섭 형과 여류 수필가 전숙희 여사 두 분이 있을 뿐”이라며 첫 책의 출간을 축하했다. 《탕자의 변》에는 한 수필가의 눈에 비친 전쟁과 평화, 개인과 국가, 이념과 갈등 같은 복잡다단한 인간사가 밀도 있게 담겨 있다. 이후 전숙희는 이십여 권의 수필집을 출간할 만큼 많은 수필을 썼으며, 이는 2007년 《전숙희 문학전집》(전7권)에 집대성된다. 그는 특히 언어의 남용이 없는 간결한 문체로 수필을 썼다. 문학평론가 김우종은 그것을 두고 “교양 있는 문체”라 일컬었다. 김우종은 전숙희의 수필이 시간의 미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서 “자주 과거로 돌아가며 과거와 현재의 긴 시간 개념을 도입할 뿐만 아니라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의 의미를 통해서 영원 속에 우리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초창기를 제외하고 수필 쓰기에 주력했던 전숙희는 2002년 뒤늦게 장편소설을 한 편 썼는데, 여간첩 김수임을 소재로 한 《사랑이 그녀를 쏘았다》가 그것이다. 그가 87세의 고령에도 마치 평생 간직한 숙제를 마치듯 이 소설을 쓴 데에는 사연이 있다. 둘은 이화여전 선후배 사이로 전숙희가 김수임의 집에 잠깐 산 적이 있을 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혼돈의 시대에 죄 없이 희생된 ‘김수임 간첩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던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오랫동안 자료를 모아왔고 마침내 완성해냈다. 여든일곱에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 일인데 이 소설은 나이 든 사람이 쓴 거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구성도 문체도 탄탄하다는 평을 얻었다. 전숙희는 다양한 대외활동을 하면서도 “이 지상을 떠나간 후에도 내 명부는 문학이라는 울타리 속에 남으리라”는 바람을 되뇔 만큼 끝까지 ‘문학인’의 자리에 서고자 했다. 한국펜클럽을 이끌며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앞장서다 전숙희는 해방 후 소설가 손소희와 함께 명동에 문인 다방 ‘마돈나’를 개업해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가 하면 문학잡지 《혜성》을 발간하며 문단의 중심부에 발을 들인다. 발간 3호 만에 6·25전쟁이 일어나 부산으로 피난을 가지만 그곳에서도 문인극을 공연하고, 김동리, 김광섭, 박목월 등의 문인들과 꾸준히 교류를 이어간다. 전쟁이 끝난 후, 전숙희는 선배 모윤숙의 권유로 한국펜클럽에 가입하면서 1957년 도쿄 국제펜대회를 시작으로 한국문학 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이와 함께 1970년에는 월간지 《동서문화》를 창간해 국내외 문학작품들을 소개하는 한편 이를 해외동포들에게 배포해 모국의 소식을 전하며 그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이후 1985년 《동서문학》으로 제호를 바꾼 이 잡지는 2000년대 초 폐간할 때까지 삼십여 년간 동양과 서양, 국내와 해외동포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바친 전숙희의 열정은 1988년 ‘서울 국제펜대회’를 개최하면서 정점을 찍는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문인들이 투옥되는 등 불안한 정국이었다. 국제펜클럽 회원국들은 한국의 정치적 불안과 인권 문제를 들어 서울 대회를 반대하고 나섰다. 비밀 작전을 방불케 한 문인들의 노력으로 서울 대회가 확정되자 전숙희 회장은 정을병 대회 의장과 함께 대회 준비에 전력을 다한다. 한편으론 구속 문인 석방을 위해 이들을 면회하고 정부에 탄원서를 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1988년 8월 28일 열린 ‘서울 국제펜대회’는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미국을 비롯해 유치를 반대했던 나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거의 왕래가 없던 소련이나 중국 작가들도 다수 참여했다. 이 대회를 계기로 세계 여러 나라와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음은 물론이고 전숙희 개인의 활동 영역도 크게 넓어졌다. 그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 작가로는 처음으로 소련작가동맹의 초청을 받아 소련을 방문했으며, 1991년에는 국제펜클럽 런던본부 종신 부회장에 선출되어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런 전숙희를 일컬어 소설가 이문열은 “‘큰어머니’, 혹은 고대 부족의 여족장 같은 풍모를 느꼈다”고 말했으며, 김원일은 “가망이 없을 거라고 고개를 젓는 사이 이를 성취해내는 뚝심이 달랐던 큰 사람”으로 기억했다. 전숙희는 그동안의 펜클럽 활동과 잡지 발간을 바탕으로 모아온 자료를 집대성해 평생 숙원이던 ‘한국현대문학관’을 설립했다. 2019년 개관을 목표로 올해 들어서야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걸 감안하면, 18년 전인 1997년 개인의 노력으로 현대문학관(개관 당시 ‘동서문학관’)을 설립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전숙희는 동생 전락원과 함께 부모의 유지를 받들어 1979년 경기도 의왕시에 계원예술고등학교와 예술전문대학을 설립하고 2004년까지 이사장을 역임했다. 하나의 사학을 건립하고 그 기반을 다지는 일 또한 당연히 쉬운 과정은 아닐 터. 그만이 지닌 특유의 뚝심이 여기에서도 발현된 셈이다.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나간 ‘신여성’ 전숙희는 1916년에 태어나 2010년 별세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선생의 삶은 또 하나의 현대사로 읽힐 만하다. 특히 ‘신여성’으로 살았던 그의 삶을 뒤쫓아 가면 새로운 무늬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해운업으로 크게 성공했던 조부 덕에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낸 전숙희는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내려온다. 종로소학교를 거쳐 이화여중에 입학할 때만 해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없지 않지만 전숙희처럼 직접적인 고백으로 자신의 문학과 신앙을 결부시켜 말한 경우는 드물다. 신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그의 언어는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부드럽게 옮겨 앉으면서 그를 사랑의 수필가, 사랑의 문학인, 그리고 활동가로 높여준다. -김주연(문학평론가)
일제강점기 함경도 무산에 살 때 산욕이 채 끝나기도 전, 아기를 솜 포대기에 싸 업고 영하 40도의 두만강 빙판을 건너 만주에 가려던 전숙희의 모습은 그의 세상을 향한 높은 꿈과 기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이 눈 덮인 두만강 앞에 선 전숙희의 모습은 하나의 아우라로 그의 문명文名 위에 남았다. -서정자(문학평론가)
하루에 한두 장의 글이라도 쓰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내가 오늘 살아 있다는 실존을 느끼게 된다. 숱한 회의와 혼돈의 사념 속에서 나는 그래도 항상 펜을 들고 있다. 나의 글은 누구에겐가 읽히기 위해 독자를 의식하고 쓰는 글이 아니다. 나를 위해, 내가 살아 있다는 보람을, 나는 몇 줄의 글에서 얻고 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전숙희의 평전을 쓰면서 이렇게 그의 삶을 퍼즐처럼 맞춰놓고 나서 다시 그의 글들을 읽어보았다. 그러자 그의 글에 얼마나 생략과 행간이 많은지가 보였고, 그 행간에 숨은 엄청난 인내와 사랑의 힘이 가늠되었다. -본문에서
목차
1. 문학의 자양분으로 충만하다 -어린 시절
솟을대문 집 손녀
금강산을 뛰놀다
추억의 송도원
2. 고난의 시절도 당당하게 -성장기
일본말을 쓰지 않는 학교를 고집하다
처음 겪은 가난
우정을 지키려다 감옥까지
실습용 수술대에 오르다
3. 장르를 넘나들며 글쓰기에 빠지다 -습작기
에피소드가 많았던 이화여전 시절
소설 창작과 등단
사라진 1천 장의 원고
4. 힘겹게 인생의 전환점을 돌다 -결혼과 육아
우여곡절 많았던 결혼
무산 시절의 행복
수필 창작으로 목마름을 채우다
해방과 함께 달라진 삶
5. 전쟁을 딛고 ‘신여성’으로 거듭나다 -문학 활동기
문인 다방 ‘마돈나’와 문학잡지 《혜성》
6·25 전쟁과 피난시절
전쟁을 겪으며 깊어진 사회적 시선
첫 수필집 《탕자의 변》 출간
기자 생활과 미국 문화 탐방
6. 공적 미래를 향해 열정을 바치다 -펜(PEN) 활동기
‘우리’라는 폭넓은 인식
세계화의 초석, 문예지 《동서문화》 창간
계원학원 설립 의지와 실현
한국문학을 세계로, 펜 활동
7. 문학적 삶의 원천 -가족과 문우들
정신적 지주, 어머니와 아버지
든든한 조력자, 동생 전락원
사랑과 회한, 남편 강순구
끝없는 사랑, 아들딸
가족 같은 문우들
8. 문학을 향한 멈추지 않는 열정 -황혼기
‘한국현대문학관’ 개관, 오랜 꿈을 이루다
장편소설 《사랑이 그녀를 쏘았다》 출간
미처 쓰지 못한 이야기
전숙희의 문학 세계
신앙과 사랑으로 세운 문학의 나라 -김주연(문학평론가)
수필가 전숙희의 소설가 시절 -서정자(문학평론가)
벽강(璧江) 전숙희(田淑禧) 선생 연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