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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

아우구스투스

원제 : Augustus

존 윌리엄스 저 | 조영학 역 | 구픽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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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타인의 시각으로 묘사되었던 아우구스투스와 최후가 되어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아우구스투스의 모습은 묘하게도 이질적이며 이것은 작가가 말하는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MD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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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5651474 / 416쪽 146 x 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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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참고자료: 대니얼 맨델슨의 해설 발췌 요약 (전문은 『아우구스투스』부록으로 수록)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서기전 63년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정치와 문학의 시대에 이름을 날렸다. 로마 공화정을 전복시키려는 어느 귀족의 시도를 봉쇄한 바로 그해였으나, 30년 후 아우구스투스 자신이 공화정에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서민 출신의 부유한 기사,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의 자식으로 태어나 로마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속주에서 자랐으며, 십 대 시절에는 몸이 허약했으나 영리하고 야심이 만만치 않아, 외종조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양자로 입양까지 했다. 그 이후로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로 불리었다. 서기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뒤 원로원의 명령으로 퇴위한 이듬해, 아우구스투스는 고인이 된 카이사르의 명예를 이용해, 로마 고참병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신의 아들’)로 개명했다. 스물다섯이 되는 해에는 필리피 전투에서 부루투스와 카시우스를 제압함으로써 카이사르의 복수를 마무리했다. 그 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3인의 군사독재관, 즉 ‘삼두’의 일인으로 로마 세계의 권력중심에 진입하는데(또 한 사람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이며 궁극적으로 그와도 전투를 벌이게 된다.) 이때쯤 ‘가이우스’와 ‘율리우스’는 사라지고, 호칭은 군사독재관 즉 ‘임페라토르’로 바뀐다. 군인들이 성공한 지도자들을 찬양할 때 사용하는 군사계급이자 바로 ‘황제’의 어원이다. 그리고 다시 10년, 독재관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는 서기전 31년 악티움 전투에서 유일한 정적 안토니우스를 무찌르고 광대한 로마제국의 절대 권력자로 등극했다. 1년 후 안토니우스는 애인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자살했다. (독재관 아우구스투스는 클레오파트라의 십 대 아들 카이사리온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아버지가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인지라 잠재적 정적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카이사르가 많아야 좋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서른세 살에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 이제는 권력기반 강화에 나서, 전통적인 공화정 법을 빌미로 교묘하게 독재를 합법화하고, 제국의 법적, 정치적, 문화적 기반을 확립했다. 제국은 이런저런 형태로 향후 150년간 지속한다. 아니,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현 체제가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 필요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놀랍도록 교활한 인물이 절대 사용하지 않은 직함이 바로 ‘렉스’, 즉 왕이다. 로마 사람들이 무척이나 싫어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실상 왕이 되려 한다는 이유로 외종조부를 살해한 자들도 역시 로마 시민이 아니었던가. 세상의 지배자는 자신을 ‘프린켑스’, 즉 제1시민으로 칭했다. 서기전 27년, 그가 100년간의 유혈사태를 종식하고 로마와 속국에 정치적 안정을 이루자, 로마 원로원은 감사의 표시로 표결을 통해 전례 없는 직함을 부여했다. 이번에는 종교적 함의가 가득했다. 아우구스투스, 즉 존경해야 할 위인이라는 의미다. 비록 애초의 성과 하등 관계가 없지만, 역사는 이제 그를 그 이름으로 기억할 것이다. ‘과거와의 단절.’ 아우구스투스와 두 선조의 숨은 혈연관계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윌리엄스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테마는, 시간이 흐르면 존재를 향한 인식도 환경과 상황에 따라 불가피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소설 『아우구스투스』에서 윌리엄스는 어떻게든 저 화려한 역사적 장관을 걷어내고 난해한 인물 자체에 초점을 고정하려 하였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새로운 자아를 끊임없이 개발해내야 했던 사내가 아니던가. 이 소설의 충격은 역사적 위인으로서의 주인공 또한 결국 작가의 다른 미천한 주인공들과 전혀 다를 바 없으며, 따라서 우리들과 비교해도 더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 장엄한 역사소설의 본질은 지극히 친근하고 매우 인간적이다. 소설 『아우구스투스』에 쓰인 서한 형식은 낭만적 주제에 적합하지만 윌리엄스의 프로젝트에도 이상적인 형식이라 하겠다. 그의 소설이 만들어낸 초상은 (날조한) 편지뿐 아니라, 수기, 원로원 포고, 군사 명령, 개인 메모, 미완성의 역사를 통해 굴절되기에 지극히 복잡한 동시에 어느 정도는 인상주의적이자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 에서 가상 서한과 기록의 저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실존 인물이다. 윌리엄스는 단순히 과거를 ‘현대화’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일부 잘 알려진 인물들을 기꺼이 재현해낸다. 『아우구스투스』를 작업할 당시 메모에서도 볼 수 있듯이 “토가 차림의 헨리 키신저를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우구스투스』에서의 기막힌 한 수는 황제 자신의 목소리를 끝까지 유보한 데 있다. 우리는 마지막에 가서야 마침내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우구스투스는 다마스쿠스(Damascus)의 니콜라우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데 바로 이 소설의 마지막 3부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당연하겠지만 황제 자신이 직접 과거를 설명한 내용과 그 이전까지의 가정과 결론이 일치할 리가 없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의 암살 소식을 듣고 어린 옥타비우스가 슬픔과 당혹감에 빠져 크게 울었다고 알려졌지만 기실은 “아무 감정도 없고… 심지어 차갑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마저 이내 승리감으로 바뀐다. “갑자기 그 반대로 힘이 샘솟고… 운명도 깨달았다.” 인식과 실체, 공식과 비공식, 우리 삶에 대한 공적 서술과 사적 서술의 간극을 강조라도 하듯, 윌리엄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위업』의 발췌문을 가상의 미니자서전 여기저기 흩뿌려놓는다. 윌리엄스의 아우구스투스는 이름이 많다. 게다가 마지막 이름은 첫 번째와 공통점이 전혀 없다. 요는, 이름만으로도 의외의 변화와 피치 못할 잠식과정을 너무도 생생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투스가 니콜라우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보면, 스토너의 단어 “덧없는 삶”이 효과적으로 재등장한다. 황제는 죽어가면서 “우리의 삶이 결국 덧없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생각을 환기하는 이유는, 그가 오랫동안 투쟁해온 가치인, 평화와 안정이 결국 로마, 또는 공동체가 원하는 바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렇게나 노력했건만 적절한 삶의 환경, 즉 인간이 제일 살기 좋은 조건이 번영, 평화, 조화와 거리가 멀 수도 있겠어. 그런데도 난 그런 것들을 로마에 주기 위해 애썼다네.” 황제는 제국을 세웠지만 그 기초는 착각에서 비롯했다. 그렇다고 해도 윌리엄스는 주인공들을 실패자로 보지 않았다. 우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가 죽기 몇 년 전에는, 한 인터뷰에서 스토너를 “진짜 영웅”이라며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소설을 읽은 후 대다수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이 슬프고 불운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어느 누구보다 잘 살았다 하겠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며, 또 그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자부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요한 가치를 직접 목도하지 않았던가…. 신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실. “신념을 지켜라.” 이들 등장인물은 자신이 바라던 미래의 모습에서 멀어졌으나, 결국 자신이 만드는 삶 자체가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이며, 그 안에서 혼자 살 용기를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인식이 비극이기는 해도 반드시 슬퍼할 필요는 없겠다. 윌리엄스는 『스토너』에서 “적어도 우리는 우리 자신과 함께 여기까지 왔어. 우리는 지금 이 모습이 우리라는 사실을 알아.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도 알고.”라고 말하고, 『도살자의 건널목』에서 주인공 윌리엄 앤드류의 입을 빌려 “다 개소리야…. 우리는 거짓으로 태어나고 거짓의 젖을 먹으며 자라지.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면 더 황당한 망상을 배우게 된다…. 어쩌면 죽을 때가 되어서야 깨닫겠지만, 네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아니, 망상 때문에 놓치고 만 일들과 후회 정도야 남겠지.”라고 말한다. 그리스 비극처럼, 두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조금씩 ‘당위와 이상’의 옷을 벗고 궁극적으로 자신이 이제껏 해왔던 일들, 즉 ‘네 자신’이라는 찌꺼기만 남는 과정을 드러낸다. 『아우구스투스』 후반부에서, 독재자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는 더욱 심오한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자기 자신과 직면하고, 기만과 착각에서 벗어나는 일이야말로, 위대하든 평범하든,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정점이다. 이러한 결말은 훌륭한 전기와 최고의 소설이 추구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미천한 존재로서의 자아’가 최초의 로마황제를 생각할 때 떠오를 만한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또 그 결말에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윌리엄스의 소설이 위대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저자 소개

존 에드워드 윌리엄스는 1922년 8월 29일, 텍사스 주 클락스빌에서 태어났으며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공군 소속으로 중국, 버마, 인도에서 복무했다. 윌리엄스는 덴버 대학교에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미주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54년에 덴버 대학교로 돌아와 30년 동안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쳤다.《오로지 밤뿐 Nothing But the Night》(1948), 《도살자의 건널목 Butcher's Crossing》(1960),《스토너 Stoner》(1965),《아우구스투스 Augustus》(1972) 총 네 편의 소설과 두 권의 시집을 발표했으며, 영국 르네상스 시대 시선집을 편집했다. 《아우구스투스》로는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1994년 아칸소 주 페이예트빌에서 세상을 떠났다.

역자 소개

한양대 영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소설 전문 번역가. 《나는 전설이다》, 《히스토리언》, 《임페리움》, 《스티븐 킹 단편집》, 《루스트룸》, 《숨은 강》, 《고백은 없다》, 《레벨 26》, 《더 레이븐》, 《기적의 튜즈데이》, 《분해되는 아이들》, 《스마일리의 사람들》, 《태양의 아들 SON》, 《리브 바이 나이트》,《어느 물리학자의 비행》,《리틀 드러머 걸》 등 60여 편의 소설을 번역했으며, 현재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출판번역 강좌를 담당하고 있다. 

 

책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로마의 거짓말과 함께 살았을까? 내가 기억하는 처음부터, 물론 그전에도 마찬가지였겠지? 도대체 그놈의 거짓말들은 어디에서 생명력을 빨아먹고 진실보다 강하게 자라는 걸까? (중략) 세상을 정복했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구나. 사람들에게 자유를 보여주면 마치 질병이라도 만난 듯 달아나버린다. 믿을 만한 자들을 외면하고 언제든 배신할 자들을 사랑하며,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채 이렇게 국가를 이끌고 있구나. _본문 중에서

필요란 이미 일어난 일을 뜻하네. 과거에 불과하다는 얘기지. _본문 중에서

드디어 세상을 정복했건만 그날 밤 승전가는 없었다. 기뻐하는 사람도 없었다. 밤늦도록 들리는 소리라고는 파도가 철썩거리며 폐선을 때리는 소리와 부상자들의 나지막한 신음뿐이었다. 불줄기가 항구를 덮었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자기 뱃머리에 서서 굳은 표정으로 바다를 내다보았다. 전우든 적이든 용자들의 시신을 품은 바다. 둘 사이에 차이는 없었다. _본문 중에서

시인들 말이 맞는다면, 젊음은 피가 뜨겁게 들끓는 나날이다. 사랑하는 시간이자 열정의 순간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지혜로 냉수 목욕을 하면 젊음의 열병이 치유된다 했던가? 다 개소리다. 인생이 종국에 달해 더 이상 사랑을 잡을 수 없을 때까지 난 사랑이 뭔지 알지 못했다. 젊음은 무지하고 열정은 모호할 뿐이다. _본문 중에서

오로지 권력을 증오하는 자만이 권력을 잘 쓸 수 있을 겁니다. _본문 중에서

권력은 공허하다. 철학자들의 말이다. 하지만 환관이 여자를 모르듯 그들 역시 권력을 모른다. 권력을 봐도 감흥이 없는 것도 그래서다. 난 평생 아버지가 권력의 맛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권력을 수단으로 사는 법을 배웠다. 마르쿠스 아그리파와 행복하게 살았던 이유도 권력 때문이었다. _본문 중에서

성공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난제를 드러내고 승리는 예외 없이 패배의 가능성을 키워준다. _본문 중에서

삶의 대부분을 비밀 속에서 지냈네. 정치에 몸을 담은 이상 타인에게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었지.
다행히, 젊음은 자신의 무지를 보지 못한다네. 도저히 감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지. 무지에 눈을 감고 후일 자신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는 것도 필경 피와 살에 담긴 본능 때문이겠지? _본문 중에서

사람은 자기 행동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고민하지 않네. 그보다 그 결과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중략) 젊은이는 미래를 모르기에 삶을 일종의 서사적 모험으로 여기지. 오디세이처럼 낯선 바다와 미지의 섬을 여행하며, 자신의 힘을 실험하고 증명하고 그로써 자신의 불후를 발견하고 싶은 걸세. 중년이 되면 꿈꾸던 미래를 겪었기에 삶을 비극으로 본다네. 자신의 힘이 아무리 위대한들, 신이라는 이름의 사고와 자연을 이길 수는 없으며,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하지만 자기가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면 노인은 삶을 희극으로 볼 수 있네. 승리와 실패를 가감한다면, 누구도 타인보다 자랑스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네. _본문 중에서

목차


작가 노트
프롤로그
BOOK I
BOOK II
BOOK III
에필로그
해설_대니얼 멘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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