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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시리즈 : 아로파 세계문학 [10]

볼테르 저 | 아로파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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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252030 / 216쪽 171 x 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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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순진한 낙관주의자 캉디드가 겪는 깨달음의 여정 기발한 상상력 속에 볼테르의 철학적 사유를 담다! “이탈리아에 르네상스, 독일에 종교개혁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다.” - 빅토르 위고 “비관주의를 이처럼 명랑하게 논한 책은 결코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세상의 비애를 배우면서 이처럼 실컷 웃은 적은 결코 없었다.” - 윌 듀랜트 프랑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극작가, 소설가인 볼테르의 대표작 《캉디드》는 순진한 청년 캉디드가 겪는 모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언제나 더할... 순진한 낙관주의자 캉디드가 겪는 깨달음의 여정 기발한 상상력 속에 볼테르의 철학적 사유를 담다! “이탈리아에 르네상스, 독일에 종교개혁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다.” - 빅토르 위고 “비관주의를 이처럼 명랑하게 논한 책은 결코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세상의 비애를 배우면서 이처럼 실컷 웃은 적은 결코 없었다.” - 윌 듀랜트 프랑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극작가, 소설가인 볼테르의 대표작 《캉디드》는 순진한 청년 캉디드가 겪는 모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언제나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낙관주의를 의심 없이 믿어 왔던 캉디드는 에덴과도 같은 툰더텐트론크 성에서 쫓겨난 뒤 갖은 고행을 겪으며 더할 나위 없이 비극적인 사건과 사고에 휘말린다. 때로는 대담하게, 때로는 익살맞게 세상의 부조리에 일침을 가했던 볼테르는 이 작품에서 당시 퍼져 있던 낙관주의에 대해 끝없이 의문을 던진다. 《캉디드》는 출간 당시에도 뜨거운 감자였을 뿐만 아니라, 출간된지 2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읽히며 사랑받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선정한 동서양 고전 200선, 미국 대학위원회 SAT 추천 도서, 시카고 대학교 그레이트 북스 재단 선정 위대한 고전 144선에 꼽힌 작품 《캉디드》를 아로파 세계문학 시리즈로 만날 수 있다. 도서 말미에는 ‘깊이읽기’ 코너를 마련해 작품 이해에 도움을 주는 자세한 해설과 아로파 세계문학만의 강점인 토론·논술 문제를 수록하였다. 청소년을 비롯한 독자들이 문학 작품의 감상력을 키우고 사고의 깊이를 넓히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 소개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 사상가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기도 하다. 1694년, 파리에서 출생하여 1778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이지만, 정부와 교회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저술 활동을 계속했다.
루이 14세 사후,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한 필립 오를레앙의 섭정(1715년~1723년) 시기에는 오를레앙 공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이 모이는 문학 살롱에 참여했다. 그러던 1716년, 오를레앙 공을 비방하는 시 〈나는 보았네〉를 썼다는 죄목으로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비극이나 서사시와 같이 당대에 인정받고 있던 장르에 도전했는데, 이름을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바꾼 것도 이때이다. 그리고는 1718년 11월(24세), 옥중에서 집필한 비극 『오이디푸스』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어느 귀족과의 싸움으로 다시 부당하게 투옥되었다가 국외 망명을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볼테르는 구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1726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영국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타고난 비판 정신을 더욱 키워 나갔다. 그 결과, 16세기 내내 프랑스를 분열시켰던 신교와 구교 간의 종교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앙리 4세를 찬양하는 서사시 『앙리아드』(1728년)를 펴낸다. 
1729년, 프랑스로 돌아온 후에는 비극 『자이르』 (1732년)를 발표하기도 했다. 1733년에는 수학과 물리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샤틀레 후작부인(에밀리 뒤 샤틀레)의 애인이 되어 그녀의 영향으로 문학가에서 철학자로 변신한다. 볼테르는 『철학 편지』(1734년)를 통하여 영국의 입헌군주정을 이상화하고 프랑스의 절대 왕정을 비판함으로써, 프랑스 왕실과 종교계의 미움을 사게 된다. 문제가 되자 즉시 사죄의 글을 발표하여 파리 입성은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지만, 샤틀레 가문의 영지에 머물면서 10여 년간 저술과 연구 활동에 매진했다. 이 시기에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뉴턴에 관한 편지』(1736년)와 『뉴턴 이론의 철학적 요소들』(1736년)을 출간하고 비극 『마호메트』(1741년)와 『메로프』(1743년) 등도 발표하였다. 
1744년에는 친구의 외무장관 취임을 계기로 루이 15세의 궁정에 들어가 역사 편찬관이 되었다. 이후 1746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뽑혀 비로소 입지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던 1750년, 이미 오래전부터 친분을 쌓아 둔 프로이센의 계몽 군주인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을 받아들여 베를린으로 간다. 그곳에서 역사서 『루이 14세의 세기』(1751년)를 완성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와 마찰이 일어나자, 1753년에는 베를린을 떠나게 된다. 
이후 프로이센의 여러 도시를 거쳐 프랑스의 국경에 도착(1754년)한 볼테르는 파리 입성이 금지된 사실을 알고 스위스 국경 인근인 페르네에 정착한다. 이곳에 머무는 20여 년간 볼테르는 계몽 사상가로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당시 볼테르는 수많은 저서 출판과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해 왔는데, 그러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여 성을 재건하고 주변을 정비하는 등,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던 페르네를 활기찬 소도시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볼테르는 반봉건·반교회 운동의 지도자로서 공격적인 글을 수없이 발표했다. 이 시기에 종교적 편견에 의한 불공정한 재판을 규탄한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원서 제목: 관용에 대한 개론)』(1763년)와 세계 문명사인 『풍속에 관한 에세이』(1756년), 철학 콩트인 『캉디드』(1759년), 『철학 사전』 (1764년) 등이 만년에 출간되었다. 
1778년, 드디어 파리로 입성한다. 생애 마지막 비극 작품인 『이렌』 의 상연을 위해 파리를 찾은 볼테르는 이 작품의 첫 공연을 직접 감독했다고 하는데, 당시 그의 나이 83세였다. 『이렌』을 관람하기 위해 ‘코메디 프랑세즈’를 찾은 대중들은 그를 둘러싸고 “칼라스 옹호자 만세!”라고 외치며 열렬히 환영했다고 한다. 사실 그들은 작품보다는 ‘작가’를 보러 온 것이었으며, 볼테르가 일생 동안 제안한 새로운 가치관, 즉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잃지 않은 이성’에 대한 믿음과 실천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1778년 5월 30일에 사망한 볼테르는 비록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대혁명을 보지는 못했지만,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잠들어 있는 ‘팡테옹’에 안치되었다. 

 

역자 소개

  • 역자 :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보들레르와 벤야민 연구’로 파리 8대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책 속에서

팡글로스는 형이상학적·신학적·우주론적 바보학을 가르쳤다. 그는 원인이 없는 결과란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 가능 세계들 중에서 가장 좋은 이 세계에서 남작의 성이 가장 훌륭하며 툰더텐트론크 남작 부인이 이 세상 모든 남작 부인 중 가장 훌륭하다는 것을 멋지게 증명했다.
- 제1장

“그렇습니다, 나리. 관례가 이래요. 우리에게 옷이라고는 1년에 딱 두 번씩 받는 질 나쁜 속옷 한 장이 전부이지요. 우리는 사탕수수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맷돌에 끼면 손이 잘립니다. 도망가려 하면 다리가 잘리고요. 나는 두 경우 모두에 해당하지요. 당신들이 유럽에서 설탕을 먹을 수 있는 건 우리가 이런 희생을 치르기 때문입니다. (중략) 개나 원숭이, 앵무새도 우리보다 천배는 덜 불행할 겁니다. 나를 개종시킨 네덜란드 목사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말하기를 검든 하얗든 우리 모두가 아담의 자식이라고 말했어요. 내가 족보학자는 아닙니다만 이 설교자들이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두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 가족이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사람들이 자신의 형제를 지독히도 끔찍하게 이용해 먹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만 할 거예요.” 흑인이 답했다.
“오, 팡글로스 선생님! 이런 끔찍한 일은 상상도 못 하셨을 거예요. 이젠 모두 끝입니다……. 결국 저는 선생님의 낙관주의를 버려야겠어요.” 캉디드가 탄식했다.
“낙관주의라는 게 뭡니까?” 카캉보가 물었다.
“맙소사! 그건 나쁜데도 모든 게 좋다고 우기는 광기라네.”
- 제19장

때때로 팡글로스는 캉디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능 세계 중 가장 좋은 세계에서는 모든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다네. 그도 그럴 것이 만일 자네가 퀴네공드 양을 사랑해서 엉덩이를 발로 차여 아름다운 성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만일 자네가 종교 재판을 받지 않았더라면, 만일 자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았더라면, 만일 자네가 남작을 찌르지 않았더라면, 또 만일 자네가 엘도라도에서 가져온 양들을 모두 잃지 않았더라면, 자네는 여기서 설탕에 절인 시트론과 피스타치오를 먹지 못했을 것 아닌가.”
그럴 때마다 캉디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정말 맞는 말이네요. 좌우간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일구어야 합니다.”
- 제30장

이제까지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예단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앞에서 그 어떤 확신에도 기댈 수 없는 사생아이자 고아인 캉디드는 새로운 진리를 찾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과 다른 의견과 입장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관용적 태도로 껴안으며 스스로의 운명을 짊어진다.
- 해설편

 

목차

목차
캉디드
캉디드 깊이읽기
_해설편
_토론·논술 문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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